본문 바로가기

REVIEWS/ALT & INDIE

WASHED OUT: Within And Without (2011)


미국 조지아 주에 베이스를 두고 활동 중인 DIY 뮤지션 어네스트 그린(닉네임은 WASHED OUT)의 깜짝 데뷔작 EP 앨범 [Life of Leisure (2009)]은 애초에 그 어떤 대중적 성공을 기대하고 만들어진 작품은 아니었다. 사우스 캐롤라이나 대학에서 문헌정보학 석사 학위까지 받고 졸업 후 도서관 업무 관련 직장을 구해보고자 애를 썼지만 미국의 경제 불황 탓에 마땅한 일자리를 찾지 못하고 결국 자신의 고향인 조지아로 낙향, 부모집에 얹혀 살며 다시 구직을 도모하던 중 자기 방에서 4트랙 리코더와 삑사리 키보드를 이용해 심심풀이로 만든 데모 트랙들이 마이스페이스 유저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끌면서 일약 인터넷 음악 스타로 급부상하게 되었다. 

잇터넷 바람몰이 이후 선보였던 첫번째 스튜디오 앨범 [Life of Leisure] EP를 녹음-발매하는 과정 중에도 그랬듯이, 이번 새 앨범 [Within And Without] 레코딩 소식이 전해진 이후부터 WASHED OUT의 데뷔 앨범에 대한 관심은 (적어도 조지아나 뉴욕 브룩클린 지역에서만큼은) 가히 폭발적(?)이었다. 로-파이 DIY 음악에 관해 지칠 줄 모르는 애정을 독재적으로 드러내는 피치포크의 빵빵한 백업 서포트 덕에 어네스트 그린은 정규 앨범 한장 발매하지 않은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작년 성황리에 끝났던 피치포크 뮤직 페스티벌에 초대되어 PANDA BEAR, SLEIGH BELLS, SURFER BLOOD, NEON INDIAN 등의 밴드들과 함께 무대에 올라 또 한번 큰 주목을 받기도 했다. 그때 그의 공연을 직접 관람하기도 했었는데, 프로페셔널하다고 말하기엔 약간 미안한(?) 퍼포먼스를 보여주긴 했지만 관중들의 성원은 전날 무대를 달궜던 LCD SOUNDSYSTEM 못지 않을 정도로 뜨거워 개인적으로 흠찟 놀라기도 했었다. 

[Life of Leisure] EP에서 드러냈던 WASHED OUT의 80년대 복고 취향 음악 색깔은 이번 정규 앨범 [Within And Without]에서도 여실히 드러나기는 하지만, EP에서 즐겨 써먹던 싱코페이션 댄스 비트나 볼륨감 넘치는 베이스라인은 상당량 거세되고 직선적인 슈게이징 감수성 멜로디를 그 위에 덧씌우면서 앨범 전체적 분위기가 댄스 지향의 EP 앨범보다 훨씬 더 강력한 레벨의 몽환적 에테르향으로 넘쳐나 있다. 이언 마스터스(PALE SAINTS)같은 왠만한 드림팝 보컬리스트 못지 않은 지독한 백일몽을 저절로 꾸게 만드는 "Eyes Be Closed", "Far Away" 등의 트랙에서도 간파되듯, [Within And Without]에서 일관적으로 삽입된 어네스트 그린의 보이스는 여타 일렉트로팝 음악과는 달리 튀지 않고 상당히 절제된 구성력을 보여주면서 마치 제임스 블레이크의 음악에서 듣곤 했던 샘플링화된 보컬 파편들처럼 배킹 사운드의 일부분 쯤으로 전체적인 음악 속에 스르르 녹아든다. 특히 전작 EP 앨범의 '칠웨이브' 스러운 취향이 가장 극명하게 드러나는 "Soft" 에서 감지되듯, 딜레이 이펙터에 실려 거추장스러운 꾸밈음(onament) 하나 없이 직설적으로 쭉 뻗어나가는 그의 절도있는 보컬 테크닉은 [Within And Without]의 가장 큰 장점인 몽환적인 감수성/무드와 군더더기없는 음악 스트럭쳐를 일관적으로 살려주는 데 가장 큰 공을 세우고 있다. "Before", "Within and Without" 에서는 아날로그 비트 샘플을 통해 힙합에 관한 애정까지 슬며시 드러내기도 하는데, 이렇듯 미드-다운템포를 넘나드는 다양한 질감의 샘플링 비트들이 앨범에 수록된 트랙들 하나하나마다 각기 다른 테마를 형성시키지만 싸이키델릭 댄스팝 성향의 관능적(앨범 커버만큼이나)이면서도 몽환적인 사운드스케잎을 연출하고자 한 어네스트 그린의 조금은 어설프면서도 지독한 일관성/고집 만큼은 앨범 전체의 어느 한순간도 잃지 않고 꾸준하게 지속시켜낸다. 

이번 앨범에서 가장 극명하게 드러나는 장점은, 80년대 신디팝(synthpop) 스타일의 짜~안하게 공명하는(그러나 여타 일렉트로팝밴드처럼 마구 일렁이지는 않는) 키보드 음색과 어네스트 그린 특유의 예민한 멜로디 센스 등을 십분 이용하여 가장 간결하고 정직한 형태의 일렉트로 팝 앨범을 완성해냈다는 점이다. 90년대 슈게이져들이나 4AD 군단을 연상시키는 중독성있는 환각 기질을 앨범 전면에서 공공연히 드러내기는 하지만, 감정 과잉에 함몰되지 않고 마치 환각 머쉬룸 피자를 먹고 알딸딸하게 좋아지는 기분처럼 몽환적인 찌질 기운을 은은하게 퍼트리면서 그 싸이키델릭 조가 우울한 느낌보다는 가볍고 즐겁고 따뜻한 분위기의 일렉 팝 형질로 유연하게 변모되어 있다. 마치 (초기) STYROFOAM이나 DNTEL 스타일의 DIY 일렉트로닉 감수성을 '칠웨이브' 라는 저질 이름의 장르 군집에 속해 있던 뮤지션의 앨범에서 접하게 되니 더욱 신선하게 다가온다고나 할까. 다만 아쉬운 대목은, 기분을 알딸딸하게 만드는 최고급 머쉬룸 감촉의 흥겨움+나른함이 과연 헤드폰을 벗고 나서도 다시 한번 곱씹어 볼 정도로 찬탄불금의 퀄리티였느냐 하는 점에서는 여전히 의문 부호를 달게 한다는 점이다. 정규 데뷔 인디 앨범답지 않게 보수적인 프레임웍(framework)으로 일관하여 실험적/도발적 어프로치가 그다지 드러나지 않는다든지, 가사에서 느껴지는 문학적 카타르시스가 별반 느껴지지 않는다든지... 이미 아마추어가 아닌 A급 프로 뮤지션 위치에 올라서버린 그의 대중적/음악적 입지를 고려할 때 이러한 단점들이 분명 로-파이/DIY의 면제부로 커버될 수 있는 문제만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분명한 점은, 이 석사학위 실업자의 WASHED OUT 프로젝트가 굳이 '칠웨이브' 라는 희대의 어설픈 트랜드 장르 이름에 기대지 않아도, 그리고 그 대열에서 TORO Y MOI의 옆에 굳이 붙어 있지 않아도 언제나 그 이상을 해낼 수 있을 것만 같은 정체성과 잠재력을 무한하게 지니고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Within And Without]는 그 '칠웨이브'  정의에 상당히 근접했던 [Life of Leisure] EP의 성향에서 발을 뺀 '독창적인' 형태의 로-파이 일렉트로팝 혹은 일렉트로닉 슈게이즈의 모습을 갖추었기에 그런 의미에서 이번 앨범이 주는 음악적 성과는 과히 나쁘지 않다고 봐야 하겠다. 마치 불이 나서 폭삭 내려앉기 직전의 집에서 빠져나와 안도의 한숨을 쉬듯 [Within And Without]은 붕괴 직전의 칠웨이브 허울에서 벗어나 인디 뮤지션으로써 무병장수할만한 근거를 충분히 제시해주는 작품으로 손색이 없는 완성도를 보여주고 있다. 

RATING: 77/100

written by Byungkwan Cho

'REVIEWS > ALT & INDIE' 카테고리의 다른 글

BELL: Diamonite (2011)  (0) 2011.07.16
ICEAGE: New Brigade (2011)  (0) 2011.07.01
HOORAY FOR EARTH: True Loves (2011)  (0) 2011.06.23
ARCTIC MONKEYS: Suck It And See (2011)  (9) 2011.06.21
EMA: Past Life Martyed Saints (2011)  (0) 2011.06.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