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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S/ALT & INDIE

ICEAGE: New Brigade (2011)

스칸디나비아 반도 국가들 중 유일하게 눈이 귀한 나라 덴마크에는 자유롭고 넉넉한 생활 환경을 배경으로 많은 뮤지션들이 고른 장르 분포 하에서 활동중이지만, 미국과 대적해도 꿇리지 않는 저력을 지니고 있는 막강 메틀-재즈 강국 노르웨이, ABBA 이후 북유럽 유일의 전천후 플레이어를 자처하는 스웨덴, 작지만 강한 아이슬란드(뷰욕, 시거 로스의 조국 전체 인구가 겨우 30만!!!) 등에 비해 덴마크는 그동안 음악 필드에서만큼은 스타 없는 열등국 이미지가 은근히 강했다. 90년대 중반 이후 거국적(?) 영어 음반 발매 러쉬로 몇몇 덴마크 뮤지션들이 세계인들의 입에 잠시 오르내렸던 때가 몇 번 있었지만(1997년 AQUA 타임이 가장 피크였음) 글로벌 음악팬들의 가슴을 제대로 사로잡았던 적은 없었던 게 사실. 엎친 데 곂친 격으로 현 덴마크 음악 씬에는 힙합 장르가 2000년도 중반부터 급부상하면서 급기야는 Jokeren, Nik & Jay, Burhan G 같이 상업적 의도로 가짜 승부를 하는 금발의 유러피언 위거들이 음악 챠트의 반 이상을 점령 중에 있다. 게다가 AQUA풍의 저질 일렉트로 댄스팝 음악들까지 어느순간 슬그머니 부활하는 등 현재 덴마크 음악 씬은 2000년대 초 일련의 덴마크산 IDM 군단들과 RAVEONETTES, JUNIOR SENIOR, MEW 등등의 출현으로 활기넘치던 분위기를 다시 잃어가고 있다 (허나 포크 싱어/피아니스트 아너스 오벌이 작년 발표했던 [Philhamonics]는 상당한 명반이니 행여 덴마크 음악에 남다른 관심이 있다면 필청하도록).

평균 연령 17세라는 매력적인 장점을 지니고 튀어나온 덴마크 코펜하겐 출신의 4인조 포스트펑크 밴드 ICEAGE는 나이에 걸맞지 않은 비범한 음악적 배경 지식과 스킬, 성숙한(?: 피를 철철 흘리면서 성인 밴드들 저리가라 할 정도로 광란의 스테이지 매너를 보여주는) 라이브 매너 등으로 덴마크 국내 온라인 커뮤니티+라이브 무대에서 꾸준하게 자신들을 알려오다 마침내 라이벌 스웨덴에 대한 자격지심에 만성적으로 시달리던 덴마크 음악 저널리스트들의 레이다에 잡히면서 요즘은 마치 당장이라도 이들이 스웨덴 인디 세력들을 쓸어버리고 영-미 음악씬을 곧 평정할 것처럼 자국 언론들로부터 폭풍찬사들을 듣고 있는 중이다.

하지만 공식 데뷔 앨범 [New Brigade]을 들어본다면 이 '평균 연령 17세' 딱지가 오히려 음악이 제대로 인정받는 데 핸디캡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느낌을 이내 받을 정도로 '장난이 아닌' 농익은 포스트펑크 사운드를 구사하고 있다. 이들은 절대 TOKIO HOTEL이나 시엔블루 같은 쓰레기 틴아이돌 록밴드 이미지도 아닐 뿐더러 미국-유럽권에 널리고도 널린 짝퉁 포스트펑크 리바이벌 부류들처럼 천편일률적 펑크 스타일을 무턱대고 좇아가려 덤벼들지도 않는다. 제3세계 아티스트들에 관해 서술할 때 항상 자기중심적 분석들을 날려대는 영-미 음악언론들은 ICEAGE를 '스코틀랜드 포스트카드 레이블 펑크, 혹은 미국 웨스트코스트 펑크의 후예들' 로 대충 어림짐작하고 있지만, 사실 ICEAGE가 여타 동시대 포스트 펑크밴드들과 비교할 때 극명하게 차별성 있는 음악과 멘탈리티를 가질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이들이 태어나고 자란 스칸디나비아의 기운을 잔뜩 머금은 펑크 스피릿을 오리지널리티에 입각하여 충실하게 보여주고자 한다는 점 때문일 것이다.  인근 영국의 펑크 무브먼트 못지 않은 파격적 독창성을 보여줬던 70-80년대 원조 스칸디나비아 펑크록은 언어적/지리적 이유 때문에 아일랜드-영국 펑크록 밴드들의 아우라에 가려 자국에서마저 비주류 신세였고 원조 펑크록 재발굴이 한창인 오늘날에도 아직 제대로 재조명을 받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지만, ICEAGE는 영-미권의 자극성 있는 대중문화에 한참 익숙해 있을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선배 덴마크-아이슬란드 밴드들의 영광을 추억하며 그들의 음악에서 음악적 뿌리를 찾고 잊혀진 이들의 음악에 관한 현대적 재해석을 하고자 하는 대견함을 보여주고 있다 (아직 영-미권 언론에서는 확인이 안 되고 있는 사항이라 조심스럽긴 하지만,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이들의 밴드명 'ICEAGE' 역시 덴마크 출신의 선배 펑크 밴드 SODS가 1981년에 발표한 싱글 "Ice Age For a While" 에서 따오지 않았나 추측해본다. 물론 조이 디비젼의 "Ice Age" 도 있긴 하지만...).

[New Brigade]의 가장 강력한 매력은 퍼커 필닉, 본브리디, 데어 등 70년대 말-80년대 초 아이슬란드 1세대 펑크록 밴드들의 이질적 기타 사운드를 21세기 취향에 맞게 변조시켜 자유자재로 뽑아내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White Rune"에서는 뉴욕 CBGB/노웨이브 펑크의 영향을, "You're Blessed" 에서는 스코틀랜드식-북아일랜드식 달달한 기타펑크의 영향을 부정할 수 없지만, "Broken Bone" 처럼 왜곡된 기타 코드웍으로 공격적으로 스트로크하는 뽐새는 전형적인 THEYR 식 기타 스타일을 추억하는 데 전혀 부족함이 없다. 또한 "Eyes", 클로징 트랙 'Shadows" 역시 노르딕 펑크의 재해석을 완벽하게 이뤄놓은 트랙들로써, 어두운 마이너 스케일+불협화음 코드로 차분하게 도배를 한 그들의 기타 연주 스타일은 후리는 듯 들리면서도 놀라울 정도로 역양이 분명하고 템포조절에도 자신감이 넘친다.

[New Brigade]은 분명 3코드 후리기 주법과는 거리가 먼, 굉장히 구성력 넘치는 기타 리프들로 넘실대고 있다. 마치 펑크 기타 공식의 간결함 속에 테크닉과 삘을 능숙하게 섞어냈던 THE NATIONS OF ULYSSES 시절의 팀 그린처럼 ICEAGE는 앨범에 수록된 14곡 각각의 느낌들을 각기 다른 스타일의 코드 전개/스트로크/솔로 리프들로 제대로 살려주고 있다. 또한 어두운 마이너 조이지만 애늙은이로 분류되기에는 거부라도 하듯 그 폐쇄성에 함몰되지 않고 앨범 곳곳에 상큼한 멜로디 훅도 드문드문 터트려 주면서 대중 취향의 옷을 입는 데에도 충실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New Brigade]에서 30년전 복고 스칸디나비아 펑크 사운드를 재현해내기 위한 로-파이 인디 프로덕션의 완성도는 혀를 내누를 정도인데, 스칸디나비아 풍의 펑크 기운을 내고자 노르웨이 시골 스튜디오에서 앨범을 레코딩했던 전설적 UK 펑크 밴드 BOYS의 인디 스피릿과 SORT SOL/SODS, BARAFLOKKURINN, TAPPI TIKARRASS, THEYR 등이 저예산으로 후닥닥 뽑아내곤 했던 고전 노르딕 로-파이 펑크 음향 등의 추억들을 양질의 로-파이 프로덕션 기술 덕택에 30년이 지난 오늘날 스무살도 안된 멤버들로 구성된 펑크록 밴드의 앨범에서 완벽하게 다시 느낄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아주 즐거운 충격으로 다가온다.

세계 최장수 원조 펑크록 밴드인 코펜하겐 출신의 SORT SOL의 존재와 영향력에 대해 언급하는 영-미 언론이 전무한 상황만 봐도 알 수 있듯이 스칸디나비아(특히 덴마크) 펑크록은 음악적 완성도나 역사적 정통성에 비해 세계적인 주목을 이끄는 데에는 완전하게 실패했지만, 선배들과는 달리 ICEAGE는 인터넷의 대중화와 인디음악의 글로벌화를 등에 업고 스칸디나비아 펑크의 역사성/감성과 영-미 고전 펑크의 테크닉을 빈티지향 가득한 로-파이 프로덕션을 통해 트랜드화시켜내면서 데뷔 앨범 단 한장만으로 세계 인디록 팬들의 시선을 사로잡는 데 성공하고 있다. 아직 20살을 넘기지 않은 창창한 미래의 가능성을 고려할 때 이 정도의 기세라면 MEW와 RAVEONETTES가 이뤄냈던 절반의 성공을 가뿐하게 넘어 스칸디나비아 펑크록 음악사의 새로운 챕터를 쓸 재목으로 충분히 거듭날 수 있을 것이며 이러한 가능성과 포텐셜을 훌륭하게 증명해보이는 앨범이 바로 [New Brigade]인 것이다.

RATING: 82/100

written by Byungkwan C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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