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균 연령 17세라는 매력적인 장점을 지니고 튀어나온 덴마크 코펜하겐 출신의 4인조 포스트펑크 밴드 ICEAGE는 나이에 걸맞지 않은 비범한 음악적 배경 지식과 스킬, 성숙한(?: 피를 철철 흘리면서 성인 밴드들 저리가라 할 정도로 광란의 스테이지 매너를 보여주는) 라이브 매너 등으로 덴마크 국내 온라인 커뮤니티+라이브 무대에서 꾸준하게 자신들을 알려오다 마침내 라이벌 스웨덴에 대한 자격지심에 만성적으로 시달리던 덴마크 음악 저널리스트들의 레이다에 잡히면서 요즘은 마치 당장이라도 이들이 스웨덴 인디 세력들을 쓸어버리고 영-미 음악씬을 곧 평정할 것처럼 자국 언론들로부터 폭풍찬사들을 듣고 있는 중이다.
하지만 공식 데뷔 앨범 [New Brigade]을 들어본다면 이 '평균 연령 17세' 딱지가 오히려 음악이 제대로 인정받는 데 핸디캡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느낌을 이내 받을 정도로 '장난이 아닌' 농익은 포스트펑크 사운드를 구사하고 있다. 이들은 절대 TOKIO HOTEL이나 시엔블루 같은 쓰레기 틴아이돌 록밴드 이미지도 아닐 뿐더러 미국-유럽권에 널리고도 널린 짝퉁 포스트펑크 리바이벌 부류들처럼 천편일률적 펑크 스타일을 무턱대고 좇아가려 덤벼들지도 않는다. 제3세계 아티스트들에 관해 서술할 때 항상 자기중심적 분석들을 날려대는 영-미 음악언론들은 ICEAGE를 '스코틀랜드 포스트카드 레이블 펑크, 혹은 미국 웨스트코스트 펑크의 후예들' 로 대충 어림짐작하고 있지만, 사실 ICEAGE가 여타 동시대 포스트 펑크밴드들과 비교할 때 극명하게 차별성 있는 음악과 멘탈리티를 가질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이들이 태어나고 자란 스칸디나비아의 기운을 잔뜩 머금은 펑크 스피릿을 오리지널리티에 입각하여 충실하게 보여주고자 한다는 점 때문일 것이다. 인근 영국의 펑크 무브먼트 못지 않은 파격적 독창성을 보여줬던 70-80년대 원조 스칸디나비아 펑크록은 언어적/지리적 이유 때문에 아일랜드-영국 펑크록 밴드들의 아우라에 가려 자국에서마저 비주류 신세였고 원조 펑크록 재발굴이 한창인 오늘날에도 아직 제대로 재조명을 받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지만, ICEAGE는 영-미권의 자극성 있는 대중문화에 한참 익숙해 있을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선배 덴마크-아이슬란드 밴드들의 영광을 추억하며 그들의 음악에서 음악적 뿌리를 찾고 잊혀진 이들의 음악에 관한 현대적 재해석을 하고자 하는 대견함을 보여주고 있다 (아직 영-미권 언론에서는 확인이 안 되고 있는 사항이라 조심스럽긴 하지만,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이들의 밴드명 'ICEAGE' 역시 덴마크 출신의 선배 펑크 밴드 SODS가 1981년에 발표한 싱글 "Ice Age For a While" 에서 따오지 않았나 추측해본다. 물론 조이 디비젼의 "Ice Age" 도 있긴 하지만...).
[New Brigade]의 가장 강력한 매력은 퍼커 필닉, 본브리디, 데어 등 70년대 말-80년대 초 아이슬란드 1세대 펑크록 밴드들의 이질적 기타 사운드를 21세기 취향에 맞게 변조시켜 자유자재로 뽑아내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White Rune"에서는 뉴욕 CBGB/노웨이브 펑크의 영향을, "You're Blessed" 에서는 스코틀랜드식-북아일랜드식 달달한 기타펑크의 영향을 부정할 수 없지만, "Broken Bone" 처럼 왜곡된 기타 코드웍으로 공격적으로 스트로크하는 뽐새는 전형적인 THEYR 식 기타 스타일을 추억하는 데 전혀 부족함이 없다. 또한 "Eyes", 클로징 트랙 'Shadows" 역시 노르딕 펑크의 재해석을 완벽하게 이뤄놓은 트랙들로써, 어두운 마이너 스케일+불협화음 코드로 차분하게 도배를 한 그들의 기타 연주 스타일은 후리는 듯 들리면서도 놀라울 정도로 역양이 분명하고 템포조절에도 자신감이 넘친다.
[New Brigade]은 분명 3코드 후리기 주법과는 거리가 먼, 굉장히 구성력 넘치는 기타 리프들로 넘실대고 있다. 마치 펑크 기타 공식의 간결함 속에 테크닉과 삘을 능숙하게 섞어냈던 THE NATIONS OF ULYSSES 시절의 팀 그린처럼 ICEAGE는 앨범에 수록된 14곡 각각의 느낌들을 각기 다른 스타일의 코드 전개/스트로크/솔로 리프들로 제대로 살려주고 있다. 또한 어두운 마이너 조이지만 애늙은이로 분류되기에는 거부라도 하듯 그 폐쇄성에 함몰되지 않고 앨범 곳곳에 상큼한 멜로디 훅도 드문드문 터트려 주면서 대중 취향의 옷을 입는 데에도 충실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New Brigade]에서 30년전 복고 스칸디나비아 펑크 사운드를 재현해내기 위한 로-파이 인디 프로덕션의 완성도는 혀를 내누를 정도인데, 스칸디나비아 풍의 펑크 기운을 내고자 노르웨이 시골 스튜디오에서 앨범을 레코딩했던 전설적 UK 펑크 밴드 BOYS의 인디 스피릿과 SORT SOL/SODS, BARAFLOKKURINN, TAPPI TIKARRASS, THEYR 등이 저예산으로 후닥닥 뽑아내곤 했던 고전 노르딕 로-파이 펑크 음향 등의 추억들을 양질의 로-파이 프로덕션 기술 덕택에 30년이 지난 오늘날 스무살도 안된 멤버들로 구성된 펑크록 밴드의 앨범에서 완벽하게 다시 느낄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아주 즐거운 충격으로 다가온다.
세계 최장수 원조 펑크록 밴드인 코펜하겐 출신의 SORT SOL의 존재와 영향력에 대해 언급하는 영-미 언론이 전무한 상황만 봐도 알 수 있듯이 스칸디나비아(특히 덴마크) 펑크록은 음악적 완성도나 역사적 정통성에 비해 세계적인 주목을 이끄는 데에는 완전하게 실패했지만, 선배들과는 달리 ICEAGE는 인터넷의 대중화와 인디음악의 글로벌화를 등에 업고 스칸디나비아 펑크의 역사성/감성과 영-미 고전 펑크의 테크닉을 빈티지향 가득한 로-파이 프로덕션을 통해 트랜드화시켜내면서 데뷔 앨범 단 한장만으로 세계 인디록 팬들의 시선을 사로잡는 데 성공하고 있다. 아직 20살을 넘기지 않은 창창한 미래의 가능성을 고려할 때 이 정도의 기세라면 MEW와 RAVEONETTES가 이뤄냈던 절반의 성공을 가뿐하게 넘어 스칸디나비아 펑크록 음악사의 새로운 챕터를 쓸 재목으로 충분히 거듭날 수 있을 것이며 이러한 가능성과 포텐셜을 훌륭하게 증명해보이는 앨범이 바로 [New Brigade]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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