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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S/ALT & INDIE

BELL: Diamonite (2011)


커트 코베인만큼의 여성우월주의자는 아니지만, (음악 형태가 리즈 해리스의 앰비언트 드론 음악이든 정혜선의 가요 음악이든) 시대적으로 여성 뮤지션들이야말로 절제미와 감수성이 넘치는 음악을 아기자기하게 만들어낼만한 잠재력을 남성 뮤지션들보다 더 많이 갖고 있다고 주장하는 일인 중 한명인데, 실제로 2000년대 들어 우리는 독립적 성향을 지닌 재능있는 여성 뮤지션/싱어송라이터들이 여느때보다 더욱 활발하게 방출되는 광경을 꾸준히 목격해오고 있다. 가장 큰 이유는 아무래도 인터넷의 대중화로 인해 접근성이 훨씬 용이해진 음악 창작 쏘스/정보들의 다양화와 DIY/로-파이 음악의 메인스트림화/관대화 경향 덕분에 굳이 남자들의 '늑대손'을 빌리지 않고도 혼자의 힘으로 충분히 일인칭 솔로 뮤지션이 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러시아 태생 뉴요커 (더 자세히 말하자면 브룩클린 힙스터) 올가 벨은 바로 이러한 혜택을 등에 업고 심심풀이로 만든 데모테잎으로 로컬 클럽 무대에서 솔로 활동을 하다가 2년전부터 트리오 밴드 BELL를 결성하여 새로운 인디 여성 마에스트라로 등업을 하기 위한 준비를 조심스럽게 하고 있는 젊은 뮤지션이다. 가녀린 외모는 둘째치고 일단은 출신(러시아)-배경(뉴욕 브룩클린) 때문에 레지나 스펙터 같은 평범한 여성 인디 싱어송라이터 이미지가 먼저 떠오르게 되지만, 이러한 선입견을 깨고 그녀는 지독한 매니어 기질이 듬뿍 담긴 외골수 DIY 음악 마에스트라 워너비의 캐릭터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 실제로 BELL의 정규 데뷔앨범 [Diamonite]에서 드러나는 올가 벨의 음악 취향은 록, 힙합, 소울, 테크노, 재즈, 노이즈, 현대 클래식 음악 등등... BECK(올가 벨의 모니커는 BELL. 우연의 일치 치고는 가히 환상적인 라임의 조화가 아닌가!)도 울고 갈만큼 복잡다양하기 그지없다.  

[Diamonite]는 올가 벨이 살고 있는 브룩클린의 아파트에서, 그리고 그녀가 다른 세션 멤버들(군나르 올슨과  제이슨)과 함께 사용 중인 브룩클린 외곽의 유료 연습실에서 대충 녹음해 셀프 릴리즈한 전형적 로-파이 DIY 프로덕션 앨범이다. 하지만 지인들을 끌어모아 나름 어렵게 레코딩한 환경에 아랑곳 않고 BELL이 이번 앨범에서 호기있게 노려보는 계산적인 노림수들은 왠만한 고급 프로듀싱 앨범들 뒤지지 않을 풍성하면서도 촘촘한 레이어와 스트럭쳐를 앨범 전면에 수놓고 있다.

BELL은 이번 앨범에 앞서 셀프 타이틀 EP를 2009년에 먼저 선보인 바 있는데 그 앨범에서 BJORK의 명곡 "It's Oh So Quiet" 을 리메이크한 바 있다. 이 때문에 당시에도 '뷰욕의 짝퉁이 아니냐' 는 말을 듣기도 했었던 만큼 이번 앨범 최대의 숙제는 조애나 뉴섬(Joanna Newsom) 등 많은 여성 뮤지션/싱어들이 애를 먹고 있는 무의식적 '뷰욕 따라하기' 딜레마에서 벗어나느냐 였던 것. 실제로 이번 앨범 수록곡 중 드러머 군나르 올슨의 섬세하면서도 변칙적 패턴의 덥스텝 삘 드러밍이 전면을 휘감는 "Chase No Face" 에서 한느 후겔베르(Hanne Hukkelberg)의 보이스 감촉처럼 짜집기/리마스터링없이 순수한 터치로 다이렉트 녹음된 올가 벨의 보이스와 프로그래시브 음악에서 자주 사용하곤 했던 오묘한 느낌의 비브라폰 사운드의 하모니가 마치 뷰욕의 "Hyper-ballad" 를 연상시키는 명상적인 분위기를 자아내기도 한다. 하지만 올가 벨은 전체적으로 전형적 뷰욕 사운드에서 크게 벗어난 자신만의 로-파이 DIY 음향 종합선물세트를 완성해내는 데 성공하고 있으며, 특히 그녀의 취약점으로 부각되었던 뷰욕식 창법의 '때' 까지 이번 앨범을 통해 상당량 벗어내고 있는 모습을 보여준다.

BELL의 가장 큰 장점은 대다수 '인디 뮤지션' 의 단점이기도 한 섬세하면서도 세련된 어레인지 능력이 아주 탁월하다는 점일 것이다. 전문적인 클래식 교육(그렇다, 브룩클린 지인들을 통해 신상을 털어보니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음악대학인 뉴잉글랜드 컨서버토리에서 피아노를 전공했으며, 요즘도 용돈을 벌기 위해 여기저기 레슨도 뛰고 있는 공인 클래식 전문가라는 사실!)에서 다져진 기본기를 바탕으로 힙합에서부터 컨템포러리 클래식까지 깔끔한 손길로 아우르는 음악적 통찰력은 마치 올리비에 메시앙(올가 벨이 가장 좋아한다고 하는)의 현대 전위 음악을 떡주무르듯 했던 리즈시절 정명훈의 마에스트로 터치를 연상시킨다고나 할까.

[Diamonite]는 분명 올해 초 [ w h o k i l l ] 한 방으로 '올해의 앨범' 후보군에 일찌감치 올라선 tUnE-yArDs와 작업 스타일과 다소 유사한 면은 있다. 그러나 음악 그 자체만으로 좀 더 디테일하게 파고들어 비교한다면, 아날로그 비트/음향 샘플링을 남발하면서(나쁘다는 말은 절대 아님) 보컬샘플까지 마구잡이로 루핑시키느라 부산을 떠는 tUnE-yArDs에 비해 BELL식 '아날로그 힙합 비트' + '빈티지 사운드' 조합은 tUnE-yArDs에 비해 훨씬 럭셔리하면서도 점잖고 섬세한 구석이 있다. 또한 tUnE-yArDs는 좀더 히피적이고 감각적인 이미지가 강했다면 BELL은 훨씬 여성적 상위 힙스터적이면서도 계획된 플레이를 하는 타입이라고나 할까. 특히 글리치 비트와 우왁스러운 타악기 비트 사이로 일렉트로 향기가 넘실대는 "Meaninglessness" 에서는, 루저 전용 클럽에서 찌꺼기 모아 발효시킨 싸구려 맥주 쳐먹고 더러운 카펫 위에서 흐느적대는 tUnE-yArDs식의 구질구질한 그루브 삘을 여과시켜 구닥다리 로-파이 비트/배경사운드에서도 깨끗한 분위기와 깔끔한 무드에서 어깨춤을 덩실거릴 수 있는 여지를 제공한다. 이 와중에 극적인 재미를 위해 힙합 아날로그 샘플 사운드+비트 양념을 중간 부분에 슬며시 집어넣는 융통성은 분명 집고 넘어가야 할 기특한 대목이 아닐 수 없다. 
 
BELL의 록뮤직 잼에 대한 관심 역시 "Magic Tape" 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데, 교차적으로 레이아웃된 일반 미디용 마스터 키보드의 무미건조한 선율과 80년산 야마하 SHS-10 키타의 귀엽게 파열하는 건반 음색을 기반으로 올가 벨 특유의 보컬과 다양한 타악기 연주+샘플 비트가 기승전결을 타는 모습은 CAT POWER 부럽지 않은 록 삘을 제법 과시해낸다. "River" 는 80년대 말 미국식 댄스 팝을 연상시키는 보컬 텍스쳐에 우직한 올드스쿨 힙합 비트와 구식 테크노 신디사이져 양념이 이질적인 전개방식으로 버무려진 영락없는 아방가르드 팝 넘버다. 인스트루멘탈 트랙 "Marvin" 은 단 2분 분량의 짧은 곡이지만 어찌보면 올가 벨과 [Diamonite] 앨범의 음악적 ID를 결정하는 데 있어 하이라이트나 다름없는 곡으로, 리와인드된 테잎 샘플로 장난을 치는 듯한 추상적 노이즈와 드론을 길게 늘어뜨리고 그 위에 잡다한 음향들(나레이션+키보드)을 구석구석 첨가시킨 이 곡은 마치 엘리안느 라디그, 모튼 펠드먼의 컨템포러리 클래식을 듣는 듯 소음과 잡동사니음들을 아방가르드 어법으로 어레인지시켜내는 재기까지 드러내 보인다.

BELL의 [Diamonite]는 올가 벨의 지휘 아래 각기 다른 형질을 띈 음원들의 템포, 비트, 엑센트가 수려하게 조정/교정되고 오케스트라처럼 통합되어 로-파이 저예산 셀프앨범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완벽한 퀄리티의 사운드를 뽐내고 있다. 이모겐 힙이나 뷰욕의 음악에서 느껴지던 최면적 에테르 향기가 ANIMAL COLLECTIVE의 아방가르드 잼, NEPTUNES의 힙합 비트, tUnE-yArDs의 실험적 인디 튠 등등 잡다한  음악적 요소들과 완벽한 밸런스를 갖추며 융합된 이 앨범은 학구적 익스페리멘탈리즘과 럭셔리한 훅, 그리고 여성 뮤지션으로써의 고유덕목인 단아한 음악적 이미지까지 골고루 갖추어내면서 로-파이와 셀프 릴리즈의 불안한 결점들을 여유있게 극복해내고 있다.


RATING: 86/100

written by BK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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