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LISTS

The Top 30 Albums of 2014: #10 - #6




"put your number in my phone"
10
ARIEL PINK
POM POM
(4ad)
흔히 '혼성모방' 혹은 '혼성기법' 정도로 번역되어지는 용어인 '패스티쉬(pastiche)'는 이곳에서도 캐나디언 마크 디마르코(Mac DeMarco)의 앨범을 소개할 때 한 차례 사용된 적이 있는데, 포스트모더니즘 사회에서 창작되는 예술작품은 '패러디(parody)'와, 바로 이 '패스티쉬'로 흔히 특징 지워지곤 한다. 우리에겐 아주 익숙한 용어인 '패러디'는 과거에 만들어진 기존의 작품들을 익살맞게 풍자하려는 의미로 모방된 작품들을 칭할 때 사용된다(음악계에서는 위어드 알 얀코빅("Weird Al" Yankovic)이 여기에 가장 '극단적으로' 부합되는 뮤지션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패러디'의 개념이 진부해지면서 큰 임팩트를 끌어내지 못하게 되자 반대급부로서 새로이 제기되기 시작한 창작개념이 바로 '패스티쉬'라고 할 수 있다. '패스티쉬'는 곧 과거의 작품이나 문화 컨텐츠에 대한 존경, 즉 '오마쥬(homage)'에 기인하여 이뤄지는 모방의 개념을 칭하는 것이기에, 모방을 창작의 새로운 수단으로서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오늘날 포스트모더니즘 예술을 논할 때엔 결국 '패스티쉬'라는 관념이 따라다닐 수밖에 없는 것이다. 물론 오늘날의 모든 대중음악(물론 클래식음악도 그렇지만) 창작물들은 과거의 것들을 조금씩 모방함으로써 이루어진 것이겠지만, 여기에 한 차원 진화하여 사운드 자체뿐만 아니라 특정 과거시대의 문화적 텍스트들까지 음향적으로 아우러내는 경향은 21세기 이후 새로운 '대세'라고 부를 수 있을만큼 영미 인디씬에서 현재 유행시되고 있는 형국이다. 앞서 언급했던 마크 디마르코는 물론이거니와 토로(Toro Y Moi), 제임스 로파틴(James Lopatin, 그리고 Ford & Lopatin) 등 일련의 빈티지계열 인디 프로듀서들은, 기존 음악계에서 흔히 행해지는 '사운드 모방'이란 '일차원적 모방개념'을 넘어 문화, 행위, 제품 등 외적인 요소들까지 자신들의 음악 안에 포괄적으로 녹여내는, '입체적인 모방개념'으로서 과거를 오마쥬하고자 한다. '복고'를 향한 이들의 오마쥬 행위들이 이제 전혀 이상하거나 뜬금없게 느껴지지 않게 된 현재의 상황에서, 우린 '에어리얼 핑크(Ariel Pink)'란 이름으로 90년대부터 괴상망측한 절충주의(electism)를 인디음악에서 몸소 실현해온 미치광이 신사(실제론 아주 평범하고 매너있는 사람이다 -.-) 에어리얼 마커스 로젠버그(Ariel Marcus Rosenberg)를 이젠 국내에서도 진지하게 주목해야할 필요가 있다. 80년대 카세트테잎 시대 자체를 자신의 음악 안에 통째로 담아내고자 한 그의 광기어린 복고 프로덕션과 독고다이 장인정신은 현세에서 이르러 제대로 된 평가를 받고 있는 듯하지만, 이런 음악이 거의 전무했던 90년대말까지만 하더라도 그의 음악은 영미 인디미디어에서조차 디스에 가까운 악평에 항상 맞딱뜨려야 했다. 어쨌든 비틀즈부터 핑크플로이드, REM까지 소환하는 광범위한 스펙트럼의 카세트 록 레퍼토리를 아날로그 시절의 텍스쳐에 맞춰 마법 부린 걸작 [Before Today (2010)] 이후 로젠버그의 패스티쉬 어프로치는 비평적 권위를 등에 업고 연이어 성공적인 결과를 이끌어냈고, 80년대 시절의 추억팔이를 노골적으로 연출한 [Pom Pom] 역시 '역시 에어리얼 핑크답구나!'라는 경탄을 자아낼만한 개성과 완성도를 유감없이 보여준다. [Pom Pom]을 이미 들어봤다면 필자의 설명은 더이상 불필요할지도 모르겠다. 미국 유명 젤리/푸딩 제품 CM송을 빈티지 버젼으로 요상하게 재창조(중반부에 투입되는 '싼티나는' 기타리프는 가히 일품이다)하여 리스너로 하여금 7~80년대의 환영에 사로잡히게 만드는 "Jell-O", 80년대 초중반 AM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던 AOR(뉴웨이브, 파워팝, 아레나형 팝록 등)에 관한 유년시절 기억의 파편들을 소환재조립하는 과정이 두서없이 담긴 "White Freckles", 이 두 곡만 들어봐도 [Pom Pom]과 에어리얼 핑크가 표현하고자하는 테마와 철학을 누구든지 단박에 꿰뚫어볼 수 있을 테니까. 어렵고도 쉬운, 복잡난해하면서도 단순재미가 풍부한 이중매력의 결정체가 바로 이 앨범이 아닐까.


"minipops 67 [120.2][source field mix]"
09
APHEX TWIN
SYRO
(warp
)
'역전의 용사'가 돌아오셨다. 그분은 바로 그 유명한 '에이펙스 트윈'의 주인공이신 리처드 데이빗 제임스(Richard David James). 제임스횽님은 누구시던가. 일렉트로닉 음악이 현대적 스타일로 짜여지기 시작하던 90년대 초반 등장, 오늘날 전세계에서 행해지고 있는 모든 일렉트로닉 음의 판도를 일찌감치 재편하신 인물이 아니던가. '에이펙스 트윈' 뿐만 아니라 실로 다양한 닉네임들을 번갈아 사용해가며 다작의 진수를 20년 넘게 보여줬기에 골수팬이 아니라면 그의 방대한 창작 스펙트럼을 완벽하게 꿰뚫어 보기란 쉽지만은 않겠지만, 필자가 기억하는 한 그의 손길은 언제나 장르의 경계따위에 절대로 구애받지 않는 듯한 모습이었다. 또다른 닉네임 'AFX'와 함께 활동을 시작했던 초창기부터 그는 앰비언트뿐만 아니라 레이브(rave), 애시드하우스/테크노(acid house, acid techno), 드럼앤베이스(drum & bass), IDM 등 일렉트로닉에서 파생되어진 대부분의 서브장르들을 현대적인 포맷으로 초기셋업 시켜냄으로써, 앰비언트테크노/일렉트로닉의 또다른 '거목' AUTECHRE와 함께 '일렉트로닉의 대부'로서 오늘날 후배들에게 무한존경을 받고 있는 상황이다. 자신만의 알고리즘 패치를 페이즈 보코더에 능수능란하게 적용시킴으로써 새로운 생성음악(generative music) 미학을 브라이언 이노의 대를 이어 전개한 '괴학자적 풍모'와 더불어, [I Care Because You Do (1995)] 앨범처럼 EDM 디제이들을 능가하는 양아치 레이브/댄스파티 본능도 동시에 과시해온 만능 장인 제임스횽. 그가 드디어 13년의 공백(? 물론 그동안 유럽/미국 라이브 퍼포먼스를 수시로 해왔으니, '공백'의 느낌은 딱히 없지만)을 깨고 지난 2014년 9월 통산 여섯번째 '에이펙스 트윈' 스튜디오 앨범 [Syro]을 우리에게 선보이게 된 것이다. 헌데, 그로부터 불과 3개월 전인 작년 6월, 에이펙스 트윈팬들이 나름 센세이셔널하게 느껴질만한 뉴스가 온라인상에서 느닷없이 전해진 바 있다. 이는 바로 1994년 발매가 취소되어 사장됐던 리처드횽의 미공개앨범 [Caustic Window]의 LP판 한장이 [Syro] 발매를 기념(?)하기 위해 뜬금없이 온라인상에서 만 달러 가량의 매물로 나오면서 전세계의 수많은 골수 AFX팬들을 흥분시켰던 것. 한 음파공학 전공 공대생이 리처드횽의 음원도출 방식에 대해 쓴 석사논문까지 접한 적이 있는만큼 필자 역시 국내에도 리처드횽의 골수팬이 아주 많을 거라 생각되는데, 더군다나 리처드횽의 전성기 였던 1994년 당시의 '쌩' 음원이 [Caustic Window] LP에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고 하니 전세계의 AFX팬들은 그야말로 뚜껑 열리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 암튼 지행일치와 자율행동실천 욕구 등이 탁월한 외국팬들은 군침을 흘리다 못해 펀드레이징 사이트 '킥스타터(Kickstarter)'와 리처드횽의 Rephlex 레이블까지 아예 설득, 결국 단기간에 4만7천달러라는 무시무시한 펀드금액을 팬들로부터 조성하면서 디지털 음원 릴리즈의 권리를 취득하는 데 성공한다. 1994년 당시 테스트용으로 공장에서 찍어냈던 다섯 장의 LP판 중 한 장으로 밝혀진 이 LP 원판은, 결국 킥스타터 캠페인 이후 이베이에서 스웨덴의 게임 개발자 마르쿠스 페르손(마인크래프트를 개발한 사람이 바로 이사람이다!)에 의해 4만6천달러에 낙찰되고, 우린 '행동하는' 외국 골수팬들의 노력에 힘입어 편안하게 유튜브 등에서 이 '값진' 앨범을 감상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여러가지 화제를 낳으며 2014년 후반기 정통 일렉트로닉계를 뜨겁게 달구었던 컴백 앨범 [Syro]는, 한마디로 말해 '나 이런 거 만들어온 사람이야'라고 자랑스럽게 프리젠테이션하는 듯한, 일종의 '연대기적+자전적' 스탠스와 '마이스터적' 포스를 여유롭게 취하며 제작된 작품으로 볼 수 있다. 나쁘게 말하면, 격동하는 비트와 심하게 글리취(glitchy)된 애시드 일렉의 진수를 시연했던 90년대 초반 리즈시절의 다이내믹한 작품들에 비해 조금은 보수적인(혹은 밋밋한) '이지리스닝 IDM' 앨범처럼 느껴진다고 할까? 하지만 리처드횽이 누군가? 현 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일렉 음악들에 영향을 미쳤던, 비트메커니즘과 앰비언트무드의 시너지 불패 공식을 20여년전에 현대적으로 구현했던 선구자적 거물 아니던가. 따라서 [Syro]에 느껴지는 '보수성'은 곧 '여유로움'이요, '밋밋함'은 '편안함'으로 해석해야 하는 것이 더 타당할 것이다. 이미 너무 많은 것들을 이뤄낸 그에게 우린 더이상의 혁신성을 요구할 순 없다. 어쩌면 일련의 괴작들을 쏟아내던 90년대 초반 그 시절에는 미처 잉태되지 못했거나 이유식을 우물댔던 현세의 젊은 음악팬들에게 그동안 리처드횽이 보여줬던 모든 스타일과 테크닉들을 '여봐라'하는 듯이 깔끔하게 보여주는 것 자체만으로 의미심장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하다못해 이루마처럼 캐늘어지는 피아노 피날레 "aisatsana"까지 이노(Brian Eno)급 앰비언트 환영이 느껴진다라고 한다면 이는 필자만의 지나친 오바일까?). 조금은 실망스러웠던 전작 [Drukqs (2001)]에서 잃어버렸던 리처드횽다운 다이내믹함, 텐션감, 골밀도, 정교함을 되찾은 듯한 인상을 확실하게 심어주는 [Syro]는, 결국 어떠한 장르에 속하지 않았던 'AFX'라는 장르음악을 오랜만에 자가시연하는, 'AFX음악=진리'의 공식을 재확인시켜주는 데 손색이 없는 '화려한' 컴백 작품에 다름아닌 것이다.


[Run the Jewels 2] (풀 앨범)
08
RUN THE JEWELS
RUN THE JEWELS 2
(mass appeal)

2013년도 언더그라운드 힙합씬을 한바탕 휘저었던 듀오 Run the Jewels의 새 앨범 [Run the Jewels 2]가 2014년 10월 24일에 발매되었다. 첫앨범 [Run the Jewels]를 리뷰할 때에도 언급한 적이 있지만 일단 한번 더 소개하자면, 'Run the Jewels', 줄여서 'RTJ'는 파워풀한 랩퍼  킬러 마이크(Killer Mike)와 프로듀서 겸 랩퍼 엘피(El-P)로 구성된 듀오그룹이다. 2012년 각자의 솔로앨범을 서로 번갈아 피쳐링 해주며 인디계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던 킬러횽과 엘피횽은, 아시다시피 지난 2013년 슈퍼듀오 RTJ을 출범시키며 셀프타이틀 데뷔 걸작과 함께 걸출한 신고식을 치렀다. 데뷔 앨범의 반응이 좋아서였을까. 사기충만한 이들은 일년만에 바로 새 앨범 [Run the Jewels 2]를 등장시켰고 이 역시 각계각층으로부터 후끈한 반응을 즉각적으로 이끌어내는 데 성공한다. 만약 소울풀하고 멜로디적인 힙합앨범을 찾는다면 이 앨범은 단 1프로도 적합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기존의 El-P 비트 스타일처럼 아주 거친 느낌을 내품고 있는 [Run the Jewels 2]는, 면상을 향해 정면으로 내질러버리는 식의 사운드와 랩이 응축되어 있는 반면 멜로우한 감성이란 단 1그램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 한마디로 '다급함', '폭력성', '공황상태', '멘탈붕괴', '정줄놓음' 등의 개념들을 사운드로 표현한 앨범이며 이에 걸맞은 '빡센' 에너지를 한치의 자비 없이 고농도로 배출해내고 있다. 비장한 그루브에 갈리는 듯한 신스사운드를 섞어서 한층 panic된 듯한 멘붕 무드를 만들어내는 앨범의 첫 싱글곡 #3 "Blockbuster Night, Pt.1", Verse를 리드미컬하면서도 미친 듯이 '찹'하고 '룹'한 다음곡 #4 "Close Your Eyes (And Count to Fuck)" 등 거슬린다던지 과한 듯한 느낌 전혀 없이 '빡센' 멘붕 사운드를 연이어 터져내는 El-P의 프로듀싱 센스를 우린 이 앨범에서 골고루 만끽할 수 있다(한편으로는 그동안 킬러횽과 엘피횽이 더불어 터트려냈던 독특한 시너지가 이번 두번째 앨범에서 비로소 프로듀싱 스타일 속으로 완벽히 녹아들었다고 말할 수 있겠다). 이러한 호전적인 사운드 폭탄세례와 더불어 살벌한 기운을 내뿜는 가사들 역시 앨범 내내 리스너의 가슴에 비수를 사정없이 꽃는다. "너는 창녀가 하얀(고급) 드레스를 입고 있기를 원하지 / 그러나 나는 끈팬티를 입고 있는 와이프를 원해" 라고 자극적으로 떠들어대는 마지막 트랙 #11 "Angel Duster"처럼, [Run the Jewels 2]는 거친 은유적 가사들을 통해 세상에서 벌어지고 있는 온갖 모순들을 시종일관 거침없이 씹어버리곤 한다. 런더쥬얼스의 이번 앨범은, 한마디로 기분이 아주 더럽거나, 혹은 고카페인 음료를 다량복용해서 넘치는 똘끼를 주체할 수 없을 때에 어울릴 듯한 음반이라고 아주 갠적으로 정의내리고프다. 때로는 올드스쿨하기도, 때로는 요즘스럽고 뉴스쿨하기도 한 RTJ 음악의 특징 중 하나는 '랩'의 비중을 상당히 높게 책정해두고서 만든 듯한 인상을 강하게 풍긴다는 점이다. 주절주절 계속 씹어 뱉는 듯한 랩이 힘으로써 배경사운드를 이겨보려는 듯한 RTJ 음악은 곧 랩음악의 전통적 특징이 크게 반영된 것이라고도 말할 수 있을텐데, 이 점이 배킹사운드의 비중을 크게 의식하며 만드는 기존의 최신 랩음반들과 차별성을 둘 수 있게 된 RTJ 음악만의 매력포인트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만약, 지금 기분이 아주 더럽다 싶으면, 주저하지 말고 한번 틀어보자. 스트레스가 빵!빵!


[Piñata] (풀 앨범)
07
FREDDIE GIBBS / MADLIB 
PIÑATA
(madlib invasion)
랩퍼 프레디 깁스(Freddie Gibbs)와 프로듀서 매드립(Madlib)의 핫 언더그라운드 콜라보레이션 [Piñata]가 지난 2014년 3월 18일 매드립의 인디 레이블인 Madlib Invazion에서 발매되었다. 매드립은 DJ 겸 프로듀서, 멀티-인스트루멘탈리스트, 그리고 랩퍼로 힙합업계에서 약 20년 이상을 달려온 언더힙합계의 경력자이다. 그는 소울풀한 샘플들로 자신만의 색깔을 구사하며, 자기 자신을 설명하자면 DJ가 첫번째, 그 다음이 프로듀서, 그리고 랩퍼가 마지막이라고 언급하기도 하였다. 매드립은 그의 콜라보 파트너인 랩퍼 깁스를 '요즘시대 2Pac' 이라고 칭하였는데, 피부색도 약간 다크브라운 톤인데다 둥그런 머리에 민머리 삭발을 고수하는 등 외형상으로 팍횽과 얼추 비슷해 보이기는 한다. 그러나 더 비슷한 점은 따로 있다. 팍횽과 깁스 둘다 갱스터 Thug, 직역하면 깡패, 폭력배라는 흑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깁스의 절도있는 듯한 랩핑의 느낌도 팍횽과 상당히 유사하게 들려진다는 점이다. 아시다시피 투팍횽은 90년도 후반 타살로 인한 사망으로 불귀의 객이 되셨는데, 마치 앨비스횽처럼 힙합업계의 레전드로 장렬히 전사했기에 그로 인해 '투팍'이라는 이름의 무게는 실로 엄청나다고 할 수 있다. '그럼 과연 깁스가 그런 이름과 같이 거론될 만한 인물인가'에 대해서 인터넷상에서 찬반이 일어나고 있는데, 이는 사실 저마다 보는 관점이 다 다를 수 밖에 없으며('팍횽한테는 아직 안된다', 혹은 '깁스가 더 잘한다' 등등…), 다른 시대의 서로 다른 두 인물을 음악적으로 비교한다는 것 자체도 좀 무리가 있기에 애초에 우열을 가릴 수가 없는 논쟁이다. 개인적인 견해로는, 깁스라는 이 인물의 랩핑을 들어본다면 논쟁의 어느 편에 서있든 절대 실망하지 않을만한 수준의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확실한 '팩트'는, 일단 두 인물 모두 부풀려진 느낌도 아니고 덜한 느낌도 아닌, 삶에 밀착된 가사를 랩으로 아주 자연스럽게 전달하며 이를 통해 듣는이로 하여금 진솔한 반향을 불러일으킨다는 점은 분명 유사하다. 얼핏 보면 팍횽보다 조금 더 시니컬한 느낌을 풍기기도 하는 깁스는, 미국 북중부 인디애나주 출신이지만 남부 바운스(bounce) 스타일 비트부터 동부 붐뱁(boom bap) 스타일 비트까지 자유자재로 오가며 다재다능한 랩스타일을 보여주는 랩퍼다. 깁스는 이번 앨범 [Piñata]를 통해 갱스터 흑인 영웅 영화와 같은 모습을 보여주려고 했다는데, 그가 그동안 저질러 온 잘못들과 스스로 자랑스럽게 생각하지 않는 모습들을 후회없이 진솔하게 들려줌으로써 그동안 잊고 있었던 갱스터 랩음악의 본질을 다시 되찾아 주겠노라고 이를 악문 흔적들이 앨범 곳곳에 적나라하게 남겨져 있다. 자신이 감옥에 갇혀있을 때 여친이 다른 남자의 아이를 임신했다는 내용의 #3 "Deeper"에서 깁스는 아픈 경험을 바탕으로, "어쩌면 너는 더러운 창녀일지도 몰라, 어쩌면 나의 그말은 너무 못됐는지도 몰라 / 어쩌면 너는 성장했고, 그리고 나는 아직도 16살처럼 살고 있는지도.." 라는 식의 굉장히 심오하고도 자가성찰적인 모습의 랩가사를 절절하게 들려준다. 그리고 #12 "Broken"에서는 경찰인 아버지를 두고 있는 '모순된' 자신의 이야기를 차갑게 들려주면서, "나는 사기꾼이며, 당신은 부정경찰이다. 우린 오직 그런 모습만이 닮아있을 뿐이다" 라며, 아주 냉소적이면서도 가슴아픈 명가사를 날리기도 한다. 그밖에 거친 갱스터 떠그로서의 삶을 들려주는 #8 "Thuggin'", 그리고 우탱클랜의 명셰프 래퀀(Raekwon)이 감칠맛나게 피쳐링한 #6 "Bomb" 등 다양한 먹거리의 트랙들이 이 앨범 안에 광범위하게 존재한다. 프로듀서라면 보통들 두려워하겠지만(?) 자신의 앨범 '피냐타'를 몇달 후 비트 인스트루먼트앨범 [Piñata Beats]으로 다시 발매하는 배짱을 과시한 '명장' 매드립의 음악성 있는 비트 프로덕션과, 깁스의 갱스터 하드코어 랩이 버무러져 마치 음과 양의 조합처럼 충분한 시너지의 힙합 밸런스가 극도로 자연스럽게 대방출된 앨범이 바로 이 앨범, [Piñata]인 것이다.              


[Faith In Strangers] (풀 앨범)
06
ANDY STOTT
FAITH IN STRANGERS
(modern love
)
2011년, 두 장의 걸출한 EP [Passed Me By], [We Stay Together]로써 '텍스쳐(texture)'에 관해 섬뜩한 테러를 자행했던 맨체스터 출신의 중고신인 프로듀서 앤디 스톳(Andy Stott)에게 2012년 풀렝쓰 앨범 [Luxury Problems]는 앞으로 전개될 그의 예술적 방향성 설정에 있어 커다란 전기가 되는 작품이었다. 특별한 스토리 연출 없이, 사운드에 내제된 텍스쳐만을 지독할 정도로 두들겨 팸으로써 자신의 스타일을 만들어내는 기염을 토했던 앤디 스톳. 하지만 이미 EP 작업 이전부터 실험음악이나 일렉음악계뿐 아니라 팝음악계에서도 널리 존중 받을 만한 더 큰 거장급 그릇을 원했던 그에게 텍스쳐 일변도의 EP 작업은 그저 'EP'라는 이름에 걸맞은 '연습과정'에 불과했던 것. 따라서 멜로디와 레코딩 완성도, 그리고 암울한 스토리 연출이 구체적으로 강화된 풀렝쓰 앨범 [Luxury Problems]는, 써퍼모어 징크스 따위를 넘어 '앤디스톳 사운드'의 새로운 챕터를 위한 여러 진보적 양상들이 꽤나 의미심장하게 다가왔던 작품이었다. 덥테크노(dub techno)의 마스터답게, [Passed Me By]와 [We Stay Together]에서 몽롱한 신쓰와 원초적인 드럼비트, 걸걸한 베이스 텍스쳐를 늘렸다(reverb)-튕겼다(delay)-짜부라뜨리는(glitch) 등 자유자재로 훼손(?)시키며 다크 일렉사운드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면, [Luxury Problems]에서는 여성 싱어(앨리슨 스키드모어)를 등용하는 데에도 완벽하게 성공하면서 창작(프로덕션)을 위한 운신의 폭 혹은 스펙트럼 자체를 확 넓여놓았던 것. [Luruxy Problems]의 효과는, 2년 만에 선을 보인 풀렝쓰 신작 [Faith In Stangers]에서 제대로 나타난다. 굳이 로파이와 잡음을 텍스쳐에 칠갑 하지 않고도, 살벌하게 훼손된 베이스라인을 사운드 프레임에 과도하게 깔지 않고도 그는 스토리(굳이 따지자면 '고딕 드라마' 정도?)가 겸비된 아름다움을 기존의 앤디스톳표 다크 스타일에 어울리게끔 구현해내고 있는 것. 특히 [Faith In Strangers]에서 그가 보여주는 앰비언트(ambient) 센스는 놀라움 그 자체인데, 특히 뱃고동(?) 소리를 테잎 잡음과 함께 드론(drone)화하여 앤디스톳 음악 본연의 다크함과 영화스러움을 동시에 은유화해낸 오프너 "Time Away"와 콘트라 베이스의 줄 튕기는 소리와 네크에 부딛치는 마찰음을 이용하여 유일무이한 앰비언트 분위기를 자아내는 클로져 "Missing" 는 수록곡들 중 가장 단조롭지만 마치 '이 앨범 역시 앤디스톳 작품이다'라고 인증하듯 앨범의 처음과 끝을 의미심장하게 봉인해주는 무비트 앰비언트 명곡들이다. 그외 폭력적인 비트조작과 아름다운 여성보컬 멜로디가 오묘한 앰비언트 분위기에서 트립합풍 하모니를 이루는 #2 "Violence"와 #3 "On Oath", 여지껏 보여줬던 트랙들 중 가장 목소리 큰 디트로이트 테크노풍 4/4 비트 컴비네이션을 자랑하는 #6 "How It Was", 그라임과 덥의 원초적인 비트찍기와 신쓰 굉음을 들려주는 #7 "Damage", 초기 노멀한 일렉 DJ 시절의 앤디 스톳의 모습이 잠시 보이다가 사라지는 듯하는 다운템포 IDM풍 #8 "Faith In Strangers" 모두 우리가 기존에 듣는 일렉 카테고리의 한계를 벗어나 앤디 스톳이 사전에 조성해놓은 '다크한' 앰비언트 세계 안으로 속절없이, 철저하게 변태되고 만다. 본의 아니게 이곳에서 너무 자주 언급되는 인물인지라, 본작에 관한 소개는 시간관계상 이쯤에서 끝. (ㅈㅅ)              
30-26   25-21   20-16   15-11   10-6    5-1


'LISTS' 카테고리의 다른 글

The Top 30 Albums of 2014: #5 - #1  (5) 2015.04.15
The Top 30 Albums of 2014: #15 - #11  (6) 2015.02.21
The Top 30 Albums of 2014: #20 - #16  (1) 2015.02.12
The Top 30 Albums of 2014: #25 - #21  (5) 2015.01.27
The Top 30 Albums of 2014: #30 - #26  (5) 2015.0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