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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S/ELECTRONIC

ANDY STOTT: Luxury Problems (2012)


덥스텝과 DIY/원맨밴드 음악이 여전히 강세였던 2011년 세계 인디 음악계에 맨체스터 토박이 앤디 스톳이 슬그머니 내놓았던 두 장의 EP 앨범([Passed Me By]와 [We Stay Together])은 인디 트렌드에 그다지 적합한 카테고리를 점유하는 사운드가 결코 아니었음에도 아이덴티티 측면에서의 음악적 성과는 가히 놀라움 그 자체였다. 리뷰를 인해전술로 대량 방출하는 몇몇 리뷰 사이트를 제외하고는 리뷰가 스킵되었던 저 두 장의 EP 앨범은 이류 하우스/테크노 뮤지션이었던 앤디 스톳으로 하여금 거장 부재에 허덕이던 2010년대 일렉트로닉계를 주름잡을 새로운 마스터로 거듭날 수 있는 자격 조건을 충분히 제시해주었던 소품들이었다. 덥트로토닉(혹은 덥 테크노)처럼 정제되지 않은 비트 그루브이지만 훨씬 더 차갑고 악마적인, 익스페리멘탈/아방가르드 사운드처럼 텍스쳐 지향적이지만 네러티브가 느껴지는, 덥스텝처럼 베이스/드럼을 실험적으로 어프로치하지만 얄팍하게 자극하지 않는, 하우스적인 음원 레이어와 연주 패턴을 즐겨 사용하지만 정작 하우스적인 댄스 모멘텀을 전혀 제공하지 않는, 그리고 최종적인 아웃풋은 테크노인데 테크노로 단순정의 내리기엔 왠지 미안해지는 그런 미스테리한 음악. 이는 트렌디한 느낌으로 다가왔던 과거 [Untrue] 시절 BURIAL의 실험적 다크 아우라와는 분명 다른 독자적인 풍모 그 자체였다.         

[Merciless (2006)]와 그 이전 싱글/EP 앨범들에서 보여줬던 미니멀 하우스, 덥 테크노 혹은 디트로이트 테크노 성향과 2011년 초 느닷없이 들이밀었던 [Passed Me By]에서의 실험적 성향의 간극에서 그는 도대체 어떤 심적 변화를 일으켰을까. 한때 댄스플로어용 하우스 DJ질로 생계를 꾸려나갔던 앤디 스톳에게 일렉트로닉 음악에 관한 접근의 관점이 급변하게 된 계기에 대해 질문을 하면 정작 그는 명확한 대답을 시원스럽게 내놓지 않는다. 단지 "아무에게도 영향받지 않은 음악을 하고 싶었지만 하우스 시절에는 의도와 달리 결과물들이 항상 뻔했다. 그런데 [Passed Me By]에 이르러 드디어 어느 누구에게도 영향받지 않는 음악을 만들 수 있게 되었다" 라는 다소 선문답같은 코멘트만을 남길 뿐.  

놀라운 점은, 급진적으로 시도된 앤디 스톳식 실험주의가 이미 '변신의 1단계' [Passed Me By]에서 완벽에 가깝게 완성되었다는 사실. 거칠게 왜곡된 베이스+드럼 비트와 필드레코딩 퀄리티의 잡동사니 음향들을 한 데 끌어 모아 아날로그 음질로 필터링시킨 다음 BPM(템포)을 하우스 기준치에서 쭉 떨어뜨려 불편한 다크 무드를 만들어내는 프로듀싱 양식이 바로 그것. '텍스쳐 & 템포' 메커니즘에 관한 앤디 스톳만의 독창적인 실험 양식은 이어지는 [We Stay Together]에서 네러티브, 다양성 등의 요소들까지 가미되면서 훨씬 입체적인 팔레트의 다크 사운드스케잎 연출이 가능해지게 된다. 즉, 

(텍스쳐 + 텍스쳐 + 텍스쳐 + 텍스쳐) / 템포   

의 일률적 공식으로 [Passed Me By]가 구성되었다면 [We Stay Together]는 이 텍스쳐 지향의 공식을 해체하려는 노력이 다각도로 드러나기 시작했던 작품으로, 장르 소스(훵크. 힙합적 요소까지 응용한다)와 악기 샘플 사용법을 전작보다 좀더 다양하게 구사하면서 각 트랙들의 전개 패턴에 여러가지 포인트들을 주어 '다크함' 이상의 이야기 서술 가능성을 이 두번째 EP 앨범에서 열어두는 데 성공했던 것.        

그리고 1년만에 모습을 드러낸 '변신 3단계' 작품이자 2006년 [Merciless] 이후 첫번째 정규 풀렝쓰 앨범 [Luxury Problems]는 걸걸하게 귀를 자극하는 다크 텍스쳐의 변함없는 틀 위에 앨범 타이틀에 걸맞는 클래식음악의 '럭셔리'한 무드를 응용하고 이에 걸맞는 기승전결의 구성력과 드라마적 요소 역시 강화하면서 '2단계' [We Stay Together] EP의 중요포인트였던 네러티브와 다양성의 측면에서 전작보다 훨씬 더 만족스러운 결과를 이끌어냈다. 이번 앨범의 조연 역할은 소시절 앤디 스톳의 피아노 레슨을 담당했던 오페라 싱어 알리슨 스키드모어(Alison Skidmore)가 담당했는데, 매 트랙마다 드림팝-오페라 창법을 섞어가며 음악 분위기를 원숙하게 이끌어가는 그녀의 보컬은 '장르파괴' 전략을 품은 토털 일렉트로닉 아트웍 [Luxury Problems]의 취지에 걸맞은 역할을 훌륭하게 수행해주고 있다.  

이 무명 오페라 가수의 활약은 오프닝 트랙 "Numb"에서부터 일찌감치 두드러진다. 곡의 전체적 분위기를 감성적으로 촉촉하게 적셔주는 그녀의 아름다운 드림팝 창법은 앤디 스톳의 프로듀싱 터치(보컬 변조술은 이제 확실한 대세!)에 의해 줄리아 홀터(Julia Holter)를 연상시키는 명상적 아방가르드 풍미를 자아내는데, 이는 '다크함' 이상의 새로운 모습들을 이번 앨범에서 구현하고자 하는 앤디 스톳의 의도를 초반부터 확실하게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여기에 인더스트리얼 테크노처럼 음침하게 짜부라진 기계음 샘플 비트까지 곁들이며 '왜곡을 위한 전자 다크 소나타' 의 변함없는 모습을 서정적 면모와 함께 동시다발적으로 드러낸다. 

이어지는 "Lost and Found"에서도 앤디 스톳이 그동안 보여줬던 실험적 캐릭터와 이번 앨범에서 의도된 '변화의 움직임'을 종합적으로 만끽할 수 있다. 초기 뮤직 콩크레트 시절 삐에르 쉐퍼의 미니멀리즘 테잎 음악처럼 고급스러운(?) 운치를 자아내는 아날로그 샘플(오케스트라 음향 같다!)과 오페라 아리아를 부르는 듯한 성악적 발성으로 팝싱어들에게서 찾을 수 없는 아름다운 선율을 뽑아내는 스키드모어의 보컬이 서로 맞물리면서 모던클래식 오페라의 불협화음 하모니(슈톡하우젠, 필립글라스 등의 오페라 작품들 들어보라!)를 듣는 듯한 오묘한 감흥을 불러일으킨다. 여기에 앰비언트 싸이즈로 BPM을 쭉 늘어뜨려 첨가된 로파이 4/4 테크노 비트의 묵직한 다크 그루브는 이미 두장의 EP에서부터 전매특허로 자리매김한 앤디 스톳 음악만의 고유 덕목.  

"Sleepless"는 하우스 클럽 DJ로 잔뼈가 굵은 앤디 스톳의 과거 취향이 조심스럽지만 가장 명확하게 드러나는 트랙이다.  90년대를 풍미했던 런던 애시드 하우스와 조이 밸트램, 디트로이트 테크노 등 올드스쿨 클럽 테크노 레이브의 잔상이 이 곡에서 어렴풋이 보이는 듯 한데, 물론 사운드의 질감과 템포는 전형적인 테크노의 그것과는 동떨어진 이질적 형상으로 왜곡되어 있지만 하우스 스타일의 깔끔한 스트레이트 킥드럼+심벌 콤보비트와 클럽 테크노에서 흔히 접하곤 하는 멀티 보컬 레이어의 원숙한 어레인징 등을 통해 '익스페리멘탈리스트' 앤디 스톳의 클럽 테크노 베테랑다운 면모를 내심 엿볼 수 있다. 

그리고 네번째 트랙 "Hatch The Plan"은 차츰 진화되어가는 앤디 스톳의 네러티브 창작 센스가 유난히 돋보이는 곡.  필드 레코딩의 거친 테잎 질감이 느껴지는 듯한 아방가르드 인트로로 음산한 무드를 길게 조성한 다음 SHACKLETON의 UK 베이스 사운드를 연상시키는 최저음 디스토션 베이스라인과 원초적 4/4노트&4비트 킥드럼의 비트 조합, 스키드모어의 몽환적인 트립합 보컬 등을 차례대로 적용시켜 입체적인 이야기 구조를 만들어 가는 모습은, '텍스쳐'라는 단일공식에만 몰입했던 [Passed Me By] 시절과 비교할 때 분명 괄목할만한 성과라고 할 수 있다. 

인트로 트랙 "Numb"부터 네번째 트랙 "Hatch The Plan"까지, 앤디 스톳 음악 특유의 원시적/악마적인 4/4 비트 프레임과 아날로그 음향 컨셉이 여전히 귀를 자극하는 [Luxury Problems]의 전반부는 알리슨 스키드모어의 피쳐링 활약에 힘입어 아방가르드 팝 성향까지 꽤 적극적으로 드러낸다. 이로 인해 전작보다 훨씬 더 풍성한 이야기 연출이 가능해지고 리드악기 샘플들의 어레인지 역시 다양한 패턴으로 구사할 수 있게 된 것. 하지만 '장르파괴'가 앤디 스톳 자신이 추구하는 음악적 목표라 할지라도 자신의 음악이 트립합이나 일렉트로팝 등의 얄팍한 카테고리 범주에 '실수로라도' 거론되는 우를 중도에서 차단이라도 하겠다는 것일까. 후반부의 첫번째 트랙이자 앨범의 센터피스 "Expecting"에서 그는 전반부 매 트랙마다 등장했던 보컬 파트를 제외시키고 [Passed Me By] 시절 무자비하게 단행했던 극악무드의 아날로그 인스트루멘탈 대향연을 또다시 펼친다. 먼지로 꽉찬 다크 무드를 음산하게 만들어가는 정처불명의 로파이 샘플을 언더그라운드 하드코어 테크노의 인트로에서 자주 쓰일 법한 기계적인 질감으로 뽑아내고 여기에 메트로놈 방식으로 샘플 음향 템포를 조절하는 주술적 종소리와 킥드럼을 미세하게 첨가하여 과거 삐에르 쉐퍼나 뤽 페라리의 미니멀리즘 테잎음악, PORTER RICKS와 토마스 퀘너의 익스페리멘탈 테크노, 필립 젝의 턴테이블 사운드 등에서 들려지는 것과는 또다른 차원의 사운드스케잎, 역동성, 흥미로움을 지닌 아날로그 사운드 디자인을 완성하게 된다. 

타이틀곡 "Luxury Problems"는 [The Present Lover (2003)] 시절 LUOMO의 몽환적 디바 보컬과 테크노 비트를 리메이크한 듯한, 혹은 미니멀 테크노의 앤디 스톳식 찹앤스크류 버전 성격을 띄는 곡이다. 보통 미니멀 테크노라 하면 통상적으로 125-130 사이에서 BPM이 형성되기 마련이지만, 이 곡은 앤디 스톳 스타일에 걸맞게 BPM을 104로 쭉 떨어뜨려 왜곡된 테크노 스트럭쳐를 만든 다음 저음부에서 무의미하게 맷돌 소리처럼 깅깅대는(마치 턴테이블 위에서 리버스 상태로 돌려진 듯한 느낌을 자아낸다) 로파이 베이스라인을 그 스트력쳐 위에 적용시켜 초기 하우스/테크노 시절의 음악과 현재의 익스페리멘탈리즘 음악이 교묘하게 퓨전화된 악몽의 미니멀 테크노 무드를 완벽하게 구현한다.   

그리고 실질적인 마지막 트랙(3분 분량의 클로져 "Leaving"은 거의 필러(filler)에 가까운 아웃트로이므로) "Up The Box"는 이번 앨범에서 앤디 스톳의 장르 해체주의가 가장 흥미롭게 폭발하는 곡일 것이다. 앰비언트 드론 사운드에서 자주 쓰일 법한 추상적인 로파이 소음의 루핑 인트로는 마치 턴테이블 바늘이 최종스핀을 마치고 도너츠판 끝자락을 누적된 먼지와 함께 헛돌 때 생겨나는 소음의 감촉처럼 생생한 다크/더스트 텍스쳐를 나지막한 톤으로 내뿜는데, 긴 악몽과도 같은 다크 드론 사운드로 일관되던 곡의 분위기는 중반부에서 생동감 넘치는 드럼 비트가 등장하면서 또다른 반전이 펼쳐진다. 뭔가 쭉 늘어난 테잎을 듣는 듯 하나 좌우간 신들린 듯 떠들어대는 수제드럼 비트의 연주 패턴을 뜯어보면 무언가 익숙함 같은 것이 느껴질텐데, 이는 바로 90년대 후반 최고의 일렉 트렌드였던 드럼앤베이스 비트! 마치 아날로그 필터링과 BPM 조작을 거친 [Hard Normal Daddy (1997)]시절의 SQUAREPUSHER 수제드럼 정글비트를 듣는 듯한 느낌이라고나 할까? 정글의 호전성과 SQUAREPUSHER적 재즈삘 대신 트라이벌 감촉의 악마적/주술적 무드로 변성된 드럼 비트는 인트로 부분부터 지속되는 드론 텍스쳐와 아날로그 질감과 만나 드럼앤베이스나 덥스텝 사운드에서 느낄 수 없는 오묘한 사운드스케잎을 그려낸다.

수많은 서브장르들을 파생시키며 다양한 형태로 진화 혹은 변형되어가고 있지만 역설적으로 정작 스타일과 장르의 해체에는 의외로 둔감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 현 일렉트로닉 씬에서 2011년 앤디 스톳의 등장은 트렌드적으로 그다지 떠들썩하진 않았으나 아트/창작적 측면에서는 분명 시사하는 바가 컸었다. [Luxury Problems]는 앤디 스톳식 텍스쳐 확립에 중점을 두었던 [Passed Me By], 네러티브/테마/패턴 구성을 테스트했던 [We Stay Together]에 이어 2011년 이후 앤디 스톳이 걷고 있는 탈장르-탈트렌드 일렉트로닉 프로젝트의 최종적인 마침표를 찍는 작품에 다름아닐 것이다. EDM 뮤지션으로서 기본적으로 추구해야 할 '독창적 소리'를 [Passed Me By]를 통해 한방에 프로듀싱 해냄으로써 이미 자기와의 싸움에서 승리를 거둔 그였지만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아티스트로써 지속적인 계량과 탐구를 거듭한 끝에 이번 앨범에 이르러 가장 원숙하고 안정된 형태의 앤디 스톳 해체주의를 디테일하게 구현시켜낸 것. 더군다나 기존 EP 앨범들에서 유일하게 미흡한 모습을 보였던 대중과의 소통 측면에서도 인상적인 성과를 거두었는데, 여성 보컬을 전면에 도입하여 스토리텔링과 팝적 감흥도를 향상시키고 댄서블 일렉트로닉 사운드의 그루브와 비트 패턴을 적극적으로 응용하는 등 앱스트랙트/익스페리멘탈 사운드 매니어 뿐만 아니라 일반 일렉트로닉 음악팬들까지도 포용하고자 한 일련의 의도들이 훌륭하게 결실을 맺은 작품이 바로 [Luxury Problems]인 것이다.   


RATING: 90/100

written by BK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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