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LISTS

The Top Albums of 2011: Honorable Mentions (part 1)


12월 중순부터 연말까지 노는 분위기로 가는 미국과 유럽지역은 일찌감치 연말결산을 다 마치고 휴가를 준비중인 상태라 뒷북치는 감도 없지 않지만 나름 시간을 두고 신경을 써서 만든 리스트들이니 마음 속에 담아둔 '올해의 앨범들'과 각자 비교를 하면서 가벼운 마음으로 감상하기 바란다. 며칠 후 개재될 순위권 앨범들을 제외한 스무 작품들을 일단 무순위로 선정했는데, 'Honorable Mentions'라고 영-미 음악웹진들에서 명명하는 그 리스트, 한국말로 딱히 떠오르는 게 없어서 그냥 제목만은 편의상 표절했으니 심심한 양해를 바란다.

SUN ARAW [Ancient Romans]


"Trireme"
레이블이라는 개념자체가 모호할 정도로 영세한 운영체계에 빛나는(?) 캘리포니아 인디 레이블 Not Not Fun 소속의 젊은 천재 싸이키델릭 뮤지션 캐머론 스탤론스(Cameron Stallones)는 뼛속까지 인디일 것만 같은 그의 포괄적 인디 내공을 올해 자신의 솔로 프로젝트 SUN ARAW의 새앨범 [Ancient Romans]에서 전세계 음악팬들에게 다시 한번 완벽하게 증명해냈다. '고대 로마' 라는 앨범 제목에 걸맞게 전쟁-점령-침공 등으로 혼란스러웠던 고대/중세 시대 로마와 그 주변 지중해 연안 문화와 음악들이 마구잡이로 짬뽕된 듯한 멀티이국적 카오스 잼을 선보이는 이 앨범에서 스탤론스는 우드, 시타르, 혹은 코라를 뒤섞은 듯한 기하학적인 제3세계 전통음악 멜로디 뉘앙스와 싸이키델릭한 이펙터+피드백+연주 주법을 토대로 마치 헨리 카이져(Henry Kaiser)의 재래를 보는 듯 실험적이면서도 키취적인 캐릭터가 물씬 풍겨나는 기타 솜씨를 선보이며, 여기에 토속적인 아프로비트를 발산하는 퍼커션 사운드와 드론/앰비언트적 느낌까지 오가는 아날로그 신쓰음 등까지 겻들이면서 호기심을 끊임없이 자아내는 정처불명의 미스테리 음악 여정을 80분 동안 완벽하게 수행해나간다. 특히 목적지 불명의 황홀경에 빠져든 스탤론스의 기타 연주/술주정 로파이 보컬에 발맞추어 변칙적이면서도 즉흥적인 양태의 리듬 패턴을 다채롭게 만들어가는 베이스와 퍼커션의 둔탁한 리듬 펀치는 때로는 요즘에 우리가 즐겨듯는 (포스트)덥스텝의 짜릿한 불협리듬 패턴의 냄새도 풍기며(특히 아주 초간단하지만 펑키하게 갈겨대는 핑거링 베이스가 인상적인 "Trireme"을 들어보라), 거기에 프랭크 자파류의 싸이키델릭록, 드론, 신쓰, 월드뮤직의 향취까지 더불어 느낄 수 있으니, 과연 이 대서사적 키취 아방가르드 앨범에 견줄만한 장르파괴 무형식 앨범을 천편일률이 대세처럼 돌아가는 작금의 인디 바닥에서 쉽게 찾아낼 수 있을까.  
AKIRA SAKATA & JIM O'ROURKE w/ CHIKAMORACHI [And That's The Story Of Jazz]


"Nagoya 2"
한때 세계를 호령했던 일본 아방가르드 음악(프리 재즈, 노이즈 등)의 위세는 최근들어 시대적 분위기에 주춤하는 중이지만, 일본 히로시마 출신의 베테랑 프리스타일 색소포니스트 사카다 아키라는 예순이 훨씬 넘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유럽-미국-일본을 오가며 지치지 않는 왕성한 활약을 보여주고 있는 대표적인 일본계 프리 재즈 뮤지션 중 한 명이다. 특히 일본이 낳은 일렉트로닉 거장 DJ KRUSH와의 콜라보 작업으로 국내 인디팬들에게도 꽤 이름이 알려져 있을 꺼라 사료되는데, 이번에는 시카고 포스트록의 거장 짐 오루크(Jim O'Rourke), 그리고 두 명의 젊은 미국인들로 구성된 프리 재즈 리듬 섹션 CHIKAMORACHI와 함께 올해 최고의 콜라보 라이브 앨범을 발표하며 세계 음악 매니어들에게 다시한번 건재를 과시했다. 과거 아방가르드 재즈 전성기 시절로 돌아간 듯 신들린 임프로바이제이션 색소폰 솜씨(그리고 "Nagoya 3"에서는 괴성섞인 보컬까지 겸한다)를 보여주는 사카다 아키라의 역량도 역량이지만 무엇보다 마치 과거 소니 쉐락(Sonny Sharrock)의 형이상학적 노이즈 재즈 기타 폭격을 재현하는 듯한 짐 오루크의 다이내믹한 기타 황홀경은 분명 누구도 기대치 못했던 수확일 것이다. 특히 뜨거운 무대 열기가 그대로 느껴지는 듯한 프리 재즈 대곡 "Nagoya 2", "Nagoya 3"에서 벌어지는 사카다와 오루크의 최상급 주고받기+앙상블 임프로바이제이션 퍼포먼스에는, 골수 프리 재즈팬들 뿐만 아니라 짐 오루크 음악팬들에게도 충분한 만족감을 줄만큼 퀄리티 만점의 실험성과 현장감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
YOB [Atma]


"Prepare the Ground"
언더그라운드적인 컬트 무드와 스토너성 싸이키델릭, 그리고 블랙 사바쓰 혈통의 악마적 파워... 메틀을 싫어하는 사람들이라면 이 앨범은 일단 스킵하는 것이 좋다. 그러나 적어도 왕년에 메틀을 좀 들었던 인디매니어들에겐 이 앨범이야말로 십수년간 잠들었던 메틀 스피릿을 다시 끄집어내기에 충분한 고농축 메틀 작품으로 손색이 없을 것이리라. 미국 오리건주 출신 둠 트리오 YOB은 결성된 지 10년이 넘은 베테랑 밴드임에도 메틀 비주류 지역 출신이라는 태생적 '성분' 때문에 로컬 에이스 이상의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하지만 AGALLOCH, KRALLICE 등 신진 인디 메틀 밴드들의 발굴/관리에 탁월한 능력을 보유한 새로운 메틀 '메카' Profound Lore Records와 계약에 성공함으로써 무명의 껍질을 깨고 이번 통산 여섯번째 앨범 [Atma]를 통해 진정한 가치를 인정받기에 이른다. [Atma]에서 리더 마이크 샤이트(Mike Scheidt, 리드보컬/리드기타)가 연신 뿜어내는 변화무쌍한 기타 코드웍은 10분이 넘는 대곡들을 연주하는 노고에도 전혀 굴하지 않고 다채로운 패턴으로 끊임없는 향정신성 싸이키델릭/둠 카타르시스를 뿜어내는데, 특히 오묘하면서도 뒷끝 징한 코드전개/사운드텍스쳐(꽤나 로파이스럽다)와 함께 13분-16분 등 압도적인 대곡임을 전혀 개의치 않는 듯 기승전결이라는 단어를 무색케 할만큼 미드템포 싸이키델릭 그루브에 심신을 맏기고 종잡을 수 없는 디렉션을 향해 끊임없이 음흉한 질주를 해나가는 그들의 광기 서린 언더그라운드 메틀 본능은, 과거 악따구니가 단단히 받혀있던 초인디 시절(일본인 베이시스트가 있었던 그 시절) SOUNDGARDEN의 풍모 이후 처음으로 맛보는 짜릿한 감촉이 아닐 수 없다. 트렌디 메틀 장르 양대 산맥 슬럿지(sludge)와 스토너(stoner)의 중간선상에서 둠(doom)에 기반한 사악한 메틀 본능을 수수하지만(=인디스럽게) 꽤나 테크니컬한 어법으로 풀어해치는 이 앨범은, 비록 프로듀싱의 미흡함에서 빚어진 거칠고 굼뜬 부분들이 대곡들의 중간중간마다 간혹 드러나긴 하지만 싸이키델릭 프로그레시브록의 풍모가 물씬 풍기는 걸출한 5곡만으로 이 베테랑 트리오가 언더그라운드 둠/슬러지/스토너 메틀계의 전국 에이스 자리로 단번에 우뚝서는 데 충분한 명분과 가치를 부여하고 있다. 
BILL ORCUTT [How The Thing Sings]


"The Visible Bosom"
가장 건전한 똘기를 마지막으로 구축했던 90년대 중반 미국 인디록 씬에서 일본 노이즈록과 영향을 주고 받으며 거대한 불협화음 사운드를 탐구했던 마이애미 출신의 노이즈록 트리오 HARRY PUSSY의 족적은 아직까지 크게 재조명되고 있지 않지만 행여나 최신 활약중인 인디 노이즈록 밴드 LIGHTNING BOLT에 관심을 갖고 있다면 일단 적어도 십수년 전부터 극강 인디적인 스피릿으로 노이즈와 비드백의 대합주를 선보였던 대선배 밴드 HARRY PUSSY부터 먼저 경배하는 게 음악 매니어로써 기본적인 예절이자 도리일 것이다. 그 저평가된 노이즈 트리오의 리더였던 기타리스트 빌 오커트(Bill Orcutt)는 자신의 기나긴 인디 역정에 한풀이라도 하듯 이번 솔로 앨범 [How The Thing Sings]에서 마치 자살 전 커트 코베인이 취했던 것처럼 리드벨리, 미시시피 프레드 맥도웰, 로버트 존슨 등 소외계급의 한과 우울함이 찐하게 배어있는 20세기 초-중반 흑인 블루스 뮤지션들의 정서를 어쿠스틱 기타 한 대만을 이용하여 절절하게 담아냈다. 하지만 오커트가 '우울함'으로 대변되는 그 초기 흑인 블루스 음악을 해석하는 양식은 가장 극단적인 아방가르드 스타일에 천착해 있는 것으로,  HARRY PUSSY 시절부터 다져진 포악한 파워 기타 테크닉을 손가락에 실어 4개만 달린 통기타 줄의 장력과 마찰음(프렛과 줄이 부딪칠 때 나는 그 소리)을 쥐락펴락하며 긴장감과 공격성이 가장 넘쳐나는 블루스(?) 기타 인스트루멘탈을 재창출해낸다. 블루스적 우울함과 아방가르드적 텐션이 공존하는, 마치 리드벨리와 장고 라인하르트, 그리고 로버트 프립(Robert Fripp)이 교배된 듯한 이 즉흥적 논조의 어쿠스틱 기타 연주는 인디록 음악뿐만 아니라 블루스, 재즈, 아방가르드, 기타 비르투오소 음악에 관심있는 모든 음악 매니어들에게 두루 어필될 수 있는 범장르적 매력들을 이 앨범 안에서 신들린 듯 발산하고 있다.  
1   2   3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