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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Top Albums of 2011: Honorable Mentions (part 3)


RANGERS [Pan Am Stories]


"Zombies (Day)"
엉성해보이는 외관이지만 나름 꽤 체계적인 커뮤니티 형태로 많은 신예 뮤지션들을 서포트하고 있는 Not Not Fun은 불과 8년 밖에 되지 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DIY 로파이 사운드의 메카로써 최근들어 급주목을 받고 있는 인디 레이블이다. 질퍽한 로파이 질감을 미적 장점으로 승화시키고 거기에 탈미국적/반대중적 정서까지 적극적으로 점목시킴으로써 영세한 환경 속에서 항상 씨름하는 개성 넘치는 DIY 인디 뮤지션에겐 최고의 음악적 길잡이가 되어주고 있는 이 레이블이 최근 쏟아내는 뮤지션들의 위용은 왠만한 거물 인디 레이블 못지 않은 화려함을 나름 보여주고 있는데, 그중 앞선 시간에 언급했던 SUN ARAW와 함께 인디 음악계에서 가장 특이한 존재로 부각되고 있는 RANGERS는 올해 두번째 정규앨범 [Pan Am Stories]을 통해 싸구려 복고 감성의 극강(?) 베드룸/DIY/로파이 사운드를 찐하게 선보이며 Not Not Fun 레이블의 공식 얼굴마담으로 새롭게 발돋움하고 있다. 일단 RANGERS를 복수 접미사 (-s) 때문에 밴드로 착각하지는 마라. RANGERS는 싸이키델릭의 본고장 샌프란시스코에서 활동 중인 조 나이트(Joe Knight)에 의해 100% 원맨밴드 체제로 운영되는 솔로 프로젝트로써, [Pan Am Stories] 역시 멀티 연주자 조 나이트 혼자만의 기타-베이스-드럼 솜씨에 의해 레코딩되어진 '엄연한' 솔로 앨범이다. REAL ESTATE의 정교한 로파이 쟁글팝 기타 사운드를 연상시키는 보이스를 들려주는 듯 하다가 어느 순간 성의없이 후려치며 퍼즈-리버브톤의 혼탁함으로 가득한 최악의 인디 사운드스케잎 속에서 정체성을 끊임없이 숨기려드는 기타 리프, 훵크(funk)에 영향받은 70년대 클래식 록 베이시스트들을 흉내내려는 듯 기타와는 상반되는 억양 분명한 투 핑거링 톤을 과시하지만 엽기스러울 정도로 노골적인 아마추어 솜씨를 뻔뻔하게 드러내는 베이스라인, 그리고 3개월 속성으로 완성된 듯한 베이스킥-스네어-하이햇 기본 패턴으로 소심하게 매트로놈 역할만 수행할 뿐인 드러밍, 이 엉성한 세 가지 록 트리오 유닛은 고물 4트랙 리코더에 의해 녹음된 일반적 로파이 록 사운드보다 훨씬 더 못한, 마치 80-90년대 초까지 한국에서도 번성(?)했던 소니/아이와 워크맨으로 대충 녹음된 듯한 최악의 합주 데모 테잎 음질을 기막히게 재현해낸다. 특히 13분짜리 대곡 "Zeke's Dream" 에서는 마치 과거 70년대 샌프란시스코 싸이키델릭록 음악을 차고/지하실/침실에서 카피하는 10대 청소년 밴드의 데모 카세트 테잎을 군데군데 잘라 연결한 듯 경악할만한 무계획성 무일관성 무테크닉의 삼위일체 아마추어리즘 음악 향연이 펼쳐지는데, 얄궂게도 이러한 엉성한 논조는 키취/컬트적인 엽기 뉘앙스와 맡닿으면서 SUN ARAW의 음악과 같은 오묘한 싸이키델릭 무드가 자연 생성되는 놀라운 광경을 연출한다. 로파이가 하나의 트렌드 서브 장르쯤으로 변형되면서 컴퓨터 미디 앱 필터를 이용한 인공적 로파이 음질까지 득세하고 있는 기이한 현 상황에서, RANGERS의 [Pan Am Stories]는 진정한 로파이 DIY 스타일이 과연 어떤 것이고 또한 어떻게 진행되어야 할 것인지를 가장 직설적으로 제시해주는 '21세기 DIY 록 교과서'와도 같은 작품일 것이다.  
HAUSCHKA [Salon Des Amateurs]


"Radar"
독일 뒤셀도르프 출신의 신사 폴커 바르텔만은 피아노 뚜껑을 열고 그 안에 내장된 스트링들을 사전에 임의로 조작하여 정상적인 피아노 음색/음계에서 벗어난 독특한 소리들을 자신의 피아노 연주와 함께 지속적으로 탐구해나가는 전형적인 아방가르드 실험 뮤지션이다. 물론 전위 포스트모던 음악의 대부 존 케이지 시절부터 시도되어온 조작 피아노(prepared piano) 연주방식은 오늘날에도 꽤 많은 연주자들이 아직까지 즐겨 써먹는 방법론이기에 이쪽 아방가르드 음악계열에서도 조작 피아노 연주법을 특이하게 바라보는 사람이 더이상 없을 터이지만 바르텔만은 이에 굴하지 않고 솔로 프로젝트 HAUSCHKA를 통해 자신의 수려한 피아노 테크닉(클래식 연주자나 다름없는 피아노 솜씨를 가지고 있음)과 프리페어드 피아노 방식을 동시에 잘 살려오고 있는데, 올해 선보인 [Salon Des Amateurs] 앨범 역시 바르텔만 특유의 독특한 음감과 아이디어에 의한 생동감 넘치는 아방가르드 피아노의 향연이 깔끔하게 담겨져 있다. 이질적인 것들임은 분명하지만 어딘지 모르게 따뜻한 사람의 온기가 느껴지는 듯한 그의 아방가르드 피아노 리프들은, 톡톡 튀기듯 무신경하게 건드리는 듯하면서도 생기발랄하고 긍정적인 뉘앙스를 흘리는 천재 작곡가 스티브 라이히(Steve Reich)의 컨템포러리 클래식 피아노 연주곡들을 연상시키는 타건법에 의해 학구적 분위기를 시종일관 리드하며, 여기에 극도로 규칙적인 템포로 동일 리프들을 루핑하듯 반복하는 일렉트로닉 음악적 스트럭쳐까지 자신의 아방가르드 피아노 리프 속에서 더불어 강조함으로써 '아방가르드 피아노의 일렉트로닉화'라는 포스트모더니즘 어프로치의 또다른 돌파구를 바로 이 앨범을 통해 새롭게 제시하고 있다. [Salon Des Amateurs]에 참여한 세션 멤버들 역시 지난 앨범들에 비해 훨씬 더 화려한데, 특히 사라 장과 함께 미국 신예 여자바이올린계의 쌍두마차로 자리잡은 힐러리 한(Hilary Hahn)의 이름이 이 앨범의 크레딧에 올라 있어 더욱 놀라움을 안겨주는 작품이기도 하다. 


"Go Bang"
MF DOOM의 마스크 카리스마를 흉내내보려 한 듯 아프리카 토속 탈바가지를 쓰고 대중 앞에 자신을 드러낸 UK 프로듀서 아론 제롬(SBTRKT)의 첫번째 정규 풀렝쓰(full-length) 앨범 [SBTRKT]는 나름 크리에이티브한 일렉 장르로 간주되는 (포스트)덥스텝 장르에 있어서 양날의 검과 같은 존재인 디바/보컬의 가장 모범적인 사용 매뉴얼을 보여준 작품으로 평가될 수 있을 것이다. 피처링 여가수 로제스 가보(Roses Gabor), 나가노 유키미의 숨겨진 매력을 맥시멈 레벨로 끌어올린 "Pharoahs", "Wildlife" 같은 트랙들은 당장 빌보드 싱글챠트 탑 10에 핫 엔트리로 등극해도 하나도 놀랍지 않을만큼 팝적인 캐취감이 듬뿍 담겨 있으며, SBTRKT의 오른팔 삼파(Sampha)의 호소력 짙은 소울 보컬 삘이 실려진 "Trials Of The Past", "Something Goes Right", "Never Never" 등의 곡들은 R&B 보컬의 감수성을 UK 가라지 속에 가장 적극적으로 끌어들인 제임스 블레이크(James Blake), 제이미 운(Jamie Woon) 등이 형성한 보컬 지향적 포스트덥스텝 계보에 편승하면서 가장 인간적인 교감이 수반된 기계 음악의 대안을 훌륭하게 제시해준다. 이렇듯 SBTRKT는 마치 팝 앨범 프로듀서가 된 것처럼 다양한 게스트 보컬리스트들을 과도하다 싶을만큼 상당한 비중으로 자신의 데뷔 앨범 속에 등장시키지만, 팝과 대중성이라는 거부할 수 없는 달콤한 유혹에 함몰되지 않고 뮤지션/아티스트로써 SBTRKT만이 가지고 있는 창조적인 어프로치들(아프로.트라이벌 퍼커션을 글리취(glitch)드럼 샘플과 함께 비트 재료로써 자유롭게 섞어낸다던지, 조잡하게 공명하는 자메이카 댄스홀풍 신씨사이저 리프들을 팝 일변도의 보컬 텍스쳐와 함께 동시에 하모니화시킨다던지 등등)을 팝 지향의 프레임웍 속에 지속적으로 우겨넣음으로써 굉장히 특이한 구조와 성격을 지닌 덥스텝 앨범이 완성될 수 있었던 것이다. 올해 'JOKER의 참극' 을 이유삼아 덥스텝의 팝뮤직화 움직임에 아직도 달갑게 여기지 않는 이들이 있다면 앨범의 후미쪽에 '처분하듯' 실은 "Ready Set Loop", "Go Bang"과 같은 인스트루멘탈곡을 개인적으로 추천하고자 한다. 90년대 시카고 하우스와 드럼앤베이스를 교배한 비트에 비정상적인 코드를 넘나드는 신쓰(synth) 리프가 절묘한 하모니를 이루는 "Ready Set Loop" 역시 DJ로써 SBTRKT의 역량을 충분히 보여주는 훌륭한 곡이지만 덥스텝스럽게 변칙적으로 프레임을 수놓는 아프리카 퍼커션+미디 드럼 루핑에 신씨사이저로 정제되지 않은 듯하면서도 오묘하게 착착 감기는 몽환적 팝 아우라를 엮어내는 클로징 트랙 "Go Bang"이야말로 팝 연금술사와 크리에이티브 덥스테퍼로써 SBTRKT가 가진 양면적인 장점들을 동시에 맛볼 수 있는 놓혀선 안될 '흙 속의 진주'같은 곡이다.  
JOHN MAUS [We Must Become the Pitiless Censors of Ourselves]


"Believer"
유럽에 배낭여행을 다니던 중 독일에서 우연찮게 존 마우스(John Maus)의 공연을 본 적이 있다. 그 좁디좁은 클럽에 한 50명의 관중이 모였었나. 허접하기 그지없는 공연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땀을 비오듯 흘리며 열창의 무대를 보여줬던 그의 모습은, 비장함이 넘쳐흐르는 신씨사이저/드럼 배킹과 묵직한 남성미가 느껴지는 카리스마 보컬의 압박에도 불구하고 어딘지 모르게 우스꽝스럽게 보였다고나 할까. 라이브 모습을 본 적이 없었던 당시에는 그럴싸한 고딕 분장이라도 하고 무대에 설 존 마우스를 기대했건만, 덥수룩하게 8:2 가르마를 한 머리에 성인 W.T.들의 금요일 클럽 유니폼인 민무늬 흰색 셔츠, 그리고 어정쩡하게 탈색된 리바이스 청바지 차림새로 백업 밴드 하나 없이 스피커를 통해 틀려지는 MR만 달랑 추가된 배킹 반주에 맞춰 혼자 진지하게 악을 지르듯 목청을 높이는 그의 모습은 영락없이 음주가무계에선 한물간 30대 아저씨의 모습이었다. 그에 대한 뒷조사를 하게 되면 더욱 가관이다. 스위스에서 철학 석사를 받고 지금은 정치철학 박사 학위를 준비중이라는데, 이런 학구파 아저씨(뭐, 크게 아저씨도 아니다. 이제 서른을 좀 넘겼으니)의 끈적끈적한 80년대 고딕 본능은 도대체 어디에서 뿜어져 나오는 것일까. 펑크와 고딕, 신쓰를 접목했던 조이 디비전, 스트랭글러스, 바우하우스 등 과거의 영웅들이 한창 세계를 주름잡던 시기에 정작 태어난 세대이면서도, 그리고 피터 머피, 데이빗 실비앙, 로버트 스미스 같은 80년대 핀업 스타들의 카리스마와 완전 반대되는 서민 분위기로 일관하면서도, 존 마우스는 겉멋든 허구 종합세트들을 쏟아내며 활개치는 요즘 애송이 네오 포스트펑커들이 가지지 못한 자신만의 이지적인 감수성과 현대적인 균형감을 바탕으로 복고 고딕, 포스트 펑크, 신쓰웨이브의 가장 고급스러운 부분들만을 추출하여 이 시대에 가장 합리적이면서도 수긍가능한 미니멀 포스트 펑크/고딕 신쓰 사운드를 본작 [We Must Become the Pitiless Censors of Ourselves]에 성공적으로 담아낸 것이다(특히 이 앨범에서 배킹의 골격을 이루는 신씨사이저 음은 고딕/포스트펑크 스타일보다는 오히려 뉴웨이브 스타일의 마일드한 팝 색조를 빼닮아 상당히 이채롭다). 마치 가라오케 바에서 얼큰하게 취해 가라오케 반주 틀어놓고 조이 디비젼 노래를 열심히 쳐부르는 중고딩시절 자뻑 고딕 키드였던 평범한 아저씨의 이미지("Believer"를 들어봐라)에, 인디 DIY/베드룸 사운드 스타일의 담백한(?) 풍모까지 배킹 사운드에서 한껏 풍겨나니, 바로 이러한 인간적 매력들로 인해 이번 앨범처럼 가장 진솔하고 꾸밈없는 80년대 트리뷰트형 고딕 신쓰팝 작품이 나올 수 있었던 것이다.
ROBAG WRUHME [Wuppdeckmischmampflow]


"Kon1 (Krause Duo RMX)"
현재 일본 순회공연 중인 독일 출신의 다운템포 마이스터 로박 루메(Robag Wruhme, 본명은 가보 샤블릿츠키. 아마 폴란드인이 아닌가 생각된다)는 테크하우스(tech house)와 앰비언트/IDM를 넘나들며 지적이면서도 사색적인 테마가 시각적으로 그려지는 미니멀리즘 일렉트로닉 음악을 지향한다. 그의 스타일은 분명 동적인 무브먼트가 강조되는 테크노 필로쏘피에 근본적 기반을 두고는 있다. 즉, Kompakt 소속 독일 뮤지션답게 Kampakt 레이블 스타일의 차분한 펑키 비트 질감을 상당히 능숙하게 구사하며 클럽용 DJ로써의 면모를 기본적으로 갖추고 있지만, 동시에 IDM적 터치와 앰비언트적 사운드스케잎 조성에도 예민한 감각과 센스를 지니고 있어서 그의 미니멀 테크노 음악은 비록 비트가 기본 골격을 이루고 있다 해도 언제나 정적인 무드나 감수성 같은 미학적 플러스 요소들이 항상 은은하게 내포되어 있다. 물론 빌라로보스와 같은 다재다능함은 조금 부족하다 치더라도 테크노/하우스에 IDM적 미니멀리즘을 음향학자처럼 진지하게 가져다대는 그의 어프로치는 기라성같은 Kompakt 소속 여타 뮤지션/디제이들과는 확실히 차별화되는 면모를 항상 드러내왔는데, 이번 리믹스 컴필레이션 앨범 [Wuppdeckmischmampflow]이야말로 바로 로박 루메만의 장기인 무드-서정미-센티멘탈리즘 지향적 테크노 프로듀싱 감각을 120 BPM의 정석 템포와 함께 가장 완벽하게 맛볼 수 있는 작품으로 손색이 없을 것이다. 마치 ECM 레이블 재즈 앨범 커버들을 보는 듯한 고풍스러운 재킷 디자인처럼, [Wuppdeckmischmampflow]는 바로 ECM산 유럽 컨템포러리 재즈 음악에 비견될만한 고급스러우면서도 학구적인 터치(재즈적 풍모의 악기 연주 리프, 깔끔하게 맺고 끊는 비트 어레인지와 심벌 추임새), 섬세한 스트럭쳐(특히 이 리믹스 앨범의 트랜지션은 절묘하기 이를 데 없는데, 세미클래식성 앰비언트 넘버 "Speak, Memory"에서 디트로이트풍 미니멀 딥하우스 "Odyssee / Chameleon"로 유연하게 전환시키는 마이스터 디제잉 테크닉은 감탄이 절로 나옴), 우아한 멜로디 감수성("Rusty Nails"에서 미니멀한 손질에 의해 싸구려 분위기의 MODERAT 원곡을 마치 ERLEND OYE의 우아한 테크노팝 형태로 간단하게 변모시키는 감각이란!) 등을 60분 동안 논스톱으로 드러내며 이 저평가된 거장 디제이의 숙성된 음악적 면모를 아주 멋지게 과시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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