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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S/ALT & INDIE

ZOLA JESUS: Conatus (2011)


러시아계 미국 여성 싱어송라이터 니카 다닐로바의 세번째 앨범 (정규 full-length 스튜디오 앨범으로썬 두번째) [Canatus]를 바라보는 시선은 그다지 뜨겁지도, 그렇다고 냉랭하지도 않다. 뜨겁지 않은 이유는 우리가 최근 들어 자주 들어왔던 뉴웨이브 시절의 고딕팝 아류들이 셀 수 없이 쏟아져 나오고 있는 작금의 상황에서 이런 류의 애매한 고딕 멜로드라마에 대해 더이상의 큰 충격이나 감동을 얻지 못하는 시대적/숙명적 무덤덤함 때문일 것이고, 그렇다고 냉랭하지도 않은 이유는 비록 뉴웨이브 시절 고전 음악의 아류임에도 니카 다닐로바가 탄탄하게 다져온 음악적 깊이와 진지함을 기반으로 아류의 무덤덤함을 비집고 뭔가 자신만의 음악적 채색을 해보기 위해 애쓴 흔적들을 이번 앨범에서 접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니카 다닐로바의 일인 프로젝트 ZOLA JESUS의 음악을 들어보면 바로 연상되는 한 명의 여성 레전드가 있으니, 그녀는 바로 수지 수(SIOUXSIE SIOUX). 세련된 고딕 팝의 진수를 우리가 태어나기 전부터 보여줬던 수지 수 특유의 암울하면서도 성숙한 논조의 컬트적 센티멘탈리즘에 노골적인 영향을 받은데다 로-파이와 아날로그 정신으로 디지털 사운드의 돌출을 꾹꾹 밑으로 눌러낸 음악적 무드 역시 지극히 인디적/복고적이라서 행여나 [Canatus]를 과거 7-80년대 영국-독일 고딕 포스트펑크-뉴웨이브 앨범들과 섞어서 듣게 된다면 이 앨범이 2011년에 발매된 것인지 아니면 30년 전에 발매된 것인지 분간해내기도 쉽지 않을 것이다.

고딕 계열의 컬트 뉘앙스에 다크 웨이브의 삭막한 기운을 머금은 [Canatus]에서 줄기차게 흘러나오는 일렉트로 드럼 비트는 단순한 패턴으로 일관되어 있긴 하나 트라이벌(tribal) 비트처럼 이국적인 리듬과 질감을 발산하기에 나름 아기자기하게 듣는 재미가 있으며("Avalanche"), 자질구레한 샘플링이나 노이즈를 별다르게 사용하지 않고 심플한 클린톤으로 가공된 인스트루멘탈과 기계음으로 사운드의 뼈대를 만들어나간("Vessel", "Shivers") 덕에 보컬리스트로써 니카 다닐로바의 매력은 [Canatus]에서 5할 이상의 중추적 역할을 유지하며 배경 사운드의 방해 요소 없이 깔끔한 형태로 담겨져 있다. 게다가 그녀의 보컬 감촉은 선천적으로 팝적인 요소가 상당히 강하게 배어 있기 때문에 대중친화적인 면만 본다면 수지 수나 케이트 부쉬같은 원조 컬트 여성 싱어들의 카리스마 음색보다 훨씬 쉽고 가볍게 들을 수 있는 장점 또한 지니고 있다.    

2장의 전작들([The Spoils (2008)], [Stridulum II (2009)])에 비해 프로듀싱/어레인지 수준이 여러모로 한단계 진보해 있는 [Canatus]은, 비록 앨범으로써 전혀 나무랄 데 없는 구성력이나 완성도를 보여주고 있지만 '고딕미학' 을 한껏 흠모하는 인디 여전사의 음악치고는 너무 팝 모드로 필터링하여 노래가 불리워진 탓에 고딕 특유의 긴장감과 개성미가 전체적으로 양껏 발산되지 못해 조금은 아쉬운 감이 든다. 수지 수, 케이트 부쉬, 디아만다 갈라스, 디페쉬 모드의 고전적 다크함과 뷰욕, 피버 레이의 트랜디한 다크함은 니카 다닐로바가 동시에 추구하고자 하는 음악적 기준이자 모토임에는 자명한 사실일 터이지만 [Canatus]에서 그녀가 보여주는 '고딕스러움'은 아직까지 여성 커머셜 팝 싱어가 로맨틱한 음악 색깔을 내기 위한 '수단' 으로써 일시적으로 차용하는 수준에 머물러있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되는 건 왜일까. 게다가 그녀가 가진 보이스의 감촉은 고딕 음악 특유의 배타적인 성질보다는 파티용 일렉트로팝 음악처럼 대중에 손쉽게 어필하려는 성질을 더 강하게 띄고 있다. 이는 꽤 잘 짜여진 배킹 사운드와 함께 이지리스닝 음악 아이템으로 손색이 없는 하모니를 이루고 있지만, 고딕팝의 카테고리에 포함이 되기에는 감정처리가 너무 밋밋하고 오리지널리티 측면에서도 그다지 내세울 건 없는 취약점을 드러낸다. 특히 니카 다닐로바의 보컬 능력은, 마치 패티 스미스처럼 파워감 넘치면서도 케이트 부쉬처럼 미묘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하이노트 부분의 매력에 비해 중저음에서 마치 아마추어 가수처럼 감정처리나 테크닉 측면에서 상당히 불안한 모습을 노출한다(특히 초기 SIOUXSIE & THE BANSHEES 음악을 연상시키는 음산하면서도 다크한 느낌의 인트로가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Hikikomori"에서 보여주는 니카 다닐로바의 바리톤 보이스는 인트로의 멋들어진 다크웨이브 사운드의 불씨를 완벽하게 살려내지 못하는 듯 하여 조금은 실망스럽다).

중산층 가정에서 자라 대학에서 불문학과 철학을 공부한 22살의 금발 백인 여성이 아웃사이더적 겸양이 필요한 '고딕'이라는 컬트 장르를 100% 진정으로 흡수하고 자기 것으로 만들어낸다는 것 자체가 애초부터 불가능한 일. 하지만 니카 다닐로바는 이러한 '넌센스' 를 인지하고 크게 오바하지 않는 선에서 팝적인 감수성을 다량 엮어내어 훌륭한 대중친화력을 자랑하는 고딕팝 작품을 손쉽게 완성해냈다. 일렉트로 비트처럼 듣기 쉽게 루핑하는 드럼과 미니멀하게 흐르는 키보드 터치에 맞춰 그녀가 뱉어내는 멜로우 발라드는 이전의 고딕 음악 레전드들의 음악을 능가하는 흡수력을 자랑하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이러한 팝적인 중화작용이 그녀가 근본적인 이상향으로 간주하는 '카리스마적 이미지' 를 오히려 끝없이 무듸게 만들 수도 있을 것이다. 따라서 디아만다 갈라스와 수지 수의 고딕 정신을 추종하는 골수 클래식 고딕 우월론자들로부터, 그리고 피버 레이의 최신음악에 열광하는 인디 힙스터 매니어들로부터 전폭적인 지지를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앞으로 [Conatus]식의 어정쩡한 팝+고딕 혼합 시도 이상의 개성과 똘끼를 더 과감하게 보여주어야 할 것이다. 물론 니카 다닐로바의 미래 취향이 패티 스미스나 나탈리 머천트 쪽으로 틀지 않는다는 전제 하에서 말이다......

RATING: 68/100

written by
BK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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