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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S/ALT & INDIE

CHELSEA WOLFE: Apokalypsis (2011)


고딕이란, 대충 듣기에는 과도하게 진지하고 계속 경청하기에는 심신이 무거워지는 양면성을 지닌 장르. 그래도 나름 역대 여성음악 역사를 빛냈던 수많은 카리스마 아마조네즈들의 근원지이기에 개인적 호불호를 떠나 무한한 존중과 경의를 요구하는 장르. 하지만 나르시시즘 과잉을 수반하는 개인성과 자기중심성의 위험을 수반하는 장르이기도 하기 때문에 뮤지션으로써 이 장르를 이용하고자 한다면 심각한 주의를 요한다.

LA출신의 고딕 포크 싱어송라이터 CHELSEA WOLFE의 실질적인 공식 데뷔 앨범 [Apokalypsis]의 앨범 재킷을 일단 한번 보라. 둠(doom)스러움과 컬트스러움을 겸비하고자 하는 그녀의 전투자세를 노래 하나 듣지 않고도 시각적으로 단박에 느낄 수 있을 것이다(흠좀무 카리스마!). 게다가 초이국적인 문자(그리스 문자가 아닐런지?) 나열로 이루어진 앨범 제목('Ἀποκάλυψις')까지 곁들이는 등 '아웃사이더되기' 전략을 위해 그녀가 노골적으로 펼쳐보이는 음악 외적인 어프로치들은 진정성을 제쳐두고서라도 충분히 납득할만한 매력이 있다. 고딕의 여전사를 꿈꾸는 CHELSEA WOLFE의 속내를 바로 읽어낼 수 있는 24초 러닝타임의 짧은 인트로 "Primal//Carnal" 의 호기(豪氣)는 또 어떤가. 마치 여성 데쓰메틀 보컬리스트가 된 양(굳이 비교하자면 ARCH ENEMY의 안젤로 고소우같다 라고 하면 적절한 비유일지?) 블랙과 둠의 기운을 한껏 발산하는 그녀의 샤우팅 틈새로 파고드는 그로테스크함은 오노 요코나 하이노 케이지 같이 미친 X 지랄하듯 악을 질러대던 일본 아방가르드 시대 실험적 샤우팅까지 연상되는데, 앨범 재킷과 타이틀만큼이나 무척 '속보이는 오바'라는 생각만큼은 뇌릿 속에서 떠나지 않지만 나름 아이덴티티와 카리스마를 확고하게 구축하고자 하는 CHELSEA WOLFE의 의지가 단박에 와닿는, 제법 적절하면서도 참신한 시도라고 보여진다. 이어지는 두번째 트랙 "Mer"부터 그녀는 블랙과 둠, 고딕의 공통적인 테제인 '어둠의 세계'로 자아침식을 본격적으로 도모한다. 초기 PJ HARVEY가 보여주던 멜랑꼴리하면서도 음산했던 싱글노트 기타 발라드의 느낌도 살짝 드러나는 등 에테르와 싸이키델릭이 공존하는 듯한 다크 고딕 분위기를 살벌하면서도 아름답게 조성하는 데 성공하지만 하이노트 보컬 부분에서 묻어나는 뷰욕스러움은 배킹 사운드의 요묘한 뉘앙스에 비한다면 그다지 놀라움을 안겨주는 느낌은 아니리라 .

뷰욕스러움의 강박관념은 이어지는 "Tracks" 에서 더욱 진득하게 묻어나는데, 하이노트 부분에서 뷰욕처럼 오르락내리락하는 듯한 팔세토 창법을 또다시 수시로 반복함으로 인해 빚어진 현상인지 앨범의 초반부에서 BLACK SABBATH나 BURZUM처럼 호전적으로 발산하던 배킹 연주 리프와 사운드스케잎의 암울하면서도 마녀적인 기운들이 이 트랙을 분기점으로 한풀 꺾이고 만다. 물론 SONIC YOUTH의 킴 고든처럼 싸이키델릭하게 록킹하는 네번째 트랙 "Demons"에서 다시 '둠스러움'의 불씨를 지피긴 하지만 스타일 자체가 너무 [Sister] 시절 SONIC YOUTH 스타일의 판박이 전개방식인데다 '악마(demon)들' 이라는 노래 제목에 걸맞지 않게 클라이막스 부분에서 평이한 억양으로 몰아붙이는 보컬의 텍스쳐는 그다지 킴 고든스럽지도 피제이 하비스럽지도 못한 카리스마 농도를 드러낸다. 더군다나 앨범 후반부로 갈수록 보컬의 'demon' 틱한 사악함이 갈수록 줄어들고 그 빈자리를 뷰욕틱한 소프트함/신비로움이 대신하는 듯한 풍모는 초장에 잔뜩 폼잡았던 '어둠의 세계' 테마 고유의 텐션감을 계속 갉아먹기만 할 뿐인데, 특히 클로징 트랙 "Movie Screen"에서 뷰욕적인 신비로움의 풍모를 억지로 좇는 듯한 분위기는, 악마 둠 메틀의 아이콘 BURZUM의 명곡 "Black Spell of Destruction"커버하고 잉그마르 베리만의 영화 '제7의 봉인'을 언급하기도 했던 그녀가 필사적으로 취하고자 하는 다크한 아트 캐릭터의 독창적인 풍모를 그다지 뒷받침해주는 시도로 간주하기 힘든 상황인 것이다. 

물론 CHELSEA WOLFE의 음악에서는 바로 앞에 소개한 바 있던 ZOLA JESUS보다 고딕이나 둠 등 어둠의 미학에 관해 훨씬 더 심각한 태도와 순도 높은 마음가짐으로 접근하고 있으며, 또한 과거 BEAT HAPPENING에서 접했던 DIY 스타일의 로-파이 마이너톤이 찐하게 드리워진 센터피스(6번째곡) "Moses"같은 곡에서 간파되듯이 그녀가 취하는 인디적인 삘은 꽤 만족스러울 만큼 폐쇄적(물론 좋은 의미에서다)이면서도 로-파이적인 풍모를 짙게 띄고 있다. 그리고 피제이 하비, 뷰욕, 소닉 유스, 포크를 오고가다 둠 메틀(특히 '여자 BURZUM 되기 프로젝트'처럼 들리는 9번째 트랙 "Pale On Pale"가 대표적)까지 기여코 파고들고마는 일련의 행보는, 마치  [Apocalypse]가 여러 장르들로부터 '다크함'의 엑기스만을 뽑아내어 편집한 옴니버스 앨범같은 느낌도 드는데, 이렇듯 일관적인 태도로 친 고딕- 반 메인스트림적 입장을 취하는 그녀이지만 안타깝게도 [Apocalypse]에서 보여주는 순도 높은 다크함의 초지일관이 CHELSEA WOLFE만의 특징을 잡아내는 성과(?)에까지 이르지는 못하고 있다. 게다가 정교한 프레이즈 하나 없이 너무 기대이하의 단순함으로 일관하는 배킹 연주들에 의해 헐겊게 짜여진 배경 사운드 레이어들의 초라함으로 인해 음악적 내구성이 전체적으로 상당부분 결여되어 있다는 점 역시 뼈아픈 아쉬움으로 남는다.


RATING: 62/100

written by
BK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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