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REVIEWS/ALT & INDIE

CAVE: Neverendless (2011)


지극히 평범하고 특징없는 밴드명을 가지고 있지만 훌륭한 연주력과 음악적 내공을 지닌 시카고 출신의 인디록 밴드 CAVE. 이들은 'cave' 라는 단어를 같이 빌려쓰는 NICK CAVE나 CAVE IN의 음악과는 달리 크라우트록에 근원적 영향을 받은 진지한 비주류 싸이키델릭록 음악을 구사한다.  최근 선보인 통산 세번째 정규 스튜디오 앨범 [Neverendless] 역시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질퍽한 싸이키델릭 음악의 대향연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는데, 특히 이 방면 음악계 대가들이 왕년에 절찬리에 활동한 바 있던 '마이너 중의 메이저' 거물 레이블 Drag City로 이적한 이후 발표한 첫번째 앨범답게 지난 두장의 앨범들보다 훨씬 깔끔하고 세련된 스튜디오 프로듀싱의 업그레이드가 이번 작품에서 유난히 인상적으로 다가온다.

이번 앨범에서 백미라고 할 수 있는 트랙은 단연 14분이라는 화끈한 러닝타임을 가지고 있는 대곡 "This Is The Best"인데, 오묘한 드론 인트로에 이어 독일 크라우트록 클래식 음악에서 자주 들리던 둔탁한 패턴의 드럼-베이스 조합, 그리고 싸이키델릭한 아날로그 건반 리프까지 더해지면서 복고 싸이키델릭과 크라우트록에 관한 CAVE의 남다른 애착을 이 곡에서 가장 찐하게 맛볼 수 있을 것이다. 특히 기타의 디스토션과 피드백을 최대한 절제하면서 싸이키델릭적 무드를 지속해내는 모습은 최근 자주 접하는 신진 네오 싸이키델릭 밴드의 기타위주 음악들과 차별성을 이루면서 훨씬 신선하면서도 깔끔하게 다가온다(물론 이러한 미니멀리즘적 면모 역시 크라우트록의 영향에서 비롯된 전형적 어프로치법 중 하나이기는 하지만 말이다).

그러나 CAVE는 첫번째 트랙 "W U J"이나 네번째 트랙 "On The Rise"처럼 이들의 출신성분(시카고)에 걸맞게 포스트록에 관한 애정 역시 트라우트록/싸이키델릭록만큼이나 이번 [Neverendless]앨범에서 꽤나 적극적으로 피력해보이고 있다. 이 곡에서 CAVE는 시카고 포스트록의 가장 기본적인 록 프레임워크인 기타-베이스-드럼 유닛의 절제된 인스트루멘탈 연주법을 차용하면서 아귀가 착착 맞아떨어지는 연주의 정확성과 타이트하게 조이는 긴장감/속도감까지 훌륭하게 표현/생성시켜내는데, 이러한 면모는 싸이키델릭이나 크라우트록의 진부한 논조보다는 오히려 TORTOISE나 ROME, 초기 TRANS AM, 초기 GASTR DEL SOL 같은 전성기 시절 시카고 밴드들의 연주에서 느끼곤 하는 텐션감 넘치는 미니멀리즘 포스트록 음악과 상당히 흡사하게 다가온다.

또한 "O J"에서는 초-중기 UK 포스트록의 아우라가 보통 이상으로 느껴지는데, 초기(그렇다. 초기다. 요즘 UK 포스트록은 지나치게 록킹+기능지향적이다) UK 포스트록을 이끌던 STEREOLAB의 아날로그 건반 리프 텍스쳐와 ELECTRELANE의 단아한 인스트루멘탈 록 잼 루핑이 적절히 뒤섞여 무리하지 않는 한도 내에서 댄서블한 속도감과 인디록적인 텍스쳐를 CAVE의 음악에서 동시에 접할 수 있다는 사실이 CAVE를 '폐쇄적 밴드' 로 인지하는 팬들에겐 살짝 의외로 비춰질 수도 있겠지만 CAVE의 전작 앨범 [Psychic Psummer]의 앙증맞은 신시리드(synth-leading) 클로징 트랙 "Machines and Muscles"을 기억하고 있는 이들에게는 분명 그다지 큰 놀라움을 가져다줄 시도는 아닐 것이다.

CAVE의 이번 새앨범은, 양대 거물 레이블 Thrill Jockey와 Drag City가 주도했던 90년대 말 미국 포스트록 최전성기 시절의 사운드와 상당히 흡사한 텍스쳐와 메커니즘을 보여줌과 동시에 STEREOLAB, DISCO INFERNO 같은 초기 UK 포스트록 미학과 독일 크라우트록의 역사성 등 유럽적 요소까지 적당하게 아우르면서 우리가 통상적으로 정의하는 포스트록의 교과서적 면모들을 미니멀리즘 정신에 입각하여 포괄적으로 담아내는 데 성공하고 있다. 실제로 [Neverendless]은 우리가 21세기 이후 들어왔던 최신 포스트록 계열 앨범들 중 주관적 터치를 최대한으로 절제하면서 복고적인 면모에 교과서적으로 충실하려는 노력의 흔적이 가장 잘 드러나 있는 작품으로 꼽을 수 있겠다. 하지만 이번 앨범에서 아쉬운 점은, 그동안 과거 우리가 경이로운 마음가짐으로 줄창 들어왔던 일련의 시카고 뮤직 계열 익스페리멘탈/포스트록 고전 앨범에서 흔히 접했던 인스트루멘탈 록 잼의 단순무지한 루핑 포뮬라를 뛰어넘는 '그 이상의' 면모나 노력의 흔적을 [Neverendless]에서 크게 찾기 힘들다는 점이다. 특히 세번째 트랙 "Adam Roberts" 의 경우처럼, 이들이 추구하는 음악적 기본 아젠다는 존 맥켄타이어가 90년대에 써내려갔던 매뉴얼에 따라 드럼+베이스+기타의 가장 단순간편한 연주 프레이즈 조합의 기본 뼈대 위에 크라우트록 시대의 복고풍을 강조하기 위해 해먼드 올갠톤의 신씨사이저 리프를 덧입혀 무한루핑시키는데 과도한 포커스가 맞춰져 있을 뿐 정작 CAVE만의 또다른 제3의 창조적 아이디어나 어프로치를 동반접목시키는 데에는 약간 소극적인 구석을 드러낸다.

[Neverendless]에서 CAVE가 보여준 시카고 포스트록 클래식들의 정공법 따라하기 패턴은 일말의 거부감까지 살짝 생겨날 정도로 예상궤도 안에서 너무도 안전하게 전개되어 있지만, ('음악적 아이텐티티' 문제를 제쳐둔다면) 이들은 SLINT나 TORTOISE 못지 않게 시종일관 아주 타이트하면서도 텐션감 넘치는 연주 태도를 시종일관 유지해내는 기특함을 분명 보여주고 있다. [Neverendless]는 이러한 집중력있는 연주태도와 다양한 러닝타임(7-14-4-6-10분)으로 이루어진 수록곡들의 절묘한 배합 하에 42분이라는 제법 긴 러닝타임 동안 인스트루멘탈만으로도 처음부터 끝까지 전혀 지루함 없이 포스트모더니즘 록의 세계를 체험하게끔 리스너들을 아주 자연스럽게 인도해줄 것이다.


RATING: 71/100

written by
BKC

'REVIEWS > ALT & INDIE' 카테고리의 다른 글

ZOLA JESUS: Conatus (2011)  (1) 2011.10.22
SLOW CLUB: Paradise (2011)  (0) 2011.10.15
NEON INDIAN: Era Extrana (2011)  (1) 2011.09.26
GOTYE: Making Mirrors (2011)  (4) 2011.09.22
THE DRUMS: Portamento (2011)  (0) 2011.09.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