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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1.03 00:20


"da vinci"

개인적으로 WEEZER 팬이었던 적은 없었다. 일단 어리숙하고 촌스러워 보이는 멤버들의 외모도 별로였고(특히 드러머!), 나사빠진 듯 아마츄어스럽고 바보스럽게 연주하는 모습 또한 왠지 힙스터 설정의 냄새가 나는 게 그닥 정겹게 보이진 않았으니... 어쨌든 WEEZER의 최고 화제작이 데뷔 앨범 [Weezer (Blue Album) (1994)]라는 데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거대 메이저 레이블 게펜(Geffen)의 지원 아래, 뉴욕의 고급 레코딩 스튜디오에서 파워팝의 최고봉 CARS의 리더 릭 오카섹(Rick Ocasek)의 프로덕션 지휘 하에 만들어진 이 앨범에는 90년대 초 당시 한창 불어닥치던 모던록/얼터너티브 열풍 안에서 놓고 봐도 꽤나 당황스러운 음원들이 대거 담겨있었다. 왜냐면 로파이 프로덕션과는 다소 동떨어진 'Geffen표' 디지털 레코딩 세팅(마치 MTV 메틀 밴드들의 짱짱거리는 하이파이 질감을 연상시킬 정도로 사운드가 너무 깔끔하게 떨어졌다) 속에서 왠만한 인디 차고 밴드들도 울고 갈 소박하고 겸허한 자세로써 펼쳐지는 파워팝 연주는 앨범 재킷만큼이나 '생뚱맞음' 그 자체였으니까. 굳이 비유하자면, 럭셔리한 'Made In Italy' 포장지 속에 담긴 고가의 구제 넝마 티셔츠 상품, 혹은 거지 몰골로 거리에서 낙서만 하다 엉겁결에 고급미술계 VIP가 된 바스키아(Basquiat)의 순금 프레임 낙서 작품을 보는 듯한 그런 부조화의 느낌이랄까? 하지만 어리숙한 뿔테 안경 밑으로 꼭꼭 숨겨놓은 '하버드 엘리트' 리더 리버스 쿼모(Rivers Cuomo)의 비범한 송라이팅은, 이 모든 부조화와 어색함, 멍청스러움까지 음악 안에 한데 아우르며 WEEZER만의 독창적인 음악 캐릭터를 구현하는 경이로움을 보여줬던 것이다. 

라디오에서 나오는 평범한 AOR 음악(파워팝, 팝메틀, 모던록 포함) 이외에는 특별한 개취가 없는 시골의 어느 평범한 아마추어 차고(garage) 밴드가 오디션 프로그램 우승자가 되어 얼떨결에 리무진을 타고 고급 레코딩 스튜디오에 도착해 어리둥절한 상태 그대로 녹음/완성된 듯한 그런 이상야릇한 분위기를 선사하는 '블루 앨범'은 아시다시피 공전의 초대박 히트를 기록하고, 두번째 '로파이' 앨범 [Pinkertorn (1996)]에서도 변함없는 부조화와 유머 퀄리티를 과시하며 승승장구하게 된다.

그러나 WEEZER는 그 이후 '전혀 인상적이지 못한' 범작들을 연이어 양산하며 매너리즘의 늪 속으로 서서히 가라앉고 만다. 즉, '블루 앨범'의 영광을 노리며 만든 [Weezer (Green Album) (2001)]는 아무런 히트곡을 남기지 못하고 우리의 기억에서 황급히 사라졌으며, '최악의 앨범' [Make Believe (2005)]에서 간만에 터진 히트곡 "Beverly Hills" 역시 입안에서 짝짝 들러붙는 "Buddy Holly"식 그루브감과 캐치감을 전혀 살리지 못하면서 비평가들로부터 '수준이하의 싱글' 대접을 받았다. 이후 어수선하기 이를데 없었던 '3탕' 앨범 [Weezer (Red Album)(2008)]와 '그외' 앨범들(여기엔 인디 펑크 레이블 Epitaph과 함께 만든 뜬금포도 있다 ㅜㅜ)... '민디(mindie: 메인스트림+인디)'라는 어중삥한 실드를 치고 인디와 메인스트림을 동시에 공략하려 했던 쿼모의 전략은, 초장엔 성공적으로 보였지만 결국 (적어도 인디씬과 힙스터들에게만큼은) 완전 GG를 칠 수밖에 없는 상황에까지 다다른 것.

약간 오바일 수도 있지만, WEEZER가 갑자기 절제된 유머를 잃어버리고 쿼모를 매너리즘의 악령에 빠뜨린 연유는 [Pinkertorn] 발표와 함께 팀 탈퇴를 선언했던 매트 샤프(Matt Sharp, 베이스)의 부재에서 찾아봄직도 하다. 왜냐면 우연의 일치인지 샤프가 마지막으로 참여한 [Pinkertorn] 이후 밴드의 음악성이 여러모로 하락세를 보였으니까 말이다. 똘끼로 단단히 뭉쳤던 사이드 프로젝트 THE RENTALS를 통해 쿼모의 똘마니가 결코 아님을 당차게 보여줬던 매트 샤프의 키취스러운 유머(엽기적인 팔세토 배킹보컬, 펑키한 베이스, 엄청난 스테이지 매너 등등)는, 쿼모가 지닌 'geek'이란 캐릭터 이면에서 공존하는 고루함과 따분함을 옆에서 희석시키는 '조력' 역할을 충분히 할 수 있었기에 아쉬움은 더 컸다. 

그런 의미에서 통산 아홉번째 스튜디오 앨범으로 기록될 이번 [Everything Will Be Alright In The End](이하 [EWBAITE])의 미덕은, 뭐니뭐니해도 1, 2집에서 보석처럼 빛나다 슬그머니 사라졌던 쿼모의 송라이팅 능력이 제대로 부활한 점을 가장 먼저 들 수 있겠다. 억지로 짜내려 하지 않아도 마이크만 갖다대면 끊임없이 술술 흘러나올 것만 같았던 그 캐취감 넘치는 팝멜로디와 닭살돋는 기타훅들이 안드로메다로 보내버린 듯 실종된 모습을 우린 최근들어 연거푸 목격해왔지만, 이번 [EWBAITE]에서만큼은 인디음악처럼 기름기 없이 담백하면서도 메인스트림 음악처럼 입에 척척 달라붙던 예전의 그 멜로디/훅들이 거의 모든 곡들에서 터져주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 '빵빵 터짐'의 강도가 1집만큼의 메가톤급은 절대 아니지만, '인디스러움'과 '메인스트림스러움'의 경계선상에서 독자 개발된 쿼모식 송라이팅 스킬의 진수를 단일 앨범 안에서 풀모드로 오랜만에 다시 만끽할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EWBAITE]의 가치는 충분하다고 평할만하다. 또한 의욕만 앞설 뿐 "Say It Ain't So" 만한 임팩트는 한동안 없었던 쿼모의 '어눌한' 헤비메틀 기믹(그의 솔로기타주법을 들어보면 확실히 RATTQUIET RIOT, VAN HALEN 같은 80년대 헤어메틀 음악에서 영향을 수월찮이 받았음을 짐작할 수 있다)도 이번 앨범에서는 적정수준의 톤과 밸런스를 완벽하게 유지하며 쿼모식 파워팝 멜로디/훅 전개의 중요 대목마다 감초 역할을 아주 톡톡히 해주고 있는 모습이다.  

'EDC 2010' 라이브에서 셀럽 DJ 스티브 아오키와 무의미한 조인트 퍼포먼스를 보여준 부자 '아이비리거' 쿼모를 아직도 '힙스터'로 부른다면 당신은 정말 제정신이 아니다. 하지만 '힙스터 포즈' 같은 외적 부분의 진정성 여부를 일단 무시하고 바라볼 때, '음악인'으로서 쿼모는 나름의 음악적 방향성과 스타일이 분명히 잡혀 있는 사람임에는 틀림없는 팩트다. 개인적으로는 헤비메틀풍 기타 솔로를 인디 파워팝 스타일로 유머러스하게 재해석하는 쿼모의 센스를 특히 아주 높게 사는 편인데, [EWBAITE]는 비록 대중 취향의 '빵빵 터지는' 훅들 안에 뭔가 특별한 음악적 복선들을 심어 놓은 작품은 아니지만, 적어도 리버스 쿼모와 WEEZER가 리즈시절 박수받았던 모든 특기들을 앨범 전반에 걸쳐 골고루 깔끔하고 뒷끝없이 맛볼 수 있는 나쁘지 않은 수작이다. 한때 가졌던 WEEZER에 관한 관심을 어느 순간 끊은 분들에겐 자신있게 강추할 수 있는 작품!     


RATING: 73/100

written by BK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