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터데스크 관리자

도움말
닫기
적용하기   첫페이지 만들기

태터데스크 메시지

저장하였습니다.

2014.10.21 17:09


"exocise"

잉글랜드 브라이튼 출신의 싱어송라이터이자 프로듀서 엘리자베스 번홀즈(Elizabeth Bernholz)가 프로젝트 'GAZELLE TWIN'을 통해 표현하려는 자아 정체성은 꽤나 '이중적'이다. 즉, 라이브, 뮤직비디오, 스튜디오 사진, 인터뷰 등에 등장할 때마다 라텍스 재질의 가면과 후드티를 착용하며 얼터 에고 'GAZELLE TWIN'의 외형적 아이덴티티를 극대화하고 'Elizabeth Bernholz'의 외형적 아이덴티티를 애써 숨기려는 반면, 'GAZELLE TWIN' 음악을 통해서는 'Elizabeth Bernholz'로 살면서 숨겨온 내적 자의식과 감수성을 디테일한 표현과 시적 은유법으로써 대중들에게 거침없이 드러내려 한다. 최근 선보인 두번째 앨범 [Unflesh]에서 그녀는 이러한 '이중적' 태도와 표현법을 효과적으로 사용함으로써 의도대로 'GAZELLE TWIN'의 정체성을 아주 신비롭게 세팅해낸다(만약 그녀가 GAZELLE TWIN의 음산 모드와는 달리 '아이돌급 미모'를 실제로 가지고 있다면 '위장술'은 선택이 아닌 필수였을 테지만).

요상하게 생긴 앨범 커버 아트웍을 일단 한번 살펴보자. 프란시스 베이컨(Francis Bacon) 회화에 자주 등장하는 도축된 고기덩어리처럼 뼈와 근육조직이 흉찍하게 드러난 얼굴을 가진 이미지 속 여인(?)이 그림 리퍼(grim reaper)의 후드달린 가운을 걸치고서 카메라 앵글을 바라보는 몰골은 영락없이 좀비의 형상이다. 좀비, 그림 리퍼, 프란시스 베이컨... 이들로부터 연상되는 관념들은 죄다 '죽음'과 관련된 어둡고 호러스러운 감상들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 섬뜩한 앨범 재킷 안에서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바로 오렌지 컬러 립스틱이 칠해져 있는 이 '좀비' 여성의 입술! 호러스러운 몰골을 하고 있으면서도 립스틱 칠한 입술로써 여성만이 뽐낼 수 있는 아름다움을 강조한 이 좀비 마녀가 GAZELLE TWIN의 모습이라고 한다면, 바로 여기에서 우리는 으시시한 사운드와 관념적인 가사/제목들로 넘쳐나는 앨범 [Unflesh] 코드 해석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Unflesh]는 여러가지 장르의 음악 소스들이 대거 등장한다. 정글, 테크노, 레이브 등 올드스쿨 클럽 일렉 느낌으로 다가오는 각종 아날로그 비트들, 드론(drone)이 터져나오는 신쓰라인과 인더스트리얼적인 굉음, 아방가르드적인 필드레코딩 사운드, 여기에 아방가르드팝적인 창법으로 오묘하게 불러제끼는 엘리자베스 번홀즈의 보컬... 이렇듯 외견상으론 요즘 음악 추세에 맞게 잡탕의 방식으로 승부수를 띄운 작품 같아 보이지만, [Unflesh]만이 지닌 가장 큰 장점은 각기 다른 장르의 사운드들이 잡탕으로 난무하지도, 특정 장르에 치우치지도 않고 오직 GAZELLE TWIN의 '음산하면서도 아름다운' 양면적 스타일 테두리 안에서 절도있게 아루러지고 있다는 점이다. 뭔가 침울하게 가라앉다 별안간 흥겹게 그루브를 타고, 몽롱하다가도 파괴적이고, 몽환적으로 흘러가다 허무주의로 곤두박질치는 감정 변화의 트랜지션들은 솔기 하나 없이 아주 스무쓰하게 서로 이어지며 다크 앰비언트도 트립합도 아방가르드팝도 아닌 새로운 차원의 GAZELLE TWIN식 '다크한 아름다움'으로 승화된다.

게다가 다양한 악기 레이어링과 보컬 필터링 사용으로 살짝 럭셔리한 일렉트로니카 분위기를 풍겼던 전작 [Mammal]식 공정에 비해 훨씬 더 간소해진 악기 레이어링과 보컬 라인 덕분에 다크한 고딕팝 형태의 음악들에게서 자주 보여지곤 하는 나르시시즘이나 스타일 과잉에 빠지지 않고 오히려 힘과 (암울한) 에너지, 그리고 '앨범' 작품다운 일관성과 응집력이 훨씬 더 업그레이드된 듯한 느낌이다. 인더스트리얼틱한 비트의 싱글 레이어 하나와 속삭이는 정도의 보컬 라인만으로도 다크한 심상이 훌륭하게 표현된 "Anti Body", 스네어+킥드럼+카우벨의 단순 쓰리콤보 소리들에 의한 80년대 여성 알앤비 댄스팝풍 신쓰 비트와 펑키 그루브로 싸늘하면서도 섹시한 일렉트로 사운드가 연출된 "Guts", 킥드럼/드론/신쓰베이스의 간결한 레이어링으로 인간(혹은 좀비?)의 맥박 소리같은 생동하는 기운을 불어넣은  "Human Touch" 등은 괴기스러움과 아름다움, 우울함과 흥겨움이 미니멀리즘의 뼈대 안에서 깔끔하게 공존하는 [Unflesh]의 특징을 가장 잘 대변해주는 곡들.

뷰욕 이후 그다지 두드러진 반향을 이끌어내지 못했던 여성 아방가르드 팝음악은, 최근 DIY 바람과 맞물려 인디씬에서 가장 트렌디한 장르중 하나로 부상중이다. 이미 이곳에서도 줄리아 홀터(Julia Holter), 줄리아나 바윅(Juliana Barwick), 그루퍼(Grouper) 등 다수의 미국 아티스트들이 소개된 바 있는데, GAZELLE TWIN의 엘리자베스 번홀즈는 PLANNINGTOROCK의 재닌 로스트론(Janine Rostron)과 함께 현 영국 아방가르드/익스페리멘탈 팝 씬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활약상이 기대되는 여성 뮤지션으로서의 가치를 이번 앨범을 통해 제대로 보여주고 있다. 우연의 일치인지 엘리자베스 번홀즈 역시 재닌 로스트론처럼 비쥬얼 아트를 겸업하는 현대미술가이기도 한데, 이때문인지 '음악'이라는 한정적 틀이 아닌 '아트'라는 거시적 맥락에서 바라볼 때 얼터에고 'GAZELLE TWIN'과 [Unflesh] 음악, 그리고 네 편의 (뮤직)비디오는 '종합예술가' 엘리자베스 번홀즈에 의해 계획된 일종의 '순수예술 패키지(행위예술+비디오아트+사운드아트)'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이렇듯 [Unflesh]은 단순하게 보여지는 외형적 스케일 이상으로 풍부한 청각적 소통과 해석들을 담아낸 굉장히 흥미로운 일인칭 시점 아방가르드 팝앨범이다.


RATING: 84/100

written by BK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