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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S/ALT & INDIE

ST. VINCENT: Strange Mercy (2011)


YES, PINK FLOYD, ASIA 같은 일련의 UK 실험적 록 밴드들이 상업적 의도로 빌보트 챠트를 맹폭격했던 80년대처럼, 비주류 성향의 프로그레시브 음악이 메인스트림 음악권 안에까지 침투하여 왕성한 영향력을 행사하던 '믿을 수 없는' 시기가 있었다. 또한 피터 가브리엘과 케이트 부쉬 등의 싱어송라이터들은 프로그레시브 음악 특유의 이질적 멜로디와 연주패턴을 팝 음악에 도입하면서 대중들을 공략하기도 했었는데, 이들 역시 앞서 언급한 UK 프로그(prog)록 밴드들과 함께 80년대에 음악적 전성기를 구가했었지만 90년대에 접어들면서 전세계로 한방에 쫙 퍼져나간 얼터너티브 열풍과 함께 NIRVANA를 주축으로 한 일련의 미국 '그런지' 밴드들이 대거등장하면서 프로그레시브 음악의 주류화 바람은 일순간 사그라들었다. 

2000년대 들어 인디 음악을 중심으로 키보드/신시사이저와 같은 건반 악기들이 새롭게 부각되면서 돌연 중단됐던 '프로그레시브 음악의 팝뮤직화' 에 대한 재시도가 다시 이뤄지고 있는데, 특히 이질적이면서도 형식파괴적인 팝 멜로디를 록의 카테고리 안에서 재해석하는 OF MONTREAL, DEERHOOF 등 신진 변종 인디 밴드들을 두고 '새로운 형태의 프로그레시브 밴드가 다시 도래했다' 라고 평가하면서 이들을 '아트팝(art pop)' 이라는 신종 서브카테고리로 분류하는 추세이기도 하다.

하지만 'ST. VINCENT' 라는 모니커를 사용하는 미국 텍사스주 댈라스 출신의 여성 싱어송라이터/멀티 연주자 애니 클락(Annie Clark)이야말로 피터 가브리엘이나 케이트 부쉬에 의해 리드되다 사멸한 정통 솔로 프로그레시브 팝 장르를 뷰욕에 이어 2000년대식으로 각색/부흥시켜낼 가장 적격의 인물이 아닐까. 이미 두번째 앨범 [Action (2009]을 통해 만만치 않은 실험정신을 과시한 바 있던 그녀였기에 이번 새 앨범에 거는 기대는 자못 컸었는데, 이에 보답이라도 하듯 세번째 앨범 [Strange Mercy]는 강렬함/소프트함, 야수성/서정성, 작곡 멜로디/연주 테크닉, 기괴함/대중친화력 등 상호 이질적 요소들을 한데 아우르고 이 각기 다른 고유의 향미들을 'ST. VINCENT' 만의 프로그레시브 음악적 터치로 살려내면서 여지껏 나온 작품들 중 최고의 완성도를 자랑하고 있다.

BECK, tUnE-YaRdS 등이 즐겨 사용하곤 하는 힙합 킥드럼-스네어 비트 콤비네이션이 우직하게 전체의 뼈대를 잡는 가운데 기괴한 보이스 샘플, 날카로운 디스토션 기타음색 등과 대조적으로 감상적 삘에  한껏 젖어든 애니 클락의 보이스가 대칭구조를 이루며 희안한 느낌을 선사하는 오프닝 트랙 "Chloe In The Afternoon"에서 대표적으로 드러나듯, [Strange Mercy]는 tUnE-YaRdS의 왁자지껄/자질구레한 놀이 분위기 DIY 인디뮤직도 아닌, 마리사 내들러(Marissa Nadler)의 서정/몽환적 드림 포크도 아닌 그 교차지점에서 지휘자를 연상시키는 (애니 클락의 음악적 내공에서 우려난) 마스터 터치에 의해 불협화음으로 귀결될 법한 이율배반적인 잡다 쏘스들을 모두 자기 것으로 정렬/융합시켜내어 한편의 오케스트라 앨범처럼 입체적이면서도 퀄리티 높은 팝 앨범을 창조해냈다.

최근 인디 계열 싱어송라이터들에게 유독 두드러지는 '뷰욕 따라하기'의 강박관념 따위는 ST. VINCENT의 음악에서 전혀 고려될만한 사항이 아니다. THE FIERY FURNACES의 엘레너 프리드버거(Eleanor Friedberger)처럼 꾸미지 않고 그냥 있는 그대로 뽑아내는 애니 클락의 목소리 어느 구석에도 뷰욕이나 토리 에이모스의 클리쉐이(cliche) 잔재는 발견되지 않는다(일단 이것만 하더라도 점수의 반 이상을 먹고 들어갈 것이다). 거기에 그녀의 환상적 기타 플레이는 그 누구도 따라할 수 없는 애니 클락만의 독자적인 멋스러움이 있다. 특히 "Cruel", "Northern Lights" 에서 찢어지듯 왜곡된 텍스쳐 톤으로 억양분명하게 짚어내는 솔로 프레이즈와 코드웍, "Hysterical Strength", "Dilettante" 에서 리브스 가브렐스(Revess Gabrels: 데이빗 보위 밴드 기타리스트)를 연상시키는 즉흥적이면서도 실험삘 충만한 기타 이펙터 사운드 등은 여지껏 접해온 여성 뮤지션/기타리스트들에게서 흔히 접해온 밋밋한 감촉과는 사뭇 다른 것인데, 이 오묘하게 자지러지는 기타 리프들이 에너지 넘치고 재기발랄하면서도 독특한 리프를 쏟아내는 미니무그와 그외 다양한 신시사이져 음들과 교묘하게 믹스될 때 터져나오는 이상야릇한 시너지 효과는 단아하면서도 감미로운 친화적 질감으로 예쁘게 승화되어 ST. VINCENT의 음악에서만 느낄 수 있는 아이러니한 매력으로 다가올 것이다. 

자칫 지나치기 쉬울 정도로 조용하게 발표된 이 올해 최고 레벨의 명반에 대해 사실 상당량을 할애하면서 리뷰를 쓸까 생각을 해봤지만 일단 이 앨범을 직접 듣고 몸소 느껴보는 게 더 현명한 방법일꺼라는 생각이 들어 이 정도로 접는다. 단 주의할 점이 있다면, 비록 업템포 비트의 트랙들이 다수 수록되어 있는 앨범이긴 하나 칠웨이브나 일렉트로 음악처럼 길을 걸으면서 아이폰으로 대충 흥겹게 흘려 들을 음악은 아니므로 필히 집이나 아주 조용한 곳에서 헤드폰(젠하이져처럼 베이스를 잘 잡아내는 류의)을 착용하고 이 매력적인 뮤즈누님의 작품을 정중히 듣도록. 

RATING: 89/100

written by BK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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