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REVIEWS/ALT & INDIE

RUSSIAN CIRCLES: Empros (2011)


헤비메틀은 더이상 남성우월적 마초들만을 위한 시대착오적 도태장르가 아니다. 융통성이 없을 것만 같았던 메틀계에서도 시대변화에 따라 이미 90년대 중반부터 '얼터너티브의 대세' 에 생존하기 위한 하이브리드 작업이 재빨리 이루어지기 시작했으며, 2000년대 들어 우리는 80년대 헤비메틀 전성기 시절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음악 형질을 띈 마이너 메틀 장르들이 엄연한 헤비메틀 써브장르로써 정착해나가고 있는 모습을 계속 목격하고 있기 때문이다(가령 '닌텐도코어' 따위와 같은 서브장르들... 과거엔 정말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음악 아니었나?). 포스트 메틀(Post-Metal)은 90년대 중반 이후 잉태되어온 수많은 메틀 서브장르들 중 골수 헤비메틀 매니어와 인디/얼트록 매니어 사이의 중간 영역에서 어정쩡하게 정체되어있는 대표적 서브장르가 아닐까 싶은데, 포스트록의 이성적이면서도 루핑지향적인 인디 인스트루멘탈 양식을 헤비메틀의 사운드질감과 파워로 표현하는 '양면성의 미학'을 지향하고 있으면서도 인디록과 헤비메틀 팬들을 동시에 사로잡을 만한 음악 형질을 선천적으로 타고나지 못했기에 아쉽게도 음악팬들에게 아직까지 활발한 상업적 어필이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는 장르이기도 하다.

'포스트록의 성지' 시카고 출신의 트리오 RUSSIAN CIRCLES는 2005년에 결성된 이래 시카고 뮤직 특유의 '인스트루멘탈 우위론'을 우직하게 주창하고 있는 밴드들 중 한 팀이다. 이들은 지난 세 장의 앨범들을 통해 포스트록과 매쓰록의 날카로운 부분을 심화시키고 그 위에 이모코어적인 감성코드와 헤비메틀의 파워감을 적용시켜 그들만의 특이한 싸운드스케잎을 구축하는 데 성공하면서 ISIS와 함께 포스트록 음악장르를 인디록과 헤비메틀 씬에서 동시에 부흥시킬 구세주로 주목받기에 이르렀다. 특히 록밴드 음악 특유의 '금속적인 질감(헤비메틀 음악에서 주로 들리는 그 '금속적' 사운드질감)'을 매번 숨기지 않으면서도 러시아 시베리아의 서늘한 대기(하지만 밴드 이름과는 달리 세 명의 멤버 모두 러시아인은 아니다)를 흠뻑 들여마신 듯한 이국적/초자연적 감성으로 기-승-전-결 구조의 드라마틱한 무드를 자아내는 모습에서는 GODSPEED YOU! BLACK EMPEROR, MOGWAI, DIRTY THREE 같은 순수 인디 포스트록 거장들의 앰비언트 아우라가 (RUSSIAN CIRCLES을 '메틀 밴드'로 결코 정의내릴 수 없을 정도로) 강렬하게 느껴지곤 했다.

그런데 최근 선을 보인 이들의 네번째 앨범 [Empros]는 기존에 우리가 알고 있었던 RUSSIAN CIRCLES의 풍모와는 약간 다른 음악 스타일을 담고 있는데, 즉 [Empros]는 그동안 우리가 접했던 기존 R.C.의 앨범들에 비해 훨씬 파워풀하면서도 폭력적인 질주감이 훨씬 더 생생하게 살아있는 헤비메틀 질감의 포스트록 작품으로 완성되어 있다. 물론 R.C.가 지속적으로 취해온 멜로우한 톤과 서사적인 사운드스케잎이라든지, 느림-빠름-느림-빠름-느림/소프트-헤비-소프트-헤비-소프트 식으로 부지런하게 분위기를 옮겨타는(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면 'MOGWAI적' 인) 방식 등 데뷔 시절부터 지속적으로 취해왔던 R.C.식 포스트록의 기본 포뮬라는 이번 앨범에도 그대로 준수되고 있는 상황이지만 R.C.가 기타-베이스-드럼의 트리오 유닛으로 이번 [Empros]에서 취하는 인스트루멘탈 록의 사운드 텍스쳐는 분명히 '포스트록'이 아니라 '포스트메틀적'인 스타일에 훨씬 더 근접해 있다. 간혹 80년대 하드코어펑크적인 파워 인스트루멘탈 프레이즈도 [Empros] 안에서 드문드문 눈에 띄지만 전체적으로 이들은 MOGWAI, MONO, TORTOISE, FUGAZI 등의 경량급쪽 인디록보다는 ISIS, PELICAN, NEUROSIS 등이 취하는 테크니컬 메틀 사운드의 묵직한 무브먼트를 [Empros] 연주 톤/테크닉/템포/리듬의 바로미터로 삼고 있는 것이다. 

이전 작품들에서보다 메틀적인 풍모를 [Empros]에서 유독 더 크게 느끼게 되는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유기적으로 몰아치는 베이스+드럼의 리듬파트 음원들이 그 어느 때보다 강렬한 헤비메틀 톤을 발하고 있기 때문인데, 특히 "309"와 "Batu"에서 NEUROSIS의 남성적 헤비 포스와 MOGWAI의 소프트하면서도 몽환적인 터치를 번갈아 구사하며 변화무쌍한 리듬패턴과 똑부러지는 억양의 리프들을 쉴새없이 뿜어내는 R.C.의 베이스+드럼 메가유닛은, 묵직하고도 드라마틱한 사운드스케잎과 함께 [Empros]에 다채로운 록 그루브까지 더불어 선사하면서 앨범의 퀄리티를 높이는 데 일등공신 역할을 충분히 해주고 있다. 이렇듯 [Empros]에 수록된 여섯 곡 모두 텐션감과 톤을 상황에 따라 자유자재로 조절해내는 R.C. 멤버들의 탄탄한 연주력이 골고루 빛을 발하고 있는데, 특히 두번째 트랙 "Mlàdek"은 이들의 포스트록과 포스트메틀의 접점에서 융합의 묘미를 이끌어낸 명곡으로, U2의 엣지(The Edge) 스타일의 깨끗한 쟁글팝 기타 인트로와 데빈 타운센드(Devin Townsend)의 앰비언트/프로그레시브 메틀 풍모, 그리고 NEUROSIS처럼 메틀틱하지만 드라마틱한 억양으로 무한 인스트루멘탈의 끝을 보는 듯한 헤비 연주 애티튜드가 한데 엉겨붙어 일관성과 다양성이 공존하는 RUSSIAN CIRCLES식 음악역정을 한데 축약시켜낸 듯한 포스트록 그루브의 진수를 제대로 선사해준다. 또한 네번째 트랙 "Atackla" 역시 R.C.의 연주력과 예술적 감성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명곡으로써, 단순하지만 자신있게 두들기는 드러밍과 함께 자기 억양 확실한 베이스라인의 그루브를 타고 아르페지오-디스토션 코드웍을 오가며 아름다움과 퇴폐스러움을 드라마틱하게 표현해내는 기타리프의 하모니가 7분여의 시간동안 숨막히게 펼쳐지면서 [Empros]의 '히든카드'로써 손색이 없은 완성도를 보여준다. 

단, 이번 앨범에서 (물론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에서) 옥의 티가 있다면 여느 때보다 훨씬 활발하면서도 기운차게 록킹하는 RUSSIAN CIRCLES의 몸놀림들을 100% 완벽한 사운드 매터리얼로 스튜디오에서 담아내지 못한 듯한 뒷맛을 남긴다는 점이다. 즉, 프로덕션 작업이 (엉망은 절대 아니지만) 이들의 스타일을 완벽하게 살려내지 못했다는 느낌이랄까. 통상적으로 [Empros]정도의 연주 퀄리티를 지닌 헤비 인스트루멘탈 사운드라면 분명 단 한번의 리스닝만으로도 귀에 착착 감겨들기 마련인데 10번을 반복해 들어도 그런 흡수감을 느끼지 못한다는 건 분명 스튜디오 작업 과정에서 문제가 있었다는 말이 된다. 그래서 씨디의 속지를 다시 꺼내 프로듀서의 이름을 살펴보니 역시... 2000년대 초반부터 인디록 음악을 꾸준히 들어온 분들이라면  결코 생소하지 않을 그 3인조 인디록 밴드 SECRET MACHINES의 리더 브랜든 커티스의 이름이 프로듀서 크레딧에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뮤지션으로써 그의 복고적 취향(나이답지 않게 고전 프로그록과 크라우트록에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는 친구다. 직접 만나본 적도 있다)은 아주 지독할 정도였다. 하지만 갑갑한 로-파이 짝퉁 사운드와 가라지록 스타일의  프로덕션 방식을 자신의 복고/인디 취향에 기인해 프로듀서로써 또다시 고집한다는 건 좀 아니다 싶은데, 만약 브랜든 커티스가 아닌 조 바레시(Joe Barresi)같은 메틀 감각 뛰어난 베테랑 인디 프로듀서가 이 앨범 제작을 맡았더라면 아마 훨씬 더 좋은 완성도를 보여줬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Empros]는 RUSSIAN CIRCLES가 그동안 취해왔던 하드한 포스트록 역정에서 짜릿한 파워감을 최고 레벨로 뽑아낸 역작임에는 어느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못할 것이다. MOGWAI 음악의 메틀 버젼을 혹시 듣고 싶다면 이 앨범을 필청하도록.

RATING: 79/100

written by
 BKC

'REVIEWS > ALT & INDIE' 카테고리의 다른 글

LOS CAMPESINOS!: Hello Sadness (2011)  (3) 2011.11.20
FLORENCE & THE MACHINE: Ceremonials (2011)  (1) 2011.11.12
CASS McCOMBS: Humor Risk (2011)  (0) 2011.11.04
REAL ESTATE: Days (2011)  (7) 2011.11.01
CHELSEA WOLFE: Apokalypsis (2011)  (0) 2011.10.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