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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S/ALT & INDIE

CASS McCOMBS: Humor Risk (2011)


우리는 '참 고집스럽다' 할 정도로 단선적인 스타일을 계속 고수함에도 불구하고 훌륭한 퀄리티의 앨범을 매번 수려하게 만들어내는 뮤지션들을 포크 장르에서 그동안 꽤 많이 발견할 수 있었다. 예컨데 브리티쉬 포크의 신화적 존재 닉 드레이크가 그러했고 90년대를 풍미했던 엘리엇 스미스 역시 비스무리한 포크 감성을 매 앨범마다 드러내면서도 퀄리티 탁월한 다섯 장의 앨범을 만들어내지 않았나. 닐 영처럼 활동 중간에 별안간 이단적 행보를 걸으려 하지 않는 이상, 톱 포크 싱어들의 일률적 음악성과 퀄리티는 이렇듯 언제나 불변의 진리와 같은 것이 있는 듯 하다. 최근 인디 포크 계열 싱어송라이터들 중 조애나 뉴섬이나 나리사 내들러만 봐도 그렇다. 항상 꾸준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지 않은가. 정말 지독하다싶을 정도로.

매스컴에 노출되는 빈도만 따져본다면, 캐스 머콤(CASS McCOMBS)은 아마 재능에 비해 가장 과소평가 받아온 인디 싱어송라이터 중 한명이 아닐까 싶은데, 
캐스 머콤이야말로 위에 언급한 포크 대가들 못지 않게 항상 일관된 음악성과 퀄리티를 변함없이 보여주는 저평가 '믿을맨' 으로 손꼽힌다. 늘 따뜻하고 온화한 톤을 유지한 멜로우 포크성 멜로디와 절제된 스트로크를 통해 미니멀하게 뿜어져 나오는 기타 사운드는 듣는이로 하여금 언제나 우울한 센티멘탈리즘 속으로 깊숙하게 빠뜨리고 말지만 그 우울한 무드 속에 스스로 무너지기를 거부라도 하듯 그 어두컴컴한 멜로우 톤 속에서 나른나른하게 읊조려대는 가사들의 문맥은 냉소적 위트와 얍삽한 인간본성이 여과없이 드러나 있다. 

지난 2003년 첫번째 정규 데뷔 앨범 [A]를 내놓은 이후 격년 간격으로 꼬박꼬박 앨범을 발표하며 기복 없는 자신만의 우울질 음악세계를 매번 착실하게 보여주고 있지만 그렇다고 다작을 한다고 볼 수도 없는 뮤지션이기도 했는데, 올해 4월 통산 다섯번째 앨범 [Wit's End]를 발표한지 불과 반년만에 또다른 정규앨범 [Humor Risk]를 제작-발표하면서 인디 포크팬들에게 예상치 못한 큰 기쁨을 한창 선사하고 있는 중이다. 비록 [Wit's End] 8곡, [Humor Risk] 8곡... 왠만하면 이 두 2011년산 앨범을 그냥 합해서 릴리즈한다고 해도 별 이상하지 않을 만큼 분량이나 곡의 수 면에서 '분리 생산' 되어야만 하는 이유를 외견상 크게 찾을 수 없는 케이스지만,  사운드나 분위기를 놓고 그 '분리 생산'의 이유를 찾는다면 그 해답은 아주 뚜렷해질 것이다. 즉, 
캐스 머콤 특유의 절절한 페시미즘/센티멘탈리즘과 슬로우코어 풍의 느릿느릿한 몽환적 심상이 절정으로 치달았던 [Wit's End]에 비해 이번 [Humor Risk] 앨범은 '파격적이다' 라는 생각까지 들 정도로 긍정적이면서도 외향적인 기운들이 과거 여느 캐스 머콤 앨범들보다 훨씬 적극적으로 드리워져 있다. 

흐린 후 개인 하늘의 햇살이 더 밝아보인다고 했던가. 데뷔 시절부터 일관적으로 취해왔던 우울한 기분을 잠시 접고 씁쓸한 미소를 애써 지어보는 듯한 [Humor Risk]의 심상은 여느 업템포 모던록 음악 못지 않게 해피하고도 긍정적인 기운을 대폭 포함하고 있는데, 이러한 달라진 분위기는 아마 오프닝 트랙 "Love Thine Enemy" 한 방으로도 단박에 읽어낼 수 있을 것이다. 퍼지한 기타 리프와 오르간 음색, 그리고 타이트하게 끊어치는 드럼이 조화를 이뤄 마치 탐 페티(TOM PETTY) 노래를 북유럽 인디록 버젼으로 재해석한 듯한 감흥을 불러일으키는 이 곡에서 여과없이 보여주는 가볍고 활발한 기운은, 그가 이번 앨범에서 취하고자 하는 스타일 변화의 의도를 
캐스 머콤다운 감촉으로 아주 극명하게 드러내고 있다. 물론 다음 트랙 "The Living Word" 처럼 기존에 우리가 들어왔던 캐스 머콤 특유의 촉촉한 감수성을 다시 재현하는 발라드곡들도 [Humor Risk] 안에 다수 포함되어 있지만 분명 [Wit's End] 앨범의 쓸쓸한 슬로우코어 템포와는 또 살짝 차원이 다른 긍정적 템포(이 곡 뿐만 아니라 다른 발라드 넘버들마저 기존 발라드곡들보다 BPM이 상향조정되어 있다)와 직선적인 표현법의 발라드 감수성을 보여준다. [Humor Risk]에서 계속 취하고자 하는 캐스 머콤의 록커 본능은, 챔버팝 리버브톤과 스네어드럼의 콤보 사운드로 록적인 튠을 끈끈하게 유지하는 "The Same Thing" 뿐만 아니라 폴 매카트니식 창법에 예상치 못한 일렉 기타 난사(?)를 선보이는 전형적인 웨스트코스트 인디록 넘버 "Mystery Mail" 에까지 이어지면서 급기야 기존에 우리가 가지고 있던 염세주의자로써의 캐스 머콤 이미지를 바꾸어버리게끔 만든다. 

배배꼬인 듯한 위트와 은유가 돋보였던 기존의 작사법에서 벗어나 스트레이트한 어법으로 일상에 관한 심정을 담담하게 읊조리는 듯한 현실주의적 은유법 역시 [Humor Risk]에서 확연히 달라진 사운드와 무드만큼이나 눈길을 끄는데, 그런만큼 [
Humor Risk]는 기존의 캐스 머콤이 일관적으로 밀어붙이던 포크 특유의 폐쇄적 성향에서 한발짝 벗어나 훨씬 대중친화적이고 이해하기 쉬운 작품으로 주조되어져 있다. 절망과 우울증의 늪에서 허우적댄 악몽을 꾼 것만 같은 농밀한 염세적 어쿠스틱 포크의 향연을 일관적으로 보여준 기존 앨범들에 비해 좀더 현실적인 냄새를 많이 풍기는 이번 앨범의 사운드 텍스쳐는, 인디록에 관한 두드러진 취향으로 인해 일렉트릭적인 요소를 필요이상으로 품고 있다. 가령 일렉 기타 코드웍과 인디 스타일의 드러밍, 다채로운 억양의 건반 리프 등을 상당 부분에 걸쳐 도입함으로써 얻어낸 록적인 풍모는, 오히려 [WIt's End] 에서 찬란하게 빛났던 포크 오케스트레이션이 제공하는 다양하면서도 깊이 있는 사운드스케잎의 지적 매력을 감소시키는 원인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물론 [Wit's End]에서 보여줬던 슬로우템포 미니멀 포크의 드라마틱한 센티멘탈리즘을 "To Every Man His Chimera" 같은 일부 트랙에서 다시한번 맛볼 수 있으나 [Humor Risk]에서 전체적으로 드러나는 가볍고 발랄한 음악적 풍모는 앨범에 이지리스닝 요건을 부여하기만 할 뿐 데뷔 이후 캐스 머콤만이 고유하게 견지해왔던 일련의 '지적인 시선들' 과 연장선상에 있는 포크 재질로 다가오진 않는다.

가사적 완성도를 멜로디만큼이나 중요한 창작 요소로 간주하는 포크음악 뮤지션들이 매번 색다른 사운드로 자신들의 앨범을 채운다는 건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캐스 머콤은 '일률성' 이라는 포크의 숙명적 특성을 마치 꼭 넘어야 할 매너리즘 요소쯤으로 냉정히 간주하고 [Wits End]와 전혀 다른 성질의 매터리얼을 이번 앨범에 담아냄으로써 자신만의 또다른 음악적 전환점을 찾고자 했을지도 모른다. [Humor Risk] 속에서 조심스럽게 펼쳐보는 그의 음악적 도발은, 다행히 캐스 머콤만의 번뜩이는 감수성을 표현하는 데 지장을 줄만큼 크게 도드라져 있진 않으나 매너리즘의 압박에서 벗어나 '기분전환 한번 해봤다' 는 식의 사사로운 성과를 빼면 결과적으로 그다지 크게 어필할만한 음악적 메리트를 생산하지 못하고 만다. 하지만 캐스 머콤의 트레이드마크인 센티한 보이스와 미니멀 기타 스트로크만큼은 어김없이 [Humor Risk] 안에 아주 깔쌈하게 채집되어있으므로 그의 팬이라면 분명 결코 나쁘지 않은 경험을 선사해줄 앨범이다. 
 

RATING: 70/100

written by
 BK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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