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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S/ALT & INDIE

FLORENCE & THE MACHINE: Ceremonials (2011)


한때 기세등등했던 상업적 얼터너티브록 음악들이 대거 쇠락하면서 점차 흑인음악 위주로 편협해지고 있는 현 미국 메인스트림 음악계에서 오히려 반사적인 이득을 취하고 있는 세력이 있다면 바로 인디 음악씬일 것이다. 작년 ARCADE FIRE (Merge)의 앨범 [The Suburbs]가 빌보드 챠트에서 한방에 1위를 차지한 것을 비롯, 올해에도 BON IVER (Jagjaguwar) 등 인디 음악팬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대부분의 앨범들이 빌보드, iTunes 챠트에서 왠만한 메인스트림 음악 못지않은 성적을 올리는 등 (마치 인디와 메인스트림 사이의 경계가 없어진 듯한 느낌이 들 정도다) 인디 레이블에서 제작된 많은 앨범들이 최근 여러 루트를 통해 대중들에게 적극적으로 어필되고 있다. '인디의 원조' 영국같은 경우 이미 오래전부터 우리들의 심금을 울렸던 수많은 인디 밴드들이 자신의 '신분'에 전혀 개의치 않고 메인스트림 음악씬에 당당히 주류 뮤지션들과 어깨를 나란히 해오지 않았었나. STONE ROSES (Silvertone)를 위시한 인디 매드체스터 세력들의 주류편입 이후 90년대 초반부터 불어닥쳤던 브릿팝 인베이션 시절 우리가 각종 대중매체에서 접했던 BLUR (Food), SUEDE (Nude), ELASTICA (Deceptive), ASH (Infectious) 같은 유명 인디 밴드들 모두 일반 팝스타/연예인들과 다름없는 떠들썩한 행보(하물며 연예인들 가쉽이나 떠들어대는 영국내 연예찌라시들에도 이들 인디 뮤지션들의 사생활은 언제나 기사떡밥의 대상이었다)들을 보여주었는데, 이처럼 인디와 메인스트림의 경계선이 여전히 뚜렷한 한국의 음악적 환경(이는 한국 인디음악이 질적으로 하락/정체되는 원인을 제공한다)과는 대조적으로 인디 음악에 호의적인 영국과 미국의 대중음악 환경과 저변은 언제나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이번에 소개할 영국 인디밴드 FLORENCE & THE MACHINE이야말로 최근 급속도로 애매해져가고 있는 인디와 메인스트림의 경계선 위에서 줄타기를 하며 정체성을 유지하는 대표적 '반(半)인디' 밴드 중 한팀으로, 이들은 데뷔 앨범 [Lungs (2009)]의 대박히트에 이어 2년만에 야심차게 내놓은 두번째 앨범 [Ceremonials] 역시 UK 챠트 1위는 물론 US 200 챠트 6위까지 올려놓는 등 인디 뮤지션답지 않은 대중적 인기와 저력을 꾸준하게 과시하는 특이한 캐릭터의 소유자들이다. 특히 밴드의 리더이자 싱어송라이터 플로렌스 웰치(Florence Welch)는 '인디 뮤지션'이라는 직함에도 불구하고 자신만의 독특한 연예인 기질(빨간색 염색 머리와 톡톡 튀는 의상 등)을 바탕으로 각종 영-미 어번/패션 잡지에 수시로 등장하거나 그래미상, 선댄스 영화제 등 굵직굵직한 엔터테인먼트 이벤트에 초대되어 인터뷰를 하는 등 헐리우드 셀레브리티 못지 않은 활동들로 영-미 일반대중들에게 꽤 낯익은 인물이 되어가고 있다. 따라서 '인디의 변절'을 눈뜨고 못 보는 비주류지향 음악매체들에게는 항상 폄하의 대상이 되곤 하는 그녀이지만, 음악에 관해 FLORENCE & THE MACHINE가 취하는 근면함과 진지함은 이미 마라톤 월드 투어의 연이은 대성공을 통해 비로소 증명이 된 바 있으며 또한 이번 두번째 앨범 [Ceremonials] 앨범 제작 시점 전에 미국 메이져 레이블들의 메인스트림 팝 앨범 제작 제의를 완곡하게 거절했던 사례 역시 (인디)음악 노선에 대한 플로렌스 웰치의 굳은 심지를 대변하는 사건으로 회자되기도 한다. 

1년 남짓의 작업 끝에 드디어 선보인 [Ceremonials]에는 전작 [Lungs]보다 훨씬 더 박력넘치고 대담해진 플로렌스 웰치의 보컬이 단박에 귀를 사로잡는다. 특히 뷰욕스럽게 거침없이 고음을 쭉쭉 뽑아내는 그녀의 보컬라인에서 여성스러운 아름다움보다는 오히려 파워풀한 중성적 이미지를 더 크게 부각하고 있는 듯 한데, 일단 플로렌스의 가창력이 최고의 순도로 파워풀하게 녹아나 있는 트랙 "Spectrum"을 먼저 들어보라. 'Say my name (내 이름을 말해봐)'을 대칭적으로 반복하는 플로렌스의 고음+중저음 멀티 보컬라인은 트라이벌 비트풍의 둔탁한 드럼 배킹에 맞춰 노래 제목 '스펙트럼'답게 다채로운 섬광을 매력적으로 발산해낸다. 가스펠과 소울을 섞어놓은 듯한 분위기가 인상적인 "Lover To Lover"에서는 교회 성가대같은 묵직한 톤의 배킹 보컬 하모니와 플로렌스의 리드 보컬이 풍부한 하모니를 자아내는데, 특히 팻 베네타같은 여성 하드록 보컬리스트처럼 강직하면서도 에너지 충만한 중성톤으로 하이노트 영역의 모든 배킹 음원들을 단번에 휘감아 압도해버리는 플로렌스의 보컬 역량은 가히 대단한 것이다. 

비록 플로렌스 웰치가 인디 뮤지션 치고는 대중 미디어 앞에 자주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고는 하지만 그녀가 항상 취하는 패션 스타일과 풍모는 셀레브리티라고 하기엔 여전히 아웃사이더적인 느낌이 큰데, 실제로 플로렌스는 [Ceremonials]에서 케이트 부쉬나 PJ 하비 스타일의 비주류 고딕팝(goth pop)에 대한 애착 역시 깨끗한 팝 감수성과 더불어 꽤 과감한 억양으로 드러내고 있다. 특히 고딕팝 레전드 수지 수 스타일의 잔상이 가장 뚜렷하게 엿보이는 "Seven Devils", 몽환적인 리버브톤과 트라이벌 비트 풍의 푸닥거리 스네어-플로어탐 드러밍을 통해 고딕적 이질감을 조성하는 클로징 트랙 "Bedroom Hymns" 등의 트랙에서 드러나듯, '인디 뮤지션' 으로써의 아웃사이더적 풍모를 앨범 속에서 상당 부분 유지시키면서 플로렌스 음악의 잠재적 딜레마이기도 한 '순수 커머셜 팝' 이라는 '낙인'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의지를 지속적으로 표명하고 있다.

얼마전 의류 브랜드 H&M 매장에서 쇼핑을 하던 중 [Ceremonials]에 수록된 싱글 "What the Water Gave Me"가 스피커를 통해 죽어라 반복해서 흘러나와 깜짝 놀라기도 했었는데, 이렇듯 FLORENCE & THE MACHINE의 음악은 인디 음악 라디오 방송용에서부터 MTV 뮤직비디오 방송용, 댄스클럽용, 그리고 쇼핑용 등 다양한 용도로 광범위하게 쓰일 수 있는 범대중적 캐릭터를 근본적으로 타고나 있다. '무덤 속으로 들어갈 때까지 인디뮤지션을 고수하겠다'는 플로렌스가 덤으로 가지고 있는 이 완벽한 스트럭쳐의 팝센스는 분명 여러모로 득이 될만한 요소들을 충분히 지니고 있지만, 하이엔드 프로덕션에 의해 완벽하게 정돈된 이 '귀티 줄줄 흐르는' 팝 뉘앙스로 인해 정작 인디밴드로써 이들이 가지고 있던 인디적 아이덴티티는 이번 앨범에서 눈에 띄게 필터링되고 있다. 얼핏 보면 시골히피처럼 낡은 소파에 앉아 통기타나 튕기며 시간을 때울 것 같은 외모/스타일이지만 지방시(Givenchy) 커스텀 오더 드레스 차림으로 VIP 레드 카핏을 밟고 공중파 TV에서 켈리 클락슨과 함께 디바쇼에나 출연할 법한 캐릭터에 서서히 익숙해져가고 있는 듯한 그녀의 모습을 매체를 통해 접할 때마다 복잡미묘한 심정이 들곤 하는데, 이유야 어찌됐든 자기 하고 싶은 대로 살면 그만인 요즘같은 세상, 하물며 '스타' 처럼 어텐션 받는 속물적 생활로 재미본다 한들 누가 돌을 던지리. 이외수가 예능프로 나오고 오지 오스번이 MTV 리얼리티쇼 나오는 세상인데, 안 그런가.

[Ceremonials]는 오케스트레이션과 기타 소소한 악기들, 그리고 테크닉과 파워를 겸비한 플로렌스의 다층 보컬 레이어 등이 화려한 프로듀싱 작업의 수혜를 입고 거의 완벽에 가까운 형태로 어레인지되면서 여느 럭셔리 메인스트림 앨범들 못지않은 고상하면서도 섬세한 무드와 전개방식, 그리고 탄탄한 스트럭쳐를 두루 겸비한 훌륭한 퀄리티의 팝 앨범으로 완성되어져 있다. 물론 '드라마틱 팝'의 한가지 특정 분위기를 첫번째 트랙부터 마지막 트랙까지 일관적으로 적용시키고 있다든지(ANDY STOTT의 덥스텝 무드/비트를 살짝 차용한 듯한 슬로우 넘버 "Remain Nameless"를 제외하고는 모든 곡들의 배킹 사운드 전개방식, 트랙의 템포, 보컬의 기승전결구조가 평균 이상으로 획일적이다) "Shake It Out" 이외에는 눈과 귀를 번쩍이게 만들만한 스매쉬 트랙(팝 지향 앨범의 흥망성쇠를 결정짓는 필수덕목)을 찾아보기 힘들다든지 등의 단점들 역시 [Ceremonials]에서 장점들과 더불어 존재하고 있긴 하다. 무엇보다 앨범 도처에 잔뜩 끼여있는 '팝스러운' 기름기는 로파이에 익숙한 골수 인디미학 추중자들에겐 어쩌면 불쾌한 호사스러움으로 다가올 수도 있겠지만, 이번 [Ceremonials]를 통해 플로렌스 웰치가 밴드 THE MACHINE와 함께 보여주고자 한 음악 자체에 대한 진지함과 숙성도만큼은 '인디 뮤지션으로써의 태도검증'이라는 음악 외적인 문제의 본질을 떠나 꽤 높은 레벨에 올라와 있음을 분명 인정해줘야 한다. 즉 '인디의 변절자'라는 인식만 싹 지우고 이 앨범을 듣는다면 퀄리티에 대해서 절대 맹목적으로 폄하할 수 없을 것이다. 그 정도로 [Ceremonials]은 정말 나쁘지 않은 작품이다. 


RATING76/100

written by BK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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