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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S/ALT & INDIE

OKKERVIL RIVER: I Am Very Far (2011)


러시아 톨스토이 가문의 여류 소설가 타티야나 톨스타야의 작품에서 밴드 이름을 따온 미국 텍사스 주 오스틴 출신의 인디 록 퀸텟 OKKERVIL RIVER는 MOUNTAIN GOATS처럼 민감한 감수성을 띈 단편소설적 테마들을 가사 안에서 직설적으로 드러내는 것으로 유명하다. 문학적 재주 뿐만 아니라 음악적 행보 역시 이들이 다른 수많은 인디 록 밴드들에 비해 특별한 캐릭터를 부여받게 된 이유 중 하나인데, 특히 작년 미국 싸이키델릭 록의 살아있는 컬트적 전설(이지만 현재 반 폐인 상태로 전락한) 록키 에릭슨의 솔로 앨범 [True Love Cast Out All Evil]에서 백 밴드로써 헌정하듯 전곡 피쳐링해주었던 것이 그 대표적인 사례다. '우린 다른 얼치기 차고 밴드들과는 다르다' 라고 과시하는 듯한 그들의 태도는 발표되는 앨범마다 항상 자신감으로 승화되어 앨범 퀄리티를 높여주는 촉매제 역할을 톡톡히 해왔으며 이러한 당당한 인디 정신에 언제나 후한 점수를 주어 온 미국 음악 미디어들의 빵빵한 써포트 역시 OKKERVIL RIVER의 입지를 여타 인디 밴드들보다 한 단계 높은 레벨의 영역에 올려 놓는 데 큰 기여(?)를 해왔다.

과거 포스트모던적인 심오함으로 일상적인 소재들을 번득이게 만들었던 리더 벤 쉐프의 예사롭지 않은 작사 솜씨는 이번 6번째 앨범 [I Am Very Far]에서 어두운 나르시시즘의 영역으로 방향이 틀어져 있고 이러한 변화가 음악 자체에도 영향을 미친 탓인지 이번 앨범에서는 4집 [The Stage Names]와 5집 [The Stand Ins]에서 수시로 터져나왔던 팝적인 감수성은 극도로 줄어들고 애매한 뉘앙스와 뒷끝을 남기는 이질적 멜로디들이 이를 대신하고 있다. '캐취송 (catchy song)' 에 관한 강박관념에서 벗어나 뇌리속 예상루트 안에서 흩어지고 모이기를 반복하는 멜로디 라인은 원숙해진 벤 쉐프의 싱어송라이팅 능력을 한껏 뽐내려 하는 듯 하며, 빌리 브래그와 WILCO의 어쿠스틱 향수가 느껴지는 포크 펑크 (folk punk)적 무드와 오케스트레이션/합창 코러스의 도입은 앨범의 싸운드스케잎을 드라마틱하면서도 서사적으로 만드는 데 상당 부분 일조를 하고 있다. 

하지만 이 앨범을 계속 반복해서 듣고 있노라면 어느 한 특정 밴드의 아우라가 꽤 뚜렷하게 보일 것이다. 바로 PULP! 실제로 벤 쉐프의 코맹맹이 모리씨(MORRISSEY) 스타일 중저음와 고음 처리법은 쟈비스 코커의 보이스 컬러/보컬 멜로디 라인과 그 수법이 상당히 흡사하다. 게다가 이번 앨범에서 더욱 두드러지는 퇴폐적인 키보드 라인과 솔리드한 스네어 드럼 싸운드는 과거 어느 앨범들보다 더 PULP적인 스타일에 접근해 있다 ("Piratess"와 "White Shadow Waltz"가 그 대표적 트랙들이다). 또한 지나치게 자신만의 깊은 내면세계를 탐닉하는 벤 쉐프의 태도는 앨범 전체적 분위기를 이유 없이 무겁게 (혹은 무기력하게) 만들 뿐 정작 음악 자체의 구성력이나 클라이맥스에서 어필하는 요소들은 기대 이하로 단조롭다. 특히 "Mermaid"(이 곡 역시 지극히 PULP스럽다)의 후렴 파트에서 끝없이 계속되는 보컬의 너저분한 감정이입은 따분함까지 살짝 들며, 이러한 기운들 때문에 "The Valley", "Rider"에서 보여주는 미국식 로큰롤의 흥겨운 텍스쳐들마저 앨범 전체의 암울한 분위기에 동화되어 홀라당 묻혀버린다.

'I Am Very Far' 라는 앨범 제목이 주는 불길함 때문만은 아니겠지만, 감각을 마비시키는 에테르 향기로 쩔어있는 염세적 팝의 영역으로 완전히 함몰되기 전에 어서 빨리 벤 쉐프는 정신을 좀 차려야 할 듯 하다. 상당한 수준으로 공을 들인 티가 여기저기에서 엿보이는 앨범이라는 사실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지만 팬들의 기대를 져버리지 않는 양질의 앨범을 매번 선보였던 OKKERVIL RIVER의 이번 선택은 분명 만장일치의 동감을 이끌어 내기엔 파워, 멜로디, 가사, 음악적 성과 등 여러 면에서 의문 부호를 달아야 할 것이다.

RATING: 66/100

written by Byungkwan Ch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