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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S/ELECTRONIC

MATTHEW HERBERT: One Pig (2011)


영국 출신의 부지런한 '예술가' 매튜 허버트(Matthew Herbert) 관련 기사는, 앞으로 음악관련 잡지보다 순수예술 잡지에서 찾아보는 게 더 현명할 지도 모르겠다. '대중 아티스트' 매튜 허버트를 여타 테크노/일렉트로닉 뮤지션들과 비교할 때, 그는 컨템포러리 파인아티스트들처럼 필드 레코딩에 관한 편집증적 집착을 데뷔 이후 앨범 안에서 보여주거나 갤러리나 박물관 전시회/퍼포먼스용 사운드 디자인 프로젝트에 가담하는 등 분명 특이한 면모가 다분한 작업들을 꾸준히 시도해왔다. 그밖에 대학 시절 드라마를 전공하고 런던 웨스트엔드 실험 연극들의 음악제작에 꾸준히 참여했던 '과외경력' 들까지 미루어 볼 때 일렉트로닉/일렉트로니카 DJ라는 직함은 어쩌면 예술에 관한 고상한 심미안을 자부하는 매튜 허버트에게 성에 차지 않거나 불명예스러운 타이틀로 여겨질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린 그동안 초기 DJ 시절 발표된 크고 작은 앨범들 뿐만 아니라 대표작 [Bodily Functions (2001)]와 [Scale (2006)] 등을 통해 일렉트로닉에 관한 매튜 허버트의 비상한 센스와 스킬을 아방가르드적 실험성 못지않은 비중으로 꾸준히 접할 수 있었는데, 그만큼 그는 일렉트로닉 DJ/뮤지션보다 순수미술가(Fine artist)의 문턱에 오르고픈 자신의 궁극적 목표와는 별도로 HERBERT라는 이름을 대중과 미디어에게 노출시키게 만든 태생적 근본이었던 일렉트로닉 음악 양식을 도구적 매체로써 계속 기능화시키는 이중적 태도를 취해오고 있기도 한다. 실제로 작년 선보였던 [One Club] 앨범은 독일의 한 나이트클럽에서 하룻밤 동안 매튜 허버트 자신이 직접 녹음햔 사운드들을 버무려 재편집하면서 동시에 유럽의 클럽 문화를 주관적 시선으로 고찰하고자 했던 색다른 형식의 다큐멘타리 앨범이었다. 이 앨범에서 그는 휴대용 리코더로 채집된 열 명의 다른 DJ들의 리믹스 라이브 테크노 음악들을 쉐리 르베인(Sherrie Levine)의 양아치 포스트모더니즘 미학 공법에 입각하여 다시 한번 자의적으로 차용(그리고 난도질)하면서 일렉 음악 본연의 관습적 시선을 재차 뒤튼 포스트모더니즘 형식의 일렉트로닉 미학을 새롭게 창출는 데 성공했었다.

[One Club]과 똑같은 재킷 디자인과 타이포그래피에서 간파되듯 이번 [One Pig] 앨범 역시
전작 [One Club]과 [One One]에 이은 3부작 프로젝트의 마지막 대미를 장식하고자 [One Club]과 [One One]에서 써먹어 재미를 봤던 컨셉/작업 방식을 그대로 고수하고 있는 듯하다. 농장에서 준 꿀꿀이죽만 쳐먹고 인공수정된 돼지새끼만 낳다가 도살되어 사람들의 식탁 위에 올라가는 허무한 삶만이 존재하는 현대사회의 돼지들... 매튜 허버트는 자신이 2년간 돼지농장과 도살장에서 채집한 소리들을 애블턴 소프트웨어와 Lemur 터치 컨트롤러의 미니멀 조합을 통해 샘플링/필터링/재편집하여 이 눈물 나는 네러티브를 음원화시키려는 '무리수'를 이번 앨범에서 감행한다. 물론 돼지 울음소리와 '돼지 멱따는 소리' 등을 과도하게 찌그러뜨리고 이를 통해 추출된 노이즈로 다시 비트메이킹을 하는 프로세스 방식은 아주아주 '익스페리멘탈' 한 자세를 제대로 취하고 있는 듯 하지만 사실 필드 레코딩을 통해 얻어진 독특한 질감의 음원들을 비트화하는 작업들은 피에르 쉐퍼 등 누보 레알리즘 시절 이브 클랑 등의 미술가들과 작업의 궤를 같이 했던 일련의 프랑스 음악가들이 이미 4-50년대 부터 시도했던 형식론이라 그다지 새로울 것은 없는 것인데, [One Pig]가 드러내고 있는 가장 결정적인 문제점은, 매튜 허버트가 시도하는 바, 즉 부분별한 돼지 괴성들과 정처불명의 소음들을 미니멀리즘적 카테고리에 입각하여 어레인지시켜낸 이 앨범 안에서 '동물 해방(animal liberation)' 이라는 다큐멘타리적 컨셉트, 그리고 음악가로써 작품 발표시 수반되어야 할 (순수 음악적) 디렉션과 미학적 어프로치, 이 두 측면 모두 그의 이름과 명성에 걸맞지 않은 부족함을 앙상하게 드러낸다는 점이다. 게다가 매튜 허버트는 클로징 트랙 "May 2011"에서 뜬금없는 포크 기타 발라드곡조와 노랫말을 이용하여 이번 앨범의 테마인 '동물 휴머니티'의 본의를 가장 통속적/구체적 형태로 정리하고자 마지막 안간힘을 써보지만 이 역시 그가 초기 시절부터 일관적으로 취해왔던 갖가지 일렉트로닉 어법들을 떠올릴 때 상당히 뜬금없는 수법에 불과한 것이다.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One Pig]는 '돼지도살' 이라는 자극적 르포르타쥬 주제와 '생명존중'이라는 거창한 메타포만 있고 정작 '음악' 으로써 실체를 찾아볼 수 없는 언밸런스/무의미한 음원 나열들로 일관되어 있다.
하지만 파인아트 작가지향의 사운드 디자인을 아티스트로써의 마지막 종착지로 여기고 있는 듯한 매튜 허버트는 지난 달 런던 로열 오페라 하우스에서 'One Pig' 독주회를 가지는 등 순수예술가로써 자기 자신을 바라보고 일렉트로닉 음악씬을 초월한 무대에서 자신의 음악을 시험하고픈 열망으로 여전히 가득차 있는 듯 하다. 돼지를 예술 작품의 오브제로 사용하는 모습은 좋다. 하지만 인간의 관습과 소비, 그리고 더 나아가 기존의 관습적 미학 코드에 대해 간단하면서도 신랄하게 풍자했던 빔 델보와(Wim Delvoye)의 돼지 문신 작품의 그 독창적인 예술 풍모 따위는 안타깝게도 [One Pig]에서 찾아보기 힘들다. 즉, 뭔가 새로운 걸 보여줘야겠다는 의욕만 도드라져 있는 반면 그 '돼지도살'이라는 태제를 둘러싼 예술가적 터치와 사운드적 기타 꾸밈새들은 거칠거나 혹은 뜬금없거나, 이 두 가지 형용사구만 수반할 뿐 그 이상의 아이러니한 함의를 전혀 살려내지 못하면서 무의미하고도 평범하게 우리의 귓전을 때릴 뿐이다. 

RATING: 55/100

written by BK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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