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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S/ELECTRONIC

PINCH & SHACKLETON: Pinch & Shackleton (2011)


가상의 메인스트림 덥스텝 듀오 'BURIAL &  JAMES BLAKE' 의 콜라보 앨범은, 카니예 웨스트와 제이지의 콜라보 앨범에 버금갈 UK 음악계 최고의 흥행 빅카드가 될 전망이지만, 같은 덥스텝의 유니폼을 입었다고 해도 이들의 상이한 음악성을 감안할 때 어쩌면 OASIS와 BLUR의 콜라보 앨범보다 더 이뤄질 가망성이 없는 헛된 바램일 수도 있을 것이다. 아무튼 작은 싱글 앨범만으로도 모두를 주목케하는 마력을 가진 이 두 명의 걸출한 UK 가라지 원투펀치 뿐만 아니라 오랫동안 인디 클럽 주위에만 행동반경을 한정시키며 21세기 지하음악세계에서 두문불출하던 일련의 DJ/프로듀서들까지 최근 우후죽순처럼 영-미 음악 미디어에 모습을 적극적으로 노출시키면서 이 UK 가라지 세력들은 그 예전 '스타일의 주류화'를 일시간 이뤄냈던 UK 드럼앤베이스 시절의 그 모습처럼 실로 막강한 파워를 자랑하며 일렉음악계의 거대한 영역을 부지런하게 개척해나가고 있다. 행여나 테크노 관련 웹진이나 DJ 잡지 구독을 한 달만 걸러도 굵직굵직한 덥스텝 새앨범을 몇 개씩 쉽게 놓혀버릴 정도로 UK 가라지쪽의 왕성한 움직임은 가히 폭발적인데, 이번에 소개할 PINCH와 SHCAKLETON의 콜라보 앨범은 한해가 저물어가는 11월에도 계속되는 신보들의 물량공세에 묻혀 아직 미지근한 반응을 보이고 있지만 고감도 프로듀싱 능력과 화려한 리듬 센스를 인디 씬에서 오랫동안 발휘해왔던 두 인디 거장의 역량이 미니멀하면서도 정교하게 축약된 작품으로써 새로운 가라지/덥스텝에 목말라하는 매니어들에게 분명 강한 임팩트를 선사해줄 것이다.

21세기 이후 가장 활동적으로 변성/파생되고 있는 세력 중 하나인 UK 가라지/베이스 씬을 지하세계에서 조용히 이끌어가고 있는 PINCH(롭 엘리스)와 SHACKLETON(샘 쉐클턴) 두 명 모두 '사장'이라는 직함을 달고 있는 친구들로, 잉글랜드 브리스톨 출신의 PINCH는 Tectonic 레이블의 안주인으로써, 그리고 랭커셔 출신의 SHACKLETON은 Skull Disco 레이블의 공동창업자로써 다양한 앨범들을 제작해오고 있다. Skull Disco는 대부분 더블 A-Side(두장이 수록된 싱글 LP)를 전문으로 제작하는 소규모 레이블임에 반해(그리고 거의 모든 앨범들에서 SHACKLETON이 뮤지션으로 직접 관여한다) Tectonic은 이미 올해 여성 DJ PURSUIT GROOVES의 걸출한 다운템포 하우스 명반 [Frantically Hopeful]을 기획/발매하는 등 싱글/full-length 모두 정기적으로 발매하며 신흥 인디 일렉 레이블로써 탄탄한 입지를 다져가고 있는데, 물론 PINCH와 SHACKLETON 모두 '인디레이블 사장'이라는 포지션과 더불어 뮤지션/프로듀서로써 현역에서 왕성한 음악 활동들을 꾸준히 펼쳐오고 있기도 하다.

서두에 BURIAL와 JAMES BLAKE의 '가상듀오' 언급을 잠시 했었는데, 아마 덥스텝 좀 듣는다는 골수 매니어들에게 덥스텝의 오늘을 있게한 '숨은 거장' PINCH와 SHACKLETON의 콤보 조합 소식은 BURIAL & JAMES BLAKE, THE WEEKND & BURIAL 혹은 DRAKE & JAMES BLAKE 조합을 능가하는 흥미를 유발시키기에 충분한 뉴스거리였을 터인데, 창조적 베이스라인을 환상적으로 재단해왔던 PINCH와 SHACKLETON 모두 UK 베이스/가라지 뮤지션/프로듀서들 중 가장 오리지널에 근접한 '에쓰닉(ethnic)' 취향을 드러내기로 유명했었기에 그 음악적 궁합을 미루어 볼 때 이번 콜라보 앨범은 올해 현실적으로 이뤄졌던 콜라보 일렉트로닉 작업들 중 독창성과 완성도가 가장 보장된 작품 퀄리티를 보여줄 것이라는 예상이 사전에 충분히 점쳐졌었다.

이번 앨범을 기다리면서 개인적으로는 업텝포 리듬이 범벅이 된 베이스지향적 포스트덥스텝 앨범을 한번 예상해봤다. '덥스텝 무브먼트'에 완벽하게 편승한 작품들을 연거푸 선보인 PINCH, 테크노와 덥스텝을 완벽하게 믹스시킨 FabricLive DJ 앨범으로 거한 존재감을 드러냈던 SHACKLETON 모두 그루브 넘치는 베이스라인에 관해선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인물들임을 고려할 때 이들이 결합할 경우 '주고받기'식 리듬 비트를 폭발적으로 발산해낼 것이라는 추측을 해봤지만, 이번 달 초 베일을 벗은 [Pitch & Shackleton] 앨범은 예상을 깨고 미니멀리즘 지향의 절제된 프레임웍과 컴포지션에 입각하면서 이러한 미니멀의 여백미를 깨뜨리지 않는 한도 내에서 이들 음악의 근간인 UK 베이스 특유의 베이스라인, 그라임 스타일의 신씨사이저 리프, 이국적인 에쓰닉/트라이벌 비트-텍스쳐 등을 조심스럽게 어레인지시켜낸 다운템포 IDM의 형질을 잔뜩 머금고 있다. 

UK식 비트의 공식과 정의를 자유자재로 써내려갔던 PINCH와 SHACKLETON의 과거 행적을 감안할 때 극도로 절제된 레이어웍으로 승부를 건 [Pitch & Shackleton]은 분명 예상밖의 사운드와 무드를 전면적으로 내포하고 있는데, 따라서 이번 작품은 작업 양식/태도의 관점에서 바라볼 때 덥스텝이나 베이스 음악의 부류로 단순하게 카테고리화시켜버릴 수 없는 복잡다양한 풍모를 띄고 있다. 이번 앨범 프로듀싱의 가장 핵심적인 뼈대로 자리하고 있는 미니멀리즘적 작업 방식과 태도는 '복잡함'과 '변칙'이라는 스타일로 점철된 덥스텝이란 장르를 시간(timing)과 공간(space)의 개념에 대한 절제된 분석이 중시되는 IDM과 앰비언트의 영역으로 이동/확장시키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마치 오테커(AUTECHRE), 미카 바이니오(Mika Vainio), 마크 펠(Mark Fell) 등의 미니멀 IDM 뮤지션이 포스트덥스텝 작업을 한 듯한 풍모를 띈다고나 할까. 하지만 리듬/베이스 장인 PINCH와 SHACKLETON는 이 미니멀하면서도 앰비언트 기운이 무르익은 사운드스케잎의 헐거운 공간을 특유의 마스터터치 리듬커팅을 통해 조심스럽지만 집요하게 파고들면서 그 어떤 투스텝/덥스텝/드럼앤베이스 앨범의 비트 어레인지 못지않은(아니, 오히려 능가하는) 정교함과 리듬감을 작렬시키는 기염을 토해낸다. PINCH와 SHACKLETON은 특히 이번 작품에서 덥스텝/투스텝의 필수요건인 스네어와 탐탐의 사용을 최대한으로 억제(거의 사용하지 않는다고 봐도 무방하다)하는 미니멀 비트 제조 '철칙'을 세우고 이에 관해 놀라울 정도로 완벽한 제어력을 보여주는데, 대신 16분/32분음표로까지 잘게 쪼개져 다양한 싱코페이션 패턴으로 귀를 차갑게 공략하는 킥드럼/하이햇 타격음과 이국적 풍모를 자아내는 아랍/카리브해 타악기 비트 샘플링을 '타이밍의 미학'에 입각하여 공간의 여백 위로 타이트하게 배열시키면서 그 미니멀한 음원 레이어 구조를 통해 맥시멈 퀄리티의 그루브와 리듬펀치를 양산해낸다. '최소의 비용으로 최대의 생산효율을 발휘'하는 이들의 모습은, 특히 그라임과 댄스홀 스타일의 유치살벌한 신쓰(synth) 리프에 이어 아랍/자메이카 타악기 연주 샘플, 베이스 드럼 킥, 오픈+클로즈 하이햇 타격음 콤보 간에 연출되는 완벽한 형태의 미니멀 비트 앙상블이 간결하면서도 다채롭게 벌어지는 "Rooms Within a Room", "Torn and Submerged" 등의 트랙에서 가장 효과적으로 접할 수 있을 것이다.

스네어가 과감하게 거세된 [Pitch & Shackleton]의 핵심 무기인 베이스라인의 텍스쳐나 패턴들은 분명 [Three EPs (2009)] 에서 보여줬던 SHACKLETON의 손맛이 더 강하게 느껴지는 건 사실이지만, 앨범의 전체적인 사운드스케잎이나 프레임웍은 반대로 첫번째 full-length 앨범 [Dancehall]부터 이미 트라이벌 비트, 댄스홀 신쓰 리드(synth lead), 앰비언트, 미니멀 사운드 프레임에 관해 나름의 숙고를 해왔던 PINCH의 입김이 더 크게 작용한 듯 하다. 물론 이번 [Pitch & Shackleton]앨범에 관한 각자의 기여도 여부를 나름 이런 식으로 유추해볼 수도 있겠지만, 기여도나 비중의 여하를 막론하고 [Pitch & Shackleton] 콜라보 앨범은 이 두 명의 UK 베이스 테크니션이 그동안 축척해왔던 모든 음악적 아이디어와 테크닉이 군더더기없는 패턴과 깔끔한 전개방식에 의해 완벽하게 응집된 최고의 미니멀+덥스텝 작품으로써 전혀 손색이 없는 완성도를 보여주고 있다. 디바와 MC의 보이스가 난무하고 천편일률적인 스네어+킥드럼 비트로 범벅이 된 '뻔한' 업템포 덤스텝 음악에 염증을 느끼고 있다면 필히 이 비트 마이스터들의 미니멀  포스트덥스텦 음악을 듣고 귀와 뇌를 한번 정화해보기 바란다. 


  RATING: 83/100

written by BK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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