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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S/ELECTRONIC

TYCHO: Dive (2011)


"TYCHO의 이번 앨범, 완전 올킬이야!"

지난달 뉴욕 브룩클린의 한 까페에서 TYCHO의 신보 [Dive] 프로모(promo) CD를 들고 지인들에게 자랑해보이던 하우스 매니어 스콧 아저씨. 지긋한 나이에도 하우스/IDM 신보들에 관한 정보가 빠삭한 이 분은 비록 현재 반백수의 일상을 살고 있지만 불과 몇년 전까지만 해도 'Satellite Records 사장' 이라는 번듯한 명함과 함께 전세계 어번/컬처 잡지와 음악관련 미디어에 꾸준히 얼굴을 내밀던 나름 유명인사였다. 그가 운영하던 뉴욕 맨해튼 유일의 일렉트로닉 음악 전문 대형 LP 매장 'Satellite Records'는 세계 모든 일렉 매니어/뮤지션들이 뉴욕에 왔다하면 꼭 들리는 '성지'나 다름없는 곳이었는데, 특히 영국과 LA 등지에서 수집한 희귀 브레이크(break) 싱글 LP들은 정말 하나하나 기똥찬 것들이었지만 안타깝게도 이 매장은 경영난 등의 이유로 결국 얼마전 문을 닫고 말았다. 불법 mp3 다운로드와 아이툰의 대중화로 인해 유수의 소문난 음반 가게들이 허무하게 문을 닫는 '비극적 결말'을 우리는 최근 아주 빈번하게 목격하고 있지만, 훌륭한 명성을 쌓고 있던 Satellite Records마저 망하게 된 내부적 요인을 좀더 파고들어 분석한다면, 수만장의 LP판을 소장했던 이 레코드샵 주인장 스콧의 '정체된' 취향으로 인한 미니멀 하우스/IDM 편애는 어느순간 자극적이면서도 쉽고 흡입력 빠방한 가라지 등의 트렌드 장르에 민감한 젊은층 일렉 매니어들이 이 가게에 등을 돌려버리는 원인이 되었고 이는 판매부진으로 이어지며 폐점의 말로를 걷게 되었던 것이다. 이는 비단 Satellite Records만 겪는 일이 아니다. 십년 전까지만 해도 우리의 심금을 차갑게 울려주던 수많은 IDM 스타들과 미니멀 테크노 디제이들은 이제 일렉트로와 덥스텝을 우선순위로 다루는 트렌디한 음악 미디어에서 뒷전으로 밀려나면서 근황마저도 접하기 힘들게 되었으니, 하물며 근사한 정통 일렉 신보가 나왔다 하더라도 매스컴의 외면으로 본의아니게 놓혀버리는 일들도 이젠 다반사가 되었다.

아무튼 서두에 잠시 언급했던 이 '스콧'이라는 아저씨분이 칭찬을 아끼지 않던 그래픽 아티스트 겸 일렉트로닉 뮤지션 TYCHO(본명: 스콧 핸슨)는 장인정신으로 죽을 때까지(?) IDM 계통의 음악을 할 것만 같은 일렉트로닉 순수주의자들 중 한 명이지만 침체된 미국 IDM/하우스 씬의 상황 탓에 오랜 구력에 비해 자신의 입지를 다지는 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렸던 친구다. 지난 2004년 BOARDS OF CANADA를 연상시키는 몽환적 다운템포 IDM 스타일의 데뷔앨범 [Sunrise Projector (2004)]로 음악계에 발을 일찌감치 들여놓지만 그후 일부 순수 IDM 매니어들의 입에만 가끔 오르내릴 뿐 셀프릴리즈라는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고 사람들의 기억에서 재빨리 잊혀졌다. 이 100% 순도의 DIY 로파이 일렉 앨범은 2년 후 'Past Is Prologue'라는 이름으로 Merck 레이블에서 재발매(라기 보다는 다른 버젼으로 리믹스된 편집앨범으로 보는 게 더 맞다)되었지만 TYCHO외에 KETTEL, PROEM, SECEDE 등 저명한 IDM 뮤지션이 다수 소속되었던 이 굴지의 레이블이 경영난으로 이듬해 파산/공중분해되면서 이 앨범은 다시 음악마켓에서 미아신세가 되어버린다. 다행히 TYCHO의 능력을 알아본 거물 인디 레이블 Ghostly International(미국 미시건주 앤 하버에 본거지를 두고 있음)이 '프리에이전트'가 된 TYCHO와 정식계약을 맺으며 빠방한 백업서포트를 해주기 시작했고 덕분에 최근 3년 동안 그의 앨범들은 음악 미디어들의 정당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매년 순조롭게 발표/리이슈되어오고 있다(그리고 사장될뻔한 [Past Is Prologue]도 작년 Ghostly International에 의해 재발매되었다!).

공식적으로는 셀프릴리즈 앨범 [Sunrise Projector]에 이어 두번째 정규 앨범이 되는 [Dive]는 데뷔 앨범에서 보여줬던 BOARDS OF CANADA식 다운템포 IDM의 루틴에서 상당히 벗어나 조금의 색다른 분위기를 내어보려는 TYCHO의 의욕적 어프로치들이 상당하게 투영된 작품이다. 따뜻한 보금자리가 생기면서 새로운 의욕이 충만했던 건지 이번 앨범은 BOARDS OF CANADA가 주로 나타냈던 암울하면서도 음산한 사운드스케잎의 아우라는 확실히 많이 걷히고 대신 팬시하면서도 몽환적인, 때로는 어깨를 들썩이게 할 만큼 경쾌발랄하게 기분전환시키는 업비트의 긍정적 에너지가 앨범 곳곳에 숨어있다. 특히 NEON INDIAN의 [Era Extrana] 칠웨이브를 듣는 것처럼 혹은 얇팍한 구식 레이브 음악을 최신 슈게이징 스타일로 리메이크한 것처럼 달콤한 아날로그 신씨싸이저 리프로 견고한 팝 프레임웍을 구축하는 "Hours",  여성 보컬리스트의 에코 보이스 샘플과 함께 복고 뉴웨이브의 글래머적 풍모와 (딥)하우스의 스무쓰하게 박동하는 그루브를 동시에 느낄 수 있는  "Dive" 등의 트랙들은 우매한 대중(ㅋㅋ)을 위한 FM/인터넷 라디오 음악 프로그램에서도 절찬리에 애청될 수 있는 팝적 요소를 풍부하게 가지고 있다. 물론 전반적으로 봤을 때 [Dive] 역시 초기 DIY 시절의 작품들처럼 BOARD OF CANADA와 유사한 IDM 공법을 고수하고는 있지만 테크닉적 면모를 제외한 사운드스케잎, 디렉션, 무드 등은 오히려 ULRICH SCHNAUSS나 JONAS MUNK (MANUAL) 등의 신씨사이저 IDM 풍모에 훨씬 더 닮아있다. 즉 앰비언트 음악의 몽환적인 비주얼을 아날로그 신씨사이저로 심화시켜 초자연/초현실적인 대기를 이지적으로 조성하는 JONAS MUNK, 슈게이징의 관능적인 멜로디를 IDM적 심미안으로 필터링하여 자신만의 감성적 일렉트로니카 세계를 구축하는 ULRICH SCHNAUSS, 이 두 거장들이 만들어갔던 햇살가득한 전자 무드의 황홀경이 [Dive] 안에서 하우스 음악처럼 쉽고 흥겨운 논조로 재해석되고 있는 것이다. 물론 TANGERINE DREAM, ENO, VANGELIS 등 70년대 클래식 프로그록 신쓰(synth) 음향의 복고적인 영향도 일부 느껴지기도 하지만 [Dive]에서 주로 내포한 일렉트로닉 음악의 온화한 감촉과 몽환적인 비트는 마치 'ISO50' (일반적 디지털 카메라로 가장 입자가 촘촘하고 고운 사진을 찍을 수 있는 감광속도)이라는 TYCHO의 온라인 닉네임에 걸맞는 섬세하고 예민한 터치 덕택에 가장 (초)현대적이면서도 정교한 씬쓰(synth) 매터리얼로 변모/융합되어 있다.   

또한 이번 앨범의 핵심 중 하나로 볼 수 있는 킥드럼+스네어+하이햇의 삼단 콤보 수제 드럼 연주 샘플 사운드들은, 비트가 사용되지 않은 트랙 "Melanine"를 제외한 [Dive] 앨범의 모든 곡에서 클린톤 어쿠스틱 기타 리프와 함께 절대적인 비중으로 즐겨 사용되고 있다. 비록 올드스쿨 힙합 브레이크비트 패턴이 적용된 "Adrift", "Daydream", 
"Epigram" 등과 같은 트랙들에서 일반적인 하우스비트와 대조되는 펑키한 리듬의 드럼 비트를 만끽할 수 있지만,  TYCHO는 가장 초보적인 수준의 스트레이트한(단순한) 4/4 하우스 비트를 이번 앨범의 비트 조합 공식으로 채택한다. 그리고 음원 레이어 하단부에서 동일한 어투로 루핑되는 베이스라인 역시 하우스 베이스라인 특유의 볼륨감과 속도감을 생성하곤 있으나 단조로운 패턴으로 일관하는 드럼 비트에 부스터 역할을 할 만큼 펑키한 억양을 드러내지도 않는다. 물론 수제 드럼 샘플만으로 미니멀하게 짜여진 비트 텍스쳐의 깔끔한 간지는 충분히 경의를 표할만 하지만, 다운비트 하에서 창의적인 비트메이킹/어레인지를 꾸준하게 추구해나갔던 BOARDS OF CANADA나 그외 다른 IDM 거장들에 비한다면 분명 [Dive]에서의 비트 조합은 특이하거나 실험적인 면모를 보여주기엔 분명 미흡한 면이 있어 보이며 오히려 예전 DIY 독수공방 시절 만든 [Sunrise Projector]에서 빛났던 아기자기한 베이스+드럼 콤보 패턴들과 비교해봐도 [Dive]는 비트면에서 동어반복적인 요소를 훨씬 더 명백하게 드러낸다. 이번 앨범의 외향적인 자세는 분명 대중친화성과 융통성, 프로덕션의 정밀도를 높여주는 역할을 했지만, 역설적으로 이러한 긍정적/외향적인 태도변화로 인해 셀프릴리즈 시절의 고집스러움과 실험정신이 '본의아니게' 일부 여과되어버린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이번 [Dive] 앨범은 [Sunrise Projector]에서 접목하고자 했던 BOARDS OF CANADA스러운 IDM 느낌이 일부 남아있지만(특히 다양한 질감의 비트를 선보이는 9번째 트랙 "Epigram"에서 가장 큰 유사성을 띈다), TYCHO는 이번 앨범을 통해 전체적인 무드와 사운드스케잎, 템포, 비트 패턴 모두 BOARDS OF CANADA식 IDM의 영향력/카테고리에 더이상 한정할 수 없는 자기만의 새로운 칠(chill) 영역을 일렉트로닉(-카)씬에서 도모하기 시작한 듯하다. 칠웨이브의 대중취향성을 노골적으로 따라하지 않는 한도 내에서 골수 IDM의 몰대중적 단점을 완벽하게 극복하면서 이성과 감성의 밸런스를 
완벽한 황금비율로 맞추어낸 [Dive]식 'chill' 사운드는, 비록 완벽한 걸작의 조건에는 다소 미흡하나 적어도 안정된 풀타임 DJ/뮤지션으로써 거듭나며 새로운 디렉션을 모색 중인 그에게 좋은 터닝포인트 요소가 될만한 양질의 전자 감촉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

RATING79/100

written by BK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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