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REVIEWS/ELECTRONIC

XHIN: Sword (2011)


한국의 일렉트로닉 씬이 그동안 연속성을 가지고 발전을 해오고 있는지에 관해서는 개인적으로 여전히 회의적인 입장이지만, 유수의 테크노 클럽들을 오래전부터 관리해온 일본, 홍콩 등의 국가에서는 이미 90년도 중반부터 시작된 '일렉트로닉 르네상스' 의 글로벌적 대세에 발빠르게 합류하면서 훌륭한 디제이들을 다수 배출해오고 있다. YMO, 이시이 켄, DJ KRUSH 등 수많은 A급 뮤지션들을 탄생시킨 일본이야 이미 한국이 감히 접근하지 못할 정도의 거리를 두고 아시아에서 단독질주 중이지만, 비일본 출신 아시안 일렉 아티스트들마저 유럽 레이블에 진출하여 세계적인 주목을 받는 모습을 최근 드문드문 접할 때면 (그래도 아시아의 2인자로 자부하면서 살고 있는 일인으로써) 속쓰림과 함께 홧병이 막 끓어오르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싱가포르 출신 프로듀서/디제이 XHIN(본명: Lee Xhin)은 컴플렉스에 쩔어 사는 필자에게 홧병을 돋구었던 그 아시안 일렉 아티스트 중 한 명으로, 지난 2008년 독일 슈튜트가르트 테크노 레이블 Meerestief Records에서 계약을 맺고 로버트 후드(Robert Hood) 스타일의 디트로이트 미니멀 테크노와 시카고 하우스 삘이 절묘하게 믹스된  [Greyscale] 앨범으로 일약 세계적인 주목을 이끌어내기 시작한 뉴페이스 뮤지션이다.
 
사실 XHIN은 이미 90년대 말부터 홍콩, 싱가포르, 일본의 클럽 무대 헤드라이너로써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던 중고신인. 생애 두번째 정규 full-length 앨범 [Greyscale]의 세계 발매에 이어 진행된 2008-09 시즌 월드투어(뉴욕-런던-베를린 등등 아시아 디제이라는 무형의 핸디캡을 뚫고 전세계 대도시 클럽들을 전부 다 '접수'하는 저력을 보여줬다) 역시 절찬리에 끝마치는 등 자신의 이름을 월드 테크노팬들에게 충분히 각인시켰던 XHIN은 뭐니뭐니해도 폭넓은 음악적 식견에 따른 흠잡을 데 없는 테크닉과 음악적 안목 등의 성공 요소들을 확실하게 지니고 있었기 때문에 해외진출이 이토록 무난하게 이뤄질 수 있었던 것으로 사료된다. XHIN이 그동안의 앨범들에서 보여줬던 테크노에 대한 통찰력이나 DJ 기계에 대한 능글맞을 정도로 유연한 손놀림/센스 등은 분명 다른 중화권 뮤지션들(과 한국 뮤지션들...까지 포함하면 욕을 먹을까?)에게는 발견할 수 없는 탁월함이 느껴지곤 했었는데, 사실 싱가포르가 영국의 식민지배 영향으로 현재까지도 호주, 캐나다 등과 함께 영연방게임에 꾸준히 참가하는 등 영국과의 연결고리를 꾸준하게 갖고 있는 탓에 외국에서 예술하는 싱가포르 젊은이들을 보면 서구 예술/음악 트랜드에 대해 꽤 정통해있는 듯한 인상을 받곤 한다. 하지만 이 조그마한 도시국가는 세계적으로 뿐만 아니라 아시아 안에서도 분명 '비주류' 국가인 건 사실이며 이는 필경 "세월아 내월아" 신세한탄만 하며 우물안 개구리 행보만 보이는 국내 뮤지션들보다 더 큰 핸디캡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XHIN은 자신의 실력하나에만 의지하여 지적인 일렉트로닉 음악왕국 독일과 실질적 일렉음악 종주국 영국 등 서구 열강국가들을 상대로 비주류 아시아인으로써의 모든 불리한 조건들을 차근차근 극복하며 승리의 깃발을 하나씩 꽂아가고 있다. 이 집념과 성과는 정말 대단한 것이다. 특히 외국에 나와 있는 사람은 더 뼈져리게 느낄 것이다, 이것이 얼마나 대단한 건지.

너무 잡소리가 길어졌다. 아무튼 XHIN의 세번째 정규 앨범이자 본격적인 세계 진출 데뷔작 [Sword]는, 진중한 톤과 현실적인 억양을 유지하면서 음원 쏘스를 미니멀 스타일로 재정렬하는 데 집중했던 전작 [Greyscale (2008)]에 비해 훨씬 더 감각적이면서도 다양한 패턴으로 이루어진 리듬/비트와 호전성/생동감이 배가된 템포/무드 등이 지배적인 90년대 중-후반의 복고 업템포 클럽 (디트로이트+하드코어) 테크노 스타일을 끌어들이고 있다. 동시에 앰비언트 스타일의 IDM 사운드에서 주로 나타나곤 하는 고급스러운 사운드스케잎과 학구적인 리듬터치 등이 (사운드디자인과 '기계' 에 관해 XHIN만이 가진 노련한 안목과 테크닉에 힘입어) 앞서 언급한 '복고적' 업템포 테크노 무드와 완벽하게 결합하면서 근래 보기 드문 IDM형 테크니컬 클럽 테크노 사운드가 탄생된 것이다. 

특히 이번 [Sword]에서 나타나는 XHIN의 실험적 어프로치는 전작 앨범들에 비해 꽤 뚜렷한 억양으로 과감하게 표현되고 있는데, 특히 텍스쳐가 온전하게 보존된 클린톤 비트와 심각하게 짜부러뜨린 퍼커션의 오묘한 콤보 조합에 의해 나열된 드럼 비트 패턴들은 마치 평범한 4/4박자 하우스비트를 거부라도 하는 듯 익스페리멘탈 뮤직 특유의 불규칙과 변칙성이 상당히 억양 분명하게 드러나 있다. 특히 두번째 트랙 "Fox and Wolves"에서 XHIN의 꼼꼼한 미디/기계 테크닉에 의해 발휘되는 탁월한 리듬 센스는, '테크노 순수주의의 부활'이라는 공허한 메니페스토 그 이상의 실험적 목표를 위해 점차적인 도발을 감행하는 클럽 디제이 XHIN의 작가주의적 열망을 뒷받침해줄 무기로써 손색이 없다. 그의 놀라운 비트 감각은 이어지는 "Teeth"에서도 쉴새없이 발현되고 있는데, 쉴새없이 쏟아지는 비인간적 기계 비트의 융단폭격 사이로 극도로 새밀하게 덧씌워진 오픈+클로즈 하이햇 샘플링과 글리취(glitch)/노이즈 사운드, 그리고 그 카오스의 한가운데에서 은은하게 수놓는 몽환적인 톤의 신씨사이저 리프들이 한데 엉겨붙어 정교하면서도 텐션감 넘치는 테크노 서사시를 펼쳐내보인다. 

글리취가 난무하는 음향적 텍스쳐, 육중한 비트의 날카로운 커팅 테크닉, 그리고 IDM과 익스페리멘탈적 어프로치/작업자세 등 [Sword]에서 가장 핵심적으로 드러나는 영향력이 AUTECHRE라는 점은 어느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특히 "Medium"에서 드러나는 노이즈/글리취 질감과 날카롭게 끊어치는 비트 공법, 그리고 몽환적인 앰비언트 톤으로 먼발치에서 은은하게 울려대는 추상적인 건반 멜로디의 이율배반적 콤비네이션은 분명 초기 AUTECHRE (특히 [Tri Repetae (1995)]와 [Anvil Vapre EP (1995)] 등의 앨범 당시) 스타일과 상당히 흡사한 면모를 보여준다. 하지만 위에서 서술된 "Fox and Wolves", "Teeth", 'Medium"은 물론이거니와 [Sword] 앨범에 수록된 대부분의 곡들에서 드러나는 호전적인 템포감과 비트감에서 보여지듯이 XHIN는 IDM과 그외 클릭-앤-컷 성향의 학구적 뮤지션들이 되기보다 클럽 DJ로써의 역할을 여전히 자신의 음악적 아이덴티티를 정의내리는 근본적 바로미터로 간주하고 있는 듯하다. 즉, 시카고 하우스와 디트로이트 테크노 지향적이었던 전작 [Greyscale]과 연결선상으로써  [Sword]에서 그대로 유지시키고자 한 클럽 테크노적 캐릭터는 AUTECHRE적 실험성과 함께 완벽한 밸런스를 유지하며 공존하고 있는데, 특히 왕년에 날렸던 조이 밸트램(Joey Beltram)의 공격적으로 윽박지르는 하드코어성 드럼킥 연타를 연상시키는 "You Against Yourself", SURGEON의 [Force and Form (1999)] 테크노 앨범을 다시 듣는 것처럼 아날로그 질감 충만한 배경음이 둔탁하게 뻗어나가는 드럼사운드/노이즈 커팅과 함께 절묘하게 어울리는 "Vent" 등의 트랙에서는 단순한 감상용 IDM 음악을 넘어 언더 하드코어 테크노씬에서도 충분히 먹힐만큼 '잔악한' 비트감으로 귓청을 고문하는 그 예전 올드스쿨 클럽 테크노의 극악 정신이 IDM에서 전수받은 고감도 터치에 의해 상당히 단아한(?) 어조로 압축되어 있다.   

오리지널리티의 관점에서 [Sword]를 바라본다면 AUTECHRE의 강렬한 영향력을 부정할 수 없겠지만, 테크닉의 관점에서 평가한다면 [Sword]는 일렉트로닉 음악의 '교과서'들로 지칭되는(APHEX TWIN, AUTECHRE 등의) 클래식 IDM/테크노 앨범들과 비교할 때 기술적으로 오히려 이들을 능가한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완벽한 컴퓨터 스킬과 원숙도/이해도를 보여준다. '일렉 씬의 주류' 덥스텝이나 일렉트로/신쓰팝에서 즐겨쓰이는 비트들은 완벽하게 외면되고 그 대신 테크노에 관한 외골수 신념으로 날카로운 커팅과 호전적인 비트들로만 집요하게 공략되어진 이 무대포 테크노 음악은 분명 AUTECHRE, LUKE SLATER, BOOM BOOM SATELLITE 같은 역전의 용사들을 그리워하는 노땅 매니어들에겐 아주 절묘한 초이스이겠지만, 가라지 비트에 익숙한 젊은 리스너들이 이 앨범을 듣는다면 어쩌면 골이 지끈거릴 정도로 현란하게 달려드는 드릴 글리취 비트들 때문에 두통을 호소할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적어도 컴퓨터 음악, IDM, 전자 익스페리멘탈리즘에 관심있는 대한민국 일렉 꿈나무들이라면 같은 아시아인으로써 무형적인 동기부여도 될 수 있는 이 역작을 꼭 귀기울여 들어보도록 하라.
 

.RATING: 82/100

written by BKC

'REVIEWS > ELECTRONIC' 카테고리의 다른 글

GOTH-TRAD: New Epoch (2012)  (2) 2012.02.13
SYMMETRY: Themes For An Imaginary Film (2011)  (3) 2012.02.04
TYCHO: Dive (2011)  (2) 2011.12.01
MATTHEW HERBERT: One Pig (2011)  (1) 2011.11.24
PINCH & SHACKLETON: Pinch & Shackleton (2011)  (1) 2011.11.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