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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S/ELECTRONIC

ONEOHTRIX POINT NEVER: Replica (2011)

'젤 듣기 쉬운 소음 음악 좀 소개시켜달라'는 요청을 누군가가 해올 때마다 근 십년동안 추천 리스트에 절대 빠뜨리지 않는 뮤지션 중 한명이 바로 오스트리아 출신의 '사운드 테러리스트' 크리스티안 페네스(Christian Fennesz)인데, 언젠가부터 페네스와 함께 이 리스트에 꾸준히 포함시켜오고 있는 인물이 한명 더 있으니 그는 바로 ONEOHTRIX POINT NEVER라는 이름으로 솔로 활동중인 앰비언트계의 이단아 댄 로파틴(튼)이다. 한편으론 페네스와 대니얼 로파틴, '힙(hip)' 한 이지리스닝(?) 소음을 만들어내는 이 두 실험 뮤지션에 필적할만한 신진 인물들을 추가로 꼽기 힘들 정도로 위축되어있는 익스페리멘탈 계열 전자음악씬의 현 상황이 한때 익스페리멘탈 음악의 맹신자 중 한 사람으로써 뼈아프게 다가오기도 하는데, 에이펙스 트윈 등 굵직한 신격 존재들이 오래전부터 땅에 묻혀버리고 정체성 없는 클리쉐이들이 천편일률적으로 판을 치는 현 시점에서 댄 로파틴이야말로 다양한 형태의 작업들을 통해 실험 음악을 인디 뮤직에 편입시키고자 고군분투하며 기특한 모습을 보여주는 유일한 젊은이가 아닐까.

자랑삼아 잡소리를 좀 첨가하자면, 운좋게도 크리스티안 페네스와 대니얼 로파틴 두 명 모두 개인적으로 만날 기회가 있었다. 자신이 생각하는 바를 조심스러우면서도 진지한 목소리로 요목조목 얘기하던 페네스가 점잖은 중년 유럽 신사의 이미지라면, 떨때고 횡설수설하듯 논점에서 겉도는 얘기만 주절대던 로파틴은 시골 W.T. 양아치의 이미지라고 해야 하나. 얼핏 보면 이 둘은 비주류의 끝을 보듯 무한한 음원 탐구를 펼쳐나가는 실험 연주인으로써 비슷한 노선을 같이 걷고 있는 듯 하지만, 90년대부터 익스페리멘탈 씬을 주름잡아온 페네스를 비롯한 대부분의 아방가르드 노이즈/앰비언트 뮤지션들이 진지하면서도 고상한 형태의 철학/미학 관점에서 사운드 디자인 작업을 해나가는 데 반해 대니얼 로파틴은 아티스트로써 필수덕목인 철학이나 미학의 관념따위는 일종의 허세쯤으로 여기는 듯 건반이나 컴퓨터 마우스 위에 놓여진 손가락을 무의식적으로 놀려가며 자신의 잡식스러운 저질 취향의 앰비언트 세계를 즉흥적이면서도 괴팍하게 구축해나간다. 이 때문에 그는 꼼꼼함과 논리정연함이 중요시되는 익스페리멘탈 뮤지션으로 분류되어지기엔 다소 엉성하고 질 떨어지는 음악적 기반과 풍모를 필연적으로 드러내지만, 가장 현실적이고 인간적인, 그리고 시대조류를 부정하지 않는 포스트모더니즘적 태도로 음악을 만들어나가는 긍정적 사고와 오픈 마인드는 역설적으로 구시대적 엘리트 모더니즘 사고에 벗어나지 못하고 소통의 중요성에 무관심한 수많은 익스페리멘탈 뮤지션들이 정작 지니지 못한 그만의 강력한 메리트로 작용한다. 

ONEOHTRIX POINT NEVER의 새 앨범 [Replica]는 앰비언트적 풍모를 외견상 유지하면서도 진지한 순수 실험주의자가 되는 것만큼은 뼛속 깊이 거부하는 듯한 댄 로파틴의 톡톡튀는 잡식 취향이 고급스러운 익스페리멘탈 무드 속에서 가장 완벽한 형태로 녹아난 작품으로 완성되어져 있다. 물론 전형적인 독일 크라우트록 풍 신씨사이즈 익스페리멘탈리즘을 달콤하게 펼쳐보이는 앨범 오프닝 트랙 "Andro", 브라이언 이노처럼 뉴에이지의 평온함과 앰비언트의 몽환성을 드론 음색과 함께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Remember" 등의 트랙에서 보여지듯이 익스페리멘탈/앰비언트 매니어들의 심금을 울렸던 두장의 전작들 [Rifts]와 [Returnal]에서 보여주었던 신씨사이저 지향의 거대한 앰비언트 사운드스케잎과 노이즈 드론에 관한 관심은 이번 앨범에서도 여전히 유효한 O.P.N.식 펀더멘탈로 작용하고 있다. 하지만 아날로그 신시사이저의 절대적인 리딩(leading)과 단선적이고 부유하는 듯한 디렉션/무브먼트를 기반으로 각 트랙들 간의 일관성과 유기성을 중시했던 [Rifts]와 [Returnal]에 비해, [Replica]는 IDM적 마인드에 의해 샘플 쏘스를 대거 도입하고 앰비언트 음악에게 계륵과도 같은 '템포'와 '리듬'이라는 옵션까지 정적인 앰비언트 사운드스케잎 안으로 적극적으로 끌어들이면서 매 트랙마다 다이내믹하면서도 능동적인 무브먼트와 드라마틱하면서도 최면적인 텐션감이 각기 다른 억양으로 골고루 생성되고 있다. 특히 글리취된 펑크(funk) 뉘앙스가 듣는 재미를 부추키는 여섯번째 트랙 "Nassau"는, 단순 질감의 앰비언트 건반 리프 기반 위에 샘플로써 루핑되는 남성의 외마디소리와 필드 레코딩을 통해 얻어낸 듯한 잡동사니 소음들을 템포화(하지만 비트 샘플이 쓰여지진 않고 단순히 사운드 커팅에 의해 템포 생성이 이루어짐)하여 기존의 앰비언트 작품에서 볼 수 없던 자극적인 억양의 파워와 역동성을 기세좋게 살려낸다. 인간(아이들?)의 보이스가 대량으로 삽입된 "Child Soldier"이 들려주는 완벽한 템포의 마이크로샘플링 사운드는 또 어떤가. 로파틴은 이 곡에서 O.P.N.에서 지속적으로 탐구해왔던 몽환적인 신시사이저 리프의 황홀경을 망가뜨리지 않는 선에서 FORD & LOPATIN에서 마음껏 펼쳐내던 클릭-앤-컷의 기계적 손맛을 앰비언트 톤과 완벽하게 융합시켜낸다. 또한 여덟번째 트랙 "Up"은 FORD & LOPATIN 프로젝트 활동을 통해 다시 불붙은 듯한 로파틴의 '템포에 대한 관심'이 이번 앨범에서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트랙으로, 오프닝 트랙 "Andro"의 엔딩 부분에서 잠시 선보했던 트라이벌 퍼커션의 활발한 연주 비트가 이 곡에서 다시 등장하면서 노이즈 드론, 리버브 씬쓰 음향과 함께 근래 보기 드문 '역동적 앰비언트'의 스트럭쳐를 완성해낸다.   

댄 로파틴이 언젠가 이렇게 말한 바 있다.

  "나는 (다른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과는 달리) 신씨사이저 악기를 맹신하거나 그런 것은
절대 없다. 이런저런 악기들을 어지럽게 가지고 놀다보면 특이한 사운드가 우연히 튀어
나오게 되고 난 그저 이들을 한데 모아서 음악을 만들 뿐이다."

이처럼 로파틴은 아방가르드 음악에 관한 교조주의적 공식과 도그마에 얽매이지 않고 앰비언트와 익스페리멘탈리즘을 하나의 놀이쯤으로 여기면서 자유롭게 음악을 만들어왔으며 바로 이번 새앨범 [Replica]이야말로 그가 지속적으로 취하고 있는 '아방가르드 장르의 키취화/대중화' 역정에 큰 전환점이 되어줄 작품으로 기억될 것이다. 참고로 덧붙이자면, [Replica]에 수록된 10개의 트랙에서 '추임새'로 사용된 모든 샘플들은 80년대 TV 광고(음료수 광고, 비누 광고 따위의)에서 쓰여진 한물간 배경 음악들로부터 인용된 쏘스들이라고 한다. 이를 기반으로 "Child Solider"처럼 일반 일렉트로닉 뮤지션들이 자주 사용하곤 하는 마이크로샘플링을 주저없이 구사하는 모습 등을 미루어 볼 때 로파틴은 잠시 Mego 레이블 동료이기도 했던 크리스티안 페네스와 같은 고상한 컨템포러리 음악가보다는 오히려 Prefuse 73 같이 하위/키취문화를 난도질/장난질하는 무격식 펑키 뮤지션이 되고픈 충동이 이번 앨범에서 더욱 강해진 것 같기도 한데, 이처럼 대중과의 끈을 놓지 않으면서도 정형화된 루트를 초월하고자 하는 프리스타일 뮤지션으로써 로파틴의 음악적 풍모는, 대중과의 소통에 관한 융통성을 자의적으로 단절시키고 언제나 천편일률적이고 경직된 '자신만의 세계' 속으로 한없이 침참해들어가는 대다수 익스페리멘탈 뮤지션들에게 분명 시사하는 바가 많을 것이다. 게다가 [Replica]에서 아름답게 귓청을 울려대는 아날로그 신씨사이저 리프들의 탄탄한 멜로디, 싸이키델릭-드립팝-칠웨이브 텍스쳐를 오가며 안정적으로 지속해나가는 O.P.N.식 앰비언트 무드 등은 오히려 톤과 분위기에 무게중심을 더 두었던 전작 [Returnal]보다 훨씬 더 인간적이면서도 촉촉한 감촉으로 다가오니, 어찌 이보다 더 완벽한 앰비언트 익스페리멘탈 앨범이 만들어질 수 있단 말인가. 


RATING
:
84/100

written by
 BK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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