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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S/ELECTRONIC

MARGARET DYGAS: Margaret Dygas (2011)


2000년대 초-중반 마르쿠스 니콜라이, 리카르도 빌라로보스, 슈테판 골트만 등 명망있는 미니멀 테크노/마이크로하우스 아티스트들의 작품들을 쏟아냈던 독일 LP 전문 레이블 Perlon의 현재 입지는 과거 짧지만 화려했던 미니멀 테크노/하우스 전성기의 피크 능선에서 한참 내려와 자금난을 겪고 있을 정도로 상당히 쇠약해져 있는 형편이지만, 순수 테크노 씬의 좋지 않은 분위기 속에서 매니어들 위주의 조용한 스테디 셀러급 vinyl 앨범들을 꾸준하게 제작하면서 예전의 명성을 힘겹게나마 이어나가고 있다.

폴란드 태생(하지만 독일에서 성장했다고 한다)의 여성 DJ 마가렛 뒤가스(Margaret Dygas)는 현재 빌라로보스에 이어 Perlon 레이블이 집중적으로 밀고 있는 뮤지션 중 한명으로, 이미 주무대 영국 테크노 씬에서는 알아주는 여성 DJ로 인정을 받고 있으며 뉴욕 인텔리전트 일렉 음악 무대에도 꾸준하게 등장하면서 서서히 매니어들의 입소문에 오르내리고 있다. 패션스쿨 FIT에서 패션 디자인을 전공하고자 뉴욕에 체류하던 중 학교 친구의 손에 이끌려 놀러간 게이 클럽에서 우연히 접한 테크노 음악의 에너지에 매료되어 졸업 후 음악을 위해 '테크노의 메카' 런던으로 자리를 옮겨 메이크업 아티스트로써 파트타임을 뛰며 음악 창작과 클럽 디제잉 학습에 몰두했다고 한다. 그리고 입문 5년만에 런던 클럽 레귤러 DJ로 발돋움하여 오늘날에 이르고 있는데, 후천적 학습으로 쌓은 테크닉 치고는 꽤 훌륭한 (CD 턴테이블 기반의) 라이브 디제잉 스킬 이외에 오프스테이지(offstage) 랩탑 작업에 있어서도 레코딩 아티스트로써 손색이 없는 감각적 모습을 싱글 LP 등을 통해 꾸준하게 보여주고 있다.

작년 말 일본의 유명 인디 전자 음악 레이블 Powershovel Audio에서 첫번째 정규 앨범 [How Do You Do (2010)]가 발매되었는데, 그로부터 불과 반년만인 올해 5월 두번째 앨범 [Margaret Dygas]을 발표하며 왕성한 레코딩 창작욕구를 과시하고 있다. 일본 특유의 실험적 일렉 작업 스타일에 영향받은듯 추상적인 익스페리멘탈 음악에 크게 함몰되었던 전작에 비해 이번 작품에서는 전작에서 약간 억눌린 듯한 센티멘탈리티와 댄스삘의 융통성을 좀더 개방적으로 취해보는데, 이렇듯 그녀로 하여금 테크노에 몰두케한 근원적 시발점인 클럽 음악 지향적으로 좀더 신경을 써주면서 퀄리티나 대중친화성 면에서 전작을 능가하는 완성도를 압도적으로 드러내는데 성공한다.

전작 [How Do You Do]의 실험적 터치와 더불어 이번 작품 본연의 댄서블한 테마를 동시에 즐길 수 있는 오프닝 트랙 "Missing You Less"은 미니멀 테크노 특유의 스트레이트한 베이스 킥이 초반부터 종반까지 댄스 무드를 지속적으로 유지시키며 곡을 리드하고 있는데, 피아노 리프, 샘플 비트들을 포스트모더니즘 음악에서 자주 쓰이는 마이크로톤(microtone)으로 미니멀하게 정렬시키고 그 위를 부드러운 질감의 드론(drone) 사운드로 장식한 2분 가량의 초반부는 전작의 추상적 작업 방식이 물씬 느껴지는 패턴을 유지한다. 하지만 곧이어 페이드-인하여 비집고 들어와 발동을 거는 키보드 추임새와 함께 베이스라인, 심벌+하이햇, 멀티레이어 건반 멜로디 등이 추가적으로 깔끔하게 첨가된 4분가량의 중반부 섹션은 완전한 댄스 하우스의 분위기를 한껏 발산해내며, 이러한 업된 무드를 살짝 가라앉힌 종반부에서도 여전히 각자 악기 파트들의 연주들이 억양분명하게 자기 소리를 내며 9분 가량의 기승전결 확실한 댄스 서사시를 깔끔하게 정리/마무리해나간다.  

"Soon" 는 오프닝 트랙의 은근한 댄스 기운을 한층 표면 위로 끌어올린 곡으로, 숨김없이 박동하는 킥드럼과 베이스라인을 바탕으로 하우스 뮤직 전용 인디 클럽 라운지(100% 댄스플로어 용으로는 아직 애매한 구석이 조금 있다)에서 열렬하게 환영받을만한 테크하우스 성향의 그루브 텍스쳐가 노골적으로 드리워진 가운데 스크래치 턴테이블로 비트 저글링하듯 마이크로톤 성향의 샘플 비트/멜로디들을 비상한 타이밍으로 커팅하는 마가렛 뒤가스의 비트/템포 감각을 이 앨범 수록곡 중에서 가장 효과적으로 드러낸다. 

"Pressed For Time" 에서는 마림바 혹은 그외 이름모를 이국적 퍼커션 쏘스들을 초장부터 작렬시키며 트라이벌(tribal) 테크노 분위기를 한껏 조성함과 동시에 드럼 샘플들을 아기자기한 터치로 잘게 썰어(chopping) 힙합 스타일의 드럼 연주 패턴을 멋들어지게 만들어내며, "Country Way Of Life" 에서는 마치 튜닝 중인 드럼 사운드를 흩트려놓은 듯한 스네어 비트 파편들 사이로 앰비언트성 신디 음향과 추상적인 나레이션 조각들(자세히 들어보면 나레이션들 서로간의 연관성이 없다)을 무순서로 첨가하면서 묘한 환각적 무드를 연출해내기도 한다.

댄스 지향성을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41" 는 Kompakt 레이블 스타일을 연상시키는 '심장처럼 박동하는' 킥 비트를 조심스러운 양식으로 적용시키고 동시에 여성스러운(사실 이 표현 별로 좋아하지는 않지만) 터치가 느껴지는 카라멜톤의 베이스라인(사실은 미디 키보드로 연주해낸 베이스라인) 루핑으로 미니멀한 구조 속의 여백을 채우면서 가장 진중하면서도 소프트한 형태의 미니멀리즘 하우스 음악으로 완성되어진 트랙이다. 

클로져 "Obinh's Groove"은 위에서 언급한 모든 요소들이 최종적으로 종합되어 있는 트랙으로써, 앰비언트 효과음으로 자주 애용되는 SF적 멜로디 샘플(귀 기울여 들어야 함. 빠방하게 잘 들리진 않음)과 디트로이트산 테크노를 연상시키는 비트 샘플링을 기반으로 나레이션+퍼커션+건반 리프+하이햇 등이 변칙적인 패턴과 타이밍으로 미니멀하면서도 아기자기하게 어레인지되어 앰비언트적 실험성과 하우스적 댄스기운을 동시에 만끽할 수 있는 곡이다.
 
마가렛 뒤가스는 그다지 화려하거나 복잡한 미디/DJ 지식과 테크닉을 사용하는 마초 스타일의 뮤지션이 아니다. 다만 익스페리멘탈과 하우스의 오묘한 접점을 섬세한 감각과 삘에 의해 찾아내고, 미디 플러그인이나 최첨단 믹서들에 의존치 않으면서 단지 자신이 완벽하게 사용할 줄 아는 가장 기본적인 방식과 도구에 의해 신중한 형태의 미니멀 테크노 음악을 제조해내고 있는 것이다. 즉, 그녀의 음악은 클럽댄스 용으로 적합한 그루브와 템포, 리듬을 갖추었으면서도 동시에 포스트모더니즘 전용 미술관/갤러리의 리셉션 DJ 파티나 특별 조인트 전시회에도 어울릴 법한 꼼꼼하면서도 지적인 사운드 조각(sound sculpture) 작품으로써의 캐릭터까지 함께 지니고 있다. 그리고 이번 [Margaret Dygas] 앨범이야말로 '클럽' 과 '미술관' 의 분위기를 모두 아우르고자 하는 그녀의 취향이 이전에 발표된 EP, 싱글, 정규 앨범들보다 더 효과적이면서도 깔끔하고 부드럽게 (마치 파스텔 그림처럼) 표현된 수작이다. 


RATING: 82/100

written by Byungkwan C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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