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REVIEWS/ELECTRONIC

ZOMBY: Dedication (2011)


ZOMBY의 데뷔 앨범 [Where Were You in 92 (2009)]는 그라임(grime)의 향기가 느껴지는 백그라운드 사운드에 하드코어 테크노의 강렬한 비트와 드럼앤베이스 리듬/그루브를 얹어 가장 힙(hip)한 형태의 댄스플로어용 덥스텝 사운드를 창출해내어 일렉/덥스텝 매니어들의 열광적인 지지를 이끌어낸 바 있다. 특히 자메이카 댄스홀 음악을 연상시키는 정제되지 않은 텍스쳐의 아날로그 비트와 샘플 음향 사용방식은 분명 여타 얼치기 덥스테퍼들과는 차별화된 ZOMBY만의 학구적인 성향을 읽어낼 수 있었는데, 올해 초 뜬금없이 흘러나왔던 4AD 레이블과의 계약 소식은 그의 음악 성향에 일대 변화의 징조를 예감케 했던 뉴스거리로 기억된다. 

드림팝의 산실이자 UK 인디록의 산증인이지만 테크노 음악에 관해선 변변치 못한 이력서를 써온 4AD 레이블 하에 발매된 ZOMBY의 두번째 앨범 [Dedication]에는 '덥스텝' 이라고 뭉뚱그려 카테고리화하기에는 애매한 스타일의 사운드들이 대폭 담겨 있는데, [Where Were You in 92]가 아날로그 비트와 댄스 스타일 BPM의 향연으로 가득했다면, [Dedication]는 ZOMBY만의 아이덴티티로 자리매김되었던 비트감과 댄스기운 넘치는 덥스텝의 아우라를 과감하게 지워버리는 모험을 감행하면서 그 빈자리를 사운드스케잎/시퀀스 지향의 개념 예술(conceptual art)적 터치로 매꿔놓았다.  

단순무식한 4비트 베이스킥이 리듬파트 레이어의 전부인 "Digital Rain" 만 들어도 알 수 있듯이, [Dedication]에서는 전작에서 화려하게 뽐냈던 변칙적 덥스텝 지향 비트리듬의 복잡다양함이 "Things Fall Apart" 를 제외하고는 자주 발견되지 않는다. 그 대신 리듬들은 규칙적이면서도 단선적인 패턴으로 미니멀하게 어레인지되어 있으며 기타 모든 음향 쏘스들은 신디싸이져 등의 억양 강한 건반 리프에 의해 리드되고 있다. 하지만 그 미니멀한 구조로 드문드문 흩뜨려 놓은 비트/샘플들은 전작의 Akai 아날로그 감촉을 여전히 잃지 않고 있는데, 특히 "Vortex" 는 앨범 수록 트랙들 중 미니멀+아날로그+힙합에 관한 ZOMBY의 애정을 가장 교과서적으로 보여주는 트랙으로, 전작에서 느꼈던 그라임의 전형적 모습을 모처럼 끄집어내면서 DJ 스핀용으로 제격인 힙합 그루브의 풍모를 시종일관 살벌하게 유지해내고 있다. 또한 클래식 현악기와 피아노의 합주가 과감하게 차용된 Resolve", 고급스러운 노래 제목만큼이나 단아하게 트랙 위를 수놓는 컨템포러리 재즈 피아노 솔로 리프가 인상적인 "Basquiat" 등의 트랙에서는 인디와 써브컬쳐적 반항기에서 벗어나 성숙미를 뽐내보고자 하는 그의 의지(혹은 달라진 취향?)를 꿰뚫어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이번 앨범을 컨셉 위주의 사운드스케잎 지향 음악 루트를 진정으로 타고자 했다면 수록곡들의 러닝타임을 조금 더 길게 가져줬으면 하는 아쉬움도 남는다. 이번 앨범 수록곡 중 가장 긴 러닝타임을 자랑하는 (4분 6초)  "Natalie Song" 같은 경우(이 곡은 러시안 팝 싱어 이리나 듀브코바의 히트 싱글을 샘플링했다) 넉넉한 러닝 타임을 등에 업고 다양한 레이어의 비트와 음향 샘플을 유효적절하게 배치하고 4AD 레이블 특유의 기괴한 분위기의 여성 보컬 샘플 텍스쳐까지 잘 살려내면서 BURIAL 못지 않은 고딕한 분위기를 완벽하게 잡아내고 있지만, 나머지 곡들은 ZOMBY가 살려내고자 했던 앰비언스를 미쳐 잡아낼 새도 없이 1~2분을 채 넘기지 못하고 황급하게 끝맺어버리기를 반복하면서 음악 자체의 깊이와 집중도를 동시에 약화시키는 패착을 불러오고 있다. 비트의 향연으로 일관된 전작의 이미지를 계속 유지하고 있다면 러닝타임은 문제거리도 아니겠지만, [Dedication]은 분명 힙합 인스트루멘탈 앨범이나 샘플링 CD 같은 만들고자 의도된 앨범은 절대 아니라는 사실. 컨셉적인 느낌으로 강하게 밀어부치고자 비트와 그루브감은 드라마틱하게 제거시키고 신디음을 적극적으로 도입하는 강수를 두었으나 2분도 채 안되는 러닝타임은 그가 내세우고자 했던 '음산한' 사운드스케잎 속으로 깊이 빨려 들어가기엔 너무 시간이 짧다.

비록 대부분의 수록곡들이 한입거리도 안되는 길이임에도 불구하고 [Dedication]에서 ZOMBY가 시도해본 이런저런 짧은 어프로치들을 한데 모아 전체적인 윤곽으로 앨범을 바라봤을 때 음침한 기운을 내뿜는 기괴한 sci-fi적 컨셉은 분명 감지되고 있다. 절제된 힙합 아날로그 비트와 다양한 음색의 건반 솔로리프를 미니멀한 프레임 안에서 반죽시켜 BURIAL 스타일의 암울하고 어두운 풍모를 잔뜩 머금은 '덥스텝 같지 않은 덥스텝'  사운드가 담긴 [Dedication]은 분명 기존의 ZOMBY 음악 스타일에 익숙해져 있는 이들에게 색다른 경험을 제공할 것이다. 하지만 이 앨범에서 가장 눈에 띄는 싱글들로 모든 이들이 이구동성으로 "Natalie Song" 혹은 "Vortex" 같은 댄서블 트랙을 꼽고 있는 점에서 반증하듯 ZOMBY의 재능은 앞으로도 '음산함' 의 테마로 시종일관 밀어붙인 [Dedication]식보다 정제되지 않은 감각적 음원 파편들이 덕지덕지 들러붙은 레이브 덥스텝의 대향연 [Where Were You in 92] 와 같은 자유분방한 스타일에서 더 찬란하게 빛을 발할 것이다.

RATING: 68/100

written by Byungkwan Cho

'REVIEWS > ELECTRONIC' 카테고리의 다른 글

RUSTIE: Glass Swords (2011)  (3) 2011.10.18
MARGARET DYGAS: Margaret Dygas (2011)  (1) 2011.08.13
TRICKSKI: Unreality (2011)  (0) 2011.07.02
MOBY: Destroyed (2011)  (4) 2011.06.24
BRUNO PRONSATO: Lovers Do (2011)  (0) 2011.06.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