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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S/ALT & INDIE

HER SPACE HOLIDAY: Her Space Holiday (2011)


'전직 이모코어 로커' 라는 씁쓸한 수식어구를 15년 동안 달고 살았던 비운의 싱어송라이터 마크 비안키(Marc Bianchi)는 자타가 공인하는 '멜랑꼴리맨' 이지만 그의 포크 감수성은 팀 버클리(Tim Buckley), 엘리엇 스미스(Elliott Smith) 같이 지독한
염세주의로 치닫지도 않고, 그렇다고 엔스 렉만(Jens Lekmann)처럼 밉살스러운 나르시시즘도, 본 이베르(Bon Iver)처럼 섬세한 음악성도 수반하지 않는 안전한(혹은 평범한) 수준의 깊이에 항상 머물러있다. 게다가 그동안 인디 무대에서 그다지 적극적인 행보를 보여주지도 않아 항상 지리멸렬한 상황에 처할 수 있었음에도 꽤 오랜 기간 동안 골수 인디팬들의 입에 꾸준히 오르내려왔던 특이한 인물이기도 하다. 특히 이 무명 뮤지션의 앨범 [The Young Machinces (2003)]가 2004년 STEREOLAB, DNTEL, ARAB STRAP, MATMOS 등 당대 최고의 인디 일렉트로니카 뮤지션들에 의해 리믹스되어 한장의 완전한 앨범으로 재탄생되었던 '사건'은  인디뮤지션으로써 마크 비안키의 존재감을 인디팬들에게 크게 일깨워주었던 결정적인 계기가 되기도 했다.

밴드 탈퇴 후 소규모 레이블 설립/제작자로 활동하면서 심심풀이로 만든 DIY 원맨 프로젝트 'HER SPACE HOLIDAY'가 시작 때와는 달리 인디씬에서 일정한 주목을 꾸준하게 받으며 십수년간 '가늘고 긴' 생명력을 보여줬던 이유는 바로 서두에서 언급했던 그 H.S.H.식 '평범한' 멜랑꼴리함과 센티멘탈리즘이 일반 팝음악처럼 누구든 쉽고 가볍게 이해하고 느
낄 수 있는 상태를 앨범에서 항상 유지해왔기 때문일텐데, 특히 초기 작품들([Home Is Where You Hang Yourself (2000)], [The Young Machines] 앨범을 들어보라)에서 마크 비안키의 팝 보컬을 수수하면서도 깔끔한 톤으로 장식하던 IDM 제조공법의 랩탑 배킹 사운드는 HER SPACE HOLIDAY식 평범모드 인디팝 음악의 가치를 배가시키는 감초역할을 톡톡히 해주기도 했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마크 비안키가 초기 HER SPACE HOLIDAY 시절 들고 나왔던  그 아날로그 감성의 인디팝 스타일은 DNTEL/POSTAL SERVICE와 2000년대 초반 독일 Morr 레이블 소속 그룹들이 보여줬던 인디트로니카(감상적 팝보컬과 IDM식 루핑 샘플과의 조합으로 탄생된 변종 미니멀 인디팝)와 시기적으로 그 궤를 같이 하던 것으로써 오늘날 '칠웨이브'라고 명명되어진 그 힙스터 된장 음악들의 원조격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랩탑 소프트웨어를 통해 비
트의 루핑과 추상적인 필터링 요법으로 여백감 풍부한 전자 배킹 사운드를 만들어냈던 원맨 프로젝트로써의 DIY 풍모는 안타깝게도 최근 그의 음악에서 상당히 희미해져 있다. 특히 전작 [XOXO, Panda & The New Kid Revival (2008)]은 보석같은 장기였던 '랩탑 테크닉'이 거의 발휘되지 않은 대신 복고풍의 기타/밴조 사운드와 해먼드 올갠이 주를 이루는 아메리카나(Americana: 미국 전통색이 강한 컨트리/포크 등의 음악들을 통칭하는 단어/장르) 지향적 90년대 미국 칼리지록/인디록 음악에 경도된 듯한 인상이 상당히 강했다. 그리고 더이상 벤 기버드(POSTAL SERVICE)처럼 노래부르기를 포기한 마크 비안키의 보이스는 스티븐 말크무스(PAVEMENT)나 로버트 슈나이더(APPLES IN STEREO) 등 90년대 미국 인디팝 보컬리스트들의 보이스 텍스쳐에 기본적으로 닮아있지만 가사의 본질을 좀더 구체적이고도 명확한 역양으로 표현하려는 듯한 보컬 스타일은 오히려 존 레논(비틀즈 탈퇴 이후의)에 더 가깝게 들리기까지 했다.

이번 앨범을 끝으로 더이상의 'HER SPACE HOLIDAY'라는 이름을 건 솔로 활동(또는 음악 활동)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힌만큼 HER SPACE HOLIDAY 프로젝트의 마지막 앨범이 될 이번 신보의 제목은 셀프 타이틀 [Her Space Holiday]. 이번 앨범 역시 [XOXO, Panda & The New Kid Revival]과 마찬가지로 IDM 인디트로니카가 아닌 로파이 쟁글(jangle) 기타가 가미된 복
고풍(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90년대 초-중반)의 미국 인디록을 앨범 프레임웍의 표준으로 삼고 있다. 거기에 빅밴드적인 요소를 훨씬 더 강화시키면서 NEUTRAL MILK HOTEL의 토속적이면서도 드라마틱한 인디 사운드 질감도 훨씬 더 배가되었고 초기 시절부터 HER SPACE HOLIDAY 배경 사운드의 핵심적 요소 중 하나였던 관현악기들 역시 풍성하게(?) 사용하면서 앨범에 오케스트레이션의 화려하면서도 고상한 풍모까지 끌어들여져 있다. 이렇듯 오케스트라+빅밴드용 악기들이 총동원됨과 동시에 최근 급격하게 모습을 감추었던 샘플링 사운드까지 일부 트랙(7번째 트랙 "Ghost In The Garden"을 들어보도록)에서 뚜렷하게 들려지는 등 마치 그가 여러 앨범들을 여지껏 제작하면서 사용해왔던 모든 음원 소스들을 탈탈 털어 쏟아부은 듯 다양한 종류의 배킹 사운드들이 이번 마지막 앨범에서 한꺼번에 등장하고 있다.

그동안 마크 비안키는 소소한 일상에 관한 예민한 감상들을 앨범 가사의 소재로 채택하면서도 자신의 멜랑꼴리한 감정들을 우울질 성향으로 증폭시키지 않고 적절한 통제를 해가며 중립적 팝 억양으로 담담하게 묘사해왔었는데, 실제로 이번 [Her Space Holiday] 앨범에서는 마크 비안키 특유의 깔끔한 팝 멜로디 본능에 힘입어 벤조의 사용 등으로 전작 [XOXO...]에서 칙칙하게 자리잡았던 아메리카나 스타일의 구닥다리 컨트리+포크 뉘앙스가 상당히 많이 제거되어 있는 모습을 접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창작 프레임웍(framework)의 근본적인 변화, 즉 '칠웨이브의 원조'로 간주될만큼 DIY 원맨밴드 형식으로 나름의 영역을 조용하게 개척해가던 마크 비안키가 별안간 랩탑을 내려놓고 빅밴드와 클래식 악기 연주자들을 동원하고자 한 음악적 궤도변경은 결국 마지막 앨범에서도 특별한 음악성을 살려내지 못한채 밋밋하게 끝나버리고 만다. 팝 보컬리스트로써, 그리고 그 보컬라인을 만드는 작곡가로써 마크 비안키의 역량은 애초부터 한계를 드러냈던 바였지만(아마추어적인 메이저 코드들 위주의 단조로운 조합에 의존하여 프레이즈들을 구성한다),
미니멀한 프레임 안에서 드럼 비트와 키보드 리프 등의 음원 소스들을 랩탑에 의해 루핑시켜 간소하면서도 깔끔한 DIY 일렉트로닉 팝의 풍미를 엮어내는 능력이 있었기 때문에 이러한 태생적 결점들이 커버될 수 있었던 것이다. 결국 어정쩡한 탄생배경과 미숙한 음악적 캐릭터를 가진 HER SPACE HOLIDAY의 이미지를 그나마 특별하게 만들어 줄 수 있는 옷은 IDM 랩팝(lap+pop) 음악컬러가 강화된 POSTAL SERVICE와 같은 댄디한 파스텔색 셔츠지만 정작 마크 비안키는 이를 벗어던지고 자꾸만 잼 사운드, 빅밴드, 오케스트라, 그리고 평범한 포메이션의 록 악기들을 '로파이'라는 믹서 안에 한꺼번에 쳐넣고 갈아대면서 제2의 NEUTRAL MILK HOTEL, PAVEMENT, APPLES IN STEREO, OLIVIER TREMOR CONTROL와 같이 너덜너덜한 구제옷을 입으려고 애를 쓰고 있는 것이다.

어찌됐든 팝감수성 풍부한 멜랑꼴리 톤만큼은 그동안 나름 일관적으로 유지시켜왔던 HER SPACE HOLIDAY의 마지막 앨범 [Her Space Holiday]은, 감성적 측면에서
전작 [XOXO...]의 토속적 무드보다 초기 앰비언트+미니멀리즘 형태의 [Home Is Where You Hang Yourself], [The Young Machines] 앨범에서 주류를 이루었던 댄디한 팝 무드에 조금 더 근접해 있는 듯 하지만, 정작 음악적 측면에서 잘못된(?) 형식론을 고수하는 답답함을 끝내 떨쳐내지 못하면서 특색없는 팝과 특색없는 포크록의 중간단계 완성품으로 평범하게 매조지되어버리고 만다. [Her Space Holiday]가 발매된 지 벌써 3달이 넘은 지금 뜬금없는 리뷰글에 고개를 갸우뚱할 수도 있겠지만, HER SPACE HOLIDAY가 한국을 방문하게 되는 판국에 제대로 된 리뷰글 하나 발견할 수 없어 공연 관람에 도움이 되고자 졸필을 이렇게 늦게나마 올린다. 아무쪼록 즐거운 공연 되시길... 


RATING: 59/100

written by BK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