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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S/ALT & INDIE

GAUNTLET HAIR: Gauntlet Hair (2011)


앤디 알(Andy R), 크레이그 나이스(Craig Nice), 이 두 명의 젊은이들로 구성된 미국 콜로라도주 덴버 출신의 인디 듀오 GAUNTLET HAIR의 스타일은, 모노 필터링으로 한없이 뭉개진 데뷔 앨범 [Gauntlet Hair]의 혼탁한 음질만큼이나 애매모호한 이중적 성향을 띄고 있다. 즉, 지독한 퀄리티의 로파이 사운드 텍스쳐, 그리고 두서없는 디렉션과 전개과정 등 80년대 중반-90년대 초반 미국 인디 노이즈 팝 특유의 이질적 아방가르드 작업 방식
을 적극 차용하고자 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오리지널 사운드 쏘스들을 따라다니며 리버브/에코 이펙팅과 달콤쌉싸름한 보컬 멜로디라인/톤을 끈질기게 삽입하는 등 대중지향적 음악에 대한 욕심까지 더불어 드러낸다고나 할까.

GAUNTLET HAIR의 데뷔 앨범 [Gauntlet Hair]는,
마치 ANIMAL COLLECTIVE처럼 '아방가르드 실험성의 인디팝화'라는 난해한 어프로치를 도모하고자 하는 거창한 대의와는 달리 무분별한 '레이어(layer) 접합'의 폐단을 가장 극명하게 드러내는 작품이기도 하다. 앨범 재킷에 있는 사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 지는 아주 확실치는 않으나 스케이트보드 같은 것을 타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귀에 이어폰을 꽂고 스케이트보딩/스노보딩을 감행할 때 취하는 그 자유로운 무브먼트처럼 이들은 즉흥적/무격식의 프리스타일에 입각하여 자신들에게 음악적 영감을 주었던 모든 쏘스들(힙합, 록, 슈게이징, 인디 DIY, 로파이, 브레이크비트, 딜레이, 트레몰로, 킥드럼)을 레코딩 프레임 위에 '본능적으로' 덧씌우기를 반복한다. 그리고 레이어와 레이어를 서로 덧대고 남은 모든 솔기들은 로파이 프로덕션에 의해 '사포질하듯' 철저히 제거되는데, 이러한 로파이-모노 공법으로 인해 사운드 본연의 엣지(edge)들까지 불필요하게 커팅되면서 '제거되지 않아야 할' 세세한 질감까지 덩달아 밋밋해져버린데다가 GAUNTLET HAIR가 이번 앨범을 통해 전체적으로 담아내야 할 음악적 방향성과 포인트까지 본의아니게 무뎌져버리는 결과를 초래하고 만다. 이들의 라이브가 한국에서 성사될지의 여부는 현실적으로 숀 패트릭 메일론만의 독단적 취향에 좌지우지되고 있는 상황이지만, 행여나 GAUNTLET HAIR의 라이브 공연이 언젠가 성사되는 기적이 일어난다면 꼭 이를 참관을 하도록. 왜냐면 이들은 '스튜디오 밴드'라기보다는 '라이브 밴드'에 가깝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언제나 출중한 라이브 실력을 보여주니까 말이다. 앤디 알의 라이브 기타 실력도 실력이지만 무엇보다 크레이그 나이스의 변칙적이면서도 정확한 드러밍은 GAUNTLET HAIR 사운드의 가장 중추적 역할을 담당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인상적인 연주력을 거침없이 과시한다(아마 2000년대 이후 나온 인디록 드러머 중 톱 20 안에 꼽힐 수 있을 정도로 개성과 기량을 동시에 갖춘 친구다). 이번 앨범 안에서도 그의 드럼 실력은 첫번째 트랙부터 마지막 트랙까지 복잡다양한 패턴으로 쉴새없이 발휘되고 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극단적인 로파이 필터링으로 인해 그의 보석같은 하이햇 킥 + 베이스 킥 콤비네이션은 음악 안에서 괴상한 감촉의 사운드로 변형되어버리는데, 즉 하이햇/심벌과 스네어 타격은 로파이에 의해 상당량 뮤트되어 초라한 중량감으로 프레임 안에서 흩뿌려지는 반면에 하이햇 킥과 베이스 킥은 귀에 거슬릴 정도로 과도하게 강조되면서 몽환적 로파이 무드의 전체적 밸런스를 지속적으로 무너뜨린다(일단 "That's Your Call"를 한번 들어보라). 여기에 GAUNTLET HAIR 사운드의 또다른 트레이드마크인 리버브 이펙팅은 따분하다 싶을 정도로 똑같은 억양과 톤으로 로파이 사운드 프레임 위에서 부유하는 보컬과 기타 리프를 동시에 마구잡이로 필터링해대는데, '드럼킥'과 '리버브' 이 두 가지 요소는 본질적으로 GAUNTLET HAIR 사운드의 핵심 요소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들은 '로파이'와 '스타일' 사이의 딜레마를 극복하지 못하고 오히려 앨범의 종합적 밸런스/완성도를 낮추게 만드는 주범이 되어버린다.

음악적 아이덴티티의 관점에서 GAUNTLET HAIR의 음악을 바라본다면, 이들은 로파이 인디록의 확고부동한 기반 하에 슈게이징(팝적인 요소로써의)과 아방가르드(프리스타일)이라는 상이한 스타일의 공존을 일차적으로 모색하고자 하는 듯하다. 물론
M.B.V. 주도의 UK 슈게이징과 SMASHING PUMPKINS의 영향하에 탄생했던 90년대 중반 미국 슈게이징 인디록 음악의 감수성을 노골적으로 재현하는 오프닝 트랙 "Keep Time"에서 GAUNTLET HAIR은 인디 텍스쳐를 로파이 프로덕션 하에서 완벽하게 유지하며 슈게이징과 아방가르드의 접점을 그럴싸하게 찾아내는 면모를 과시하지만, 나머지 트랙들에서는 "Keep Time"에서와 같은 멜로디 훅과 팝센스가 '아방가르드'라는 미명 하에 즉흥적, 무순서로 조합된 음원 레이어 더미 속으로 완전히 파묻혀버렸다고나 할까. 아방가르드한 인디록 형식 안에서 실험적인 어프로치를 자유자재로 섞어내지만 그 혼란스러운 구조 안에서 놀라울 정도로 정돈된 레이어 배열과 팝적인 센스를 절절하게 뽑아내는 ANIMAL COLLECTIVE의 음악과 비교할 때 GAUNTLET HAIR의 이번 데뷔작은 분명 여러모로 모자람이 많아 보인다. SEBADOH, 존 스펜서, 대니얼 존스턴 등이 예전에 보여줬던 복고 로파이의 질감이 질퍽하게 느껴지는 GAUNTLET HAIR 음악 텍스쳐는 높은 강도의 인디적 풍모를 지니고 있긴 하지만 그 '복고 DIY 인디 질감'을 재현시킨 '성과' 이외에는 이번 앨범에서 그 어떠한 방향성이나 논점, 목소리를 형상화내지 못하고 말았다. 물론 이 앨범이 미디어나 대중들 사이에서 공공연히 회자될만큼 GAUNTLET HAIR가 지명도 높은 밴드가 아니긴 하지만 내심 이들의 데뷔앨범을 조용히 기다려왔던 일인으로써 조금은 실망스러움을 안겨주는 작품이다.

RATING: 57/100

written by BK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