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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S/ALT & INDIE

THE PAINS OF BEING PURE AT HEART: Belong (2011)


사전 신청에 의해 쓰여진 리뷰입니다. 신보 아닙니다.

20세기 최고의 컬트 명작 M.B.V. [Loveless]가 튀어나왔던 1991년을 정점으로 급격한 쇠퇴를 맞이하며 철지난 하급장르 쯤으로 버려지면서 한동안 주류 사회에서 소외된 찌질이 나르시시즘 오덕후들만의 마이너리그 경연장으로 전락했었던 '슈게이징(혹은 슈게이즈)'은 복고 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는 현 21세기에 일렉트로(니카)와 동시에 맞물려 제2의 전성기로 나래를 펼치고 있다. 90년대 후반 M.B.V.의 해체, RIDE가 행한 컨트리 뻘짓([Tarantula (1996)]의 실망감은 그해 모든 슈게이징 팬들이 경험한 최악의 악몽이었을 것이다), 4AD 드림팝 세력들의 대량 몰살 등의 악재와 함께 팝 지향적인 브릿팝 인베이젼, 마초 지향의 미국 그런지/얼터너티브 사이에서 샌드위치가 되어버리면서 주류라고 할 만한 아무런 슈게이징 리더들이 없는 형국에 빠져버리고('포스트 슈게이저'로 한때 칭송 받던 VERVE 역시 [A Storm In Heaven] 이외엔 그다지 슈게이징이라는 카테고리 속에 굳이 잡아넣어야 할만한 모습을 이후 보여주지 않았다) 이런 가운데 슈게이징 씬은 창의성이 실종되어 [Loveless] 카피 경연장을 방불케하는 클리쉐이(cliche) 사운드 집합소의 성격을 띄는 그야말로 '빛 좋은 개살구'가 되어버렸는데, 물론 난잡한 리버브/딜레이 기타 리프들로 무주공산 슈게이징씬을 쓸쓸하게 지켜나갔던 Projekt 레이블 소속 밴드들(LOVESLIECRUSHING 등등) 등 일련의 일편단심 마.블.발.빠들이 보여줬던 십여년간의 노고는 분명 눈물겨운 것이었으나 '1991년'의 향수에만 젖어 응용능력 제로의 시대착오적 음악들을 무의미하게 방출했던 그 때 그 시절의 암울한 모습은 '슈게이징빠'를 자처하던 음악매니어들에게도 여간 실망스러운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최근들어 '주류' 인디계에서 다시 불어닥치고 있는 슈게이징 붐은 기존에 행해지던 '따라하기' 형태와는 약간 다른 양상으로 전개되어오고 있는데, 지난 2011년 한해만 보더라도 우린 슈게이징의 엑기스들이 외부 써브장르와 연계되어 다양하게 응용되어진 고퀄 작품들을 다량으로 접할 수 있었다. 구가다 변종장르 슈게이징과 신흥 변종장르 칠웨이브와의 랑데뷰 접목에 성공했던 NEON INDIAN의 [Era Extraña], 페티쉬와 일렉트로 비트간의 엉성한 융합을 드림팝 센티멘탈리즘으로 능글맞게 포장한 PICTUREPLANE의 [Thee Physical], 로파이의 먼지가 극도로 흡착된 이질적 풍모의 슈게이징/네오 싸이키델릭을 선보였던 PURE X의 [Pleasure]와 SPECULATOR의 [Nice], 슈게이징을 Kranky 레이블식의 노이즈/드론 베이스 음악으로 재해석한 BELONG의 [Common Era] 등등등...  심지어 이 곳에서 최신  인디록 관련 앨범 리뷰글들을 쓸 때마다 '슈게이징' 이란 단어를 음악 성분 묘사/분석 중 무의식적으로 남발하고 있는 필자 자신에 대해 스스로도 가끔씩 흠찟 놀랄 정도인데, 그만큼 요즘 음악 쏘스들을 논할 때 '슈게이징'은 (적어도 트랜디 인디록 음악 씬에서만큼은) 로파이, 아날로그 만큼이나 흔한 성분이 되어버렸고 역설적으로 이는 새로운 음악 성향으로 다시 극진한 대접받고 있는 슈게이징의 환골탈태한 면모를 대변해주는 바이기도 하다.

미국 뉴욕 출신의 쿼텟 THE PAINS OF BEING PURE AT HEART는 아마 오늘날 많은 신진 뮤지션들이 관심을 가지고 있는 '슈게이징의 응용' 이라는 화두에 대해 평범한 듯 하면서도 예리한 시선으로 접근하고 있는 몇 안되는 인디 밴드 중 한 팀일 것이다. 이들은 브룩클린 힙스터 뮤지션 특유의 아마추어리즘을 음악 내-외적으로 아주 자연스럽게 지니고 있는 친구들인데, 튀지 않는 외모와 옷차림에 브룩클린 거리 위에서 스케이트보드를 타고 다니며 아이폰으로 수다를 떠는 평범한 이십대의 모습을 연상한다면 아마 멤버들의 외형을 머릿 속에서 제법 정확하게 그려낼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음악적으로 보더라도 명망있는 록밴드로써 갖춰야 할 덕목인 '화려한 테크닉' 혹은 '독창적인 연주솜씨' 따위는 (지금 소개할 [Belong] 앨범만 들어봐도) 이들에게서 크게 기대할 수 없을 것이다. 물론 "My Terrible Friend"에서 나름 화려하게 수를 놓는 하이햇 드러밍 사운드라든지 "Heart in you Heartbreak"에서 굵직한 인트로를 선보이는 베이스라인, "My Terrible Friend"에서 마치 THE CURE의 키보디스트가 된 양 달콤쌉싸름한 무드를 조성하는 키보드 리프, 그리고 매 트랙마다 킵 버먼(Kip Berman) 자신이 구사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것들을 다 짜내듯 선보이는 슈게이징/드림팝 기타 패턴 등 멤버들 저마다 록 연주자로써의 가장 최소한의 자존심을 앨범 구석구석 수줍게 드러내긴 하지만 이들이 취하는 연주 테크닉-자세 등을 전체적으로 냉정하게 따져보자면 연주자로써 끄집어내어 서술할만한 개성적인 구석은 거의 제로에 가깝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 연주 파트들이 유기적으로 뭉쳐 터트리는 최종적 연주 사운드는 놀라울 정도로 깔끔하고 타이트하다. 이는 아마추어리즘을 음악적 센스로 극복해낸 YUCK의 앨범의 풍모와 제법 유사한 면이 있는데, '뼛 속까지 슈게이징'이 아니면 취할 수 없는 유연하면서도 자연스러운 고감도 슈게이징 노림수들을 매 트랙마다 옴니버스 형식(나쁘게 말하자면 기존 슈게이징/드림팝 기타밴드들의 특징들을 자의적으로 뽑아내어 짬뽕시켜냄)으로 단아하게 터트려대는 리더 킵 버먼(보컬, 기타)의 노련한 음악 센스는 멤버들의 보잘 것 없는 무개성-무테크닉 연주 능력들을 하나로 묶어내어 커다란 '슈게이징풍' 유채화 그림을 컬러풀하게 그려내게 하는 구심점이자 토대로써의 역할을 훌륭하게 수행해주고 있다. [Belong]이 이뤄낸 승리의 또다른 원동력은 바로 스튜디오 작업에서 기인한다. 2009년 미국 네티즌들에 의해 최고의 주목을 받았던 데뷔 앨범 [The Pains of Being Pure At Heart]와 연이어 나온 EP 앨범에서 드러낸 퍼즈 기타톤은 로파이와 제법 잘 물려드는 맛이 분명 있었지만 반대로 로파이 특유의 거친 인디 질감 자체는 십분 활용하지 못한 게 사실이었다. 이들은 오래전부터 꾸준하게 이용해왔던 로파이 시스템을 과감하게 버리고 하이파이로 사운드 자체를 변환하는 모험을 바로 이 [Belong] 앨범에서 시도하는데, 결과적으로 선천적으로 허약해빠진 악기들 개개인의 억양들을 좀 더 단단하게 강화시키고(특히 노이즈스러운 기타 퍼즈/딜레이/리버브/피드백 음들을 마치 SMASHING PUMPKINS의 앨범을 듣는 듯 깨끗한 톤으로 완벽하게 잡아냈다) 여기에 킵 버먼의 평균 수준(카리스마도 없다) 보컬 사운드를 맥시멈 레벨의 슈게이징 감촉으로 끌어올리면서 음원 하나하나가 귀에 착착 들려붙는 듯한 안정감과 생동감을 이 하이파이 시스템 하에서 뽑아내는 개가를 올리는 데 성공한다(이는 분명 근간에 이뤄진 로파이 - > 하이파이 변화시도들 중 가장 빛나는 성과에 다름아니다).

또한 이들 음악의 질적인 향상 역시 [Belong]에서 언급하지 않을 수 없는데, '슈게이징'이라는 단편적 카테고리에서 살짝 비켜서서 과거 C86 그룹의 쟁글팝이나 THE FIELD MICE의 트위팝에서 즐겨 써먹었던 클린톤 기타워크, 소프트 드러밍, 럭셔리 팝 보컬 멜로디까지 적극적으로 도입하면서 기존 슈게이징 아류들이 즐겨 써먹는 뻔하디 뻔한 멜로디 훅과는 사뭇 다른 패턴의 달콤함과 속도감, 감수성을 뽑아내고 있다는 점 역시 이 앨범이 주는 묘한 매력 중의 하나일 것이다. 특히 거친 슈게이징 텍스쳐(그렇다, 거칠다. 슈게이징의 이율배반적 매력은 바로 이 거친 텍스쳐에서 원초적으로 시작된다)를 솜사탕같이 가볍고 말랑말랑한 트위팝식 센티멘탈리즘로 부드럽게 다듬어내어 애사롭지 않은 달달한 어조의 멜로디 훅을 양산하는 장관의 배후에 바로 전설적인 인디 레이블 Slumberland가 있다는 사실 또한 이 앨범의 트위 응용법에 더욱 만족과 신뢰를 심어주는 요소로써 작용하고 있는데, 90년대 미국 트위팝 무브먼트에 큰 역할을 담당했던 레이블의 노련한 안목과 디렉션까지 더해지면서 [Belong]은 다수의 네오 슈게이져들에게 상대적으로 결여되었던 융통성과 개성을 한껏 발산하며 단정한 팝 멜로디 훅들을 굉장히 안정된 형태로 생성시켜나간다.

물론 이번 앨범의 단점도 뚜렷하게 보인다. 서두에 장황하게 언급했던, '원조 슈게이징의 쇠락과 부활' 사이의 과도기에서 갈피를 못잡던 그 클리쉐이들의 따라하기 본능이 이들의 음악에도 완벽하게 필터링되지 못한 채 여전히 남아있다는 점. 물론 뮤지션 혹은 아티스트로써 누군가에 영향을 받았다는 점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 아니겠는가. 밴드가 해체되는 그날까지 영원한 표본이 되어줄 고전 슈게이징의 텍스트들을 [Belong]에서 자기 방식대로 응용하는 성과를 이뤄낸 이들마저도 불시에 터져나오는 과거 슈게이징 레전드의 아우라를 완전 걷어낼 수는 없었나보다. M.B.V. 식 슈게이징 모드를 가동하는 오프닝 트랙 "Belong"에서는 공허한 여백 안에서 느릿느릿한 템포 그루브를 타고 깨끗하게 터트리던 SMASHING PUNMPINS의 디스토션 기타웍('표절대마왕' 서태지도 우매했던 대중들 상대로 자주 써먹던), "Heart in you Heartbreak"에서는 CURE와 NEW ORDER의 상승감/질주감 넘치는 베이스라인, "Even in Dreams"에서는 비운의 밴드 ADORABLE의 몽환적 보컬 하모니("Sunshine Smile"을 들어보라), "My Terrible Friend"에서는 CURE의 머쉬멜로우 키보드 라인("Just Like Heaven""Inbetween Days"를 들어보라), "Girls of 1000 Dreams"에서는 JESUS & MARY CHAIN가 즐겨 써먹던 퍼즈 기타와 드럼 패턴 등등 원조 슈게이져들의 환영들이 '완전 100% 자연산 TPOBPAH 아이디어'라고 보기 힘들 만큼 뚜렷하게 감지되곤 하는데, 비록 앞서 얘기했던 '트위 필터링' 의 효과로 인해 슈게이징 클리쉐이들의 따라하기 본능은 상당 부분 억제되어 있으나 순진한 감수성이 달달하게 녹아나있는 [Belong] 속 음악들을 완전무결한 TPOBPAH식 사운드로 철썩같이 믿고 있던 팬들에게 여러모로 떨떠름한 뒷맛을 남기게 하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하이파이 프로덕션 하에서 밴드 음악다운 골격, 슈게이징과 트위 간의 밸런스를 제대로 잡아내면서 데뷔 앨범 시절의 설익은 면모를 한층 업그레이드시킨 이들의 두번째 앨범 [Belong]은 특히 감수성 어린 멜로디와 록 기타플레이의 앙상블로 대변되는 슈게이징의 새로운 21세기식 이미지를 갈망하는 젊은 인디 음악팬들에게 분명 필청 아이템으로 부족함이 없는 완성도를 보여준다. 이들의 역사적인(?) 내한공연을 앞두고 이런 양질의 슈게이즈 팝 앨범을 소개하게 되어 무한한 영광이라는 말 아울러 덧붙이며....

RATING77/100

written by BK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