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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2.08 20:52


"don't wanna lose"

70년대말부터 80년대초에 이르기까지 펑크록 탄생의 궤적에 발맞춰 메인스트림록계를 풍미했던 파워팝(power pop)의 위세는 상당했다. 요즘에도 미국판 7080 백인 아저씨들을 위한 AFN 심야 라디오 방송을 듣게 되면 줄기차게 튀어나오는 얄팍한 록음악들이 바로 그것인데, 'Power Pop'이란 태그를 달고서 최고의 전성기를 보냈던 BLONDIE, CHEAP TRICK, THE CARS 같은 대형 팝 밴드들, 그리고 THE KNACK의 "My Sharona", THE ROMANTICS의 "What I Like About You" 같은 원히트원더 명곡들 모두 바로 이 시절 쏟아져 나온 파워팝의 산물들인 것이다. 파워팝의 리즈시절을 결과적으로 어시스트했던(물론 파워팝의 진정한 역사는 THE WHO 시절인 60년대로 거슬러 올라가지만) 펑크록의 호전성만큼은 예나 지금이나 평범인들에겐 여전히 어렵게 다가오기 마련인데, 허나 호전성과 반항끼를 걷어낸다면 펑크록에 내재된 '단순성', '로큰롤', '멜로디 훅', '한판 놀기' 등의 기본 요소들은 '매너리즘록의 대명사' RUSH나 QUEEN 등의 음파공해에 오염될대로 오염된 70년대말 당시 평범인들의 귀를 즐겁게 할 만한 여지가 충분했다. 따라서 '호전성'을 뺀 펑크록 특징들에 대중/메인스트림/FM 친화성이 탑재된 파워팝의 부활은 시대상으로 필연적이었으며 타이밍상으로도 아주 절묘했던 것.

앞서 언급했던 일련의 파워팝 밴드들은 캐취감 넘치는 보컬 멜로디, 깔끔한 기타 훅, 신나는 로큰롤 그루브를 앞세워 메인스트림록 씬과 FM 라디오를 빠르게 점령해나갔고, 탐 페티, 릭 스프링필드같은 당대 AOR 최강자들 역시 파워팝 시류에 편승한 기타리프들을 특화시켜 덩달아 큰 위세를 떨쳤다. 하물며 UK 오리지널 펑크록의 레전설 THE CLASH가 [London Calling]의 끝자락에 실수(?)로 남긴 유일한 메인스트림 히트곡 "Train In Vain"까지 영락없는 파워팝 트랙이었으니...("Trains In Vain"은 미국에서 30여년 동안 햄버거광고, 치킨광고등에 이어 현재에도 동네 마트 광고 브금으로 절찬 사용중... 한마디로 말해 펑크록 굴욕 계보에 한 획을 그은 작품이다.)

파워팝의 리즈시절로부터 30년을 훌쩍 넘긴 2014년. 우린 왁자지껄한 기타훅을 장착하고서 '파워팝 리바이벌'을 외쳐대는 정체불명의 인디 밴드들을 수없이 목격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로부터 순수한 로큰롤 에너지와 살짝 소심한 펑크풍 속도감이 일품이었던 70년대 후반~80년대 초반 원조 파워팝 밴드들의 아우라를 다시 느끼기란 쉽지 않다. 마치 조이디비젼(JOY DIVISION) 워너비 일색인 오늘날 포스트펑크 리바이벌 밴드들을 볼 때마다 느끼곤하는 허무함에 비견될 수 있을까. 그런 의미에서 지금 소개할 중고신인 여성 록트리오 EX-HEX는 '파워팝 따라하기' 차원을 넘어 파워팝을 오늘날의 의미와 취향에 가장 합당하게 재해색한 독창적인 밴드로서 필히 주목받아야 할 것이다. 

과장을 아주아주 크게 보태 표현하자면, EX-HEX의 프론트우먼 매리 티모니(Mary Timony)는 코트니 러브(Courtney Love)급 대접을 해줘도(적어도 인디판에서는) 하나도 이상할 것이 없는 음악적 경력과 성과를 쌓은 인물이다. 90년대 중후반 가장 과소평가된 미국 인디록 밴드 중 하나였던 HELIUM의 홍일점 프론트우먼으로서 밴드를 이끌면서 소박한 듯하면서도 달콤하고 정겹기 그지없는 노이즈/드론팝 기타 대향연을 손수 보여줬던 그녀의 음악 센스는 가히 탁월한 것이었지만, 불행히 당시 소속사 Matador의 전략 아이템으로 선정되지 못한 탓에 상업적/비평적으로 아무런 재미를 보지 못하고(인터넷이 없던 당시, 피폭급 지위를 나름 자랑했던 발행지 A.P.에서도 HELIUM에게 박한 점수들을 줬던 기억이 있다) 소리소문없이 사라지는 비운을 맛봤다. HELIUM 이후 세 장의 솔로 앨범을 인디레이블 Matador와 Lookout!에서 발표하는 등 꾸준한 앨범 작업과 라이브 활동을 지속했지만 미국 동부 로컬 씬을 벗어나 족적을 남기는 데 실패하면서 음악팬들의 뇌리에서 점점 희미해져갔다. 그러다 2010년, HELIUM과 동시대에 인디씬을 누볐던 SLEATER-KINNEY의 멤버들과 함께 그유명한 슈퍼쿼텟 WILD FLAG를 결성, 데뷔앨범(2011)으로 빌보드 챠트 진입 등등의 대박을 터트리면서 잊혀져가던 자신의 이름을 우리에게 다시 각인시킨 것. 

그러나 주류 인디록씬으로의 '드라마틱한' 컴백은 아주 잠시였다. WILD FLAG는 한번의 전국 투어를 마치고 활동을 멈추더니 결성으로부터 불과 2년만에 뚜렷한 이유없이 잠정적 해체를 선언했기 때문(하긴, SLEATER-KINNEY와 WILD FLAG의 공식적인 리더 캐리 브라운스타인은 이미 배우로 전업한 예능인이지 않은가?). 담담한 로큰롤 프레이즈들을 다채롭게 끊임없이 솎아내던 매리 티모니는 앨범 [Wild Flag]에서 단연 에이스였지만 전반적으로 라이엇걸(riot grrrl) 펑크와 헤비튠을 선호하는 캐리 브라운스타인과 뭔가 잘 맞지 않는 부분도 음악 안에서 분명 존재했다. 그런 의미에서 곧 전해진 매리 티모니만의 밴드 결성 움직임은 흩어진 십수년전 HELIEUM팬과 2010년대 WILD FLAG/티모니팬들을 한데 모아 새로운 기대감을 불어넣기에 충분한 소식이었던 셈.

그리고 이번달 초, 매리 티모니는 두 명의 멤버를 영입하여 새로운 여성 트리오 EX HEX(2005년에 발표된 매리 티모니의 세번째 솔로 앨범에서 밴드명을 따왔다)의 신고식을 드디어 치렀다. 바로 데뷔 앨범 [Rips]와 함께. 'rip'이라면 여러의미가 있지만 무엇보다 '남의 것을 도둑질(표절도 해당된다)하다'라는 뜻인 'rip off' 로써 자주 이용되는 단어이니, 처음에는 '예전에 했던 음악을 답습하려는' 셀프디스의 뉘앙스로 앨범 타이틀을 그렇게 붙였나 어림짐작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뚜껑을 열어보니 [Rips]는 예전 HELIUM 시절의 노이즈 기타팝음악도, WILD FLAG시절의 펑크팝도 아닌 '파워팝'이라는 예상외의 장르를 자신의 기타 연주 스타일 안에서 새롭게 각색한 작품이었던 것. 물론 [Rips] 안에서는 THE KNACK이나 CHEAP TRICK의 기타 플레이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듯한 프레이즈가 간혹 등장하긴 하나 'rip'이란 단어를 쓸 만큼 노골적인 따라하기는 절대 아닌 수준의 것이니, 결국 앞서 언급했던 70년대말 파워팝의 기본 원리, 즉 호전성 없이 '단순성', '로큰롤', '멜로디 훅'의 원리에 순수하게 입각하여 '한판 노는(=rip it up)' 록음악을 만들어보고자 'rip'이란 단어를 썼던 것이다. 즉, [Rips]는 매리 티모니 자신이 현재 원하는 음악적 아이덴티티를(우울모드의 HELIUM보다 신바람나고, 거칠고 헤비한 WILD FLAG보다 정돈되고 감성적인) 바로 '놀기 좋은' 록음악인 파워팝이라는 대척점에서 새롭게 찾아내어 만든 작품인 것.

WILD FLAG와 캐리 브라운스타인의 펑크록 취향을 따라가기엔 다소 여린 감수성을 지닌 아줌마 매리 티모니. 고로 그녀가 십수년간의 슬럼프를 털고 신나게 로큰롤을 연주하기엔 펑크록이 아닌 파워팝의 튠과 템포가 안성맞춤이었을텐데, 특이하게도 꼼꼼한 듯하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맥아리 없는 듯한' 티모니의 보컬/ 기타웍이 파워팝 특유의 스트레이트한 리듬/튠/템포와 언밸런스하게 섞여들 때 오묘하게 연출되는 허무발랄 무드는, 기존의 파워팝이나 인디 기타팝 전체를 통들어서도 결코 비교될 수 없는 EX HEX만의 매력을 음악에 장착시키는 데 결정적인 승리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THE KNACK, BLONDIE의 파워팝적인 느낌이외에 TOM PETTY의 AOR, RAMONES의 버블팝 펑크, RUNNAWAYS의 팝메틀, GO-GO'의 뉴웨이브록 등 70년대말~80년대초 당시 라디오를 통해 줄기차게 터져나오던 경쾌한 트렌디 록음악들이 마치 파노라마처럼 회고하는 듯한 느낌으로 연주되고 있지만, 그럼에도 전혀 'rip off'된 부분 하나 없이 매리 티모니가 구상한 스타일과 와꾸대로 완벽하게 편집/종합되어 리바이벌성 음악이 아닌 전혀 새로운 형태의 EX HEX식 음악을 [Rips]에서 탄생시킬 수 있었던 것이다. '연예인' 브라운스타인 덕분에 필요 이상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던 WILD FLAG 음악의 왁자지껄하면서도 다소 밋밋하고 언밸런스했던 뒷맛들을 깔끔하게 정리해주는 듯한 [Rips]의 상큼발랄한 버블팝 로큰롤 튠은, GO-GO'S보다 헤비하고 RAMONES보다 귀여운 아이덴티티를 구현하면서 결과적으로 WILD FLAG 앨범보다 훨씬 더 절도있고 독창적인 로킹 에너지를 발산하는 데 성공하고 있다. 

매리 티모니의 고향인 워싱턴 D.C.의 최대 일간지 워싱턴 포스트와의 최근 인터뷰 중 한 대목이다.


"[Rips]의 수록곡들은 너무 느슨하거나 너무 빠르게 가면 절대 안되는 것들이죠.

밴드로서 우리 역시 마치 '꼼꼼함'과 '엉성함' 사이의 이상한 조화랄까요...(중략)...

정말 EX HEX는 지난 20년 동안 참여했던 밴드들 중 가장 재밌는 밴드 같아요!"

             

사족: 캐리 브라운스타인의 지명도 때문인지, 아니면 마초스타일의 기타웍에 세뇌된 것인지, WILD FLAG 활동 당시 적잖은 막귀들이 매리 티몬스의 기타실력을 폄하하는 소리들을 여기저기서 많이 흘렸었다. 만약 그랬던 분이 여기에도 계신다면, [Wild Flag] 앨범에서 티몬스의 역량이 가장 많이 표현된 곡인 "Black Tiles" 와 "Short Version"의 스튜디오 퍼포먼스에서 브라운스타인의 기타를 발라버리는 장면, 그리고 리즈시절 HELIUM의 희귀 라이브 클립에서 최대 명곡 "The Revolution of Hearts Pts I and II"에서 펼쳐지는 그녀의 싸이키델릭 태핑 센스를 참고삼아 한번 감상해보시기를...


RATING: 86/100

written byBK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