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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S/ELECTRONIC

BRUNO PRONSATO: Lovers Do (2011)


일렉트로닉에서 미니멀리즘은 이제 끝났는가.

힙합 비트의 건재함, 일렉트로의 메인스트림화, 덥스텝의 광풍. 이 틈바구니에서 매니아 팬들 관리에만 만족해온 미니멀 계열 일렉트로닉 음악(미니멀 테크노, 미니멀 글리취, 텍 하우스, 마이크로하우스 등등)의 운신의 폭은 확실히 예전보단 좁아져 있다. 일각에서는 '미니멀은 이제 일렉트로닉계에서 생명의 끝에 다다랐다' 고 단정짓기도 한다. 마치 쓰나미처럼 한번 크게 댄스플로어를 휩쓸다 지금은 완전 지리멸렬한 상태로 남겨진 드럼앤베이스의 수순을 밟는 것처럼. 하지만 적어도 '미니멀' 을 딥하우스 대용으로 댄스플로어에 쓰기 위한 수단이 아닌 절제된 비트와 루핑을 좀더 유기적으로 후려치는 리카르도 빌라로보스나 로버트 후드같은 미니멀리스트들의 음악처럼 순수 리스너(listener)들의 입맛도 만족시킬 수 있는 학구적 서브장르로써 계속 명맥이 유지된다면 아마 미니멀 테크노의 생명은 드럼앤베이스와는 달리 포스트모더니즘의 문화 공식이 사라질 때까지 쭈욱 지속될 지도 모른다.   

BRUNO PRONSATO!

뮤지션 관련 자료들이 그다지 공유되지 않는 일렉트로닉계에서 뮤지션 이름만 대충 보고 음악을 고르는 음악 매니어들에게 한방 먹이는 그럴싸한 유러피언 이름을 전면에 앞세우고 활동 중인 미국 오하이오 주 출신 스티븐 포드(Steven Ford)는 아예 활동 본거지마저 미국에서 독일로 옮길 만큼 유러피언 일렉트로닉 음악에 흠뻑 빠져 살고 있는 친구인데, 과거 스피드 메틀 밴드의 드러머로써 활약했다는 점은 적어도 그의 세번째 정규 앨범 [Lovers Do]을 감상하고서는 전혀 눈치를 챌 수 없을 정도로 정제되고 가라앉은 미니멀 테크노의 촉감이 앨범 전체의 싸운드스케잎을 깊숙하게 지배하고 있다. [Lovers Do] 앨범 음원 레이어의 가장 밑바닥에서 조용히 전개되는 어쿠스틱 베이스라인, 단순한 4비트 베이스킥과는 대조적으로 오픈-클로즈를 연발하며 꾸준하게 드럼라인을 리드하는 하이햇 사운드 등이 조화를 이루는 리듬 파트는 ECM 레이블 풍의 유러피언 아방가르드 재즈적 앰비언스를 고취시키는 데 단단히 한몫을 하고 있으며, 조심스러운 톤과 템포를 유지하며 전자 노이즈와 클릭킹 파편들을 왜곡시키거나 잡다한 음원 샘플링들을 흩트렸다 모았다를 반복하는 모습에서는 IDM 어프로치들을 연상시키는 지적인 풍모를 발산하기도 한다. 이러한 IDM 스타일의 재즈 무드에 발맞춰 PRONSATO는 앰비언트 피아노 리프를 재지(jazzy)하게 즐겨 갖다붙이다가("An Anne Around The Neck") 별안간 이 피아노 음원을 추상적인 리프로 완전하게 흩트러트리는("An Indication Of The Cause (part 1)") 시도도 해보고 글리취 레이어를 이용하여 AUTECHRE 스타일의 냉철하면서도 가라앉는 듯한 텍스쳐를 수시로 덧씌우기도 하는 등 끊임없이 다양한 형태로 불편한 태클들을 걸어주면서 전형적 테크노-하우스 비트와 달짝한 멜로디 훅 때문에 이지리스닝 계열로 빠져버릴 수 있을 앨범의 분위기를 어둡고 왜곡된 영역으로 지속적으로 몰아간다.    

[Lovers Do]은 작업 방식이나 전체적 싸운드스케잎/테마를 종합할 때 분명 빌라로보스의 후광에서 벗어날 수는 없는 미니멀 테크노 루트를 타고 있다. 또한 "Feel Right", "An Indication Of The Cause (part 2)" 등의 트랙에서 드러나듯 ISOLEE, (LUOMO 시기의) 블라디슬라프 딜레이의 넘실거리는 마이크로하우스 댄스 삘 역시 숨기지 않는다. 하지만 미니멀 계열 뿐만 아니라 댄서블 테크노 성향의 앨범들 중 [Lovers Do]만큼 정제된 빌라로보스식 미니멀 댄스 톤을 갈망하면서도 의도적으로 다운템포 IDM의 느낌처럼 분위기와 템포를 무기력하면서도 느슨하게 밑바닥으로 쭈욱 가라앉힌 작품은 그다지 흔치 않다. 특히 "Wintermusic For Summer" 같은 곡에서는 ISOLEE의 마이크로하우스를 연상시키는 댄서블 비트+베이스라인을 미니멀한 배열로 깥아놓았음에도 추상적인 코드로 일관하는 필터링 키보드 리프들의 멀티 레이어와  갉작대는 듯 잡음을 내는 마이크로 노이즈들이 수시로 유기적으로 덤벼들면서 초장에 깔아놓은 댄스 무드를 완벽하게 잠식해 버리는데, 이렇듯 비정상적인 템포, 악기 쏘스의 미묘한 디테일,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아니러니한 무드 등의 유기적 조합을 통해 미니멀 테크노의 댄스 포뮬라를 희미하게 만들어버리는 PRONSATO의 능력은 분명 통상적인 미니멀 테크노 계열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캐릭터가 아니다. 

[Lovers Do]에 수록된 9곡 중 "An Anne Around The Neck" 을 제외한 모든 곡들의 러닝타임이 9~13분에 이르는데, 개인적인 생각으론 이들의 마지막 2~3분은 과감히 잘라버려도 무방할 정도로 불필요한 루핑들이 너무 길게 지속되고 있지 않나 하는 아쉬움이 들기도 한다. 특히 12분 러닝타임의 오프닝 트랙 "Lovers Don't" 이나 13분짜리 앨범 타이틀 트랙 "Lovers Do" 을 감상한다면 누구나 그런 느낌이 들 수 있을텐데, 리스너들이 초-중반부의 깔끔한 미니멀 테크노 향연에 취해있다가 후반부 2~3분의 반복 루핑 때문에 살짝 따분한 뒷맛을 남기면서 끝맺느니 차라리 빌라돌리스나 Trentemøller의 앨범처럼 왠만해선 10분을 넘기지는 않는 덕목이 때론 [Lovers Do] 같은 경우에는 준수되어야 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하긴 이미 40분 분량의 싱글 앨범 [The Make Up The Break Up]으로 적잖은 사람들을 고문(?)시킨 전력이 있는 PRONSATO의 아방가르드 정신이 추구하는 행동 강령이 그렇다면 어쩔 도리는 없겠지만, 아무튼 이러한 '러닝타임 논란' 을 차치하고서라도 [Lovers Do]는 덥스텝과 일렉트로의 홍수 속에서 테크노의 미니멀리즘이 아직 죽지 않고 살아있음을 당당하게 보고한 훌륭한 퀄리티의 앨범이라는 점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RATING: 78/100

written by Byungkwan C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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