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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S/METAL

ARCH ENEMY: Khaos Legions (2011)


'ARCH ENEMY = 안젤라 고소우' 라는 등식이 언제부터 성립이 되기 시작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개인적으로는 안젤라 고소우의 팬이 아니다. 물론 태생적으로 마초리즘에 젖은 헤비메틀의 성역을 완벽하게 허문 몇 안되는 여성 뮤지션인 것은 사실이지만, 역설적으로 안젤라 고소우가 여성이라는 점이 어느 순간부터 핸디캡이 아닌 트레이드마크로 이용되고 있으며 따라서 그녀의 단조로운 보컬 패턴이 밴드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의 여부에 관한 토론은 항상 뒷전으로 미뤄져 왔다.

안젤라의 합류 이후 밴드의 음악은 훨씬 데쓰코어적인 영역으로 흘러 들어가버렸는데, 아마 밴드의 '브레인' 아모트 형제가 이미 초장부터 보컬 패턴의 한계점을 이미 간파하고 아예 단조로운 음악 장르 속으로 눈을 딱 감고 들어가버리기로 결심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실제로 그녀가 보컬리스트로 영입되고부터 기타 리프의 템포, 코드 패턴 모두 당황스러운 형태의 메틀 스타일로 바뀌어 버렸지만 어찌 된 일인지 ARCH ENEMY의 대중적 인기는 안젤라의 신비주의 애티튜드 덕택에 전세계적으로 미친 듯이 치솟아 버렸다.

이쯤에서 ARCH ENEMY의 전 리드 보컬리스트 요한 리바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는데, 그의 보컬 스타일은 안젤라보다 훨씬 다채로운 감정표현과 튜닝을 이끌어내는 데 적격이었다. 암흑시기에 만들어진 역작 [Burning Bridges (1999)] 가 아직까지 그 어떤 안젤라 시절 ARCH ENEMY 앨범들보다 자주 회자되는 이유도 바로 요한 리바의 다이내믹하면서도 포괄적인 음악 센스가 빛을 발했기 때문일 것이다. 천편일률적 박자 감각에 컴퓨터같은 그런팅(grunting)으로 항상 일관하는 안젤라의 치명적 단점은 바로 요한 리바가 가지고 있던 장점들을 소화하지 못한다는 것이고 바로 이 때문에 ARCH ENEMY의 음악 스타일은 안젤라의 역량에 갖다 맞추기 위한 드라마틱한 변형이 운명적으로 필요했던 것이다.

안젤라 합류 이후 데쓰 계열 밴드로써 유래없는 상업적 홈런을 연거푸 쳐온 그들이지만 음악성 자체만 놓고 봤을 때 매너리즘에 관한 압박감은 분명 어느 시점부터 멤버들 사이에서도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을 터이다. 통산 8번째 정규 앨범 [Khaos Legions] 은 이러한 위기의식이 발동한 듯 안젤라 합류 이전의 초기 인디 시절을 추억하며 앨범 여기저기에서 멤버들이 가지고 있는 창조적인 재기를 수시로 부려보지만(순도 100% 멜로딕 메틀 음악에서 샘플링한 듯한 달달한 기타 하모니와 "Snow Bound"에서 내세우는 어쿠스틱 시도 등등) 결국 모든 곡들의 느낌이 '안젤라 고소우 용 헤비 메틀' 흐름으로 다시 어쩔 수 없이 흘러가버리는, '실패한 변혁' 의 몸짓에 지나지 않아 보인다. 급박한 템포와 스트레이트한 C 쓰래쉬 메틀 배킹로 무장된 "Nemesis" 식 기승전결의 또다른 아류 트랙 "Bloodstained Cross" 는 안젤라 고소우의 보컬 캐릭터를 가장 노골적으로 드러내고자 하는 기존 포뮬라를 그대로 답습하고 있으며, 이어지는 "Under Black Flags We March", "Through The Eyes Of A Raven" 은 "이 노래는 ARCH ENEMY의 신곡들이야~" 라고 먼저 얘기 안 한다면 이전 앨범들 중 어디선가 수록이 되었던 것 같은 착각이 들 만큼 자기 패러디적 리프들로 가득 차 있다. AMON AMARTH를 연상시키는 기타 배킹으로 무장한 "No Gods, No Masters" 에서는 초기 시절의 찬란했던 멜로디 훅들을 연거푸 터트려 보지만 '거장 밴드' 답지 않게 허약한 멜로딕 기타 프레이즈들이 실망감을 안겨 주며, 후반부에서 쓸데없이 앨범의 템포를 죽여버리는 데 일조하는 "The Zoo", "Snow Bound" 같은 트랙들은 해드뱅잉은 커녕 고개마저 끄덕이기조차 망설여 질 만큼 특별치 않은 음향들의 조합으로 범벅이 되어 있다.

KK 다우닝-팁튼 조에 부럽지 않은 아모트 형제의 트윈 기타 시스템은 분명 ARCH ENEMY의 음악 색깔을 결정짓는 데 5할 이상의 비중을 차지해야만 하는 필수조건이지만, 자의반 타의반으로 리드 보컬의 배킹 써포트 정도의 존재감으로 서서히 퇴화되어가는 모습은 미래적으로 ARCH ENEMY를 내다볼 때 결코 아름다운 광경이 아니다. 이질적인 마이너 스케일의 B 코드에서도 훌륭한 프레이즈를 섞어냈던 그들이 아이디어가 고갈될만큼 음악 생활을 많이 한 것도 아닐 터인데, 배구에서 시간차나 페인트 공격없이 정석적인 오픈 스파이크만 할 줄 아는 절름발이 레프트 공격수를 위해 뻔하디 뻔한 C 코드로 정직하게 토스를 올려주는 타입으로 계속 일관한다면 ARCH ENEMY의 음악은 더이상 음악적인 잣대로 평가하기 거시기한 수렁으로 서서히 침참해 들어갈 것이다. [Khaos Legions] 은 물론 밴드의 버라이어티와 탈렌트를 다시 보여주기로 마음먹은 작품이라는 점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겠지만 현 메틀계에서 점유하는 그들의 명성이나 입지에 걸맞지 않게 (놀랍지 않은) 빈약한 완성도를 드러내며 무너져버린 실패작이다. 


부록: Arch Enemy w/ 후미 (일본 여성 아마추어 드러머): "Enemy Within"




RATING: 58/100

written by Byungkwan C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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