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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S/HIP-HOP

ARAABMUZIK: Electronic Dream (2011)


신들린 손놀림으로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혀를 내누르게 만드는 아랍뮤직(AraabMUZIK)의 첫번째 공식 정규앨범 [Electronic Dream]이 지난 7월 9일 발표되었다. 아랍뮤직은 미국 로드아일랜드주 프로비던스 태생의 히스페닉 뮤지션으로, Akai MPC(샘플러 겸 드럼머쉰)을 사용한 즉석 라이브 퍼포먼스로 인터넷을 통해 처음으로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다. 참고로, 필자가 유튜브에서 아랍뮤직의 퍼포먼스를 처음 접했을때 "어 이거 내가 뭘 잘못봤나? 누가 동영상을 빨리감기 해서 올렸나?" 라는 착각이 순간 들 정도로 그 충격은 엄청났었는데, 일본 Akai사가 1988년 첫번째 MPC 시리즈 모델을 내놓은 이래 역사상 최고의 MPC 테크니션으로써 아랍뮤직을 선정한다 해도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못할 정도로 그는 가히 불세출의 MPC 스킬을 자랑한다. 올해 겨우 21살에 불과한 이 희대의 천재는, Cam'ron, Jim Jones, Juelz Santana 등의 뉴욕 할렘출신 힙합 아티스트들로 구성된 그룹 The Diplomats의 프로듀서로써도 사이드로 활동중이며, 그외 Jadakiss, Busta Rhymes, Lloyd Banks, Fabolous 등 다른 유명 랩퍼들과도 같이 작업할 정도로 감각있는 프로듀싱 실력 또한 가지고 있다.

이번 [Electronic Dream] 믹스테잎에서는 그가 그동안 보여주었던 힙합/랩뮤직 커리어와는 조금 다르게 일렉트로, 하우스, 트랜스적인 느낌을 많이 접할 수 있다. 두번째 트랙 " Streetz Tonight"에서는 하우스 디제이 겸 프로듀서 Kaskade의 잔잔한 인디록풍 트랙 "4am" 을, 세번째 트랙 "Golden Touch" 에서는 90년대 클럽 댄스음악으로 붐을 일켰던 Jam & Spoon의 "Right in the Night"을 각각 샘플링하고 그 위에 아랍뮤직 자신만의 감성이 녹아난 비트들을 얹어 전혀 새로운 무드의 곡으로 재창조해낸다. 네번째 트랙 "Free Spirit"에서는 Future Breeze의 "Why Don't You Dance With Me"를 사용하여 적절한 힙합 그루브감과 함께 아랍뮤직만의 격렬한 초절기교 MPC 비트 히팅 감각을 선보인다. 다섯번째 트랙 "Underground Stream"에서는 네덜란드 출신의 하드코어 테크노 마스터 DJ Nosferatu의 "The Underground Stream" 곡의 샘플링을 들을 수 있는데, 보통 소울이나 재즈음악 등에서 샘플 소스를 많이 찾아 사용하는 힙합 비트메이킹의 보편적 작업방식과 견주어 볼 때 이러한 시도는 퍽 이례적인 케이스라고 할 수 있겠다.
  
이번 앨범을 처음 접하면서 "대체 이건 무슨 장르지?" 라는 의문을 살짝 가지기도 했는데,  그말인 즉슨, 우리가 통상적으로 자주 접하는 음악 장르에서 흔하게 접하기 힘든 요소와 어프로치들이 앨범 안에 다양하게 혼재한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사실 힙합/덥스텝스러운 리듬을 활발하게 사용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이 연주곡에 맞춰 랩퍼가 랩을 하거나 혹은 클럽 댄스음악처럼 춤을 추기에는 좀 무리가 있다(뭔가 특정한 '행동'을 하기에는 음악의 분위기가 상당히 오묘하다). 오히려 음악 매니어들의 헤드폰 음악 감상용으로 더 적격인 인텔리 음악 캐릭터를 갖추었다고나 할까. 그의 경이로운 손놀림에 의해 MPC 2500(LE)에서 발산되는 펀치감 넘치는 킥/스네어 사운드, 격렬하게 쪼개지는 하이햇과 이펙트된 사운드의 콤보는 그야말로 우리의 귀와 두개골의 대뇌를 아찔하게 만든다. 더군다나 일렉트로닉한 느낌의 멜로디와 보컬사운드까지 더해지면서, 격렬하면서도 아름다운, 그야말로 아랍뮤직만의 희안한 음악 감수성을 보여주는 고급 하이브리드 음악의 결정체가 바로 [Electronic Dream]인 것이다.

유튜브나 라이브 공연장 등에서 그가 보여주곤 하는 '기교의 끝을 달리는' 힙합 MPC 연주의 화려한 느낌을 이번 앨범에서 느끼고 싶다면 조금 실망스러운 감이 들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러한 테크니컬한 요소들의 아쉬움을 조금 배제하고 앨범 전체의 테마와 미학의 관점에서 이 앨범을 바라본다면 [Electronic Dream]은 예상을 깨고 독특한 풍모와 무드, 컨셉을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게 엮어낸 한편의 고급 인스트루멘탈 작품으로 거하게 다가올 것이다. 즉, 장인적 테크닉과 예술적 감성을 동시에 접목시킨 아랍만의 다재다능함이 아주 효과적으로 묘사된 작품으로 볼 수 있는데, 굳이 비교하자면 Clams Casino, DJ Shadow같은 레프트필드 힙합 스타일과 더불어 Flying Lotus, Thundercat, Mr. Ozio와 같은 변종 익스페리멘탈 일렉트로닉 뮤지션들의 작업 스타일 까지 동시에 연상시키지만, 소프트하면서도 정돈된 듯한 음악을 추구하는 이들과는 달리 아랍뮤직의 음악에서는 열 손가락을 모두 사용하여 한큐에 미친듯이 쫙 뽑아내는 그의 라이브 비트메이킹 스타일이 느껴지는 즉흥적이면서 거친 감성이 매 프레임마다 원초적으로 꿈틀대는 듯하다.  

음악 그 자체만을 놓고 본다면 [Electronic Dream] 앨범은 여타 트랜스 전자음악이나 레프트필드 힙합, 덥스텝/가라지 계열 명반들을 올킬할만큼 특출나게 뛰어난 작품이라고 말할 순 없을 것이다. 하지만 스크래칭에 이어 힙합장르에서 'MPC 연주' 라는 또다른 비르투오소 장르를 양지로 끌어올리면서 동시에 미디와 그외 기계적 루핑이 아닌 인간의 열손가락을 사용한 실시간 매뉴얼 MPC 연주만으로도 이렇게 평균 이상의 앨범을 멋들어지게 주조해낼 수 있다는 것을 [Electronic Dream]에서 최초로 증명해낸 아랍뮤직의 혁신적 성과는 분명 이 앨범의 무형적 가치를 더욱 높여주고 있다. 쇠퇴해가던 MPC 아날로그 방법론에 새로운 돌파구를 제시해주는 [Electronic Dream]는 그런 의미에서 올해 가장 흥미로운 힙합 인스트루멘탈 앨범으로 손꼽히는 데 전혀 손색이 없는 '트라이엄프의 서막' 과도 같은 작품이다.

RATING: 87/100

written by Sean Ka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