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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S/ALT & INDIE

MY BLOODY VALENTINE: m b v (2013)


필자의 기억으로는, 지난 1994년 '전영혁의 음악세계'에서 당시 국내 유일 음악 전문 월간지 '핫뮤직'의 성문영 기자가 게스트 진행자로 출연하여 [Isn't Anything (1988)]에 수록된 "Soft As Slow""No More Sorry" 이 두 곡을 공중파에 방송한 것이 아마 MY BLOODY VALENTINE의 음악이 국내에 처음 음원으로 소개된 첫번째 사례였을 것이다. 뭐, 당시 명동지하상가를 들락거리며 '개인주문 CD 장당 2만원'이라는 거금을 매번 내고 혼자만의 컬렉션 구축에 탐닉했던 몇몇 부유층 골수 오덕후들에겐 다른 세상 이야기겠지만, MBV의 음악세계는 4대 PC 통신 음악 동호회가 인터넷 대중화와 함께 활성화되기 시작했던 90년대 후반이 되어서야 국내 음악팬에게 본격적으로 알려졌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런데 이는 비단 한국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자체 인디 네트워크를 오래전부터 체계적으로 유지해오던 영국을 제외하면, 한국에선 온 국민이 전-노 장군님과 함께 "손에 손잡고"나 빨고 있던 1988년 홀연히 튀어나온 괴작 [Isn't Anything]과 '갱스터랩-얼터너티브/그런지의 해'로 회자되는 1991년 천지가 괴벽할만한 걸작 [Loveless]을 불과 삼년 간격으로 뽑아냈던 이 더블린/런던 출신의 대형 노이즈 쿼텟은 유럽-미국-일본 어느 곳에서도 지금과 같은 매머드급 관심을 이끌어내진 못했던 것(필자가 '갱스터랩 특집' 기사때문에 구입했던 1991년 11월자 빌보드지를 뒤져 보면 서른 개 정도의 신보들 리뷰에 뒤섞여 '콕튜 트윈스 아류' 뭐 이런 식으로 [Loveless]에 관해 아주 짤막하게 언급되어 있을 뿐이다). 

컬트 레전드 MBV을 이끄는 '펜더 재즈마스터(Fender Jazzmaster)의 연금술사' 케빈 쉴즈는 상상하는 것만큼 컬트적이거나 수수께끼같은 풍모를 자아내는 사람이 아니다. MBV 이후 PRIMAL SCREAM, DINOSAUR Jr., YO LA TENGO  등 여러 초거물 인디 밴드들의 앨범에 뮤지션 또는 프로듀서로서 자신의 존재를 꾸준히 알려왔었고 2003년에는 아카데미상에 빛나는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Lost In Translation: 이 쓰레기같은 한글 제목은 대체 누가?)" OST 주력 멤버로서 다시 한번 전세계인들의 주목을 한 몸에 받게 된다. 스타일이 너무 뚜렷한 나머지 다방면에 이용되지 못할 뿐, 그는 언제든 주류와 비주류의 영역을 넘나들며 음악에 대한 프로페셔널한 열정을 언제든지 쏟아부을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이다. 카리스마 예술인들의 전매특허인 인터뷰에 대한 거부감도 딱히 없는 듯 하고. 단지 지극히 현실적인 워커홀릭, 그리고 지나치게 깐깐한 외골수 완벽주의자로 정평이 나 있는 인물인만큼 그의 프로젝트는 언제나 더디게 진행될 뿐만 아니라 '완벽하지 않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아예 중간 과정에서 취소되어버리기도 한다([Loveless] 후속작의 폐기처분 사건 등등). 음반제작 과정에서 음악 관계자들과 숱하게 일어났던 크고 작은 트러블들("사랑도 통역이 되나요?" OST 작업 당시에도 그의 까다로운 작업 방식에 이런저런 말들이 많았다고 한다), 더군다나 [Loveless] 제작비용을 놓고 인디 레이블 Creation 과 벌인 '25만 파운드' 논쟁 등은 케빈 쉴즈를 그저 '돈 개념 없는 럭셔리 고집쟁이' 로 의심케 만들기도 했다(물론 크리에이션 레이블과 미디어에 의해 제기되어왔던 앨범 녹음 비용 25만 파운드는 분명 허구에 가까운 수치이지만). 하지만 이러한 깐깐함이 독단주의로 절대 치우치지 않는 점은 밴드 리더로서 케빈 쉴즈가 지닌 또다른 미덕이자 장점이기도 하다. 완벽한 명반 [Loveless]만 하더라도 그는 이미 오늘날 '슈게이징 스타일'이라고 일컫는 독자적인 음악적 경지에 이르렀음에도 불구하고 사이드 멤버인 드러머 콜름 오키소익(Colm O'ciosoig)이 혼자 만든 인스트루멘탈 트랙 "Touched"를 앨범의 초반부에 포진시키는 대범함을 보여줬다. 자신의 머릿 속에서 특정하게 그려지는 형이상학적 사운드스케잎을 디테일하게 묘사하고자 할 때 해결의 실마리로써 쓰여질 수만 있다면 누구의 아이디어든 적극적으로 활용한다는 게 밴드 리더로서 그의 철칙인 것. 이번 새앨범 [m b v]의 제작과정에서도 마찬가지였다. 2008년부터 시작된 데모 작업은 케빈 쉴즈 혼자의 힘으로 끝마칠 수 있었지만 앨범 분위기에 자신보다 빌린다 부처가 리드보컬 역할에 더 적합하다고 생각, 앨범의 상당 부분을 빌린다 부처의 리드보컬로 재편집 했으며 동생과 함께 끝마친 드럼 연주 역시 오키소익에게 다시 임무를 맡겨 완전 새로운 분위기로 처음부터 끝까지 재녹음한다. 

지난 2일, 새 앨범 [m b v]의 음원이 공개될 것이라는 소식이 페이스북 페이지를 통해 전해지자마자 전세계 음악팬들이 MBV의 공식 웹사이트에 한꺼번에 득달같이 몰려드는 바람에 어제 새벽 사이트의 서버가 과부하로 인한 403 에러로 다운이 되어버려 온라인 상에서 일대 소동이 벌어졌었다. 다행히 몇몇 광팬들의 재빠른 택배(?) 신고 덕택에 서버는 몇 시간 안에 원상복구가 되었는데, 이는 비록 작은 헤프닝으로 끝났지만 1991년 당시의 상황에선 감히 상상조차도 할 수 없었던 MBV의 뒤늦은 대인기를 아주 적절하게 반영하는 대목일 것이다. 그동안 'MBV의 브레인' 케빈 쉴즈(Kevin Shields)가 언론/온라인을 통해 신보에 관한 이런저런 언급들을 이미 여러 차례 해버린 터라 혜성과 같이 출현한 그런 류의 100% 깜짝뉴스는 아니겠지만, 아무튼 아웃사이더 심리와 나르시시즘에 쩐 인디 오덕후들의 심금을 가장 적절하게 자극하는 음악을 구사하기로 유명한 MBV의 세번째 앨범 [m b v]이 22년의 눈물겨운 기다림 끝에 드디어 대중들 앞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마블발의 중독성은 8-90년대 조건을 고려할 때 아주 훌륭한 퀄리티를 선사했던 커버 아트웍에도 기인되는 바가 컸다. 라이브 기타 연주 이미지를 저속 촬영으로 컬러풀하게 잔상화한 [Loveless]의 핑크/퍼플 앨범 재킷은 훗날 슈게이즈 아트웍의 상징으로 인식될 정도로 임팩트가 컸던 비주얼 작품이었으며, 베이지톤 노출 과다 필름 사진의 절묘한 프레임 압박이 인상적이었던 [Isn't Anything], 네 가지 색상으로만 이루어진 [Gilder EP]의 자극적인 그래픽 아트웍 역시 MBV의 레전드 풍모를 뒷받침해주기에 충분했던 비주얼이었다(심지어는 재킷에 담긴 밴드명과 앨범제목의 소문자 타이포그래피까지!). 그러나 이번 앨범이 그들의 사이트에 올라왔을 때모든 사람들이 똑같은 심정을 느꼈겠지만, 일단 [m b v]의 앨범 재킷은 상당히 실망스러운 수준이다. 해외 네티즌들은 왜 핑크가 아닌 블루를 썼는지 알 수 없다는 반응인데, 사실 재킷의 파란색은 [Glider EP]에 썼던 파란색과 거의 똑같은 블루톤이기 때문에 문제가 될 것은 없다고 본다(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프랑스의 포스트모더니즘(혹은 누보레알리즘) 아티스트 이브 클랭의 블루톤 미니멀리즘 회화 작품들에서 아이디어를 따온 것이 아닌가 하는 조심스런 추측을 해본다). 다만 기존에 보여줬던 현실에서 꿀 수 있는 백일몽적인 이미지를 대변하는 듯 했던 마블발식 이미지를 이번 앨범 재킷에서 맛볼 수 없다는 게 살짝 아쉽다고나 할까. 그리고 저 밋밋한 소문자 타이포는 누구의 아이디어인지 알다가도 모를 일. 

각설하고, 앨범은 크게 세 악장으로 나뉜다고 봐야겠다. [Loveless]표 오리지널 슈게이징 뭉개기와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Lost In Translation: 아래부터 영문으로 통일)" OST를 위해 케빈 쉴즈가 선사한 솔로 트랙들의 중간 형태가 담긴 1악장(1, 2, 3 트랙), 2013년 영-미 인디씬에 익숙한 젊은층을 고려하여 [Loveless]와 [Tremolo EP]의 달콤한 악몽과도 같은 MBV표 센티멘탈리즘을 트렌디한 스타일로 무난하게(MBV의 네임벨류를 고려할 때 그다지 훌륭한 단어는 아니겠지만) 각색한 2악장(4, 5, 6 트랙),  그리고 명성에 걸맞게 미래지향적인 실험 사운드로써 [Isn't Anything]의 시작처럼 다시한번 힘차게 도약하는 3악장(7, 8, 9), 이렇게.

22년 간 닫혀 있던 문을 열어제끼는 오프너 "She Found Now"는 [Loveless]보다 오히려 [Lost In Translation] OST와 연속성을 이루는, 케빈 쉴즈의 솔로곡의 뉘앙스가 더 크게 드리워진 트랙이다(케빈 쉴즈의 광팬이라면 어쩌면 이번 앨범보다 2003년 [Lost In Translation] OST에 담긴 MBV풍 'by Kevin Shields' 솔로 트랙들에 먼저 더 크게 열광했었을 것이다). 하지만 MBV의 수장으로써 모든 작업을 진두지휘하여 완성된 새 앨범을 소개하는 입장에서 충분히 납득 가능한 인트로이며 무엇보다 퍼즈와 피드백이 섞인 기타드론이 곱디곱게 가공되어 케빈 쉴즈 자신의 발라드 보컬과 매끄러운 조화를 이루어내는 사운드 자체가 부조리미학을 강조하는 [Loveless]의 음악철학에 아주 합당한 아름다움인 것. MBV 사운드 캐릭터에서 절대 빠져선 안될 빌린다 부쳐의 리드보컬과 함께 밴드 음악임을 확실하게 알려주는 두번째 트랙 "Only Tomorrow" 역시 도입부 드럼필인과 전개 방식에서 [Lost In Translation]과 흡사한 면모를 어느정도 풍기지만, 기묘한 노이즈를 발산하는 폭력적 MBV표 기타 리프와 우수에 찬 몽환적 아름다움이 교배되어 오묘하게 형성되는 시너지 효과는 [Loveless: "Only Shallow"]의 2탄격 슈게이징 성가로 불리워지기에 부족함이 없는 매력을 발산한다. 이상하게도 이 곡을 들으면 들을수록 케빈 쉴즈표 기타 사운드의 진보된 면모와 새로운 개성들이 매번 새롭게 캡쳐되곤 한다. 멀티레이어로 무지막지하게 깔려드는 노이즈들을 텍스쳐가 손상되지 않는 선에서 아주 깔끔하게 정돈시켜 새로운 어법의 메타노이즈기타스타일을 구현한 점은 이번 앨범에서 케빈 쉴즈가 이룩한 중요한 성과 중 하나인데, 특히 이 곡(그리고 이어지는 명곡 "Who Sees You"에서도 마찬가지)에서 MBV의 전매특허인 퍼즈와 피드백, 그리고 불굴의 트레몰로아밍+리버브 콤보가 한데 엉겨 거칠게 형성되는 노이즈 뭉텅이가 어느순간 어마어마한 강도의 디스토션에 눌려져 가늘게 미니멀화되어 뽑혀져서 나온 기이한 톤(1:30부터 시작되는)은 정작 [Loveless]에서도 맛볼 수 없었던 변태적 아름다움 그 자체인 것이다. 

제1악장이 오리지널 MBV팬을 위해 노이즈 과잉과 슈게이징 허무주의의 [Loveless]식 과거 문맥을 염두에 두었다면 제2악장은 로커로서 관조의 미덕을 깨달을 황혼기에 접어든 MBV의 개인주의적 성향이 짙게 배어 있는 정적인 팝감수성이 주된 테마를 이룬다. 특히 리드보컬로서 빌린다 부쳐의 변치않은 여성적 매력을 세 곡 모두에게서 느낄 수 있어 '무난함'의 딜레마에서도 나름의 만족감을 제공해주는 악장이다. 기타리프의 추상적 멜로디를 대체하는 오르간 리프와 함께 에테르 보컬의 진수가 녹아난(하지만 개인적으로는 9개의 수록곡 중 임팩트가 가장 약한 트랙인 듯) "Is This And Yes", 가벼운 헐랭이 타법 사이로 오묘한 광채를 번득이는 케빈 쉴즈의 기타 배킹와 드럼 세트를 골고루 재즈 필링으로 휘젖는 콜름 오키소익의 드러밍 배킹 사이로 한없는 몽환경의 센티무드를 소프트팝 스타일로 피력하는 빌린다 부쳐의 보컬이 압권인 "If I Am" 모두 [Loveless]와 다른 스타일과 문맥을 띄는 '신종' MBV표 트랙들이지만 무엇보다 [Loveless] 시절의 허무 발라드 노스텔지아를 2013년의 팝 스타일로 세련되게 재해석한 "New You"야말로 [m b v]의 2악장에서 놓혀선 안될 숨은 명곡일 것이다. MBV 기타 텍스쳐에 아주 합당한 디스토션 필살기(특히 [Loveless]: "Come In Alone"에서의 베이스 인트로!)로 전설적인 입지에 올랐던 여성 베이시스트 데비 구지(Debbie Googe)의 존재감을 후반부에서야 뒤늦게 각인시키는 단촐하면서도 빵빵한 베이스라인이 압도적으로 귀를 잡아끄는 이 곡은, 극도로 미니멀한 리듬 조합에 엑센트를 두면서 빌린다 부쳐의 보컬음향부를 좀더 높혀 매드체스터(비트)와 스테레오랩(멜로디)이 교배된 듯한 깔끔한 일렉트로팝성 사운드를 담담한 톤과 템포로 내뿜는다. 이 곡에서 두드러지게 드러나는 '차가움'과 '온화함'의 공존 역시 [Loveless]에 대폭 담긴 MBV식 발라드에서 느끼곤 했던 이율배반적인 감정의 공존과 흡사하지만, MBV다운 이질성 "하드코어" 사운드에 열광하는 이들은 앨범에서 가장 허약한 기타사운드와 가장 팝스러운(poppy) 무난함이 담긴 "New You"을 [m b v] 최악의 트랙으로 꼽을 수도 있겠다. 그러나 여러 장치들(어떻게 뽑아냈는지는 아마 케빈 쉴즈 자신만이 정확하게 말할 수 있을 듯)에게 '손상'을 입어 가늘고 힘없이 흔들리듯 부유하지만 끊어지지 않고 영롱한 빛을 지속적으로 발하는 미니멀리즘 취향의 독특한 기타레이어들과 영원히 십대 감수성을 지니며 살 듯한 빌린다 부쳐의 아름다운 보컬라인간에 조용하게(?) 이루어지는 달콤한 '불협화음' 발라드 하모니는 어느새 노장이 되어버린 이들의 '감정표현'에 관한 원숙미와 절제미를 보여주며 '22년 후 MBV의 발라드 사운드는 이런 거구나' 하고 고개를 절로 끄덕이게 만든다.

추억팔기로 언제나 귀결되는 재결성 노장 밴드의 모습에서 완전무결하게 탈피하고자 하는 MBV의 미래지향적 창의력과 에너지의 면모는 마지막 3악장에서 비로소 본격적으로 대폭발한다. 재즈-펑크(punk)-드럼앤베이스 주법을 한꺼번에 아우르는 듯한 드럼 파워가 시종일관 작렬하는 "In Another Way"에서 아일랜드 백파이프 음악에서 차용된 코드로써 아이리쉬 사운드스케잎을 노이즈/슈게이징 프레임에 접목시키는 실험적 어프로치는 놀라움과 참신함, 그리고 [Isn't Anything]에서나 맛봤던 록적인 흥겨움까지 동시에 선사하며, 이어지는 "Nothing is"에서도 포스트모더니즘 록밴드라는 순수예술계에서의 극찬(유명 순수예술가들-엘리자베스 페이튼 등등-이나 영화예술인-소피아 코폴라 ㅋ-들 중에 MBV 광팬들이 상당히 많다)에 걸맞은 스티브 라이히(Steve Reich)식 동음반복 미니멀리즘 노이즈록 사운드를 일렉트로닉음악의 샘플 루핑 형식으로 주조해낸다. 문제의 피날레 "Wonder 2"는 어떤 식으로 만들었는지 분석하고 보는 필자의 머리를 아직까지 멍하게 만드는 곡. 정글 스타일의 흥미로운 드럼 루핑(아마 오키소익이 직접 연주한 루핑이 샘플화된 듯)에 맞춰 모듈라 신쓰 조작에 의해 변조된 노이즈에 필적할만한 기괴한 억양의 각종 기타 노이즈들을 혼란스럽고 복잡한 사운드스케잎 하에서 깔끔하게 다듬어낸 케빈 쉴즈의 화려한 스튜디오 작업감각이 프리스타일로 적나라하게 담긴 이 곡은 분명 앞으로 마블발 사운드를 [m b v]까지 추가하여 포괄적으로 정의하고자 할 때 멘션할만한 '학문적' 가치를 풍부하게 가지고 있다.

곁다리 말이지만, 개인적으로 콜름 오키소익(참고로 이 발음 확실하다. 어설픈 근거로 태클 걸지 마라) 특유의 '음이 먹히는 듯'하면서도 생동감과 파워를 불어넣는 드러밍을 [Isn't Anything]에 이어 이번 앨범에서 모처럼 깨끗이 들을 수 있어 상당히 반갑게 느껴진다. [Loveless]에서 오키소익의 활약은, 비록 그의 단독 인스트루멘탈 넘버 "Touched"가 케빈 쉴즈에 의해 파격적으로 앨범에 추가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건강문제 때문에 상당히 미진했었다(일부 트랙에서는 아예 드럼샘플이 루핑되어 쓰여졌음). 하지만 MBV와 오키소익의 리즈시절 라이브, 특히 [Isn't Anything]와 [Loveless] 사이의 기간 동안 채집된 부트렉 라이브 앨범을 들어보면 오키소익의 미친 듯한 드러밍 난타가 굉장히 인상적이었는데, 일렉트로닉적인 뉘앙스가 다분한 [m b v]의 후반부에서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차지하는 리듬파트를 [Isn't Anything]의 '그 때 그 시절' 처럼 강렬하게 드라이브 걸어주는 모습은, [m b v]가 정녕 MBV 밴드의 음악인지 아니면 케빈 쉴즈의 솔로 앨범인지 딜레마에 빠질 수도 있을 다수의 리스너들에게 아주 인상적으로 어필할 수 있을 대목일 것이다. 게다가 노이즈/피드백/디스토션 기타선율과 빌린다 부쳐/케빈 쉴즈의 에테르 보컬라인이 지나가는 동선에 리듬을 타며 음역의 구석구석을 유연하게 매꿔주는 드러밍은, 비록 테크닉적으로 대단한 면은 없다 할지라도 오직 MBV의 오리지널 멤버 오키소익만이 해낼 수 있을 것만 같은 감각이 아닐 수 없다(그런 의미에서 "Who Sees You" 필청 요함). 

비록 [Loveless]와 [Isn't Anything]의 아성에 필적할만한 완성도와 획기성을 보여주지는 못하지만(아무리 MBV 광신도라 할지라도 이 부분에선 대부분이 공감할 것이다), [m b v]의 강점은 듣는 이들 저마다 각자의 감성이나 취향에 따라 '베스트 트랙'으로 선택될만한 독립적 개성을 갖고 있는 트랙들이 1번부터 9번까지 아주 골고루 분포하고 있다는 점이다. 누군가는 이곳 밑 귀퉁이에 찍히게 될 점수를 보고 피식 썩소를 날리며 '너희들도 어쩔 수 없이 마블발빠였구나' 라며 모니터에 대고 쌍욕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2000년대 인디씬에서 얄팍한 슈게이징 감수성으로 여기저기에서 재미를 보고 있는 수많은 뮤지션들 모두가 마블발의 클리쉐라고 필자가 맞받아친다면 당신은 과연 어떻게 반문을 할 것인가. 1988년 [Isn't Anything], 그리고 이어지는 [Glider EP (1990): 참고로 이 EP는 [Loveless]로 인해 그 업적이 다소 가려진 획기적인 소품 명반이다]로 슈게이징 이론을 일찌감치 확립하셨던 MBV는 현존하는 수많은 드림팝/슈게이징/칠웨이브/앰비언트+드론/신쓰팝/기타팝 뮤지션들의 진정한 오야붕(션님의 표현을 빌리자면)이신데. 즉 'THE PAINS OF BEING PURE AT HEART빠', 'RINGO DEATHSTARR빠', 'NEON INDIAN빠', 'HORRORS빠'는 말이 되도 오늘날 기타 센티멘탈리즘과 인디기타공학, 그리고 포스트모더니즘록을 논할 때 절대 빠져선 안될 레전드 오브 레전드 MBV을 숭배한다고 해서 바블발빠로 폄하하듯 부를 수는 없는 것이다. 물론 백점만점짜리 앨범을 두장 깨끗하게 찍어내고 깔끔하게 퇴장하는 것 또한 훈훈하고 의미심장하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m b v]는 현재 한두물 가버린 장르의 오야붕이던 건즈앤로지스(액슬로즈뿐인)의 '중국민주화운동'이나 박살나는 호박들(빌리코건뿐인)의 이름모를(알고 싶지도 외우고 싶지도 찾아보고 싶지도 않은) 컴백앨범과는 아주 다른 성질의 작품인 것이다. 일단 오리지널 멤버들이 고스란히 등장하여 아주 정상적인(혹은 그 이상의) 활약을 해주고 있고(이는 정말이지 리더 케빈 쉴즈의 공이 정말로 크다) 20여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수많은 인디/얼트씬에서 죽어라 쓴물단물 빨아대도 결코 죽지 않는 슈게이징 장르의 전설적인 오야붕들이 퇴물이라고 절대 볼 수 없는 나이에 컴백하여(케빈 쉴즈는 아직 사십대! 그리고 올개닉만 드시는지 노이즈 여신 빌린다 부쳐는 아직도 아름답다) 추억팔기 의도 없이 아티스트 마인드에 입각하여 새로운 시도와 수준높은 완성도를 겸비한 앨범을 지극히 정상적인 프로세스(크리에이션 레이블 파산의혹을 청산하고자 했던 것일까. 이번 앨범은 인디팬들을 더욱 열광케하는 '셀프릴리즈'!)을 통해 들고 나왔으니 어느 누가 감히 그들의 컴백에 돌을 던질 수 있으랴. 컬트적인 백그라운드로 레전드가 된 이들이 매너리즘과 추억팔기의 위험성이 도사리는 '컴백 갬블'에서 22년의 공백기를 딛고 승리해주셨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이들은 'MBV 컬트신화' 의 또다른 챕터를 다시 쓰고 있는 것이다.

솔직하게 말해서, 업데이트도 자주 되지 않고 재미도 없고 이슈거리도 없는 이 곳에 들어오는 대부분의 사람들... 음악에 관해선 적어도 자기 동네에서 골목대장은 할 수 있을 정도의 오덕후들 아닌가? [Isn't Anything]부터 [Loveless]에 이르기까지, 나이/시대에 따라 MBV 음악을 처음 접했을 때 받았던 느낌들에 대한 기억/추억들을 저마다 다르게 가지고 있을 당신들에게 필경 MBV는 '나의 MBV'일 뿐만 아니라 '당신의 MBV'이기도 할 것이다. 그런만큼 이번 앨범을 접하고서 각자 받은 복잡다양한 개인적 감흥들만큼은 평론가들의 가이드가 굳이 필요하지 않을 만큼 디테일하고 생생할 것으로 확신한다(따라서 엄청난 양을 자랑하는 이번 리뷰에서 앨범에 관한 디테일한 소개만은 가능한 한 최소화하고자 노력했다). 전세계 인디 음악팬들에게 완소밴드로 가장 흔히 거론되는 밴드. 그리고 유럽 뮤지션들에 대해 콧대 높은 피치포크까지 접수([Isn't Anything]의 만점 드립)하는 등 인디음악 평론가들을 시크릿 팬으로 가장 많이 보유한 밴드(앨범이 공개되자마자 SPIN 필진들이 총출동하여 흥분된 코멘트 릴레이에 전원 가담하는 진풍경을 연출하기도 함). 청자와 일대일관계의 선분을 은밀히 긋는 MBV만의 미스테리한 매력은 22년의 간극 동안 10대에서 50대까지 5세대를 스윕하며 꺼질 줄 모르는 영속력를 과시해왔고, 그런 의미에서 2월 3일은 인디 음악과 진보적 대중음악을 추구하고 동경하는 모든 음악팬들에게 마치 축제와도 같은 날이었다.


RATING: 90/100

written by BK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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