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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4.10 15:12


"milk and black spiders"

데뷔앨범 [Antidotes (2008)]와 함께 위풍당당하게 등장했던 잉글랜드 옥스포드 출신의 4인조 인디록 밴드 FOALS는 포스트펑크 리바이벌 음악의 상업주의 궤도에서 벗어나 포스트펑크를 장인적으로 구사하고자 했다는 점에서 2000년대 클리쉐 포스트펑크 밴드들과 어느정도의 차별성을 인정받은 밴드였다. [Antidotes]는 리드미컬한 펑크 그루브와 이질적인 멜로디훅의 언밸런스한 조화로 2000년대 초-중반 상업적/음악적 성공을 거두었던 포스트펑크(특히 GANG OF FOUR!!!!!!!!!!) 성향 포스트브릿팝 밴드들(FRANZ FERDINAND, BLOC PARTY, ARCTIC MONKEYS, FUTUREHEADS 등)의 대열에 합류하고픈 '얄팍한' 열망을 일정부분 품었음에도 불구하고 복잡다양한 연주 패턴과 난해한 매쓰록 테크니컬리즘을 펑크조와 함께 대량방출하면서 당시 인디록팬들에 뚜렷한 인상을 심어주었다. 그러나 '미래가 더 기대되는 대형 밴드의 출몰'이라는 극찬에서부터 'BLOC PARTY의 짝퉁'이라는 비난(5.9점을 줬던 피치포크)까지, 당시 평론가들의 평가는 가히 극과 극을 오갔다는 게 [Antidotes]의 치명적 함정.

'GANG OF FOUR의 후예들'로 불리우며 FOALS를 압도하는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던 FRANZ FERDINAND, BLOC PARTY, ARCTIC MONKEYS, FUTUREHEADS 모두 후속작에서 데뷔 앨범만큼의 임팩트를 보여주지 못하며 점점 힘을 잃어가고 있는 데 반해 유독 FOALS만큼은 앨범 발매를 거듭할수록 음악적으로 훨씬 더 안정되어가고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데뷔 앨범에서의 포스트펑크/댄스펑크적인 거칠고 저렴한 에너지와 악기소리들을 순화시켜 U2같은 베테랑 밴드들의 숙성된 음악 못지 않은 고급스러운 톤을 뽑아냈던 두번째 앨범 [Total Life Forever (2010)]은 이들이 반짝 록스타가 아닌 롱런 가능한 실력파 밴드로 거듭날 수 있음을 증명한 작품이었다. 지난 2월 발표된 세번째 스튜디오 앨범 [Holy Fire]는 예민해지기 시작한 톤과 프로그레시브적인 면모로 기대이상의 성과를 거두었던 [Total Life Forever]를 넘어서는 완성도를 보여주는 작품으로, 안정감 넘치는 사운드 톤과 아기자기한 배경 악기 연주 레이어링, 그리고 '이것이 FOALS의 캐릭터!' 라고 말할만한 퍼커션/기타 추임새의 기괴한 풍모 등이 이번 앨범에서 완벽하게 어루어진 것.

FOALS 음악에 '이국적 정서' 등의 개성들을 주입시키는 그리스계 팀 리더 야니스(Yannis Philippakis)는 최근 인터뷰에서 '휴머니티(humanity)'라는 단어를 써가면서, '(가식에서 벗어나) 인간의 내면에 좀더 근접한 사운드들로 [Holy Fire]를 채우고자 했다' 라고 소감을 밝힌 바 있다. 매쓰록적인 연주 매커니즘과 포스트펑크적인 돌출 에너지로 똘똘 뭉친 [Antidotes]는 아직도 인디팬들 사이에서 애청되고 있는 스테디셀러이긴 하지만, [Antidotes]에서 거침없이 뿜어내던 돌발성과 객기에서 노출된 '속보이는' 펑크 애티튜드는 이들을 상업적 꼼수에서 100% 자유로울 수 없게 만들었던 것도 사실. 그런 의미에서 [Total Life Forever]부터 이번 [Holy Fire]에 이르기까지 점차적으로 시도되어온 FOALS의 음악적 변신은 [Antidotes] 시절의 허세끼를 완전히 벗고 성숙한 프로 밴드로 거듭나기 위한 필연적 절차이며 근작 [Holy Fire]는 내면의 목소리에서 우러난 음악을 실현하고자 하는 FOALS의 성숙한 '휴머니티' 가 현재진행형으로 가장 생생하게 살아 숨쉬는 작품일 것이다.

[Holy Fire]의 '위험한 순간'이자 '중요한 순간'은 바로 첫번째 싱글 "Inhaler"에서 등장한다. 사람들의 반응들을 대충 살펴보니 이 곡을 앨범 베스트 트랙으로 많이 꼽고 있는 듯하여 자칫 병크 발언으로 보일 수도 있겠지만, 고급스러운 톤 밸런스와 오밀조밀 규칙적으로 맞아떨어지는(매쓰록 친화 밴드답다) 배경악기 레이어링을 단번에 흩뜨릴 수도 있을만큼 깜놀 강도로 울려대는 얼터너티브풍 클라이맥스는 오버 프로듀싱과 상업적 꼼수의 의심까지 들게 만들 정도로 리스너의 귀를 부담스럽게 자극한다. 만족할 만한 수준으로 묵묵하게 프로듀싱된 "Inhaler"의 나머지 파트와는 달리, 갈라지는 듯한 목청으로 있는 힘껏 불러제끼는 야니스의 얼트 스타일 보컬과 싸이키델릭스럽게 솟구치는 슈게이징풍 기타 리프 사이에서 돌발적으로 벌어지는 파괴적 콤비네이션은 완벽한 톤 밸런스로 대변되는 이번 앨범의 '옥의 티'로 여겨질 수도 있을 만큼 다소 생뚱맞은 면이 없지 않다. 하지만 "Inhaler"는 공격적인 얼트 스타일을 피력하는 와중에도 부드러운 부분과 하드한 부분을 뚜렷하게 각인시키며 구체적인 서사 구도를 능숙하게 만들어 가는데, 이는 곧 기승전결이 생략된 재즈 음악처럼 처음부터 끝까지 매쓰록 연주법과 포스트펑크 애티튜드로써 빵빵하고 타이트한 '밀어붙이기'에만 몰두했던 [Antidotes]보다 훨씬 더 입체적이고도 성숙해진 현재 FOALS의 로킹 스타일을 대변해주는 모습이기도 하다.  

다소 거슬린다는 느낌마저 들만큼 억양 강하게 서술되는 "Inhaler"식 드라마는, 이어지는 "My Number"부터 친근감과 이질감, 소프트함과 하드함, 메인스트림과 인디의 중간 영역을 파고들며 특정음악(매쓰록, 포스트펑크) 매니어 뿐만이 아니라 보통 (록)음악 애호가들의 귀까지도 손쉽게 잡아끌만큼 '좋은 음악'의 보편적 기준에 합당한 양질의 사운드와 이야기구조를 매 트랙마다 그려낸다. [Total Life Forever]처럼 리버브를 사용하여 몽환적인 이야기 복선을 섬세하게 깔다가 [Antidotes]과 "Inhaler"처럼 뭔가 어수선하면서도 아귀가 착착 맞아떨어지는 악기/비트 앙상블을 사용하여 곡의 클라이맥스를 확실하게 서술해내는 모습은 두 장의 전작에서 미처 이루지 못한 [Holy Fire]만의 강점일 것이다. 또한 [Antidotes]의 전매특허였던 그루비한 비트/리듬 센스 역시 세련된 프로듀싱 덕택에 탁탁 튀지 않고([Antidotes] 시절의 "Cassius"와 비교해보라) 절도있는 톤 밸런스를 시종일관 뽐낸다. '클라이맥스+톤밸런스'에 관한 [Holy Fire]식 해답은 "Inhaler"와 함께 본 앨범의 대표적 휘발성 트랙으로 꼽히는 "Providence"에서 가장 명확하게 들려준다. 도입부부터 지중해 중동음악을 연상시키는 오묘한 멜로디로써 최면을 거는 야니스의 보컬에 이어 멀티 레이어를 형성하며 산발적으로 귓청을 파고드는 디스토션/클린톤 기타와 건반 리프들, 그리고 FOALS 비트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스네어 드럼과 퍼커션의 난타가 한 데 엉켜 'FOALS다운' 폭발적인 리듬감과 에너지를 클라이맥스 부분에서 형성하는데, 이 복잡다양하면서도 냉정함을 잃지 않는("Inhaler"와 비교한다면) 클라이맥스 앙상블은 음원 레이어 하나하나에 담긴 고유의 튠(tune)과 생동감을 유지하면서 [Antidotes]의 직설화법보다 오히려 더 정교하고도 화려한 그루브와 공격성을 절도있게 보여준다. 

[Antidotes]는 오늘날의 FOALS를 있게 한 작품이었으나, 당시 UK 네오 포스트펑크의 일시적 트렌드 바람에 동요되어 프로듀싱 과정에서 비트, 리듬, 펑크에 비중을 너무 키운 나머지 FOALS가 록밴드로서 지닌 다재다능함과 개성을 리스너들에게 100% 풀로 전달하지 못한 바도 분명 있었다. 하지만 수많은 영국 인디/얼트 레전드들의 걸작들을 제작했던(디스코그래피만 봐도 입이 쩍 벌어진다) 세계 최고의 콜라보 프로듀서 콤비 플러드 & 알란 몰더(Flood & Alan Moulder)가 영입된 신작 [Holy Fire]에서 FOALS는 포스트펑크 로커가 아닌 진정한 '아티스트'로서 지녀야 할 다재다능함, 개성, 비전 등을 비로소 찾아내고야 말았다. FOALS만이 가진 개성을 살리고자 기존의 스타일(사운드스케잎, 텍스쳐, 시퀀스, 스트럭쳐 등등)에 적극적으로 매쓰를 가한 UK 인디 명장 플러드 & 몰더 콤비의 노련한 프로듀싱 안목에 힘입어 [Holy Fire]는 리드미컬한 비트 감각, 매쓰록적인 연주 메카니즘, 그리고 이상야릇한(혹은 이국적인) 멜로디 훅 등 [Antidotes]의 미덕들을 그대로 물려받으면서도 [Total Life Forever]을 능가하는 사운드스케잎과 구성력까지 더불어 보여주는 데 성공한 것. 이는 포스트 브릿팝의 몇 안되는 레알 생존자 FOALS의 롱런을 위한 미래지향적 어프로치의 발현이며, 더 나아가 어중이떠중이 클리쉐 포스트펑크 밴드들과 몸을 섞기엔 보통이 아닌 연주실력과 아이덴티티를 지녔던 이들의 아티스트 포텐이 본격적으로 터지는 시발점과도 같은 것이다.


RATING: 82/100

written by BK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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