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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S/METAL

LOSS: Despond (2011)


4인조 둠 메틀(doom metal) 밴드 LOSS의 고향은 다름아닌 미국 테네시주 네슈빌이다. 네슈빌하면 떠오르는 인물 엘비스 프레슬리를 비롯, 자니 캐쉬 등 수많은 음악 아이콘들이 전성기를 보냈으며 동시에 '미국판 트로트' 컨트리 뮤직의 성지이기도 한 이 동네는, '음악의 도시' 라는 닉네임과는 걸맞지 않게 과연 메틀 음악 듣는 사람이 한명이라도 존재나 할지 의구심까지 들 정도로 컨트리풍의 미국식 이지리스닝 토종 사운드가 주류를 이뤄오고 있다. 하물며 네슈빌 출신의 유일한 글로벌 메틀 밴드로 회자되는 STEELER(그 유명한 잉베이 말름스틴이 잠시 재적했던)의 리더 론 킬 역시 지금은 예전의 똘기넘치던 메틀 풍모를 싹 지우고 고향 네슈빌에서 조용히 우쿨렐레를 튕기며 컨트리 뮤지션으로 거듭났다고 하니...  마이너 메틀음악을 하는 비주류 핸디캡때문에 LOSS는 데모 앨범 [Life Without Hope...Death Without Reason]을 내놓은지 무려 7년만인 올해 비로소 데뷔 full-length 앨범 [Despond]를 발표할 기회를 잡았다. 폐쇄적 분위기가 다분한 고향을 떠나지 않고 10년 가까이 멤버 교체 없이 밴드를 유지하고 있다는 것 자체도 참으로 대단한 일이지만, 그 기간 동안 멤버들의 심정은 참으로 우울하다 못해 비참하기까지 했을 것으로 사료된다. 이러한 '우울함' 을 이번 앨범에 적극적으로 반영고자 했던 것일까. [Despond]는 익스트림 성향 메틀 앨범에선 듣기 쉽지 않은 '정서의 함축적 표현' 이 가장 드라마틱하면서도 애절하게(?) 담겨있는 작품이라 눈길을 끈다.

업템포의 공격성과 호전성으로 대변되는 주류 익스트림 메틀(블랙/데쓰 등등)과는 달리 음산함으로 대변되는 둠 메틀 성향의 형질을 잔뜩 머금은 LOSS의 음악은 아웃사이더 기질이 다분한 그들의 처지와도 걸맞게 우리가 알고 있는 일반적 양식의 둠 메틀 사운드와 제법 다른 풍모를 보여준다. [Despond]는 흔히 '퓨너럴 둠(funeral doom)' 으로 칭해지는 마이너 서브 장르 익스트림 메틀 사운드의 구역에 일단 들어와 있는 앨범이긴 하나, 퓨너럴 둠의 대표주자 FUNERAL이나 여타 동종 집단들의 사운드와 비교해봐도 '자니 캐쉬적 감성' 으로 둠메틀을 연주하는 듯한 LOSS의 캐릭터는 분명 군계일학적 요소가 다분하다. 다른 둠 메틀 (그리고 퓨너럴 둠 집단들까지 포함해서)보다 훨씬 더 내향적이고 사색적/폐쇄적/자폐적인 서사구조를 전면적으로 내세우고 있는 이 앨범은, 메틀다운 폭발성을 꼭꼭 숨겨둔 채 극도로 가라앉힌 마이너 기타 튠, 재즈음악처럼 모든 유닛들(심벌, 베이스킥, 스네어, 플로어 등등)을 유유자적하는 투로 골고루 중량감있게 이용하면서 비트의 상승감을 오히려 꾹꾹 밑바닥으로 눌러내리는 드러밍 패턴, 그리고 절대 배킹 연주들을 리드하지 않고 하나의 배경샘플 쯤으로 사이드 저편에서 나레이션처럼 속삭이듯 그로울링하면서 침전된 무드를 서서히 압박하듯 고취해나가는 보컬이 혼연일치가 되어 죽음에 관한 한편의 염세적 대서사시를 써내려가듯 시종일관 절제된 연주패턴과 감정이입으로 LOSS식 둠 사운드스케잎을 형성해나간다.   

Loss가 이번 앨범으로부터 칭찬받아야 할 게 있다면, 우선 10분 이상의 대곡을 소화함에 있어서 장르 일탈에 구애받지 않고 자기만의 플레이를 고집스럽게 완성해내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두번째 트랙 "Open Veins To A Curtain Closed" 같은 경우만 보더라도 그들이 10분안에 보여주는 드라마틱함은 기승전결의 정형적 공식에 얽매이지 않고 각기 다른 형태의 클라이맥스-하강 패턴이 지속적으로 교차/반복되고 있으며, 거기에 우리가 익스트림 메틀에서 흔히 보곤 하는 천편일률적인 배킹기타-리듬파트가 똑같은 코드와 템포의 천편일률적 루핑이 아닌, 완벽하게 다른 프레이즈와 강약구조의 기타-리듬악기파트가 10분의 긴 러닝타임을 다채롭게 공략하고 있다. 이러하니 10분의 시간이 전혀 지루하지 않고 오히려 드라마틱하게 전환되는 배킹 음악의 다채로움을 감상하는 재미가 10분 내내 쏠쏠하다고나 할까. 스티비 레이본이나 게리 무어처럼 블루스록 기타사운드처럼 흥미로운 톤으로 이모셔널하게 연주되는 리드기타 리프는 묵직하지만 감성적인 터치로 절도있게 윽박지르는 디스토션 리듬 기타 배킹과 슬로우 템포 패턴 안에서 한데 어우러지며, 거기에 네슈빌 고향 선배이자 염세적 로커빌리 컨트리의 화신 쟈니 캐쉬의 음악에서 느껴지던 은유적이면서도 허무주의적 로큰롤 감수성과 앰비언트적 황량함까지 더해지면서 다른 유럽스타일의 둠 메틀 음악에서는 접할 수 없는 LOSS만의 무게감까지 느낄 수 있다.   
   
자살적인 우울질 기운이 포화상태에 이른 듯한 LOSS의 성향을 가장 적나라하게 함축하는 타이틀을 지닌 세번째 트랙 "Cut Up, Depressed And Alone" 같은 경우,  감성적 익스페리멘탈 기타 튜닝을 연상시키는 초반부에 이어 후반부에 폭발하는 조울증적 기타 멜로디 훅은 이상얄궂게도 마치 우리나라 80년대 민중가요의 멜로디 부분을 연상시키는 비장미로 전환되어 찬란하게 빛난다(달리 표현하자면 둠 메틀임에도 모든 이들이 공감할만한 멜로디를 뽑아낸다는 뜻이다). 또한 아방가르드적 트레몰로 피킹으로 앨범 후반부의 포문을 여는 "Silent And Completely Overcome"에서는 이 앨범 수록곡들 중 유일하게 클린보컬이 등장하는데, 마치 JESU에서 저스틴 브로드릭이 보여줬던 감상조와 닮아있는 몽환적 보컬 감촉은 일관성을 해치지 않고 오히려 섬뜩한 그로울링 보컬 위주의 이전 트랙들과는 다른 맛의 논조와 색다른 분위기로 절망적 우울증을 논하는데 전혀 부족함이 없다.  

LOSS가 인터뷰 중 밝힌 다양한 음악적 취향(바우하우스, 조이 디비젼같은 포스트펑크록부터 아르보 파르트같은 컨템포러리 클래식 음악까지... '독고다이'  혹은 골수들이 많은 이쪽계열의 순수주의자들과는 달리 비메틀적인 음악들에 대해 '기본 이상의 비상한 관심을 노골적으로 표한다)에서도 나타나듯이, 이들은 통속적인 메틀적 시선에서 완벽하게 벗어나 메틀 음악에서 자칫 경외시 될 수도 있는 감성적 멜로디에 관한 탐구를 집요하면서도 학구적인 형태로 펼치면서 동시에 (일종의 박학다식한 '인텔리겐치아' 가 되어) 주류 메틀 매니어들의 천편일률적인 취향을 철저하게 계몽하고자 한다.  

초기 데모 앨범 [Life Without Hope...Death Without Reason]에서 외골수 블랙메틀 레전드 KATATONIA의 커버곡을 수록했던 전례만 봐도 알 수 있듯이, LOSS가 근본적으로 지향하는 음악적 철학과 노선은 애초부터 메틀의 기본 태제와 틀 안에서 지속적으로 생성/동기부여되어오고 있으며 바로 이 때문에 이들을 LITURGY같은 변종 '무늬만 블랙 메틀' 밴드들과 분명한 차별을 두어야 할 터이지만, 아주 철저하게 미래지향적 미니멀리즘에 입각한 LOSS 음악의 실질적 텍스쳐는 메틀정신에 '세뇌된' 분들답지 않게 시대착오적이거나 구태의연한 소음과잉으로 절대 치닫는 법이 없다. "Deprived Of The Void" 같은 다크 앰비언트성 인스트루멘탈 트랙이 보여주는 풍모처럼, LOSS는 보컬이 리드하는 서술적 형태의 음악이 아닌  5가지 사운드 유닛(리드-리듬기타, 베이스 기타,  드럼, 보컬)이 유기적 형태로 하나가 되어 노래 한곡한곡마다 변화무쌍한 연주패턴(특히 기타의 변화무쌍한 마이너 코드웍과  솔로리프들의 끊임없는 변형은, 동어반복 루핑과 메틀 본연의 금속성에 의존하는 LITURGY, WOODS OF DESOLATION, HERETOIR 등의 캐릭터와 큰 차이점이 있다)과 무드의 멜로딕 서사시를 수려하게 뽑아내는데 앨범의 무게중심을 맞추고 있으며 이러한 미니멀리즘의 유기적 조화는 [Despond]에서 우울질 메틀 튠과 함께 완벽한 형질로 응축되어져 있다. 외관상으로는 철저한 모노톤으로 일관하지만(마치 앨범 재킷처럼) 심상적으로는 메틀의 진정성 위에(이게 키포인트다!) 다채롭고 풍성한 스펙트럼을 찬란하게 발산시켜내는 [Despond]는 마이너 중의 마이너로 추락하여 소외의 나락을 걷는 둠 메틀의 새로운 대안 혹은 구세주가 되어주기에 충분한 대중친화적 접근성과 예술적 풍모를 동시에 지닌, 2011년 최고의 메틀 앨범 중 하나로 손꼽힐만한 완성도를 보여주는 작품이다.

RATING: 87/100

written by Byungkwan C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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