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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S/METAL

CHTHONIC: Takasago Army (2011)


일본보다는 한수 아래였지만 우리나라도 나름대로 그럴싸한 메틀 씬을 구축하고 있던 시절이 있었다. 최근 한창 국내 TV 예능 프로에 얼굴을 내밀고 있는 몇몇 왕년 메틀 스타들의 행보를 두고 '대한민국 헤비메틀의 새로운 재조명이 이루어지고 있다' 면서 마치 헤비메틀의 저변이나 상황 등이 다시 나아지고 있다는 식으로 뻘소리하는 신문기사를 본 적이 있지만, 예전 8-90년대의 탄탄했던 인디(그 당시에는 인디라는 말도 없었고 그냥 '언더'라고 불렀다) 메틀씬을 기억하는 나이 지긋한 매니어들에겐 비록 헐벗고 굶주렸지만 진지함과 건전성만큼은 일본 부럽지 않았던 그 시절이 아직도 더 그리울 것이다. 80년대 시나위, 백두산이 1세대로써 포문을 열고(여기서 김태원의 팝밴드 '부활'은 제발 빼달라) 이후 90년대 초까지 세계적으로 검증받았던 일본 메틀 밴드들인 라우드니스나 바우와우, 쿠니 부럽지 않았던 나티, 아발란쉬, 블랙신드롬, 디젤, 뮤즈에로스, 네크로파거스 등등의 '제대로 된' 2세대 정통 헤비메틀 밴드들이 와르르 쏟아졌었는데, 비록 암울한 시대 속에서 정규앨범 하나 마땅하게 내놓을 여건이 되지 못했지만 우리에게도 한국 정통 헤비메틀의 족보에 당당하게 이름올릴만한 인물들이 존재/활동한다는 그 사실만으로 마음 한 구석이 든든했었다.

하지만 아시아 어느 나라 부럽지 않을 정도로 탄탄한 정통성을 지니고 있던 국내 메틀씬이 돌연 급격한 침체의 길을 걸으며 해외진출이 한건도 제대로 성사되지 않은 현실이 참으로 안타까운데, 특히 영-미 밴드들이 패권을 잡던 시기가 지나고 글로벌하게 평준화되면서 전세계적으로 변함없는 인기를 누리고 있는 익스트림 메틀 장르가 국내에서만큼은 아직까지도 좀처럼 활성화되지 않고 있어 이러한 아쉬움은 더 클 수 밖에 없다(리투아니아, 이란, 엘살바도르 데쓰메틀 밴드들의 앨범도 전세계에 릴리즈되는 세상이 도래했건만...). 한국 헤비메틀 1-2세대의 화려했던 활약에 연속성을 살리지 못하면서, 현재 풀타임으로 활동중인 정통 데쓰메틀 밴드가 열개도 안되고 예레미의 앨범이 고작(?) 일본 레이블에 발매되었다고 쾌거인양 떠들어대는 비참한 현실이 계속되고 있는데, 이는 거품만 가득할 뿐(요즘은 테레비만 틀면 카리스마 로커, 3대 로커, 3개 기타리스트 등등... 얼핏 보면 메틀의 엘도라도에 살고 있는 듯한 착각에 빠질 것 같다) 실속이나 발전은 없는 록/메틀음악의 현주소를 대변하는 것이라 더더욱 씁쓸하게 느껴진다. 단지 실력이 문제가 아니라 다양한 음악들을 균형있게 접할 수 있는 여건과 기회들이 21세기 신자유주의와 속물주의의 광기에 의해 하나둘씩 제거되고 있기 때문일 것인데, 이러한 추세라면 그나마 메틀보단 '먹고살만한' 얼트/인디록 씬마저 머지않아 타격을 입을 공산이 크니 바짝 긴장해야 할 것이다......

1995년 대만 타이페이에서 결성된 메틀 밴드 CHTHONIC은 대중음악의 한류바람과는 대조적으로 우물안 개구리 형국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한국 록/메틀계에 여러모로 시사하는 바가 큰 밴드라고 할 수 있겠는데, 결성 당시에는 '섬령악단(閃靈樂團)' 이라는 이름으로 대만 국내 활동에 전념하다 2000년대 중반부터 해외진출에 눈을 돌리면서 2007년에는 아시아 최초로 Ozzfest에 초대되어 무대에 서는 등 현재 최고의 각광을 받고 있는 아시아 메틀 밴드로써 입지를 단단하게 구축하고 있다.

CHTHONIC은 가사 속에 여러가지 호전적/서사적인 가사와 테마를 음악과 함께 섞어낼 수 있는 데쓰/블랙 메틀 장르 특유의 특성을 아주 유효적절하게 이용한다. 이들은 동양적인 정서와 전혀 맞지 않는 서양(특히 북유럽) 블랙메틀의 파가니즘과 흑마술주의를 어설프게 따라하지 않고 대만 토속신앙과 신화, 전설들의 테마로 절묘하게 대체하며, 또한 중국과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대만이 가지고 있는 정치적 이슈들에 대한 관심을 음악 안에서 표하기도 한다. 최근 CHTHONIC은 자신들의 트레이드마크였던 KISS와 KING DIAMOND가 짬뽕된 검은 메이크업을 과감하게 지운 모습을 팬들에게 드러냈는데(그렇다고 완벽한 맨얼굴은 아니지만), 이러한 겸허한(?) 태도 변화가 음악에 영향을 끼쳤는지 이번 [Takasago Army] 앨범의 가사들 역시 기존에 취해왔던 블랙메틀 특유의 비현실적 테마에서 살짝 벗어나 예전보다 훨씬 강화된 정치적인 해석들과 진지한 가사/테마적 시도들로 가득차 있다. 이들은 대만토착민임을 자처하며 대만독립을 계속 주창해온 골수 민족주의자들이기도 한데(이 때문에 헤비메틀의 새로운 다크호스로 떠오르고 있는 중국에서 이들의 앨범 발매가 금지되기도 했다) 이번 앨범에서는 과거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의 점령하에 있던 대만에서 독립운동을 했던 대만 토착민(시디그) 출신 레지스탕스 영웅들을 과감하게 등장시키면서 일본의 식민지배를 우회적으로 비판하는 기특함을 보여준다. 가령 대만 타카오(현재 까오슝)만에서 일본군과 격전을 벌였던 대만 군인들을 위한 헌정곡 "Takao"에서는 강렬한 헤비 사운드의 틈바구니에서 처량하게 흐르는 여성 엔카 가수의 곡조가 아이러니한 뉘앙스를 불러일으키며, "Broken Jade"에서는 실질적 전범 히로히토 일왕의 제2차 세계대전 항복 연설을 파워풀한 속주의 대향연과 함께 삽입시킴으로써 일본의 패전을 묵시록적으로 심판하듯 다그치기도 한다.

[Takasago Army]는 초기 대만 내수용 앨범들은 물론이거니와 전작 [Seediq Bale]과 비교해봐도 음악적으로 상당히 진보적인 발전들이 여러모로 눈에 띈다. 이들의 음악적 기반은 노르웨이 블랙메틀, 특히 키보드로 서사적인 테마를 즐겨 표현하는 DIMMU BORGIR식 블랙메틀과 프로그레시브함을 강조하는 ENSLAVED식 블랙메틀에 강력한 영향을 받은 듯 한데, 이번 앨범에서는 그동안 살짝 오버스럽게 표현되어져왔던 블랙메틀적 요소를 조금 절제하고 스웨덴 멜로딕데쓰(ARCH ENEMY: 대만메틀계에서 A.E.의 입지는 한국에서 메탈리카의 영향력 이상이다)와 영-미 메틀(CRADLE OF FILTH과 PANTERA의 테크닉과 그루브를 적절히 적용시킴)의 테크니컬하면서도 스피디한 메틀 정공법 요소들을 강화시키면서 동시에 핀란드 포크메틀 밴드들처럼 중국 전통문화에서 우러나오는 대만 특유의 에쓰닉(ethnic)한 면모가 헤비메틀에 결합된 퓨전 어프로치까지 이번 앨범에서 거의 완벽한 레벨과 퀄리티로 완성시켜내는 기염을 토한다. 

이번 앨범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장점은 바로 멤버들간에 타이트하게 맞아떨어지는 연주 콤비네이션으로, 특히 이들이 간간이 들고나오는 중국/대만 전통악기들 특유의 소프트하면서도 명상적인 질감과 서양 전자 악기들의 거칠면서도 압도적인 질감이 서로 조화를 아주 잘 이뤄내고 있다는 점이 굉장히 흥미롭다. 그리고 디스토션이 걸려있는 톤이지만 깨끗하면서도 강렬하게 뿜어져나오는 리듬기타의 정돈된 리프와 아귀가 딱딱 맞아떨어지게 투베이스드럼과 하이햇을 다양한 패턴으로 맞춰나가는 드럼 사운드간의 완벽한 하모니 역시 지나쳐선 안될 포인트다. 여기서 드러머 대니 왕의 현란한 드러밍을 칭찬을 하지 않을 수 없는데, 이미 세계 최고의 드럼용 심벌 제조회사 Zildjian에서도 대니 왕을 이미 차세대 헤비메틀 드럼 에이스로 선정하여 강력하게 스폰서를 하고 있을 정도로 그의 드러밍은 이미 탈아시아적 기량으로 인정받고 있다. 아시아 메틀 밴드들이 허구헌날 서구 메틀 매니어들에게 맹목적 까임을 당하게 되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리듬파트, 특히 드럼 파트의 '구멍' 때문인데, 대니 왕은 테크닉 뿐만 아니라 아시안 드러머들의 고질적 약점인 파워와 임기응변/센스에서도 전혀 나무랄 데 없는 연주를 [Takasago Army]에서 120% 뽐내고 있다. 또한 이 팀의 리더이자 얼굴마담(?)인 여성 베이시스트 도리스는 이번 앨범에서 과히 나쁘지 않은, 정확하면서도 스피디한 피킹 스트로크를 안정적으로 보여주며(그리고 섹시한 이미지 하나 만큼은 여성 메틀 뮤지션들 중 여전히 세계최강급이 아닐른지), 리드보컬 프레디 역시 다른 서구 메틀 보컬리스트 못지 않은 파워와 다양한 스펙트럼을 과시하며 CHTHONIC 사운드의 풍부함과 안정감에 화룡점정을 더해준다.

아시아의 핸디캡을 딛고 그동안 이뤄온 글로벌 성과와 더불어 Republic of Taiwan을 꿈꾸는 이 아시아 변방 출신 헤비메틀 밴드가 짙은 화장을 벗고 더욱 진지하게 표현해내는 [Takasago Army] 앨범 속 정치적 이데올로기는, 반일-반공-반미 등등 정치적 떡밥꺼리하나만큼은 세계최강으로 풍족한 대한민국 메틀 로커들에게 여러모로 시사하는 바가 많을 것이다. 대만인들에게 물어보면 대만의 록/메틀 저변도 그다지 두꺼운 건 아니라고 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CHTHONIC에 이어 SERAPHIM, ANTHELION 등 다른 대만 헤비메틀 밴드들이 연이어 해외진출에 성공가도를 달리는 모습은 바로 이웃에서 대만에 우월의식을 가지고 살아가는 우리들에겐 부러운 광경이 아닐 수 없다. 케이팝의 세계화(?)에 흠뻑 취해 우쭐해 있다면 물론 콧방귀를 낄 뿐이겠지만, 이 사람들아, 그게 다는 아니란 말이다......


RATING: 83/100

written by
BK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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