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미국 오리건 주 포틀랜드에서 결성된 4인조 포스트록 밴드 GRAILS는 다른 포스트록 밴드들과 마찬가지로 POPOL VUH, CAN 등과 같은 유럽 '포스트록 교과서' 들로부터 지배적인 영향을 받았지만 특이하게도 쟝 끌로드 바니에 같이 기괴한 서정미를 표방하는 영화 음악 작곡가들에게도 비상한 관심을 가지고 있기에 그들의 음악은 언제나 영화를 감상하는 듯한 시각적인 일루젼이 넘실거린다. 하드록과 포크의 기본 음악적 구조 위에 동양적인 싸이키델리아와 클래식의 오묘한 이완적 정서를 성공적으로 결합시켰던 전작 [Doomsdayer's Holiday (2008)]는 GRAILS이 일관적으로 이어나간 '영화 음악 스코어의 인스트루멘탈 록 변환' 이라는 음악적 기본틀에 충실한 작품이었고 이번 신작 [Deep Politics] 역시 사전에 어느정도 예상은 되었던 GRAILS식 록 싸운드를 그대로 답습한 형태를 갖추고 있다.
[Deep Politics]는 마치 영화음악 악보를 참고하면서 밴드 합주를 하는 듯 GRAILS의 과거 앨범들보다 더 확고부동한 OST 인스트루멘탈 록적 분위기와 스트럭쳐로 일관되어 있다. GRAILS는 이번 4번째 정규 앨범에서 60년대 멜랑꼴리한 무드를 동반한 장인적 연주스타일을 보여줬던 VENTURES의 영화음악 양식과 마카로니 웨스턴 OST의 황량한 싸운드스케잎에서 차용한 아이디어를 포스트록 형태의 컴포지션으로 풀어나가고 있는데, 거기에 동양적인 향기가 솔솔 나는 관현악기 연주와 낮은 음계에서 앰비언트 톤으로 감성적으로 전개되는 피아노 선율, 그리고 쟈니 캐쉬 스타일의 깔끔한 미국식 로커빌리 기타 리프까지 추가하면서 고다르식 추상적 네러티브 구조를 띄는 RACHELS나 THEE SILVER MT. ZION과는 사뭇 다른 '난해하지 않은' 6-70년대 헐리우드풍 씨네마틱 포스트록의 서술 구조를 띄고 있다.
그래선지 기타, 베이스, 현악 스트링이 지속적으로 펼쳐내는 프레이즈들은 의외로 포스트록이라는 난해한 카테고리의 음악치고 상당히 듣기 좋은 멜로디를 뽑아내고 있으며, 이러한 씨네마틱 서사구조와 무드의 차용으로 얻어낸 특혜성 어드밴티지 덕분에 앨범 내 음악들의 공간감과 질감, 텐션감 처리 역시 특별한 어려움 없이 안정감 있게 조절해낼 수 있었던 것이다.
물론 수수께끼처럼 끝도 없는 초현실적 방황을 하는 SIGUR ROS나 청자와의 감성적인 어필을 가장 중요시하는 MOGWAI 스타일의 음악을 기대하는 포스트록 팬들에게는 [Deep Politics]에서 특별한 앨범 테마나 감정 기복 없이 영화음악 악보만 보고 묵묵하게 연주하는 듯한 GRAILS의 태도가 못마땅하게 여기질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GRAILS에게는 [Deep Politics]만큼 가장 이상적인 형태로 자신들이 원하는 바를 펼쳐 보인 앨범이 없을 테다. 전작 [Doomsdayer's Holiday]에 비해 종합적인 매력이 조금 미흡하긴 하지만 역대 GRAILS의 앨범들 중 '시네마틱 싸운드스케잎' 이라는 테마를 가장 일관적이고 집요하게 집중시켜낸 작품으로 평가될 수 있을 것이다.
RATING: 74/100
written by Byungkwan Cho
written by Byungkwan C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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