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없어진 'H' 로 시작되는 팝-록 전문 잡지가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엉뚱하고 왜곡된 기사도 참 많이 냈었지만 당시 아무런 정보공유가 되지 않던 한국 내에서 유일하게 최신 음악 정보를 한국어로 제공했던 나름 고마운 존재였다. 1992년이었나. 그때 자칭 '데쓰 메틀 전도사'라는 타이틀을 내건 이 아무개란 사람이 그 잡지의 객원기자 쯤으로 등장하여 당차게 미국-유럽의 유명 데쓰-블랙-둠 메틀 밴드들을 몇 회에 걸쳐 연재한 적이 있었다. 그때 이 아무개씨는 '데쓰 메틀 밴드 BELEIVER - 엉뚱한 철자까지 곁들인' 로 BELIEVER를 국내에 처음 소개했었던 기억이 난다. 그러나 그의 말과는 달리 당시 BELIEVER는 데쓰 메틀 계열이기보다는 쓰래쉬 메틀 혹은 프로그레시브 메틀 쪽에 더 가까운 음악을 했었다. 이들은 '크리스챤 쓰래쉬 메틀' 이라는 어색한 아이덴티티를 뛰어넘는 변화무쌍한 헤비 메틀 속주 하모니를 [Extraction from Mortality (1989)], [Sanity Obscure (1990)], [Dimensions (1993)]을 통해 연속적으로 선보이면서 초기 프로그레시브 메틀의 틀을 잡는 데 큰 역할을 담당했다. 하지만 '크리스챤 메틀' 이라는 어설픈 수식어구는 당시 이들의 음악이 수준 이하의 저평가를 받는 빌미를 제공했고 때마침 의학 박사의 길로 방향을 튼 밴드 리더 커트 배크먼의 제안에 의해 1994년 밴드는 우호적으로 해산하게 된다.
그리고 그로부터 11년이 지난 2005년, 밴드의 원년 멤버 조이 돕 (드럼)과 커트 배크먼 (보컬, 기타)은 다시 의기투합, 굴지의 레이블 Metal Blade Records와 계약을 맺고 밴드를 5인조로 재편성하여 무려 16년 만에 4집 앨범 [Gabriel]을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이 컴백 음반은 비관적이었던 예상을 완전 뒤엎고 괜찮은 수준의 강력하면서도 드라마틱한 테크니컬 쓰래쉬 메틀의 융합체였고 BELIEVER는 이 앨범 한 방으로 90년대 초 전성기 시절에 비견되는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성공적인 컴백을 하였다.
하지만 첫번째 앨범에서 받은 예상외의 호의적인 평가 일색에 자신감을 얻었던 것일까. BELIEVER의 두번째 컴백 앨범 [Transhuman] 은 기존의 어두운 쓰래쉬 메틀 노선에서 다소 이탈하여 얼터너티브 메틀에 조금 더 근접해 있는 프로그레시브 메틀 음악으로 바뀌어 있다. 물론 BELIEVER 특유의 변칙적인 박자 감각과 드라마틱한 싸운드스케잎, 그리고 솔로 리프 없이 간결하면서도 강력하게 디스토션이 걸린 트윈 리듬 기타 하모니는 이번 앨범 안에서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전작보다 훨씬 깔끔하고 예리해진 프로듀싱은 20년 전의 [Extraction from Mortality], [Sanity Obscure] 앨범과는 비교가 불가할 정도로 최고 수준의 완성도를 자랑한다. 하지만 너무 예측 가능한 수준으로 모든 게 돌아가는 듯한 악기 파트의 뻔한 스토리텔링과 밋밋한 단면도로 변질되어버린 커트 배크먼의 보이스는 마치 LINKIN PARK의 곡을 듣는 듯한 착각을 불러 일으킬 정도로 전체적 음악 분위기를 가볍고 부드럽게 몰아가는 빌미를 제공하고 있다. 분명 [Extraction from Mortality], [Sanity Obscure] 시절의 과격하고 거칠고 예측을 불허하는 헤비 테크닉의 무한 반복에 익숙한 팬들에게 [Transhuman] 은 분명 낯선 톤과 스토리텔링의 향연에 다름 아니다.
테크니컬 쓰래쉬 메틀의 난해한 학구열이 원인 모를 이유로 증발해버리고 대신 Nu-Metal이나 얼터너티브 메틀의 폭신한 메인스트림의 감촉이 그 공백을 매꾼 듯한 [Transhuman] 은 분명 기존의 BELIEVER 팬들을 당황시키게 충분한 낯선 실험의 형질로 변모해 있으며, BELIEVER의 이러한 태도 변화는 안타깝게도 음악적 성숙함으로 미화하기에는 그 궤도 수정의 폭이 너무 커져 있다.
RATING: 62/100
written by Byungkwan Cho
written by Byungkwan C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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