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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S/METAL

ANAAL NATHRAKH: Passion (2011)


지난 8-90년대 십 년 남짓의 짧은 '신격화' 시기를 제외하고는 주류적인 인기나 주목을 끌기에는 항상 역부족이었던 헤비 메틀 장르는, '익스트림 메틀' 이라는 좀 더 사악한 루트로 주된 관심의 방향을 틀면서 점점 비주류의 블랙홀 속으로 자진해서 빠져들어가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이러한 현 상황에 굴하지 않고 극악의 끝만 보고 장인정신으로 여기까지 달려온 ANAAL NATHRAKH의 범대중적 입지는 대체 어느 정도로 바닥일까.

잉글랜드 버밍엄에서 결성된 밴드 ANAAL NATHRAKH는 보컬리스트 데이브 헌트 (혹은 'V.I.T.R.I.O.L.' 라는 예명으로도 불리워진다)와 멀티 연주자 믹 케니, 딱 이렇게 2인조로 단촐하게 구성되어져 있다. 하지만 이들이 내뿜는 '노이즈'의 강도는 2인조라는 사실을 금방 망각할 만큼 대량학살의 생지옥에서 절규하는 소리들을 채집한 듯 극심한 공포와 불쾌함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한 극단적 싸운드를 일관적으로 담아내왔다. 이 때문에 '근본주의적' 메틀 매니어들에게는 '쓰레기 집단'으로 매도당하기도 하지만, 어찌됐든 2000년대 익스트림 메틀의 한 획을 그은 걸작 데뷔 앨범 [The Codex Necro (2001)]을 비롯해서 전작 [In The Constellation Of The Black Widow (2009)]에 이르기까지 변화무쌍한 네러티브 구조 속에서 악마적 카오스를 탁월하게 구현해낸 이들의 작품들은 골수 메틀팬들에게 격찬을 받아왔다.

블랙/데쓰 전문 레이블 Candlelight UK에서의 두번째 앨범이자 ANAAL NATHRAKH의 통산 6번째 정규 앨범인 신작 [Passion] 역시 전작들처럼 극악의 끝을 미친 듯이 파고드는 블랙 메틀 밴드 특유의 악마적 스타일을 고스란히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블랙 메틀치고는 강도가 높은 난잡한 펑크 스피릿과 왜곡된 스피드/노이즈의 향연은 그라인드코어의 대부인 동향 선배 괴물 집단 NAPALM DEATH의 돌연변이 기질을 살짝 닮아 있으며, 드럼비트를 연상시키듯 규칙적인 16비트 더블베이스킥과 전자 파열음들이 난장을 이루는 스트럭쳐 형태는 MINISTRY의 인더스트리얼 음악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이번 앨범에서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은, ANAAL NATHRAKH을 대표하는 캐릭터이기도 한 V.I.T.R.I.O.L.의 악마적 스크리밍이 곡들 중간중간에서 멜로딕한 중고음 보컬(이 부드러우면서도 안정된 정상적인 형태의 보컬 파트 역시 V.I.T.R.I.O.L.의 목소리다. 다른 보컬리스트의 목소리가 아니다)과 적시적소에 하모니를 즐겨 이루고 있는데, 이러한 이율배반적인 보이스 톤의 대칭적 구조는 천편일률적인 흐름로 갈  수도 있을 전체적 앨범 분위기를 훨씬 다채롭게 엮어내는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특히 7분 길이의 대곡인 "Drug-Fucking Abomination"에서 보여지는 드라마틱한 서사구조는 [Codex Necro] 이후 오랜만에 느껴보는 장관인데, 특히 4~5회 극적으로 반전되는 템포변화에 맞춰 교차적으로 흐르는 스크리밍 vs 클린 보컬 간의 앙상블은 군더더기 없이 극악 에너지를 시종일관 사정없이 쏟아내는 ANAAL NATHRAKH에게 복잡미묘한 캐릭터를 심어주기에 충분한 특징 중 하나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물론 "Locus Of Damnation" 이나 "Who Thinks Of The Executioner" 처럼 청각적 트라우마와 스트레스를 극단적으로 유발시키는 단순무식 그라인드코어 데쓰 형태의 잔악성이 난잡하게 드러나는 전형적 ANAAL NATHRAKH표 고농축 노이즈 폭탄들은 기존의 팬들을 절대로 실망시키지 않을 퀄리티를 여전히 갖추고 있다. 하지만 4분 남짓의 짧은 시간 동안  ANAAL NATHRAKH만이 가진 모든 요소들을 변화무쌍한 기승전결 구조 속에서 정갈한 형태로 쏟아낸  "Ashes Screaming Silence" 와 같은 고급(?) 트랙들은 골수 극악메틀 팬들 뿐만이 아닌 그 외 일반적인 헤비 메틀 팬들까지도 흡수할 수 있을 만한 범장르적 성숙미와 매력을 두루 갖추고 있다.

ANAAL NATHRAKH의 라이브는 스튜디오 앨범 안에 녹음된 싸운드 이상의 타이트한 퀄리티를 뽐내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이렇게 노련하면서도 탄탄한 연주 실력 뿐만 아니라 필드에서의 오랜 경험을 토대로 다져진 메틀 음악에 관한 ANAAL NATHRAKH식 외곬수 철학과 이념은 '진부한 노이즈 음악' 쯤으로 폄하하는 근본주의자들의 비아냥을 가볍게 케이오 시킬 만한 깊은 음악적 내공을 품고 있다. 물론 커다란 진보의 성과를 매번 기대할 수는 없게 만드는 음악 형태인 것은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음악은 조그마한 성장과 변화의 과정 속에 항상 자리하고 있으며 본작 [Passion] 역시 그러한 성장곡선 상에 당당히 위치하고 있는 훌륭한 레벨의 익스트림 메틀 앨범이다.
 
RATING: 80/100

written by Byungkwan C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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