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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6.24 08:35


작년 SEBASTIAN의 셀프타이틀 앨범 리뷰에서 잠깐 언급했듯이, 비주류 식민지국가들이 제각기 보유한 에술-문화-음악적 다양성의 연구, 습득, 보존, 활용에 적극적이었던 프랑스 음악계는 90년대 이후 힙합과 일렉트로닉 분야에서 탁월한 섞어치기 본능을 발휘하며 영미음악 부럽지 않은 자신들만의 글로벌 입지를 착실하게 쌓아나가고 있다. 특히 90년대 MC 솔라르(MC Solaar)의 불어랩 히트송 "Nouveau Western"과 마티유 카쇼비츠(Matheiu Kassovitz)의 영화 'La Haine'(1995)를 통해 젊은 이민족 커뮤니티 중심으로 기반을 구축해가던 당시 프랑스 힙합 문화의 잠재력이 처음 드러난 이래, 우린 아프리카, 무슬림, 서인도제도 등 제3세계 영향력에 기반하여 영-미 힙합과는 다른 개성을 탑재한 프랑스 비트/힙합 음악들을 꽤 풍성하고 다채롭게 접해오고 있다. 젊은 파리지엥 비트메이커 ONRA 역시 새로운 프랑스 힙합 세력군에서 절대 빼놓을 수 없는 에이스 중 한 명으로, 2007년 선보인 걸출한 비트 앨범 [Les Chinoiseries]를 통해 '제이딜라(J Dilla)의 프랑스식 대안'으로서 세계적 주목을 얻은 바 있다. 베트남계 혈통을 이어받은 까닭에 [Les Chinoiseries]에서 그가 태생적으로 드러냈던 질퍽한 아시아 친화력은 알제리계 래퍼 메디네(Médine) 등이 주창하는 무슬림 갱스터랩과는 또다른 차원의 이국적 느낌으로 다가왔었는데, 프랑스 힙합계에서 자주 쓰이곤 하는 제3세계 음악 쏘스들 중에서 소외되었던 인도차이나 반도(베트남-캄보디아-미안마)와 중국 전통음악들을 적극적으로 응용하여 가장 특이한 형태의 이국적 힙합 뉘앙스와 비트 센스를 이지적으로 과시했던 그의 출현은 분명 일렉계에서의 DAFT PUNK만큼이나 충격적인 것이었다.

[Les Chinoiseries] 직후 선보였던 풀렝쓰 작품 [Long Distance (2010)]는 전작에서의 베트남/이국적 정서가 상당부분 거세되고 선진도시의 밤문화 감성이 그 공백을 대신하면서 '특이함' 만을 제1덕목으로 삼는 일부 매니어들에겐 적잖은 당황스러움을 안겨주었던 순수 클럽형 앨범이었다. 하지만 빈티지 키보드를 이용하여 위풍당당하게 터트려내는 훵크(funk) 그루브와 제이딜라 부럽지 않은 '변칙적 템포 - 이질적 질감'의 비트메이킹 스킬은, 비록 디스코와 일렉트로 취향 역시 다량 함유된 경음악이긴 했으나 도시적 감성코드에도 완벽하게 적응해낼 줄 아는 그의 다재다능한 힙합 프로듀싱 능력을 다시 검증받는 데 전혀 부족함이 없는 수준의 것이었다.

[Les Chinoiseries]의 2탄 격인 [Chinoiseries Pt.2 (2011)]를 통해 자신의 제3세계 아이덴티티를 보다 더 구체화시켰던 ONRA는, 최근 선보인 신작 EP [Deep In The Night]으로 [Long Distance]식 구형 디스코/힙합/브레이크댄스 클럽 본능으로의 회귀를 엇박자로 또다시 반복한다. 올드스쿨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랩그룹 SLUM VILLAGE의 T3가 80년대 래퍼로 빙의한 오프닝트랙 "After Hours"는 파리의 중고 레코드가게에서 스크래치 가득한 흑인 음악 LP들을 디깅(digging)하는 ONRA의 모습이 머릿속에서 그려지는 듯한 감각적 빈티지 힙합 삘이 귓전을 파고드는 곡이다. 포스트디스코(post-disco) 신쓰/드럼비트 음질과 브레이크댄스용 브레이크비트 그루브가 T3의 정직한 올드스쿨 래핑, 구닥다리 디지털 알앤비 배킹보컬 샘플과 제법 흥겹게 어우러지면서 80년대 뉴욕언더그라운드풍 하드코어 클럽 댄스의 부기훵크 바이브를 제법 그럴싸하게 재현해낸다. 글리취된 아르페지오 빈티지 디지털키보드 리프에 의해 곡의 흐름이 시종일관 리드되는 "LOVE"는 멀티레이어로 깔린 다양한 억양의 건반 리프들이 컴퓨터 스네어 비트의 템포에 맞춰 화려한 볼륨감과 자태를 뽐내며 트랙을 수놓는데, 마치 커머셜 키보드 퓨전재즈가 덧칠된 80년대 미국 TV 드라마의 주제곡을 듣는 듯 적당히 빈티지스럽고 적당히 도시적인 느낌으로 앨범의 감칠맛을 더한다. ONRA의 빈티지 부기훵크 본능은 이어지는 나머지 트랙들 "Somewhere", "V.B.B.", "Hold Tight"에서도 여실히 드러나는데, 때로는 깊숙하게, 때로는 끈적하게 파고드는 올드스쿨 펑키/알앤비 댄스 그루브에 맞춰 적시적소의 타이밍에서 터지는 MPC 아날로그 비트들은 빈티지 비트메이커로써 [Long Distance]에서 보여주었던 장인적 풍모를 다시 한번 체감하는 데 전혀 부족함이 없어 보인다.

이번 EP 앨범에서 80년대 다운타운 댄스 클럽의 알앤비와 부기훵크를 주요 소재로 삼은 ONRA의 비트메이킹은 [Long Distance]에 비해 전혀 녹슬지 않은 그루브와 댄스삘을 리스너들에게 선사하고 있으나, 창의적인 면만을 따져봤을 때 [Deep In The Night]는 (EP앨범이라는 공간적 제한 때문인지) [Long Distance]에 비해 젊은 MPC 비트장인으로써 ONRA의 도발적인/다재다능한 크리에이티브 면모가 100% 발휘된 작품이 아니다. 즉, 테크노 캐릭터까지 아우르면서 다채로운 패턴의 템포, 불규칙한 질감의 비트, 다양한 억양의 보컬 샘플 등을 두루 적용하여 DAM FUNK, MADLIB과는 또다른 형태의 참신한 레프트필드형 빈티쥐 글리취 힙합을 선보였던 [Long Distance]의 입체적 면모를 떠올릴 때 이번 [Deep In The Night]의 전체적 디렉션이나 제조공법은 다소 단선적이고 평면적인 감이 없지 않다. 그의 명성에 걸맞게 그루브 장악능력은 이번 앨범의 빈티지 설정 하에서도 화려하게 빛을 발하지만, 80년대 뉴욕 언더그라운드 클럽 댄스 혹은 '힙합 전성기' 직전 브레이크비트 힙합의 올드 분위기 연출에 너무 큰 무게중심을 둔 나머지 사운드 자체를 디테일하게 파고들어 적극적으로 난도질하려는 의지는 [Long Distance]보다 확실히 덜 담겨있다. 따라서 정석적인 보컬 샘플 사용법과 왜곡없이 일관되게 루핑되는 비트 등은 스트레이트한 흥겨움 사이로 조금 지루한 감마저 간혹 느껴지기도 하며 비트 위에서 악기/보컬 샘플들이 치고들어왔다 빠져나가는 타이밍 패턴 역시 ONRA의 전작 정규 앨범들에 비하자면 '예상가능한' 평범한 궤도 안에 너무 머물러 있는 듯한 인상을 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ONRA만의 샘플/악기사운드 어레인지법에 의해 도출되는 빈티지 음향/비트들은 여느 힙합 비트인스트루멘탈이나 빈티지지향 일렉트로 앨범들, 더나아가 여지껏 ONRA의 이름으로 제작된 이전 작품들보다 훨씬 이해하기 쉽고 대중친화적이기에, 골수 힙합팬뿐만 아니라 얼터너티브 힙합, 일렉트로, 인디테크노, 빈티지 DIY 음악 매니어 모두가 거부감없이 반복청취할 수 있는 빈티지훅을  지니고 있는 작품이다.

RATING: 72/100

written by KEFKR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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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을 달아 주세요

  1. 페다고지 2012.07.03 20:27  Addr  Edit/Del  Reply

    잘봤습니다~ 또 마음에 드는 음악 하나 알아가네요. 쓰신대로 좀 지루한 감이 있긴 하지만 괜찮은 앨범이었습니다. long distance는 참 좋군요...

  2. trilogy 2012.07.19 22:56  Addr  Edit/Del  Reply

    이 앨범 전에 long distance 들어봤는데.. 전작이 좋더군요. ㅋ 그런데 확실히 이쪽은 저번 에 sebastian의 포스를 능가하는 음반이 아직 안 나온 듯 하네요 ㅋㅋ 몇몇 dj들이 음반을 내는 걸 보니 어서 caribou나 lyre le temps 도 어여 앨범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