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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1.27 18:46


"Sticky"

강남/이태원 사교클럽에서 술 빨면서 몸을 흐느적거리기에 딱 좋은 일본산 싸구려 라운지 음악을 '시부야케이'로 예쁘게 포장하는 사람들이나, 스타벅스에서 7천원짜리 리저브 커피에 애플 맥에어로 채팅질 하며 '칠(chill)한' 여가선용을 하기에 딱 좋은 브루클린산 싸구려 신쓰팝 음악을 '칠웨이브'로 예쁘게 포장하는 사람들이나 '도찐개찐' 같아 보이는데, 만약 특정 유흥 분위기에 적합하도록 손쉽게 '복사 ➝ 붙이기' 된 저급 음악들까지 저런 모호한 장르를 등에 업고 덩달아 특별대우 받는다면, 정작 미디어 깡패들에 의해 허접들과 얼떨결에 한 배를 탄 진퉁 뮤지션들 입장에서는 손해도 이만저만 손해가 아닐 것이다.

토와 테이(Towa Tei) 등 '시부야케이' 계보에 억지춘향격으로 끼워 맞춰진 실력파 뮤지션들의 대다수가 자신들이 '시부야케이' 뮤지션으로 불리워지기를 별로 달가워하지 않는 것처럼, 칠웨이브' 군으로 분류된 상당수의 유명 뮤지션들 역시 '칠웨이브'라는 용어에 대해 그다지 호의적인 반응을 보이진 않아왔다. '칠웨이브'를 논함에 있어서 빠져선 안될 인물인 TORO Y MOI의 채즈윅 번딕(Chazwick Bundick)도 그렇다. 명색이 인디뮤지션임에도 국내에서 파워풀한 팬덤을 보유중인 번딕은 알다시피 '칠웨이브 운동(???)'의 선봉장 격 인물이 아니던가. 그런 번딕 역시 자신이 '칠웨이브'의 리더로 불리워지는 것에 대한 거부감을 각종 인터뷰를 통해 에둘러 표현해왔으니...

된장스러운 칠(chill) 무드를 충족시키는 데 주된 목적을 둔 '칠웨이브'의 이념을 떠나, 근본적으로 TORO Y MOI에서 표방했던 번딕의 창작 스타일은 다른 칠웨이브군 음악들과 비교할 때 크게 매치되는 형질의 것이 결코 아니었다. 소싯적 TV나 라디오 등을 통해 경험했던 8~90년대 아날로그 대중문화에 관한 기억 속에 머물던 편린들을 별다른 인과관계 없이 자신의 음악 안에 '묻지마'식으로 적용시키는 공법은 차라리 레트로/빈티지 팝 미학의 광인(狂人) 애어리얼 핑크(Ariel Pink) 계보와 연관성이 더 있어 보였으니까. 그래픽 디자인 전공자답게 혁신적인 로고들을 디자인한 폴 랜드(Paul Rand)를 자신의 멘토로서 자주 언급해온 번딕은, 앞서 언급한 '키취적 창작법'에 의거하여 현 하위(혹은 인디)문화들에 관한 다양한 영감들을 자신의 음악세계에 투영시키는 데에도 굉장히 능숙해 보인다. 또한 (인디권에서) 스타급으로 대접받는 상황이 조금은 부담스럽다는 식의 코멘트를 인터뷰에서 하기도 했었는데, 적어도 그동안 미디어에서 비춰진 캐릭터만을 놓고 볼 때 번딕은 조금 '얄팍했던' 음악의 아웃풋과는 달리 트렌드나 대중성에 크게 민감한 인간형으로 비춰지진 않는다. (차라리 윌리엄스버그 힙스터 유형에 가깝다고나 할까?)

그런 의미에서 LES SINS는, 언제 지리멸렬할지 모를 족보 부재 트렌드 장르 '칠웨이브'의 수장이 되어야만 했던 번딕이 그 부담을 떨쳐내고 음악인으로서 새로운 전환기를 맞기 위해 준비된 '제2차 프로젝트'로 볼 수 있다. 거칠게 표현하자면, 'TORO Y MOI ➝ LES SINS'의 전환은 '팝싱어 ➝ 클럽 디제이'의 전환쯤으로 해석될 수도 있을 것이다(물론, 엄밀히 말하자면 그는 순수 '팝싱어'도, 'DJ'도 아니(었)지만...). 즉, 그가 '칠웨이브'로 분류되는 근본 요인이었던 신쓰팝 요소를 자신의 음악 프레임 안에서 과감하게 줄이고 대신 TORO Y MOI 시절만 해도 그저 부수적인 향신료 정도였던 일렉트로닉 요소를 LES SINS 프레임의 메인으로 내세움으로써 칠웨이브 허물을 벗기 위한 '극적인' 변신을 도모한 것.

2012년 'TORO Y MOI' 이름으로 만든 채즈 번딕 자신의 사운드클라우드 계정에 올려진 "Fetch"라는 트랙이 아마 2차 프로젝트 'LES SINS'의 첫번째 대중 노출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이 곡에 깔린 보컬과 신쓰 멜로디는 여전히 TORO다웠지만 싱코페이션 심벌 타격과 드럼으로 무장된 펑키(funky)한 루핑 비트는 영락없는 하우스 그루브 그 자체였으니, 이는 팬들로 하여금 'LES SINS'가 단순 칠링(chilling)용 팝의 재탕이 아닌 새로운 장르의 실험을 위해 기능하게 될 번딕의 또다른 '얼터에고'임을 충분히 예상케 했다. 그리고 그로부터 2년이 지난 2014년 10월, 그는 예상대로 TORO가 아닌 새로운 모니커 'LES SINS'라는 명찰을 달고 풀렝쓰 앨범으로써 새로운 형식의 'Made by 번딕' 그루브를 음악팬들에게 선보이게 된 것.

[Michael]은 풀렝쓰 일렉트로닉/하우스 앨범답게 얄팍한 신쓰 리프와 된장스러운 보컬 라인으로 '쳐발쳐발'한 칠웨이브성 팝음악과 형식적으로 거리를 둔 작품이긴 하다(비록 하우스 음악 자체가 이지리스닝 일렉이라 해도, 태생적으로 팝에 세뇌된 대중들과 친해지기 위해 고안된 음악은 결코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Michael]에 담긴 싱코페이션 리듬과 잘게 쪼개진 심벌 비트 등 하우스 특유의 자극성 요소들은, 일렉의 기계적 훅에 혐오증 있는 리스너들까지 끌어들일 수 있을 만큼 '튐' 없이 소프트 아이스크림처럼 입에 착착 감겨들어 술술 잘 넘어간다. 쉽게 쉽게 가는 듯한 번딕의 일렉 프로듀싱 솜씨는 살짝 어설픈 듯 하면서도 꽤나 꼼꼼하고 센스 넘치게 매 트랙마다 발휘되고 있으니, 이야말로 '이지리스닝 작가주의'라는 TORO Y MOI의 창작 필로소피가 '하우스 프로젝트' LES SINS와 [Michael]에서도 연속성 있게 구현되어 있음을 말해주는 결정적 증거라고 할 수 있다.

#1 "Talk About"과 #7 "Bellow" 에서 보여지는 것처럼, 번딕의 하우스 제조법은 딮하우스(deep house: 재지한 건반)와 마이크로하우스(microhouse: 변칙적인 하이햇 패턴과 미니멀한 비트)에 기반을 두고 있지만, '칠웨이브'에서 다져진 팝적인 센스 덕분에 까다로운 서브장르들을 건드림에도 모든 트랙들이 상당히 듣기 편하고 쉽게 가공되어 있다. #10 "Drop"처럼 정글 비트가 응용된 트랙들, #3 "Toy", #5 "Bother" 처럼 그라임과 UK 개러지를 응용한 트랙들에서도 이러한 번딕만의 '이지리스닝 공식'이 굉장히 깔끔하고 재치있게 적용되고 있음을 목격할 수 있다.

TORO 시절에서 드러냈던 흑인음악에 대한 번딕의 이해도와 응용력은 알앤비 펑키 그루브 중심의 하우스 트랙들에서도 여러차례 번득인다. 빈티지 펑크(vintage funk) 스타일의 건반 인트로로 시작되는 #4 "Why"는 80년대 부기펑크(boogie funk)와 디스코의 향기가 물씬 풍기는 곡으로, 노스텔지아에 천착한 TORO Y MOI적 작업 방식을 따른 듯 하지만 킥드럼과 오픈+클로즈 하이햇으로 이뤄진 아기자기한 비트 콤보는 스타벅스만큼이나 댄스플로어에도 퍽 잘 어울리는 뽐새를 보여주며, 특히 피쳐링 싱어 네이트 샐먼(Nate Salman)의 알앤비풍 보컬 훅은 SBTRKT 부럽지 않을 흥겨운 캐취감을 생성해낸다. 이 곡에서 과시된 흑인음악+하우스+펑크+디스코의 팝스러운(poppy) 콤비네이션 효과는 Ed Banger풍 프렌치 하우스 음악보다 자극성은 덜할지라도 훨씬 더 감미롭고(?) 듣기 편하게 발휘되고 있는 것. I AM ROBOT AND PROUD의 앙증맞은 IDM 펑키 튠을 연상시키는 건반 인트로로 시작되는 #9 "Sticky"는 [Michael]의 하일라이트라고 해도 무방한 트랙이다. 조지 클린턴(George Clinton)의 펑키 그루브에 프린스(Prince)의 세련미를 짬뽕시킨 듯한 이 곡에서 그는 루핑되는 하우스 비트에 맞춰 본인이 갖고 있는 펑키한 삘을 절제된 신씨사이저 터치로써 능수능란하게 펼쳐 보이는데, 비록 CHROMEO(번딕과 함께 콜라보 트랙을 만든 적이 있다)나 DAM-FUNK 같은 동시대 골수 신쓰펑크(synth-funk) 음악들보다 화려한 맛은 없을지라도 이 곡에서 드러난 펑키 그루브만큼은 적어도 아주 '번딕스럽다'라는 느낌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한 '손쉬움', '된장스러움', '깔끔함', '재미', '흥겨움'이 동시에 묻어나 있다.

TORO Y MOI 시절의 음악처럼, LES SINS의 [Michael] 역시 번딕의 잡스러운 취향들이 '비빔밥 그릇에 넣어져 이것저것 비벼진 형태로 테이블에 나온 비빕밥' 음악 형태와 같다. 물론, 재료가 뭐가 더 들어가든 덜 들어가든 결국 비빔밥은 비빔밥이듯, [Michael] 역시 여러 잡스러운 음악 소스들이 첨가되었다 할지라도 결국 '하우스' 그릇 안에 담겨진 '하우스 음악'이라는 점은 크게 달라질 것이 없어 보인다. 정통 하우스 음악들에 비교할 때, 이 앨범은 '풀(full)' 하우스 앨범으로서 테크닉적으로 크게 보잘 것이 없는데다(살짝 '아마츄어스럽다' 라고나 할까?) 다소 경직된 골수 일렉 씬의 시선까지 확 잡아끌만한 화려함이나 유니크함도 거의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채즈 번딕과 TORO Y MOI 음악을 염두에 두고서 LES SINS와 [Michael]을 바라본다면 사정은 조금 달라진다. 설사 '칠웨이브' 컴플렉스에서 벗어나고픈 채즈 번딕의 의지에 의해 팝 카테고리에서 일렉트로닉 카테고리로 이동했다 할지라도 본인에게 TORO의 역사는 절대 흑역사가 아닐 터, 그는 TORO 시절에 재미를 봤던 '빈티지 노스텔지아와 잡동사니 취향들을 섞어치기' 하는 능력을 일렉트로닉 데뷔 풀렝쓰 [Michael]에서 또다시 훌륭하게 발휘해낸 것이다. 여기엔 TORO 음악 특유의 '칠웨이브'스러웠던 팝 센스와 이지리스닝 본능까지 더불어 녹아나 있으니, 외골수 크리에이티브 하우스 음악을 신봉하는 매니어들에겐 다소 훼이크(fake)스럽게 보일 수도 있겠으나 적어도 채즈 번딕의 음악적 아이덴티티와 그 연속성을 고려할 때 [Michael]은 예상 밖의 임무를 나름 멋지게 완수한 작품에 다름아닐 것이다. 지하실 스튜디오에 틀어박혀 전투적으로 가오잡고 완성해낸 일렉 음악만이 진정한 음악인가? 스타벅스같은 까페에서 애플 랩탑으로 설렁설렁 만든 듯한 가벼운 일렉 음악도 음악은 음악이니까.


RATING: 78/100

written by BK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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