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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S/ELECTRONIC

JOHN TALABOT: fIN (2012)


스페인하면 머릿속에서 딱히 떠오르는 뮤지션들이 그다지 많지 않다. 굳이 떠올리자면 '라틴 팝의 황태자' 엔리케 이글레시아스나 롤러장에서 과거 우리 삼촌 이모들의 흥을 북돋아주었던 이탈로디스코계의 운도형님 "Bambina"의 데이빗 린(David Lyne) 정도 뿐인데, 그런 의미에서 독일의 신흥 강호 하우스 레이블 Permanent Vacation을 통해 지난 달 첫번째 정규 풀렝스 앨범 [fIN]을 발표한 스페인 바르셀로나 출신의 새로운 '하우스 황태자' 존 탈라보트(John Talabot)는 국가 브랜드에 걸맞지 않은 후진성을 면치 못해온 스페인 인디 음악계를 고려할 때 '스페인의 CUT COPY' DELOREAN과 함께 거의 돌연변이급 존재가 아닐른지?

이미 작년 영국 Young Turks 레이블(SBTRKT가 소속된 바로 그 레이블!)을 통해 [Families] EP를 발표하며 스페인 이비사(Ibiza) 클럽용 저질 댄스 테크노 디제이가 아닌 아티스트적 안목을 지닌 프로듀서로써의 신고식을 치렀던 존 탈라보트의 정규 데뷔작 [fIN]은, 팝과 디스코의 상업적 멜로디 훅들을 추출하여 IDM적 손길로 재미있게 재편집하고자 했던 실험적 성향의 [Families] EP 보다 '하우스'라는 얄팍한 장르 탐구에 좀더 무게중심을 두고 음악을 구현하지만, 하우스 음악을 지적(혹은 IDM적)으로 가공하기 위해 심어놓은 레이어 작업과 전개구조의 흔적들이 하우스 고유의 그루브 사이로 풍성하게 드러나면서 하우스 골격임에도 Kompakt 레이블의 앨범들처럼 매니어적 접근이 동시에 요구되는 디테일을 담고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오프닝 트랙 "Depak Ine"는 '하우스의 IDM화'를 꿈꾸는 존 탈라보트의 섬세한 레이어 작업을 단계적으로 엿볼 수 있는 작품으로써, 음산한 샘플/키보드 사운드 솔로 인트로와 함께 킥드럼 -> 스네어 -> 멀티 보컬 샘플이 점층적으로 얹어진 샘플 레이어 음악의 묘미를 하우스 스타일로 맛볼 수 있다. 레이어와 샘플의 상관관계와 이용법에 관한 탈라보트의 센스는 클로징 트랙 "So Will Be Now"에서도 접할 수 있을 터인데, 최근 덥스텝 작업에서 흔히 쓰이고 있는 '절단/변조/접합을 반복하는' 보이스 샘플링 테크닉을 연상시키는 보컬 샘플들의 레이어 하모니가 인디 하우스 고유의 통통 튀는 베이스라인/하이햇 미니멀 리듬라인들과 함께 자연스레 뒤섞이며 클럽 테크노에서 절대 접할 수 없는 이지적인 개러지+하우스 감흥을 IDM틱하게 선사한다.  

이처럼 탈라보트는 전작 [Families] EP 앨범에서 과시했던 90년대 IDM/일렉트로니카 스타일의 꼼꼼한 편집/터치 기술을 기반으로 한 반속물적인 로파이 하우스 그루브를 이번 앨범에서 한치의 흐트러짐 없이 유연하게 뽑아내는데, 특히 다운템포 IDM같은 정적인 무브먼트와 아름다운 사운드스케잎을 생기넘치는 하우스 그루브와 함께 [fIN] 안에서 조화롭게 공존시키고 있다는 점이 무엇보다 흥미롭다. 두번째 트랙 "Destiny"는 그의 태생적 하우스 디제이 근성을 엿볼 수 있는 대표적 곡으로써, 마치 ISOLEE의 마이크로하우스 음악을 듣는 듯 안정된 4/4 템포에서 억양 명확하게 터져나오는 드럼비트와 몽롱한 음색의 보컬 라인이 시원한 미니멀 테크노 분위기를 지적이면서도 아름답게 연출하는 곡이다. 수록곡들 중 가장 노골적인 댄스 무드로 넘쳐나는 "When The Past Was Present" 역시 '인디 하우스의 새로운 황태자' 존 탈라보트의 고급스러운 터치감이 여실히 드러나는 트랙으로써, 탈라보트만의 멜로디 센스에 의해 일사분란하게 이어지는 하우스 훅이 80년대 후반 이탈로 하우스/지중해 유로 디스코의 정직한 4/4 비트 킥드럼+스네어 비트, 얄팍한 구식 디지탈 키보드 사운드 등과 스무쓰하게 접목되면서 올해 이비사 섬머 페스티벌에서 가장 이지적인 아름다움을 발휘할 최고급 댄스 넘버 탄생의 장관을 연출한다(특히 감정을 억누르고 템포를 부여잡으며 은은하게 지속되는 댄스 그루브!!!). 하지만 무엇보다 [fIN]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특징은, '하우스'라는 한정된 장르 카테고리를 초월한 다양한 음악적 특성들이 (탈라보트 음악의 스무쓰한 하우스 감촉과 감수성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 안에서) 하우스 무드와 함께 자유롭게 결합되고 있는 점이다. 예컨데 신쓰 음향과 비트가 테이프가 늘어진 듯한 슬로모 패턴을 타며 희안한 분위기를 연출하는(전작 [Families] EP를 들어보았다면 이 실험적 어프로치가 그다지 낯설게 느껴지지 않을 것이다) "El Oeste"에서는 ONEOHTRIX POINT NEVER의 실험적 풍모가 연상되지만, 이어지는 "Oro y Sangre"에서는 로파이와 아날로그 신쓰 리프, 싱코페이션 리듬이 접목되어 마치 요즘 유행하는 칠웨이브 사운드의 대세를 반영하듯 '하우스 황태자'의 이미지와는 사뭇 다른 귀여운 전자 멜로디 훅을 선사한다. 그리고 "Estiu"에서는 아날로그 드럼머쉰에서 추출된 로파이 텍스쳐의 드럼비트, 대담한 훵키 베이스라인, 트랜스 톤의 보컬 변조 샘플/키보드 등을 이용하여 아비사 섬이 위치한 발레아레스 바다의 따뜻한 에메랄드톤 사운드스케잎을 M83적(혹은 칠웨이브적) 전자음악양식으로 감수성 풍부하게 연출해보이기도 한다.  

독일 마이크로하우스와 미니멀테크노 앨범들로부터 우리가 자주 접하곤 했던 고급스러운 감촉의 일렉트로닉 댄스 바이브, 스페인 음악 특유의 이국적인 감수성, 그리고 '예술 작품' 로써 갖추어야 할 독창적/실험적 어프로치 등이 모두 절묘한 균형과 조화를 이루는 이 앨범은, 감각적인 전자음으로 요란하게 떠들어대는 얄팍한 클럽용 HD/디지털 데코레이션보다 요즘 인디 음악이 즐겨 써먹곤 하는 아날로그 드럼 사운드와 복고적 멜로디 훅의 감칠맛나는 추임새를 더 즐겨 널어놓으며 인디 하우스 음악 특유의 달콤한 친근감, 듣는 재미, 품격 등을 한 단계 끌어올린 듯한 완성도를 갖추고 있다. 만약 빌라로보스의 미니멀 테크노 트랙들을 WASHED OUT이 리믹스하여 앨범으로 만든다면 대충 이런 식일까. 다크함과 해피무드가 공존하는 애매한 분위기 속에서 하우스적인 기계적 일률성과 칠웨이브 신쓰음악의 인간적인 향기(몽환적 배킹보컬, 달콤한 신쓰 리프)를 배합하고자 한 [fIN]는, 클럽 디제잉처럼 흩어진 음악 조각을 '삘 가는 대로' 설렁설렁 짜집기한 듯 손쉬운 전개 방식을 택하면서도 번득이는 IDM적 실험 본능과 일렉트로니카의 입체적인 풍미를 다양하게 맛볼 수 있는 특별한 느낌의 하우스 어프로치들로 채워져 있는 수작이다.  

RATING: 82/100

written by BK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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