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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S/AVANT-GARDE

ZOMES: Earth Grid (2011)


90년대를 장악했던 미국 볼티모어 출신의 펑크 쿼텟 LUNGFISH는 당시 다른 하드코어 펑크 집단들에 비해 훨씬 성숙된 실험의식으로 무장되어 있던 특이한 밴드 중 하나로 기억되고 있다. 특히 후반기로 갈수록 포스트록과 프로그래시브 펑크의 양식으로 침참해 들어가는 모습은 당시 펑크록 팬들에게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었지만, 2000년대 들어 멤버 각자의 개인 활동에 더 치중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LUNGFISH는 현재 해체도 아닌 휴식기도 아닌 어정쩡한 상황에 놓여 있는 중이다.

LUNGFISH의 리더 대니얼 힉스는 다양한 솔로 프로젝트들을 시도함과 동시에 최근에는 독일 포스트록 밴드 THE SKULL DEFEKTS의 정규 멤버로 앨범 제작에 참여하는 등 네 명의 LUNGFISH 멤버 중 가장 왕성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그와 함께 LUNGFISH를 이끌었던 기타리스트 애서 오즈번은 이미 90년대 중반부터 전형적인 펑크록 음악에 약간의 염증을 느끼고 LUNGFISH의 음악에 프로그레시브적인 시도를 가장 먼저 적극적으로 도입하기 시작했던 멤버로써, LUNGFISH의 활동이 급격하게 냉각되었던 2000년대 중반 이후부터는 오즈번의 원맨 밴드 격 프로젝트 ZOMES를 통해 그만의 독립적인 실험적 음악세계를 향해 꾸준히 정진해오고 있다.

애서 오즈번은 ZOMES의 이름으로 2008년 첫번째 독집 앨범 [Zomes]를 발표하면서 본격적으로 아방가르드 음악 무대에 발을 들여 놓게 되고, 작년에는 실험음악계의 거물 레이블 Thrill Jockey와 계약을 맺고 올해 2집 앨범 [Earth Grid]를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Earth Grid]는 애서 오즈번을 더이상 펑크 로커로 여길 수 없게끔 만드는 놀라운 파격미를 선사하는 앨범이다. 완전한 아방가르드 뮤지션으로 도약하고자 하는 그에게 가장 결정적인 터닝 포인트로 간주될 이 앨범에는 미니멀리즘, 로-파이, 싸이키델릭, 드론 노이즈, 포스트록, 다크 앰비언트, 아트 록 같은 비주류적인 음악 장르들이 혼재되어 있다. 혼탁한 앰비언트 무드 속에서 진득한 점성으로 낮은 음계 영역을 점유하는 신디싸이져 음색의 단선적이고도 추상적인 패턴을 중심축으로 고정시키고 그 주변을 박자감각/규칙적 패턴이 완전하게 상실된 베이스 드럼 킥과 탐-탐의 무신경적인 비트들로 드문드문 치장을 한 '단순무지함' 의 기본 골격을 갖추고 있는데, 이는 천재 트랜스젠더 거장 웬디 카를로스를 비롯, 크라우트록의 대가 클라우스 슐츠, 더 나아가 칼하인츠 슈톡하우젠의 모던 클래식 전자 음악 미니멀리스트 등이 6-70년대 지속적으로 주창했던 아방가르드 신디싸이져 미학 정신과 상당히 닮아있는 듯한 작업 스타일을 보여준다.

하지만 ZOMES 프로젝트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던 구시대 아방가르드 신디싸이져 뮤지션들(대표적으로 토미타 이사오, 클라우스 슐츠 등)이 통상적으로 내세웠던 비타협적 SF 싸운드스케잎/무드를 맹목적으로 답습하는 데 포커스를 맞추기보다는, 일련의 아방가르드 키보디스트들의 추상적/이질적 연주 속에서 간혹 우연적으로 짧게 캐취되는 감성적인 멜로디훅과 달콤한 톤만을 탐미적으로 확대/추출하고 이들을 로-파이 인디록적인 감성 코드 위에서 대중적 기호에 맞게 재구성하는데 더 큰 작업 포인트를 맞추고 있다. 실제로 "Opening", "Pilgrim Traveler" 에서 압도하는 키보드/신디싸이져 음색은 드론 뮤직의 실험적 요소가 다분하지만 코드 전개 방식은 아이러니하게도 듣기 어렵지 않은 록음악의 전형적 형태를 빼닮았으며 특히 "Spiraling"에서 드론 노이즈와 함께 단조롭게 흐르는 건반 멜로디는 MUM의 스칸디나비아 키보드 싸운드의 달콤한 카라멜 톤을 연상시키는 인디 록적인 감수성을 드러내기까지 한다.

[Earth Grid]은 아방가르드 키보드 음악 특유의 실험적인 양식이 노골적으로 드러나지만, 록에 대한 애정이 여전한 애서 오즈번의 음악적 백그라운드 성향까지 고스란히 담고 있다. 그렇다고 모던 클래식 음악처럼 현학적인 양식에 함몰되지도 않고 엔리오 모리꼬네나 한스 짐머처럼 얍삽한 형태로 감성을 자극하지도 않는, 비현실적 실험성과 현실적 감수성 사이에서 가장 정석적인 건반 이용 매뉴얼을 기반으로 중립 밸런스를 잡아내 주면서 아방가르드/익스페리멘탈 매니어들이나 얼터너티브/인디 록 음악팬들 양쪽 모두의 귀를 즐겁게 해 줄 뜻밖의 수작이 탄생한 것이다.  

RATING: 80/100

written by Byungkwan C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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