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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S/AVANT-GARDE

MIST: House (2011)


클래식과 대중음악을 막론하고 현대 음악의 발전에 있어서 혁명적 전환점을 이끌어낸 악기중 하나인 신시사이저(synthesizer)는, 마치 와인처럼 제조회사와 제조연도에 따라 미세하게나마 저마다 다른 특징/기능성과 색깔을 띄면서 다양한 시도를 항상 갈망하는 뮤지션들에게 언제나 최고의 창작 파트너가 되어준다. 이미 80년대 들어 디지털 신시사이저가 광범위하게 개발/보급되고 있지만 독특한 빈티지 감촉의 음색을 보유한 구세대 아날로그 신시사이저 역시 컬렉터/뮤지션들로부터 지속적인 수집대상이 되곤 하는데, 얼마전에는 70년대 샘플로 나온 조그만 한정판 신시사이저가 희귀악기 아이템으로써 엄청난 가격에 거래되어 매니어들 사이에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미국 오하이오주 클리블랜드 출신의 아방가르드 일렉트로닉 듀오 MIST는 올드스쿨 신시사이저에 대한 애정을 집요하면서도 끊임없이 표시하는 대표적인 그룹으로, 이 아웃사이더 장르에서 이미 잔뼈가 굵은 두 명의 베테랑 뮤지션 존 엘리엇(아방가르드 밴드 EMERALDS 출신)과 샘 골드버그가 의기투합한 나름의 슈퍼듀오(?)다. MIST의 세번째 앨범 [House] 역시 지난 두장의 앨범들([Mist (2009]와 [Glowing Net (2010)])처럼 비트의 루핑이 거의 배제된 '신시음만을 위한' 아방가르드 서사시를 다시한번 연주하고 있지만, 이번 작품에서 엘리엇-골드버그 듀오가 보여주는 올드스쿨 신디 2중주는 조금 경직되고 융통성도 부족했던 전작들보다 훨씬 더 억양분명해진 건반 터치가 특히 인상적이며 또한 그 속에서 터져나오는 서정적이면서도 캐치감있는 멜로디 구성미 역시 훨씬 더 물이 올라있는 듯한 느낌이다.  

오밀조밀하게 터져나오는 Minimoog Voyager의 빈티지 신시사이저 리프 음색과 서사적인 형태로 사운드스케잎을 지배하는 드림팝 감촉의 드론 음색이 서로 대칭각을 이루며 공명하는 오프닝 트랙 "Twin Lanes"는,  마치 이 앨범이 70년대 크라우트록이나 90년대 유러피언 아방가르드 사운드를 고리타분하게 답습하는 수준이 아니라 21세기 트랜드의 영역에 속해있는 최신 음반이라는 걸 구체적으로 증명해보이기라도 하듯 구리지 않은 논조의 건반 합주로 크라우트록을 모르는 신세대 리스너들까지 몽환적 향연으로 자연스럽게 인도한다.

클라우스 슐츠나 KRAFTWERK의 묵직한 올드스쿨 신시사이저 톤이 지배적인 두번째 트랙 "I Can Still Hear Your Voice", (존 엘리엇이 가장 존경한다는) ASH RA TEMPEL의 영향이 강렬하게 드리워진 세번째 트랙 "Mist House" 등의 곡들처럼 (이런 류의 아방가르드 신시 뮤지션들에겐 벗어날 수 없는 그물이나 다름없는) 독일 크라우트록에 관한 원초적 애정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기도 하지만, 90년대 거물 아방가르드 밴드 FUXA의 명반 [Very Well Organized (1996)]처럼 종교적(크리스트교) 명상을 전자톤으로 재해석해낸 네번째 트랙 "Daydream" 처럼 MIST는 이번 작품에서 단순히 아날로드 건반의 텍스쳐뿐만 아니라 형식적 요소와 사운드스케잎, 테마에도 나름 미학적인 신경을 쓰고 있음을 동시에 보여주기도 한다. 특히 앨범 수록곡 중 유일하게 비트 루핑이 가미된 "Dead Occasion / Ovary Stunts"와 클로징 트랙 "PM" 는 Prophet-5 아날로그 신시사이저를 이용한 팀 해커식 Kranky 레이블류 앰비언트 드론 음악, 빈티지 신시사이저 특유의 아기자기한 음색들이 12분 이상의 어마어마한(?) 러닝타임 동안 1-2-3악장에 걸쳐 독주-합주를 교차반복되면서 상당히 균형잡힌 스트럭쳐(혹은 형식미)를 뽐내고 있다.  

복고적 작업경향이 유난히 강한 현 음악 씬에서 (아날로그) 신시사이저 인스트루멘탈 음악 자체가 자칫 구시대 모더니즘적 시도의 통속적인 반복이라는 허망한 결과로 귀결될 수 있는 위험성을 내포한 장르이기도 하다. 하지만 MIST는 [House]에서 자신들이 사용하는 아날로그 악기 종류만큼이나 다양한 음원 텍스쳐와 드라마틱한 서사구조를 매 트랙마다 다른 시각으로 도입하면서 자칫 지루해질 수도 있을 아방가르드 신디음악이 근본적으로 지닌 해묵은 방법론의 매너리즘에서 아슬아슬하게 비켜나는데 성공한다. 결론을 말하자면, [House]는 앰비언트나 그외 비트가 소거된 아방가르드성 전자 음악에 익숙한 리스너들에게는 확실하게 어필을 할만한 독창적인 요소들이 도드라져 있지는 않다. 특히 족보를 따져가며 꼼꼼하게 분석하는 아방가르드 음악 매니어들에게 이 앨범이 주는 가치는 분명 그다지 높지 않을 것이다. 다만 이 두 명의 신시사이저 마스터들이 펼쳐내는 '무드와 톤을 위한 변주곡 (Variations for Mood and Tone)' 의 아방가르드한 어프로치는 의외로 리스너들에게 풍성한 소통의 공간을 제공하는 융통성을 보여주는데, 실제로 프로듀싱 과정에서 시대정서에 맞게 세련된 음색들을 적절히 잘 잡아낸데다가 사운드들의 감촉 역시 상당히 부드러우면서도 다이내믹하기 때문에 아마 이쪽 방면으로 관심이 없는 리스너들도 충분히 감당 가능할 정도로 친화적인 면이 큰 실험음악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RATING: 76/100

written by Byungkwan C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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