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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S/ALT & INDIE

WHITE CAR: Everyday Grace (2012)


일렉트로닉(팝) 해체주의의 선봉장 Hippos in Tanks의 2011년 한해 성과는 레이블의 규모와 지명도를 감안할 때 굉장한 것이었다. 일단 '저질 노이즈 순수주의자' 제임스 페라로(James Ferraro)의 때아닌 감수성이 빛났던 [Far Side Virtual], '테크노팝의 이단아' 로렐 할로(Laurel Halo)의 상큼한 일렉 질감 난도질/대패질이 인상적이었던 [Hour Logic EP], 그리고 '일렉트로닉 이완술의 대가(?)' HYPE WILLIAMS의 왜곡에 관한 또다른 미적 향연이 지독하게 담겨진 [One Nation] 등등 아트와 난삽함의 경계를 이루는 새로운 형식의 '아방가르드스러운' 일렉트로닉(팝) 작품들이 지난해 이 레이블을 통해 연속적으로 튀어나왔는데, 물론 호불호가 극명히 나뉘기는 했지만 얄팍한 레이어 두께, 미니멀 세팅, 구식 악기의 미적 감각, 왜곡된 팝 감수성 등을 주무기로 일렉트로닉 음악 고유의 구조주의를 해체하려는 일련의 시도들은 충분히 박수받을만한 것이었다. 올해 초 또다른 H.I.T. 소속 변종 거물 NGUZUNGUZU의 풀렝쓰 데뷔 앨범이 드디어 발매될 예정으로 있는 가운데, 이 기다림의 와중에 H.I.T.에서 슬그머니 릴리즈된 또하나의 작품이 있으니 이는 바로 시카고 씬 족보를 자랑하는 신쓰팝 듀오 WHITE CAR의 풀렝쓰 데뷔 앨범 [Everyday Grace]이다. 

WHITE CAR의 음악적 백그라운드는 '예상을 뒤엎고' 80년대를 풍미했던 다크한 신씨사이저 팝 음악에서 시작된다. 물론 이는 데이빗 보위(David Bowie)의 글램 중성미와 피터 머피(Peter Murphy)의 고딕 포스트펑크 카리스마가 질퍽하게 묻어난 일론 카츠(Elon Katz)의 보컬 스타일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바이지만, 이뿐만 아니라 뉴욕 노웨이브(No-Wave)와 독일 노이 도이치 벨레(Neue Deutcshe Welle  혹은 NDW)/인더스트리얼 음악 등 80년대 비주류 인디 향수까지 끌어들이며 21세기 신쓰팝의 트렌드 대열에 자신들의 존재를 부각시킨다.

[Everyday Grace]에는 세 가지의 주요 음원에 의해 기본 스트럭쳐가 형성된다. 또 한명의 멤버 오리온 마틴(Orion Martin)에 의해 굵직굵직하게 윽박질러지는 전자 퍼커션 비트, 존재감이나 디렉션 불분명하게 피상적으로 울려퍼지는 신씨사이저 리프, 그리고 평균 이상으로 첨가된 일론 카츠의 보컬/보이스 음원, 이렇게 세 가지의 주요 지지대에 의해 음악의 모든 전개 흐름과 멜로디 훅들이 유도된다. 초기 디페쉬 모드 음악에서 뻔질나게 추가되던 전자 퍼커션 비트, UK 포스트펑크/뉴웨이브의 산물인 음산한 보컬, 그리고 이 두 미니멀 구조 사이에서 여백을 지속적으로 매꾸는 신쓰 리프들... 게다가 시종일관 이해하기 쉽게 귓청을 때리는 멜로디 라인과 템포/비트들까지 더불어 고려해볼 때 [Everyday Grace]는 우리가 요즘 질리도록 듣고 있는 '그저그런' 신쓰팝 앨범으로 분류될 위험도 있다. 하지만 이 앨범의 디테일을 좀 더 유심히 살펴본다면 이들은 그 '예상 가능한 패턴' 속에서 'H.I.T.표' 실험 어프로치들을 지속적으로 가미하며 단순히 듣기 쉽고 쉽게 질려버리는 류의 신쓰팝으로 자신들의 음악이 귀결되어버리는 오류를 일관적으로 거부하고 있음을 간파할 수 있을 것이다. 퍼커션과 잡동사니 샘플비트의 억양분명한 펀치감("Slime the Dog"를 들어보라)과 신나는 업템포는 분명 이들의 음악에 팝적인 요소를 부여하는 키포인트로 자리잡고 있다. 하지만 갉작이는 듯 연하게 플레이되는 기타 스트로크와 신쓰 리프는 깊이 있는 훅을 일체 쉽게 허용하지 않고 귓가를 얇게 공명하다 흩어지기를 반복하는데, 이렇게 변덕스러운 음계를 오르락내리락하며 불편한 하모니를 조성하는 어프로치 자세는 확실히 Hippos in Tanks 뮤지션들, 특히 로렐 할로의 앨범에서도 드러났던 '피상적 사운드 텍스쳐'를 꽤 빼닮아 있다. 물론 True Panther 레이블 신쓰 밴드들(TANLINES 등등)이나 ANIMAL COLLECTIVE류의 인디 아방가르드팝 스타일과 매치되는 바도 있지만 근본적으로 베드룸 스타일 특유의 폐쇄적이면서도 분절된 감정표현에서 또다른 파워를 일궈내는 H.I.T.식 프로듀싱 포뮬라는 굉장히 독창적인 구석이 있으며 WHITE CAR 역시 그 'H.I.T. 음악 공식'에 합당한 실험적 어프로치들을 빈티지 일렉트로 프레임 안에서 풍부하게 구사해낸다.

[Everyday Grace]는 몇 가지 아쉬운 '옥의 티'를 드러내기도 한다. 예를 들어 훵키한 복고 댄스팝(특히 80년대 "Fame" 시절 데이빗 보위의 느낌처럼)의 그루브가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The Factor"같은 트랙처럼 보컬지향 의도가 분명한 대목에서 정신분열/복잡함/불편함/불투명함의 훌륭한 네거티브 형질로 넘실대던 배킹 사운드의 부조리 그루브들이 일렉트로/신쓰팝의 단순한 서술에 의해 때때로 묻혀버리면서 Hippos in Tanks와 일렉트로닉 해체주의, 그리고 WHITE CAR로 이어지는 '추상적 실험 컨셉'의 끈이 끊어질 위험에 노출되기도 한다. 일론 카츠의 UK 포스트펑크스러운 빈티지 보컬 기량이 그리 나쁜 수준만은 아니지만 왜곡된 이펙트에 기대어 굵직하게 읊어대는 감정과잉의 목소리톤(특히 "Terminal Body"를 들어보라)이 연약한 텍스쳐 조직을 띈 '아방가르드스러운' 배킹 사운드 나열법과 시도때도 없이 어울리는 궁합만은 아니기에 이번 앨범에서 그 보컬 할당량을 조금 줄여봤다면 훨씬 더 깔끔한 결과물이 탄생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차라리 "When"처럼 보컬 마디마디를 분절시켜 샘플처럼 재편집하여 다뤄봤다면 오히려 플러스 효과를 봤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테잎 늘어지듯 흐느적대던 'H.I.T. 동료' HYPE WILLIAMS식 음악과는 정반대로 신쓰팝의 신나는 템포와 상승감을 차용하여 이질적이면서도 아기자기한 H.I.T.식 뒤틀림을 구현해냈다는 사실 그 자체만으로 이번 앨범이 가져다주는 만족감은 나름 상당한 것이다.  

RATING: 77/100

written by BK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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