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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S/JAZZ

T.R.A.M: Lingua Franca EP (2012)


천재 기타리스트 토신 어바시(Tosin Abasi)는 고전 재즈기타 레전드 웨스 몽고메리(Wes Montgomery)같은 수수한 외모와 옷차림을 하고 있지만(그렇다, 흑인이다) 이래뵈도 21세기 메틀씬에서 가장 주목받는 '테크니컬 메틀 기타 비르투오소' 중 한명으로 손꼽히곤 한다. 그는 자신의 밴드 ANIMALS AS LEADERS에서 신들린 듯한 젠트(djent) 주법태핑 테크닉을 선보이며 토니 매캘파인(Tony Macalpine), 그레그 하우(Greg Howe) 이후 한동안 대가 끊어졌던 흑인 하드록/헤비메틀 기타명인 계보를 다시 이어가고 있는데, 그러는 와중에 그는 작년 ANIMALS AS LEADERS의 동료 사이드 기타리스트 하비에르 레이예스(Javier Reyes), THE MARS VOLTA 출신의 멀티 플레이어 애이드리언 테라자스(Adrian Terrazas), 그리고 하드코어 펑크(메탈) 밴드 SUICIDAL TENDENCIES의 흑인 드러머(스모선수급의 육중한 몸매를 자랑한다) 에릭 무어(Eric Moore)와 함께 T.R.A.M이라는 사이드 프로젝트 밴드를 결성하고 드디어 지난 2월 대망의 첫번째 EP 앨범 [Lingua Franca]를 발표하기에 이른다.

[Lingua Franca]에는 화려한 메틀 파괴력을 기반으로 섬세한 초절기교와 타이밍의 대향연을 보여주었던 ANIMALS AS LEADERS의 골수팬들을 황당케 할 재즈 어법 위주의 절도있는 어프로치들이 주종을 이루고 있다([Lingua Franca]의 장르를 이분법적으로 정의내려야 한다면 솔직히 메탈 앨범보다는 재즈 앨범에 더 가깝다). 더군다나 속주-잔기술들로 떡칠된 토신 어바시 기타 원맨쇼가 아니라 네 명 멤버 개개인의 연주 성격들이 골고루 담긴 완벽한 형태의 '재즈 쿼텟 앨범'으로 완성되어져 있다는 점은 이 작품의 완성도 여부를 떠나 '프로젝트 밴드 작품'으로써 굉장히 높이 살 만한 부분이기도 하다. 당연 8현 기타를 둘러매고 저음계와 고음계의 정점들을 넘나들며 베이스-리듬기타-리드기타의 임무을 포괄적으로 다스리는 토신 어바시와 하비에르 레이예스의 트윈 기타 시스템은 T.R.A.M식 테크니컬 인스트루멘탈 사운드의 핵심이자 보증수표이지만, 이들은 ANIMALS AS LEADERS 때보다 기타 솔로를 훨씬 절제하고 그 대신 관악기(클라리넷, 색소폰 등등)를 담당하는 애이드리언 테라자스를 프론트에 적극적으로 내세워(마치 재즈 쿼텟에서의 테너 색소포니스트만큼) 그에게 밴드의 다이내믹한 어프로치에 재즈적 캐릭터를 최종적으로 부여하는 중대 역할을 과감하게 맡긴다. 어바시의 이러한 의도는 결과적으로 크게 적중했다. 도합 16현의 기타스트링 소리와 복잡한 패턴의 드러밍에 의해 어지럽게 조성되는 프레임웍의 한중간에서 색소폰, 플룻, 클라리넷을 번갈아 사용하며 70년대 복고 퓨전재즈/프로그록 풍모가 물씬 풍겨나는 리드 플레이를 자신감 있게 선보이는 애이드리언 테라자스는 (MARS VOLTA 객원 멤버로써만 대중에 알려졌던 그의 존재감 정도를 생각해볼 때) 이번 앨범에서 어바시-레이예스 기타 듀오의 아성에 견주고도 남을만한 기량과 다재다능함을 뽐내며 T.R.A.M을 재즈 밴드로 성공적으로 안착시키는 역할을 훌륭하게 수행해낸다. 또다른 '이단' 멤버 에릭 무어는 또 어떠한가. 한때 쓰래쉬 메틀계를 맴돌다 시대조류에 편승하여 다시 펑크밴드로 회귀해버린 SUICIDAL TENDENCIES(지난번 THUNDERCAT 앨범을 리뷰할 때에도 잠시 언급했었던) 후발 정규 드러머로써 그의 재능은 밴드의 천편일률적인 펑크 프레임 안에서 그다지 활발하게 발휘될만한 기회를 제공받지 못했다. 라이브 막간에 즉흥연주를 짧막하게 보여주는 것이 그나마 드럼 테크니션으로써 그의 기량을 캐취할 수 있는 유일한 순간일 뿐. T.R.A.M 프로젝트의 이번 EP 앨범 레코딩 당시 정작 에릭 무어는 SUICIDAL TENDENCIES 밴드 투어 일정때문에 스튜디오에 도착하지 못했고 나머지 멤버들은 할 수 없이 드럼 사운드 없는 데모테잎을 먼저 스튜디오에서 녹음한 뒤 완성품을 그에게 따로 보냈다고 한다. 투어 일정을 마치고 나서 에릭 무어는 스튜디오에 돌아와 혼자 자기 임프로바이제이션 방식대로 데모에 맞춰 드럼 사운드를 덧입혔다고 하는데, 그래서일까. 그는 SUICIDAL TENDENCIES 멤버 활동 당시 감춰두었던 파워와 테크닉이 겸비된(특히 록적인 필이 가미된 데니스 챔버스나 빌리 코브햄같은) 프리 드러밍의 진수를 기존의 여느 베테랑 재즈 드러머 못지 않은 자유스러운 삘로 구사해내는 기염을 토한다.

토신 어바시의 사전 의도에 의해 나머지 세 명의 사이드 주자들 모두 테크니션/인스트투멘탈리스트로써 화려한 자태를 치우침 없이 균형있게 뽐내는 이 EP 앨범의 음악적 위용은 RETURN TO FOREVER, MAHAVISHNU ORCHESTRA같이 록 삘을 접목시킨 재즈 퓨젼 밴드나 KING CRIMSON같은 프로그록 밴드들처럼 과거 70년대 테크니컬 잼 연주의 학자적 위엄과 구조적 측면에서 근본적으로 일치한다. 탈장르적 음악에 대한 갈망과 열정으로 가득했던 그때 그시절 장인들의 연주태도를 흠모하는 T.R.A.M 네 명의 재능꾼들 모두 메틀의 백그라운드를 가지고 있는 친구들이라선지 재즈 퓨전 연주 향연의 아웃풋에서 메틀적인 풍모도 제법 무시못할 수준으로 드리워져 있다. 실제로 메틀틱하게 뮤트된 젠트 스타일의 기타 피킹이 인트로 부분을 압도하는 오프닝 트랙 "Seven Ways Till Sunday", 에릭 무어의 화려한 폭풍우 드럼 타격을 구석구석에서 맛볼 수 있는 "Consider Yourself Judged" 등 재즈 스트럭쳐 안에서 현란하게 다뤄지는 악기들의 감촉은 여타 재즈 퓨전 음악들보다 훨씬 더 강렬하면서도 에너지가 넘친다. 그러면서도 이러한 메틀풍의 거친 질감들은 관악기 테크니션 애이드리언 테라자스에 의한 재즈풍 관악기 연주 이음새를 통해 매끄럽게 이어지면서 하드함과 소프트함이 가장 스무쓰하게 밸런스를 이뤄낸 재즈 퓨전 인스트루멘탈 음악으로 최종 귀결되어지는데, 특히 테라자스의 섬세한 플룻 독주가 인상적인 "Endeavor"처럼 재즈 스트럭쳐 안에서 메틀 감촉의 록 스타일 임프로바이제이션과 함께 70년대를 풍미했던 JETHRO TULL의 프로그(레시브)록 사운드의 감성적 사운드스케잎까지 군데군데 느낄 수 있는 점 역시 상당히 흥미로움을 불러일으킨다.

기존의 메틀 삘을 재즈적으로 승화시켜 가장 톡특한 텍스쳐를 갖춘 재즈 퓨전 음악을 만들어냄과 동시에 자신뿐 아니라 다른 프로젝트 멤버들의 끼와 재능을 만년 세션맨이 아닌 독립된 연주자로써 활짝 꽃을 피우게끔 이끈 토신 어바시의 이번 프로젝트 작업은 역사상 록과 재즈의 퓨전을 가장 완벽하게 이뤄냈던 MAHAVISHNU ORCHESTRA의 '지휘자'  존 맥러플린(John McLaughlin)의 리더쉽을 연상시키기도 하는데, [Lingua Franca]는 역대 재즈 퓨전의 혁신적 성과를 거두었던 유수의 명작들에 비견될만한 스케일은 아니지만(특히 EP 앨범의 압박!)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즈가 경시되는 트렌드 음악팬들(인디록 음악팬들이나 메틀 매니어들까지)을 모두 아우르며 주목을 끌어낼만큼 초현대적이면서도 톡톡튀는 개성들이 나름 진득하게 묻어난 예상밖의 재즈 퓨전 EP 명반인 것이다.  


RATING: 81/100

written by BK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