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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S/JAZZ

THUNDERCAT: The Golden Age Of Apocalypse (2011)


국내에서 가장 저평가된 밴드 중 하나인 SUICIDAL TENDENCIES는 이 팀의 베이시스트였던 로버트 트루지요(Robert Trujillo)가 METALLICA의 새 베이시스트로 기용이 되면서 간접적으로나마 이름이 대중들에게 조금 더 알려질 수 있었지만 사실 이 밴드는 30년의 오랜 역사를 자랑하며 미국 지하 음악세계에서 젊은 W.T. 양아치들의 심금을 끊임없이 울렸던 불세출의 장본인들이기도 하다. 캘리포니아 스케이트 펑크의 대개척자였으나 이후 스래쉬 메틀, 하드코어 메틀로 궤도 수정을 심하게 하다가(그러나 이들의 음악은 메틀 밴드로써도 가히 대단했다. 특히 1990년에 발매된 메틀 앨범 [Lights...Camera...Revolution!]은 1991년 그래미상 최고의 메틀 앨범 부분에 노미네이트되어 JUDAS PRIEST의 [Painkiller], METALLICA의 그 유명한 '블랙' 앨범 등과 상을 놓고 자웅을 겨루기도 했었다) 90년대 중반들어 다시 하드코어 펑크의 노선으로 다시 서서히 회귀하고 있는 듯 한데, 이러한 지속적인 음악적 변화에 관한 또다른 발로인지  SUICIDAL TENDENCIES는 걸출한 테크니션 베이시스트 로버트 트루지요의 탈퇴 후 전혀 록/메틀과는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외모의 흑인 형제 스티븐 "썬더캣" 브루너(베이스)와 론 브루너(드럼)를 후임 멤버로 영입하기에 이른다. 록계의 영원한 '비주류'인 흑인임에도 불구하고 스티븐 브루너의 록 베이스 실력은 밴드의 라이브 공연때마다 불꽃을 튀겼는데, 과거 LIVING COLOUR를 주름잡았던 흑인 록 베이시스트 더그 윔비쉬머즈 스킬링스의 아성에 견줄만한 감각, 파워, 테크닉을 발휘해온 스티븐 브루너의 존재는 메틀/록 사운드에 그루브, 펑크(punk), 훵크 (funk)의 요소를 투영하고자 하는 SUICIDAL TENDENCIES의 입맛에 가장 완벽하게 맞아떨어지는 '천군만마'와 같은 것이었다.

지난해 [Cosmogramma] 앨범으로 인디 음악계를 뒤흔들었던 젊은 일렉트로닉 장인 FLYING LOTUS가 2008년도에 설립한 레이블 Brainfeeder를 통해 뜬금없이(?) 릴리즈된 베이시스트 스티븐 브루너(THUNDERCAT)의 첫번째 솔로 정규 데뷔 앨범 [The Golden Age Of Apocalypse]은 임프로바이제이션 연주풍의 재즈 프레임웍을 중심으로 70년대 흑인 음악 특유의 훵크(funk) 삘과 현대적인 일렉트로니카 사운드 공법이 절묘하게 뒤섞이면서 근래 보기드문 퓨전 명작으로 거듭나있다.

재즈와 훵크의 조합, 즉 재즈 훵크(jazz-funk)라면 우리가 통상적으로 떠오르는 두 인물이 있으니, 그는 바로 허비 행콕(Herbie Hancock)과 조지 듀크(George Duke). 특히 1973년 허비 행콕이 하비 메이슨, 폴 잭슨 등과 함께 만들어낸 재즈 훵크의 걸작 [Head Hunters]는 재즈가 훵크 리듬과 비트에 얼마나 안성맞춤으로 버무려질 수 있는지를 처음으로 일깨워주었던 작품이기도 한데, [The Golden Age Of Apocalypse]이야말로 근 40년전 허비 행콕에 의해 처음(?: 이건 검증안되었으니 자체검열바람) 시도되었던 훵크와 재즈의 조합을 최신식으로 재조명하고자 하는 의지가 근래 나왔던 모든 장르의 앨범들을 통틀어 가장 강력한 어조로 발현되어 있는 작품으로 볼 수 있다. 특히 고전 미국 TV 애니메이션 '슈퍼캣' 테마송과 함께 '또다른 훵크/퓨전 명인' 조지 듀크의 걸작 앨범 [The Aura Will Prevail (1975)]에 수록된 "For Love (I Come Your Friend)"가 [The Golden Age Of Apocalypse]의 인트로 "Hoooooooo"에서 샘플링된 점에서 간파되듯 이번 데뷔 앨범에 책정된 THUNDERCAT의 주된 목표는 바로 허비 행콕과 조지 듀크가 이뤄놓은 그 선구자적 훵키 재즈 어프로치를 자신의 입맛과 21세기 대중의 취향에 두루 맞게 파고들어보는 것이었다. THUNDERCAT이 이번 앨범에서 추구하고자 하는 노골적인 복고사랑은, 스티비 원더나 커티스 메이필드같은 R&B 명인들의 70년대 훵크 지향적 작품들에 담겨진 통통 튀는 훵키 베이스라인과 비슷한 감촉의 베이스 연주법에서도 여실히 드러나고 있지만, 이 앨범에서 전체적으로 나타나는 펑키/멜로우, 재즈/일렉트로, 서정성/발랄함, 팝/실험성 이라는 이율배반적인 성질들 사이에서 잔존하는 이 모든 '올드한' 질감은 공동 프로듀서 FLYING LOTUS의 싱싱한 감각과 세련된 기교에 힘입어 가장 현실적이면서도 트렌디한 느낌으로 기똥차게 변모되는 기적의 성과를 거두어 낸다.

특히 두번째 곡 "Daylight"같은 경우 조지 듀크의 달콤한 훵크의 그 고전적 느낌을 기반으로 삼고 있지만 결국 그 달콤하면서도 우주적인 느낌이 나는 독특한 올드스쿨 훵크 질감은 COM TRUISEDAM-FUNK 같은 최신형 인디 훵크 사운드의 그루브삘에서 느낄 수 있는 싱싱한 인디 기운으로 THUNDERCAT의 스무쓰한 베이스 연주만큼이나 유연하고도 부드럽게 전환된다. 다음곡 "Fleer Ultra"은 또 어떤가. 허비 행콕의 터치가 느껴지는 촉촉한 아날로그 신씨사이져 리프와 자코 패스토리우스(Jaco Pastorius)를 연상시키는 과감하면서도 스피디한 베이스라인의 화려한 콤비네이션 플레이는 WEATHER REPORT의 "Pinocchio", HERBIE HANCOCK의 "Sly" 같은 고전 재즈 퓨전 넘버들에서나 들을 수 있는 복잡한 패턴의 기교파 인스트루멘탈 재즈 넘버를 신세대 젊은 리스너들의 눈높이에 맞게 쉽고도 그루브감 충만한 포스트록 스타일로 재포장하고 있다. 또한 아날로그 신씨 베이스라인이 전면을 휘감는 "Jamboree"은 프로듀서 FLYING LOTUS의 입김이 가장 크게 작용한 듯한 트랙으로써 얄팍한 시카고 게토 하우스(ghetto house) 베이스(디스토션이 더해져 왜곡도 은근히 심하다)와 SQUAREPUSHER의 IDM형 수제 드럼 사운드가 불꽃을 튀기며 가장 실험적인 형태의 펑키 애시드 재즈 사운드를 창출하는데, 훵크, 소울을 재즈 양식에 섞는 기본적/전체적 분위기와 디렉션을 흩트리지 않는 선에서 이와 같은 일렉트로닉적 요소까지 양념으로 자연스럽게 교배해내는 광경은 분명 이 앨범 안에서만 목격될 수 있는 훈훈한 미덕이 아닐 수 없다.

화려한 베이스 기교만큼이나 이번 앨범에서 주목할 만한 사항이 있다면 바로 THUNDERCAT의 달콤한 보컬 실력인데, 특히 "Is It Love?", "Walkin'"에서 달콤 담백하면서도 꿈꾸듯 몽롱하게 속삭이는 그의 팔세토 창법은 멜로우한 목소리로 대중의 가슴을 적셔주었던 빌 위더스, 스티비 원더, 마빈 게이같은 70년대 소울팝 보컬리스트들의 그 우아하면서도 세련된 음색을 아주 멋지게 재현하고 있으며, 덤으로 그루브 만점의 드럼/베이스 리듬 콤보와 미니멀하면서도 깨끗한 음색의 신쓰 리드(synth lead) 역시 재즈와 펑키소울을 넘나들며 팝적 감수성을 유감없이 펼쳐보이는 THUNDERCAT의 팔세토 보컬라인에 '아트'적인 '기름칠'을 하는 역할을 완벽하게 수행한다.

THUNDERCAT, 아니 스티븐 브루너가 만약 빅터 우튼(Victor Wooten)이나 부치 콜린스(Bootsy Collins)처럼 베이시스트로써의 연주자적 자세 하나만으로 이번 솔로 독집을 밀어붙였다면 아마 이처럼 좋은 형질의 사운드를 포괄적으로 담아낼 수 없었을 것이다. 그는 재즈 베이시스트로써 스탠리 클락(Stanley Clarke)의 파워, 빅터 우튼의 기교를 겸비한 연주력을 [The Golden Age Of Apocalypse] 안에서 분명 보여주고 있지만, 자신을 '베이스 비르투오소' 라는 한정된 카테고리에 가둬두고 안주하기보다는 앨범형 아티스트로써 풍부한 음악적 경험(서두에 장황하게 언급했던 메틀 밴드 SUICIDAL TENDENCIES에서의 현재진행형 활동, 소속 레이블 주인 FLYING LOTUS와의 일렉트로닉 협연, 그리고 다양한 R&B 세션 경험 등등)과 취향을 십분 살려낸 '거창한' 아트 앨범을 만들어내고자 자신의 베이스 실력을 제어하고 그 대신 셀프 프로듀서(FLYING LOTUS와 함께 이번 앨범을 공동 프로듀싱했다)로써 코드 전개(특히 서정적인 트랙들 안에서 유연하게 펼쳐지는 그 몽환적인 신씨사이저 코드 전개는 정말 칭찬하지 않을 수 없다)와 비트 메이킹에 장인적 노력을 기울인 덕분에 올드스쿨 훵크 그루브가 시대정서에 맞게 재창조된 훌륭한 애시드(acid)형 퓨전 재즈 앨범을 만들어낼 수 있었던 것이다. 지나치기엔 너무 아까운 앨범이니 꼭 한 번 들어보기를. 재즈나 흑인음악에 문외한이라도 이 앨범으로부터 상상이상의 만족감을 얻으리라 장담한다.

RATING: 85/100

written by BK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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