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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5.19 09:25


90년대 UK 인디씬에서 스코트 워커의 후예들, 즉 DIVINE COMEDY, TINDERSTICKS, MY LIFE STORY, CINERAMA 등 멜랑꼴리하면서도 고풍스러운(나쁘게 말하자면 '구닥다리' 같은) 목소리를 자랑하는 오케스트라팝(orchestral pop) 혹은 아트팝 밴드들이 미디어와 음악팬들에게 큰 주목을 받으며 브릿팝으로 획일화되고 있던 당시 UK 인디씬새로운 대안세력으로써 대거 주목받은 때가 있었다. 하지만 2000년대 초반 들어 브릿팝이 급격한 내리막길을 걷게 되면서 독자적인 노선을 걷는 듯 하던 아트팝/오케스트라팝 세력까지 UK인디의 망조 분위기에 편승하여(?) 덩달아 자취를 감추게 되는 비운을 예상치 않게 맛본다. 물론 거장의 문턱에서 아깝게 주저앉은 TINDERSTICKS는 올해 새앨범 [The Something Rain]을 내며 자신들의 건재를 알렸지만 예전에 비해 위세는 두풀 꺾여있는 게 사실.

미국의 수필가/소설가 커트 보니것의 대표 소설 '제5 도살장'에서 등장하는 2차대전 참전 검안사 '빌리 필그림'에서 이름을 따온 잉글랜드 쿼텟 SWEET BILLY PILGRIM은 문학적 밴드명에 걸맞은 심각한 감수성과 예술적 안목을 바탕으로 새로운 UK 아트팝 씬 리더로써 급부상하고 있는 밴드다. 정규 2집 [Twice Born Men (2009)]이 영국 머큐리 음악상 '올해의 앨범' 부분에 깜짝 노미네이트되면서 대중적 인지도를 크게 얻었던 이들은 3집 새앨범 [Crown and Treaty]를 통해 전작의 핵심이었던 RADIOHEAD [Kid A]식 포크트로닉(folktronic) '전자 감수성'을 절제하고 대신 순수한 음향이 강조된 '인간적 감수성'으로의 접근에 좀더 주력하고자 한다. 즉, 포크적 감성과 보컬/어쿠스틱 파트를 강조하고 여기에 따뜻하고 고상한 풍미를 실어주는 관현악기를 적절하게 사용하면서 서두에 언급했던 90년대 UK 오케스트라팝/아트팝의 추억을 되새김질케 할만큼 고전적이면서도 세련미 넘치는 대중친화형 아트팝 작품을 연출하는 데 성공한다.

전작 [Twice Born Men]에서 도드라졌던 프로그래밍 비트, 비핑 사운드, 그리고 벤조 사운드(벤조는 베이시스트 앤써니 비숍이 연주함)의 역할이 줄어든 대신 팝적 양식과 프로듀싱적 역할이 더욱 강화된 이번 [Crown and Treaty] 앨범에서 프로듀서, 리드보컬, 리드기타, 그리고  작사/작곡가로써 원맨쇼급으로 활약한 그의 존재감은 RADIOHEAD에서의 톰 요크 입지 이상으로 강렬하게 느껴진다. 최근 영국의 명문 클래식록 저널 MOJO로부터 '즉시 걸작감(instant classic)' 이라는 최고의 평을 들었던 [Crown and Treaty]에는 트렌드에서 뒷걸음칠 위험성을 항상 내포한 고전적 억양의 팝사운드들이 대거 포진하고 있지만 '원맨쇼 주인공' 팀 엘센버그의 고감도 팝센스와 폭넓은 음악적 안목(고전팝 뿐만 아니라 포크, 블루스, 재즈, 프로그레시브, 아방가르드의 향기가 이 앨범에 골고루 배어있다)에 의해 그 어떤 복고취향의 동년배 오케스트라팝-아트팝 음악들보다 훨씬 더 독창적이면서도 이해하기 쉬운 '이질적 팝사운드'로 완벽하게 거듭나 있다. 엘센버그의 지독한 비주류 팝감수성이 빛을 발하는 센터피스 "Blood Is Big Expense"이야말로 이번 앨범의 방향성과 매력을 단박에 만끽할 수 있는 곡으로써, 보컬파트를 강조하고자 한 앨범의 특징에 걸맞게 나가수급 감정과잉으로 작렬하듯 리드하는 엘센버그 보컬에 의해 미묘하게 조성되는 멜랑꼴리+드라마틱 무드가 재즈 기타+미디키보드 음향에 의한 앰비언트 무드와 절묘하게 맞물리면서 커머셜 음악에서 절대 들을 수 없는 입체성과 개성을 띈 '귀족형' 서민(인디)팝의 품격을 맛보게 될 것이다. "Kracklite" 역시 종전보다 훨씬 더 부드럽고 인간적으로 변모된 이들의 센티멘탈리즘을 엿볼 수 있는 트랙으로, 블루지하지만 마치 재지한 인스트루멘탈힙합을 듣는 듯한(중간에 스크래치 음향까지 살짝 첨가됨) 그루브를 동반하는 비트 템포에 맞춰 브라스와 어쿠스틱-전자 현악기들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지면서 마치 버트 바카락의 노래를 최신버젼으로 리메이크한 듯한 세련된 '트래디셔널' 무드를 연출한다.

이렇듯 [Crown and Treaty]은 버트 바카락-소코트 워커적인 트레지셔널 팝 양식을 전작에 비해 더 적극적으로 따르고자 하지만(따라서 팝 멜로디들의 흡착력 역시 더 강해졌다), 이와는 별개로 SWEET BILLY PILGRIM 음악의 감미료 역할을 톡톡히 해주어 온 익스페리멘탈 어프로치 본능(비록 조금은 다른 방법론을 택하곤 있으나)을 이번 앨범에서도 지속적으로 유지하고 있는 점은 상당히 칭찬할 만하다. 오히려 실험적인 태도 측면에서 전체적으로 차갑게 관조하는 듯한 경향이 짙었던(오히려 난해하기까지 했던) 전작에 비해 귀에 짝짝 들러붙는 친밀도가 한층 더 높아졌다고나 할까. 아방가르드 재즈 프리 색소폰의 찢어지는 듯한 브라스 인트로가 인상적인 오프닝 트랙 "Joyful Reunion"은 초기로큰롤에서 앰비언트까지 다양한 음색을 뽐내는 신쓰 리프와 개성넘치는 코드/노트를 넘나들며 감성을 건드리는 팀 엘센버그의 바리톤+테너 팝 보컬이 앙상블을 이루며 리스너의 감성을 4차원적으로 자극한다. 끈적끈적한 드럼비트를 타고 7-80년대 알앤비 스타일 팝멜로디가 리스너를 적극적으로 어필하는 두번째 트랙 "Archaeology"에서는 킹 크림슨이나 예스 등의 프로그레시브록을 연상시키는 아찔한 기타 리프가 '대중성+실험성 실현' 이라는 이들의 대의에 합당한 사운드를 첨가한다. 그외에도 닉 케이브, 루퍼스 웨인라이트를 연상시키는 카리스마 보컬 라인과 글로켄슈필, 바이올린, 아방가르드 기타 음색들이 한데 어울려 가스펠스러운 풍미와 실험적인 색깔을 동시에 자아내는 네번째 트랙 "Arrived at Upside Down" 역시 복잡다양한 실험적 구조를 깔면서도 앰비언트 기운이 깃든 트레디셔널 팝음악을 융통성있게 담아낼 줄 아는 팀 엘센버그의 독창적인 송라이팅/프로듀싱 역량이 빛을 발하는 곡이다.

[Crown and Treaty]는 RADIOHEAD, SIGUR ROS, (후반기) TALK TALK 스타일의 실험적 사운드스케잎에 치중했던 전작에 비해 보컬라인이 노골적으로 더욱 강화된 작품이지만, 더 정교해진 프로듀싱과 어레인징, 그리고 마치 어떠한 랜덤 코드들로도 멋들어진 팝 멜로디를 엮어낼 수 있을 것만 같은 엘센버그의 원숙해진 작곡역량 등이 동시에 번득이면서 전자 사운드가 줄어듬에도 전작의 미스테리하면서도 악몽같은 실험적 풍모를 잃지 않고 있다. 또한 버트 바카락-스코트 워커식 고전팝 문맥의 현대적 재해석 완성도나 이를 수반하는 멜랑꼴리/아이러니 강도는 오히려 전작 [Twice Born Men]을 넘어 근래 발표된 팝앨범들 모두 통틀어 가히 최고의 레벨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BON IVER의 앨범 이후 인디와 메인스트림 층을 동시에 무리없이 아우를 수 있는 포크 성향 앨범이 바로 이 작품이 아닐른지.

RATING: 81/100

written by BK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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