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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Top Albums of 2012: Honorable Mentions (part 4)


  BALMORHEA [Stranger]


"fake fealty"
랍 로우(Rob Rowe)와 마이클 뮬러(Michael Muller)를 중심으로 결성되어 활동 중인 미국 텍사스주 오스틴 출신의 섹텟(sextet) BALMORHEA는 단순히 '인디록 밴드'로 부르기엔 너무도 프로페셔널한 연주 자세와 아카데믹한 음악 이론/철학을 갖고 있는 집단이다. 이들이 즐겨 구사하는 포크풍 기타/밴조 사운드를 귀기울여 들어보면 마치 전문 교육/훈련 과정을 오랜 기간 거친 클래식/재즈 뮤지션들의 음악처럼 매우 꼼꼼한 연주 스트럭쳐를 지니고 있음을 알 수 있는데, 여기에 현대 클래식, ECM 재즈, 영화 OST에서 접하곤 하는 고급스러운 송라이팅 능력까지 갖추어 텍사스 인디록 씬에서는 거의 독보적인 학구파 인디록 밴드 반열에 올라서 있다. 인디 뮤지션답게 '미니멀리즘'의 절제된 프레임을 고수하면서도 밴드로서의 테크니컬한 면모와 작곡가로서의 스토리텔링을 동시에 보여주어 왔던 BALMORHEA는 새앨범 [Stranger]을 통해 시규어 로스(SIGUR ROS)나 모과이(MOGWAI)식 포스트록 드라마도, RACHEL'S 식 챔버 포스트록도 아닌 오직 그들만의 예술적 영감과 현대 클래식풍 구성(composition)법에 의해 독창적인 미니멀리즘 록 사운드를 포스트록 카테고리 안에서 비로소 완성하게 된다. 특히 이전 작품들의 목가적 분위기를 유지하면서 일렉 기타(어쿠스틱 지향적이었던 전작들에 비해 사용빈도가 본작에서 훨씬 높아짐)와 현악기 오케스트레이션 간의 절제된 주고받기 앙상블을 통해 록음악에 합당한 긴장감을 적절히 불어넣는 솜씨("Days", "Masollan", "Fake Fealty" 등 앨범 1-2-3번 트랙이 3연타로 이를 증명한다)는 이번 앨범이 선사하는 가장 매력적인 부분일 것이다. 많은 시규어로스-모과이 워너비 포스트록 밴드들이 추구하는 통속적인 클라이맥스 연출법에 얽매이지 않고 현대 클래식 음악가들(특히 애르보 파르트루도비코 에이나우디)의 구성법을 차용하여 절제된 미니멀리즘 속에서 서정성과 사운드스케잎을 차분하게 찾아나가는 BALMORHEA의 통산 다섯번째 스튜디오 앨범 [Stranger]은 2012년에 발표된 수많은 앨범들 중 가장 과소평가된 포스트록 앨범으로 손꼽힌다. 
POOLSIDE [Pacific Standard Time]


"give it a rest"
2003년 셀프타이틀 앨범으로 빤짝 조명을 받았던 신쓰록 밴드 IMA ROBOT에서 베이시스트로 활약했던 덴마크 출신의 프로듀서 겸 뮤지션 필립 니콜리치와 미국 샌프란시스코 출신의 파티 디제이 제프리 패러다이스가 샌프란시스코의 한 하우스 파티에서 조우하여 결성한 POOLSIDE의 첫번째 풀렝쓰 [Pacific Standard Time]은 아마 KEFKRIT의 올해 리스트에 선택된 40여 장의 앨범들 중 각 음악 매체들로부터 가장 허접한 평가와 점수를 받았던 앨범일 것이다. 파티 좋아하는 젊은 두 남자가(이들이 만난 장소: 파티장) POOLSIDE를 통해 연출하고자 한 무드는 바로 날씨좋고 물좋은(?) 복고풍 '캘리포니아 파티 무드'. 따라서 이 앨범에는 '진지함'을 평가의 중요 덕목이자 잣대로 여기는 힙스터 평론가들에게 욕먹을 만한 속물적 그루브와 된장 무드로 넘실댄다. 하지만 이러한 '얄팍함'에 상대적으로 호의적인 클럽/인디 라디오 채널 디제이들에 의해 역설적으로 '2012년 최고 앨범 리스트'에 앞다투어 올려지기도 했던 [Pacific Standard Time]의 음악적 핵심은 바로 70년대 중-후반 비지스풍 디스코 사운드/무드의 인디록화. 스트러밍 기타 코드웍, 싱코페이션 베이스라인, 하이햇 열고-쪼개기 등 시대를 초월한 펀치/훅이 담긴 70년대 훵크(funk)풍 디스코 연주 쏘스들은 POOLSIDE의 된장 필터링에 의해 '만인이 듣기에 부담없는' 인디 사운드 형질로 간결하게(그러나 위에 언급한 세 가지 휭키 디스코 쏘스들의 뼈대는 음악 안에 전부 살아있다) 변형되어 있다. 특히 배리 깁(비지스 리드보컬)의 오바스러운 팔세토 따위를 굳이 흉내내지 않고 자신들만의 인디스러운 어투를 담백하게 유지하며 발랄한 혹은 감상적인 노래 분위기에 맞춰 속삭이듯 이어지는 보컬 텍스쳐는 배킹 사운드에 의해 조성되는 달짝지근하면서도 몽환적인 칠웨이브 무드와 잘 어우러지면서 비지스풍 올드 디스코와는 차별화된 POOLSIDE식 뉴 디스코 록 사운드의 캐릭터를 만드는 데 큰 역할을 해준다. '디스코'라는 다소 기계적이었던 올드스쿨 장르를 인간적 감성과 (인디록 본연의) 미니멀리즘으로 깔끔하게 재해석한  [Pacific Standard Time]은 파티용은 물론이고 단순 헤드폰 감상용으로도 아주 적격인 사운드를 들려준다. 혹시 부담없는 인디록 사운드로 파티를 계획하는 사람이 여기에 있는지? 나른한 80년대 뉴웨이브 분위기의 가든 와인 파티를 기획하고자 한다면 THE VIRGINS의 음악을, 70년대 말 디스코 분위기의 풀장 칵테일 파티를 열고 싶다면 바로 이 밴드 POOLSIDE의 음악을 디제잉 아이템으로써 한번 이용해보라.  
WHITE SUNS [Sinews]


"footprints filled"
유독 한국에서만 실력파 일본 뮤지션들(몇몇 상업적 밴드들을 제외한다)이 저평가되고 있는 듯 하지만 '노이즈의 왕초' BOREDOMS를 비롯, RUINS, KK NULL/ZENI GEVA, C.C.C.C. 등 80-90년대에 걸쳐 오사카 지역을 기점으로 자생적으로 형성되었던 저팬 노이즈(Japanoise라고도 한다) 밴드/아티스트들은 '미국 노이즈록의 대부' 스티브 알비니와 존 존, 빌 라스웰, SONIC YOUTH 등 90년대 서구 노이즈 세력들과 상호영향을 주고 받으면서 현재까지 그 명맥을 이어가고 있으며 BOREDOMS의 영향이 유독 컸던 뉴욕 노이즈 씬 역시 일본과 함께 순수 아방가르드 톤과 즉흥적 미학을 비교적 잘 유지하며 오늘날에도 훌륭한 노이즈 밴드/뮤지션들을 심심찮게 배출하고 있다. 뉴욕 노이즈 미학을 계승하고자 하는 신흥 뉴욕 노이즈펑크 세력(TWIN STUMPS, CHILD ABUSE 등등) 중 한 팀인 트리오 WHITE SUNS의 데뷔 풀렝쓰 [Walking In the Reservoir (2011)]는 아마 PRURIENT의 [And Still, Wanting (2008)], WOLF EYES의 [Human Animal (2006)] 이후 가장 화끈하게 만끽했던 100% 순수 언더그라운드 노이즈 (록) 앨범으로 기억된다(단 SHELLAC이나 BITCH MAGNET의 영향이 느껴지는 하드코어펑크+매쓰록 연주를 노이즈/피드백 카오스의 메인 방향키로 삼는 WHITE SUNS가 노이즈 텍스쳐 지향적인 WOLF EYES나 PRURIENT보다 훨씬 더 '록밴드' 다운 와꾸에 근접해 있다). 데뷔 앨범을 통해 [Hypermagic Mountain] 시절의 LIGHTNING BOLT(폭력적 록 스트럭쳐)와 [Strange Keys to Untune Gods' Firmament (2010)]의 SKULLFLOWER(노이즈 텍스쳐) 스타일을 뒤섞은 듣한 하드코어+아방가르드 퓨전 사운드를 선사했던 WHITE SUNS가 2012년 발표한 [Sinews]는, 전작 [Walking In the Reservoir]보다 훨씬 향상된 완급조절과 구성력을 바탕으로 근래 발표된 인디 노이즈 펑크/록 앨범들 중 최고 완성도의 노이즈 록 앙상블이 대거 담겨 있다. 즉, 매 트랙마다 오로지 다이다이다이 식으로 시작부터 끝까지 일률적으로 밀어붙이는 데에만 집착했던 전작에 비해 훨씬 다채로워진 노이즈 이펙트 효과(마치 BLACK DICE와 같은 실험적 자세로 노이즈를 프로그래밍한다)와 나레이션/샤우팅을 바탕으로 나름의 기승전결이 담긴 스토리보드 작업을 이번 노이즈 앨범에서 구현해낸 것. BOREDOMS-BIG BLACK의 밀어붙이기 식 노이즈 록/펑크 프로덕션과 SHELLAC-BLACK DICE의 테크니컬리즘 바탕 위에 빌 라스웰, 존 존의 뉴욕풍 아방가르드 연출/방법론까지 염두에 두고 제작된 [Sinews]는 현 뉴욕 노이즈 펑크/록 밴드들이 취할 수 있는 가장 이상적인 형태의 완성도를 보여주고 있는 작품일 것이다.       
 SLEIGH BELLS [Reign of Terror]


"end of the line"
SLEIGH BELLS는 칠웨이브(chillwave) 밴드가 아니다. 사실 '칠웨이브'의 정의조차도 모호하긴 하나, 그렇다고 랩탑, 신쓰, 복고팝, 로파이 프로덕션에 올인하는 그룹도 아닌데 왜 자꾸 이들의 이름이 '칠웨이브' 장르 밴드로서 ARIEL PINK, TORO Y MOI 등과 함께 오르내리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 물론 '노스텔지아'와 '슈게이징'이 SLEIGH BELLS의 음악에서 무시할 수 없는 요소인 건 맞지만 이들이 마지막으로 도출해내는 사운드는 언제나 아이러니와 뒤틀림이 잔뜩 묻어 있는 시끄럽고 '불편한' 형태의 센티멘탈리즘이기 때문에 절대 칠웨이브 믹스테잎에 섞어놓고 된장질 하면서 '칠(chill)'하게 들을 만한 퀄리티는 아니리라. 80년대 아레나 헤어메틀(hair metal)의 요란한 트윈 기타와 인더스트리얼/하드코어 테크노의 호전적인 따발총 드럼 비트가 만나 스테레오가 터질 듯한 볼륨감을 남발하는 배경 사운드, 그리고 이에 초연한 듯 슈게이징스럽게 불려 재끼는 인디팝 보컬 라인. 이 양 극단 사이에서 오묘하게 형성되는 아이러니한 그루브(힙합 그루브와 흡사)와 훅이 일품이었던 데뷔 풀렝쓰 [Treats (2010)]는 분명 이 뉴욕 브루클린 출신 신예 혼성 듀오의 이름을 뚜렷이 각인시키기에 충분한 작품이었다. 이들은 써퍼모어 앨범인 2012년작 [Reign of Terror]에서도 전작처럼 노골적인 아레나 메틀풍 디스토션 기타 사운드와 인더스트리얼 테크노 비트가 요란하게 헤드폰을 때리는 SLEIGH BELLS식 도발코드를 충분히 충족시키는 사운드를 여전히 과시한다. 물론 프로듀싱 과정에서 [Treats]보다 정돈된 레이어와 음향 퀄리티를 염두해둔 탓인지 데뷔 시절의 거칠고 혼란스러운 크레이지 모드와 똘끼("Straight A's""A/B Machines" 같은 1집 트랙)가 일부 깎여나가긴 했지만 이러한 공백을 드림팝 성향의 달달한 감성모드로 효과적으로 매꿔줌으로써 [Treats]와는 또다른 분위기의 개성을 [Reign of Terror]을 통해 발산하는 데 성공한다. 특히 노골적인 존재감을 드러내는 드럼비트+디스토션기타+신쓰리프 삼위일체 배경 사운드의 빵빵한 그루브/펀치(그런 의미에서 "Comeback Kid" 강추)에 맞춰 눈물나는 슈게이징 감수성을 표현하는 여성 멤버 알렉시스 크라우스의 보컬 센스는 가히 일품인데, 최근 사랑하는 사람 두 명을 연이어 하늘로 떠나보내고 갖게 된 우울한 심정을 이번 앨범을 통해 승화시키고자 했던 리더 데릭 에드워즈 밀러의 팝 감수성이 크라우스의 리버브 보컬에 실어져 매 트랙마다 절절하게 와닿는 신쓰팝 앨범이 바로 [Reign of Terror]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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