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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STS

The Top Albums of 2012: Honorable Mentions (part 1)


2012년, 여러가지 이유들로 인해 자주 찾아뵙지 못한 점 머리숙여 사과드립니다. 이번 2012년 리스트 역시 다른 사이트들보다 훨씬 늦게 발표되는 것이지만 나름 저희들끼리 의견 교환을 충분히 한 뒤 추려낸 앨범들이기에 참고 바랍니다. 'Honorable Mentions'에 소개될 앨범들은 나중에 소개될 TOP 30 리스트 안에 들지 못하지만 충분히 소개될만한 가치가 있는 작품들(80-82점 사이)만 엄선한 것들입니다. 단 JJ DOOM의 [Key to the Kuffs]이나 JOHN TALABOT의 [fIN]처럼 이미 이곳에 리뷰가 올려졌던 앨범들은 리스트에서 제외됩니다.



"Sentenced to Life"
80년대 DEF LEPPARD 이래 '프로듀싱'은 헤비메틀이나 다른 금속성 록 앨범의 퀄리티를 논할 때 밴드의 연주력 못지않게 무시할 수 없는 요소로 작용해왔다. 특히 적당한 하이파이 사운드와 그루비한 리듬 앙상블이 적당하게 버무려진 하드코어 메틀 음악이야말로 스튜디오 작업에 성패가 가장 좌우되는 메틀 장르라 해도 과언이 아닐텐데, 시애틀 출신의 잡탕 메틀 밴드 BLACK BREATH는 실험적 힙스터 메틀 레이블들 중 하나인 Southern Lord(블랙메틀을 힙스터에게 소개한 장본인이라는 우스갯소리도 듣곤 한다)를 통해 올해 초 릴리즈된 두번째 풀렝쓰 [Sentenced to Death]에서 21세기형 메틀 프로듀싱에 관해 가장 모범적인 답안을 제시하는 데 성공한다. 90년대를 풍미했던 스웨덴 데쓰메틀 밴드들이 즐겨 사용하던 HM-2 헤비메틀 디스토션이 풀업 장착된 트윈기타 하모니를 바탕으로 3M(메틀리카-메가데쓰-메틀처치)-슬레이어-쓰래쉬(thrash metal)로 대변되는 80년대 말 리즈시절 헤비메틀이 울고 갈만한 폭풍 스피드와 빵빵한 파워를 앨범 안에서 과시하는데, 이 날 선 사운드는 선배 변종 메틀 밴드 CONVERGE의 리더 겸 프로듀서 커트 볼루(Kurt Ballou)에 의해 뉴 메틀(nu metal)식 '힙스터' 루틴, 하드코어 펑크 그루브 등과 효과적으로 접목되어 탁월한 현실감각을 갖춘 크로스오버 헤비메틀 작품으로 거듭난다. 트윈기타, 드럼, 베이스 등 모든 악기파트의 특성을 균등하게 살려내어 정통 쓰래쉬/데쓰 메틀 밴드들과 견주어 손색이 없을 정도로 빈틈 없이 조여붙이는 인스트루멘탈 매커니즘을 시대적 취향에 맞게 구현해낸 커트 볼루의 프로듀싱/엔지니어링 솜씨는, 살벌함과 조악함 사이의 딜레마를 지난 두 장의 앨범(EP 포함)에서 미처 털어내지 못했던 BLACK BREATH가 [Sentenced to Death]를 통해 마침내 자신들의 잠재력을 호쾌하게 터트리며 소속사 Southern Lord의 기둥으로 우뚝 솓는 데 결정적인 견인차 역할을 해주었던 것.  
MORITZ VON OSWALD TRIO [Fetch]


"club"
미니멀 테크노 팬들에겐 빌라로보스와 함께 결코 거부할 수 없는 이름 모리츠 폰 오즈발트(Moritz von Oswald). BASIC CHANNEL과 MAURIZIO라는 일렉트로닉 역사에 남을 만큼 걸출한 프로젝트를 이끌며 테크노의 황금기가 도래하기 시작한 90년대 초-중반을 풍미했던 이 독일 출신 백전노장의 음악 열정은 다양한 콜라보 프로젝트의 참여 등을 통해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그중 가장 주목할 만한 활동이 2009년 결성된 콜라보 프로젝트 MORITZ VON OSWALD TRIO로, 오즈발트 자신을 비롯, 또다른 덥/미니멀 테크노 거장 사수 리파티(Sasu Lipatti: VLADISLAV DELAY/LUOMO)와 SUN ELECTRIC의 막스 로더바우어(Max Loderbauer) 등 세 명의 일렉 거장들이 한 데 뭉친 슈퍼 그룹에서 그는 작곡과 프로듀싱, 디렉션을 총괄하는 '지휘자'로 활약중이다. 물론 거친 디스토션/필터를 입힌 베이스라인/킥드럼과 딜레이/에코 터치를 가한 배경사운드 등으로 무장된 간지나는 덥 테크노(dub techno: 모리츠 폰 오즈발트가 바로 이 서브장르의 부흥자로 간주해도 무방하다. 작년부터 이곳에서 줄창 띄우는 애덤 스톳의 음악 역시 비트의 질감 등을 고려할 때 덥 테크노의 일종으로 볼 수 있다)의 댄스 모멘텀을 M.V.O.T.의 사운드에서도 똑같이 만끽할 수는 없다. M.V.O.T.는 클럽용 음악 제작 집단이 아니라 테크노계에서도 실험적인 풍모가 남달랐던 오즈발트, 리파티, 로더바우어의 익스페리멘탈리즘 본능을 구체화하는 장이기 때문. 이 때문일까. 결성 이후 선보였던 라이브 풀렝쓰 앨범 [Live In New York (2010)]과 스튜디오 앨범 [Horizontal Structures (2011)]는 현대 클래식의 '임프로바이제이션'에 방점을 둔 탓에 아방가르드 어프로치의 느낌이 다분했고 사운드아트를 듣는 듯한 정적인 기운들도 두드러졌었다. 하지만 리더 폰 오즈발트는 신보 [Fetch]를 통해 얀 엘리넥(Jan Jelinek)이나 Rune Grammofon 레이블 음악 같은 재즈+사운드아트 퓨젼의 정적인 카테고리에서 벗어나 마일즈 데이비스나 허비행콕이 재즈로킹할 때 혹은 자신들이 왕년 클럽디제이 시절 취했던 동적인 그루브를 '익스페리멘탈리즘' 속에서 실현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 대거 도입한 요소는 바로 자신들이 리즈시절 구사했던 미니멀/덥 테크노 스타일의 다운템포 그루브! 특히 VLADISLAV DELAY [Multila (2000)] 시절 즐겨 사용했던 갑갑한 질감의 킥드럼과 각종 트라이벌 비트로 (덥/미니멀) 테크노의 템포와 무드를 자아내는 사누 리파티의 활약 덕에 로더바우어(신쓰를 주로 맡았다)와 다른 세션맨들의 익스페리멘탈 연주들은 프리재즈 잼을 하듯 흥겨운 그루브를 타며 50분의 러닝타임 내내 절묘한 전자 앙상블을 이뤄낸다. 사운드 아트/디자인, 앰비언트, 아방가르드, 익스페리멘탈, 프리재즈 등의 지루한(?) 음악 장르 소스들을 폰 오즈발트-리파티-로더바우더 자신들의 트레이드마크였던 테크노 그루브로 훨씬 맛깔스럽고 듣기 쉽게 요리한 [Fetch]  앨범이야말로 2012년 익스페리멘탈 성향의 일렉 앨범 중 가장 훌륭한 구성과 완성도를 지니고 있는 작품일 것이다.  


"not far from it"
반대중으로 흐를 수도 있었던 펑크록 초기. 팝 멜로디 훅과 미니멀리즘 연주를 도입하면서 대중친화적 아이덴티티를 펑크록의 프레임 안에서 구현했던 RAMONES부터 시작된 팝 펑크(pop punk)는 오늘날 메인스트림계에서 펑크 팝(punk pop)으로 변형되어 하이파이 사운드로 무장한 클리세 펑크 밴드들의 무차별적 잉태를 돕는 역할을 하게 된다.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결성된 인디 펑크 트리오 TERRY MALTS는 최신 메인스트림 클리쉐 펑크팝 밴드들처럼 '펑크'와 '팝'이라는 두 상이한 장르를 [Killing Time]에서 동시 선택하지만, '펑크' 를 그루피와 상업성을 위한 수단이 아닌 역사적 재해석을 위한 텍스트로 간주하고 팝 펑크의 영미 양대 거목 BUZZCOCKS와 RAMONES이 30여년전 남겼던 그 '달달한' 언더그라운드 팝펑크의 멜로디훅, 텍스쳐, 무드 등을 21세기에서 그대로 재현하고자 한다. 하지만 이러한 재현 방식을 제2의 그린데이, 블링크182, 폴아웃보이가 되기 위해 유튜브를 돌려 보며 열씨미 즐 따라하는 동네 십대 펑크 밴드들의 '모방(imitation)'과 동일개념으로 보아선 곤란하다. 왜냐면 TERRY MALTS는 개러지록과 싸이키델릭의 성지인 샌프란시스코 출신답게 60년대 올드 개러지록의 생동감 넘치는 로파이 로큰롤 기운, 클래식 싸이키델릭록의 피드백 기타-퍼즈 베이스-노이즈를 자신들의 올드스쿨 팝펑크 프레임 안에 집어넣어 RAMONES, BUZZCOCKS 단순 모방 밴드와는 분명 차별화된 그들만의 개성을 이번 앨범 안에서 확실하게 보여주고 있기 때문. 과거 팝펑크 레전드들의 유산을 지키고자 단순(미니멀)하고 소박(로파이)하고 올드한 패턴을 유지하면서도 RAMONES와 BUZZCOCKS에 버금가는 빈티지 훅과 에너지, 그리고 개성까지 기대이상으로 터트린 [Killing Time]은 과거 RAMONES와 BUZZCOCKS에 열광했던 올드팬들에겐 올해 최고의 선택일 것이며 역사 인식없이 얄팍하게 기름칠된 펑크 훅에만 익숙해 있는 젊은 음악팬들에겐 신선한 비타민이 될 만한 좋은 100% 진퉁 인디 팝 펑크 앨범이다.   
BUZZCOCKS의 황금듀오 피트 쉘리(Pete Shelly)와 스티브 디글(Steve Diggle)은 팝 멜로디의 캐취감을 펑크록 프레임 안에서 특화시키는 데 비범한 재주가 있었지만 밴드의 음악들을 좀더 자세히 들어본다면 이들의 스타일은 상당히 다른 점이 두드러진다. 피트 쉘리가 냉소적이면서도 가벼운 중성적 톤의 미니멀리즘 팝을 구사했다면 스티브 디글은 남성적이고 묵직한 미니멀리즘 로큰롤에 몰두했던 것. 위에 언급했던 TERRY MALTS의 [Killing Time]이 피트 쉘리식 BUZZCOCKS의 가벼운 팝펑크 미니멀리즘과 유사하다면 지금 소개할 호주 출신의 펑크록 트리오 ROYAL HEADACHE가 올해 발표한 셀프타이틀 앨범은 스티브 디글식 BUCKCOCKS 사운드와 흡사한 남성적 로큰롤 팝펑크 넘버들로 구성되어 있다. 이들 역시 TERRY MALTS처럼 로파이 개러지록의 영향이 느껴지는데, 특이하게도 비틀즈 시대 올드스쿨 로큰롤과 R&B(!)의 바이브를 차용하여 에너제틱한 개러지 펑크 그루브를 생성한다는 점이 이 앨범에서 상당히 크게 어필되고 있다. 마치 샘 쿡(Sam Cooke)이나 로드 스튜어트(Rod Stewart)를 연상시키는 보컬리스트 쇼군(Shogun)의 소울풀한 보컬은 신나게 질주하는 파워팝 템포에 맞춰 펑크 스타일로 변형되어 듣는 이의 귀를 시원히 뚫어주는데, 이렇듯 BUZZCOCKS나 REPLACEMENTS가 지하클럽 시절 연주하던 오리지널 펑크의 사운드/감성 구조에 60년대 소울-로큰롤-개러지록 쏘스로 자기들만의 독창적 색깔을 낸 [Royal Headache]야말로 클래식 펑크의 텍스쳐 재현에만 지나치게 치중하여 모방 아닌 모방 수준에 머물고 있는 수많은 인디 펑크 리바이벌 밴드들에게 좋은 본보기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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